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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화 (71/270)

71화

쿠그그그그---!!

통천루 안으로 들어가자 그곳에는 수많은 계단들이 얽혀 있었고 사방은 높다란 책장이 성벽처럼 둘러싸여 있었다.

촤르륵……!

쿵! 쿵!! 쿠우웅!!

책장의 책들은 바람에 날리는 것처럼 안의 페이지가 빠르게 흔들렸고, 책장 위로 올라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계단은 살아 있는 것처럼 스스로 움직이고 있었다.

[우아…….]

규류는 그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뜨렸다.

무휘의 아들인 그도 처음 보는 광경이었으니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살다 살다 통천루 안으로 들어오게 되다니…… 진짜 규류 인생 최고의 순간이네요!]

이제 곧 살아 있는 샌드백이 될 운명이었지만 그래도 규류는 지금을 즐기려는 듯 여기저기 신나게 구경하기 시작했다.

“너무 고마워하진 않아도 돼.”

좋아하는 규류의 모습에 조금은 미안해진 남궁이었기에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헐, 남궁 님! 이거 보십시오!!]

신나게 책장을 구경하던 규류가 꽂혀 있던 책 중에 하나를 꺼냈다.

[적혈술(赤血術)입니다! 몸 안의 피를 뽑아서 갑옷과 무기로 쓸 수 있는 야차술이죠. 피를 뽑는다고 해서 놀라지 마십시오. 고작 피 한 방울이면 충분하니까요!]

그는 남궁보다 더 신이 난 듯 말했다.

[역대 수장들 중 3번째였던 이누카 님의 고유술법입죠. 그는 이 술법 하나로 정상에 올랐습니다.]

넘버링 32-2

이름 : 비전서–적혈술(赤血術)

등급 : 유니크(최고)

▶ 3대 야차 수장, 이누카가 고아한 술법.

▶ 소량의 피를 이용해서 원하는 무구와 방어구를 만들어낼 수 있다.

▶ 단단함과 예리함은 사용자의 역량에 따라 크게 변한다.

[헉…… 설마 이건 역진경(易眞經)? 미쳤네…… 초대 수장의 비전서까지 있다니!]

남궁에게【적혈술】을 넘기자마자 규류는 언제 그랬냐는 듯 더 놀라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아니다. 아니다. 남궁 님! 이거 익히시죠! 이거야말로 최고의 야차술입니다!]

손에 들려 있던【적혈술】를 낚아채며 규류는 그보다 훨씬 더 오래된 비전서를 남궁의 손에 올렸다.

넘버링 32-1

이름 : 비전서-역진경(易眞經)

등급 : 유니크(최고)

▶ 초대 야차 수장, 무량의 야차술.

▶ 모든 야차술의 근간이 되는 기본서.

▶ 투기(鬪氣)라 불리는 몸 안의 기운을 다스리며 그 힘을 통해 신체를 단련시키고 외부로 힘을 방출케 한다.

▶ 습득 시, 이후 익히게 되는 모든 야차술의 능력치가 상승한다.

그의 말대로【역진경】은 야차술의 기본임과 동시에 가장 심오한 술법이었다.

“규류.”

남궁은 비전서를 보며 말했다.

“괜찮은 녀석이군.”

비전서의 넘버링은 32번.

그중에 1번이라는 부가번호가 붙여 있다는 것은 32번 안에 있는 모든 야차의 비전서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라는 의미였다.

[하, 하하. 무슨 말씀이십니까?]

“탑 안에 있는 비전서는 뭘 익혀도 좋을 만큼 모두 대단한 것들이지. 하지만 그중에서도 네가 가져온 이 두 개는 가히 최고라 할 수 있을 거야.”

[하하, 뭐……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남궁 님께서 강해지셔야 제가 이형(異形)들의 왕이 될 수 있으니까요.]

남궁은 그의 대답에 쓴웃음을 지었다.

“과연 수장들과 달리 아직 때가 묻지 않았어.”

[네?]

“너는 내가 강해지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잖아.”

[하하, 대리자 일족들은 모두 자신의 계약자를 강하게 만들어야죠.]

“페어리 퀸은 다를걸.”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규류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여왕이 소민에게 준 세계수 지팡이. 분명 강력한 힘을 가진 최고의 아티팩트지만 그만큼 위험한 것이기도 해.”

남궁은 손에 들고 있는【역진경】을 말아 툭툭 손바닥을 두들기며 말했다.

“소민이가 전설급 자질을 가지고 있어도 당장 그 지팡이를 남발하게 되면 몸이 버티지 못할 거야. 하지만 과연 여왕이 그런 것을 언급한 적이 있었나?”

[확실히 그건…….]

“여왕 역시 소민이가 강해지길 바라고 있겠지. 내 딸이 강해져야 오랜 세월 동안 묵혀놓은 원한을 풀 테니까.”

[나가 일족에게 빼앗긴 영혼샘 말씀이시군요.]

“그래. 그들이 왕좌를 노리는 건 그 영혼샘을 되찾기 위함이니까. 깨끗한 척, 중도인 척하지만 여왕의 속내만큼 시커먼 건 없지.”

[으음…….]

규류는 남궁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비급서도 마찬가지다. 단시간에 강력한 힘을 얻을 수 있는 술법도 있지만 그런 것들은 대부분 끝이 좋지 않지. 하지만 네가 가져온 이 2권은 모두 최상급이자 기초를 다지는 것들이니까.”

남궁이 그를 바라봤다.

“하지만 단기간에 강해지려면 이런 기본 술법이 아닌 사술(邪術)을 익혀야 해. 야차술 32술법 중에 30개가 모두 그런 사술들이지.”

[하, 하하…….]

“만약 네가 여왕과 같은 마음이었다면 이 2권을 제외한 나머지 사술(邪術)들을 가져왔겠지.”

[그럼요. 저를 어찌 그런 벌레만큼 작은 심보를 가진 여왕과 비교 하십니까요.]

규류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스스로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서…… 어떤 걸 배우시겠습니까? 아무리 계약자라 해도 아버지께서 탑 안의 모든 술법을 익히게 허락하시진 않았을 텐데요.]

“나도 너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술법만 허락했어.”

[하긴, 지금 남궁 님을 탑 안에 들이신 것만 해도 장로들이 난리가 났을 겁니다.

“이후에 내가 만족할 만한 공을 세운다면 논공행상을 통해서 탑의 지하도 열겠다고 하더군.”

[타, 탑의 지하요?]

남궁의 말에 규류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 그곳은 그가 허락한다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니까…….”

[탑의 지하는 성역인데…… 정말 아버지께서 거기까지 허락하시겠다고 하셨습니까? 얼마나 대단한 공을 세우시려는 겁니까.]

“목숨이 걸린 일이니까.”

규류는 도무지 감이 오지 않는다는 듯 그저 그를 넋 놓고 바라볼 뿐이었다.

“자.”

남궁은 그런 그에게 책장에서 비급서를 꺼내어 그의 가슴에 밀어 넣었다.

“하루 준다. 모두 익혀.”

규류는 자신의 품에 들어온【투갑술】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궁 님은요?]

“1번뿐인 기회니까. 나도 신중하게 골라야지.”

[에이, 고민하지 마시라니까요. 저 둘이 제가 아는 한 야차술의 최고입니다.]

“그래. 네가 아는 한 최고의 술법이지. 알아.”

[……?]

남궁은 어서 가라는 의미로 손을 저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화아악-!!

규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비전서를