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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화 (74/270)

74화

[규류.]

[왜?]

[너는 이제 어찌할 생각이냐.]

[어찌하긴…… 대리자 일족이 할 일이야 당연히 카니발의 참가자들을 인도하는 것이지. 다행이라면 일족 내의 경쟁이 대충은 마무리 된 것 같다는 것이겠지. 안 그래?]

현류는 그의 대답에 쯧- 하고 혀를 차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놈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저런 광경을 보면 인정 안 할 수 없지. 물론, 네가 아니라 남궁을 말하는 거다.]

[하여간…… 그러든지 말든지.]

규류는 그의 말에 피식 웃었다.

하하하하하---!!!

그들이 서 있는 곳 뒤의 홀에서는 늦은 밤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현류가 말한 저런 광경이었다.

[아버님께서 웃으시는 걸 본 게 언제였던지…… 솔직히 기억도 안 난다.]

[나도. 그보다 웃기지 않냐. 야차와 인간이 저렇게 앉아 있는 풍경이 말이야. 지금껏 우리는 그저 인간을 열등한 자들이라 생각했는데 말이지.]

[열등한 자가 우리도 하지 못한 일을 해냈군.]

현류가 말했다.

[정말 회귀자일까?]

[그럴걸.]

[확실히…… 지금까지의 행보를 보면 다른 계시자들보다도 압도적이지. 그런데 우습게도 대놓고 회귀자라 말하고 다녀서 오히려 더 의심이 간다니.]

[그걸 노리고 있는 걸지도. 위상들도 답답할걸. 대놓고 활동을 하는데 제약을 줄 수도 없으니 말이야.]

[대단해 보이지만…… 한편으로 저자는 너무 위험하다.]

[뭘 고민하냐. 현류. 아버님께서 인정한 자다. 그리고 우린 무휘의 자식들이지. 그것으로 끝난 거 아냐?]

현류는 그의 말에 대답 대신 조용히 들고 있던 술잔을 들이켰다.

[그리고 너도 봤잖아.]

그런 그를 향해 규류가 말했다.

[그자의 야차술 말이야.]

[그래.]

대답을 하지 않던 현류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들 중 누구도 그런 걸 할 순 없을 거야.]

[우리들 중이 아니지.]

그들은 서로를 바라봤다.

[아버님도 할 수 없는 것이야.]

퍼억-!!!

무휘는 자신의 쇄골에 검을 찔러 넣은 남궁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부우우웅---!!!

그러고는 냅다 그를 집어 던졌다.

콰드드득……!!

공중에서 방향을 틀며 바닥에 착지한 남궁은 힘을 이기지 못한 채 바닥을 긁으며 밀려났다.

[흉차의 틈에 영혼 가루를 밀어 넣다니. 이런 식으로 내 무구를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다고는 생각 못 했는데…….]

철컥-! 철컥-!!

무휘는 자신의 건틀릿을 몇 번이나 뒤로 더 당겨봤다. 하지만 안에 들어 있는 탄환은 뭔가에 걸린 듯 꿈쩍하지 않았다.

“영탄을 쓸 수 없게 되면 흉차는 그저 엄청나게 단단한 건틀릿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지.”

[클클…… 갈수록 더 마음에 드는데?]

무휘는 바닥에서 일어서는 남궁을 향해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그는 자신의 복부에 박혀 있던 【백천강검】을 뽑아 그에게 던졌다.

[그런데 그거 아냐? 엄청나게 단단하다는 건…… 절대로 부서지지 않는다는 뜻이지.]

콰앙---!!!

“……!!”

순간 둘의 거리가 좁혀졌다.

남궁은 황급히 바닥에 떨어진 무휘가 던진 검을 움켜잡았다.

‘아차.’

피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휘에게서 느껴지는 위압에 자신도 모르게 방어를 하고 말았다.

카드드드득……!!

우드득!!

둔탁한 소리와 함께, 무휘의 주먹이 남궁의 복부를 후려쳤다.

“……컥!”

남궁의 숨이 터져 나오며, 그 순간 뼈가 튀어나올 것처럼 그의 허리가 꺾였다.

‘끝이군.’

‘저걸 맞고 살아 있을 리 없지.’

야차들은 날아가는 남궁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

하지만 놀랍게도 무휘의 일격을 맞은 남궁이 비틀거리며 일어서자 그들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말도 안 돼…… 살았다고?]

[저걸 맞고도? 고작 인간이?]

그들의 반응처럼 무휘 역시 일어서는 남궁을 오히려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바라봤다.

[튼튼한 녀석이군. 아니, 튼튼하기보다 재빠르다고 해야 할까? 그 순간에 검으로 막다니 말이야. 뭐…… 검은 그리 튼튼하지 않은 모양이지만.]

파스슥……!!

무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남궁이 쥐고 있던 【백천강검】이 가루가 되며 부서졌다.

“……명훈이에게 잔소리 좀 듣겠군.”

남궁은 부서진 검을 바닥에 집어 던지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중에 돌아갈 때 녀석에게 줄 선물을 하나 받아 가야겠다. 빈손으로는 갈 수 없으니까.”

[크…… 크큭. 살아 돌아갈 생각인가?]

“물론. 그리고 양손 가득 무겁게 돌아갈 거야.”

[과연?]

무휘는 다시 덤벼 보라는 듯 손을 까닥거렸다.

“무휘. 내가 당신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게 이런 면이거든. 전력을 다했다면 지금의 나는 상대조차 되지 않았을 거야.”

[흐음, 그런데?]

“당신은 지금 내 수준에 맞춰서 자신의 능력을 억제하고 있지.”

[이 정도로도 충분하니까.]

우드득-

[……!!!]

그 순간,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촤아아악……!!!

조금 전 남궁을 향해 날렸던 무휘의 팔이 마치 빨래 짜듯이 뒤틀리면서 잘려 나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내 신체 능력은 꿰뚫어 봤을지 모르지만…… 기술은 꿰뚫어 보지 못한 모양이군.”

[……큭?]

무휘가 뜯겨져 나간 팔을 보며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남들 같았으면 비명을 지르고 난리를 쳤을 텐데 과연 야차 일족의 수장다웠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고통보다 오히려 그는 지금 자신에게 벌어진 일에 대해 궁금함을 참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아하.]

하지만 그 의문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거로군.]

카드드드득……!!

뜯겨져 나간 팔의 단면은 마치 내부에서 소용돌이가 친 것처럼 나선으로 뒤틀려 있었다.

[……허세인 줄 알았더니. 정말로 무아경(無我經)을 익혔군.]

처음 보는 상처였다.

무량의 【역진경】은 내부의 투기를 밖으로 표출하는 것.

하지만 지금 그의 상처는 오히려 투기가 표출된 것이 아닌 흡입하여 내부를 뒤튼 것이었다.

[투기를 몸 안에 집어 넣는다라…… 그야말로 자살 행위로군. 투기는 벼려진 검과 같은 것이다.]

“안다. 그것을 극대화한 것이 무량의 술법이며 그보다 더 효과적인 술법은 지금까지 없었지.”

우우우웅…….

남궁이 손바닥을 펼치자 그 위에서 옅은 바람이 일었다. 소용돌이치는 공기는 특이하게 아래에서 위로 역행하며 돌고 있었다.

“하지만 완벽하기 때문에 그만큼 도박을 해야 하는 법이기도 하거든.”

그 순간 소용돌이는 점점 더 압축되더니 아무것도 없이 사라졌다.

퍽!!

하지만 사라졌다 보이는 순간,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서 날카로운 폭음이 터져 나왔다.

[그런가…… 그저 방출하는 것이 아니라 압축해서 터뜨리는 것이군. 투기에 투기를 더한다는 말이지.]

“더해지는 힘이 꼭 투기일 필요는 없지. 마력이 될 수도 있고 정령력이 될 수도 있다.”

[그 말은 자신의 투기로 상대방의 힘을 먹어치워 폭발력을 증가시킨다?]

무휘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의 힘이 강할수록 그 폭발력은 더욱 강해지겠지. 무량을 상대하기 위해 고안한 술법다워. 그야말로 강자와의 싸움을 위한 것이로구나.]

“그래. 무량의 술법은 최강이다. 그 힘을 이길 수 있는 건 무량의 힘이니 무명은 그것을 역이용한 것이지.”

남궁은 대답했다.

“완벽하게 먹어치우는 것이 아니라 삼키기 직전에 토해내며 그 힘을 폭발시키는 것.”

[그렇다고 그 술법이 안전하다 할 수는 없다. 직전에 토해내는 것뿐이라고는 하지만 결국은 네 힘이 상대방의 힘을 찰나라도 삼켜야 하는 법. 먹어치우기도 전에 네 힘이 버티지 못해 폭발한다면…….]

툭-

무휘는 자신의 잘린 팔을 발로 차 남궁의 앞에 던지며 말했다.

[저 꼴이 되겠지. 네가 먼저 으깨질 거다.]

“걱정하지 않아.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너희가 있는 거잖아.”

[……뭐?]

“설마 야차 일족이 자신의 계약자를 그냥 두겠어?”

남궁은 무휘가 있던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무구가 되었든 비약이 되었든…… 팔각전쟁이 있기 전까지 무슨 짓을 해서든 날 지금보다 더 강하게 만들어주겠지.”

[크…… 크하하하하!!]

무휘는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남궁의 모습에 호탕하게 웃고 말았다.

[감당할 수 있겠냐.]

그런 그를 향해 남궁은 대답했다.

“실망이나 시키지 마.”

[이제 어떻게 될 것 같냐.]

현류가 물었다.

[사실 남궁 저자는 위상의 계시자다. 물론, 계시자가 대리자 일족의 계약자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2개의 혜택을 동시에 받은 거야.]

[지금도 눈에 띄는데 더 눈에 띄겠지.]

계약자로 정해진 이상 더 이상 그의 일은 개인의 일이 아니었다.

일족의 사활이 걸린 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족의 계약자가 뛰어난 건 너무나도 기쁜 일이지만 주머니 속 바늘은 결국 튀어나올 수밖에 없는 법.

[모두의 타깃이 될 거다.]

그리고 그런 바늘은 결국 가장 먼저 부러지고 만다.

규류는 걱정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이해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해할 뿐 걱정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게 진짜 목적일지 몰라.]

[……흠?]

[말했잖아. 저 인간은 미친놈이라고. 평범한 눈으로 봐서는 안 돼. 저렇게 날뛰는 거 보면 어쩌면 일부러 다른 자들의 타깃이 되려고 하는 걸지도 몰라.]

[어째서?]

그 순간 규류는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모르지. 저 머릿속에 뱀이 한 무더기는 들어 있을 인간의 생각을 어찌 알겠어.]

기대했던 것과 다른 대답에 현류는 아쉽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규류는 무휘와 술잔을 기울이는 남궁을 보며 말했다.

[그가 티탄의 심장을 가져오겠다고 했다지?]

[그런데?]

[분명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거다.]

어쩌면…….

3번째 문이 열릴 때일 수도.

* * *

-대리자 일족의 계약자가 모두 정해지다!

-치열한 경매는 많은 사망자를 내고, 추도의 물결이 전역에서 일어나는데…….

-한국에서 2명의 계약자가 탄생!!

-최연소 계약자 남소민에게 초유의 관심이 쏠리는 중…….

“흐음…….”

무휘가 준 술이 아직 깨지 않아 지끈거리는 두통에 관자놀이를 꾹 누르며, 남궁은 전광판에서 보도 되는 뉴스를 바라봤다.

야차의 문을 통과해서 다시 세빛섬으로 돌아온 그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깨끗한 섬의 풍경에 이질감을 느끼면서 도시를 지나고 있었다.

“……흠?”

남궁은 거점으로 돌아왔을 때, 순간 자신의 길을 잘못 든 건가 싶었다.

거점으로 향하는 도로에 바리게이트가 몇 개나 쳐져 있을 때에도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동네에 들어섰을 때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게 뭐야?”

깨끗해진 세빛섬의 이질감은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말도 안 되는 풍경이었다.

“잠시만요!! 잠깐이면 됩니다!!”

“이봐, 가리지 말라고!”

“거참, 쫌! 밀지 맙시다!!”

골목길은 기자들로 점령당한 상태였다. 빼곡하게 들어찬 기자들과 바리게이트를 치고 있는 경찰들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고.

쿵-

대충 지금 상황이 이해는 갔다.

남궁이 지면에 발을 내딛자 소란스러웠던 기자들의 고개가 돌아갔다.

“어?”

“저 사람은……!!”

잠깐의 정적 뒤에 마리 밀물처럼 그를 향해 기자들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남궁이다!!”

“남궁이 왔다!!”

경찰과 기자, 그리고 구경꾼들까지 뒤엉켜 일대는 엄청난 소란이 일어났다.

그때였다.

콰직-!!

들이미는 마이크를 빼앗아 움켜쥐자 단숨에 박살이 났다.

“무, 무슨……!”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저벅- 저벅- 저벅-

기자들은 남궁의 태도에 당황한 듯 소리쳤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을 밀치며 걸리적거리는 마이크들을 빼앗아 부숴 버렸다.

“남궁?”

그가 기자를 내려다 봤다.

“내가 네 친구냐?”

“……네?”

딸꾹-

그의 눈빛과 마주친 기자는 자신도 모르게 어깨가 떨렸다.

“……형님!!”

그 순간 문이 열리며 명훈이 놀란 표정으로 소리쳤다. 그동안 꽤나 시달린 듯 그의 모습을 피곤해 보였다.

“이거 받아.”

“이, 이게 뭡니까?”

명훈은 남궁이 던진 물건을 살폈다.

“네 검 부러졌거든. 그래서 새로 하나 받아 왔다. 물어보고 골랐어야 하는데 내가 그냥 임의로 골랐어. 그래도 레어 등급이니까 전에 것보다 나을 거다.”

“레, 레어요? 아니, 부러져요? 제 검이요?”

갑작스러운 상황에 명훈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남궁을 바라봤다.

“거기 당신들도 남의 집 앞에서 소란 피우지 말고 돌아가.”

“잠시만요! 돌아가다니요!”

“저희는 시민들의 알 권리를 위해서……!”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던 기자들은 남궁의 말에 너도나도 소리치기 시작했다.

“알 권리?”

남궁은 차가운 목소리로 검을 들어 상공을 가리키며 말했다.

“뭘 알고 싶은데?”

쿠그그그그그그…….

그 순간 그가 가리킨 상공에서 붉은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언제 뒈질지?”

기자들은 쏟아지는 세 번째 빛을 멍한 눈으로 바라보며 입을 다물고 말았다.

“3번째 문이 열린다.”

답은 그걸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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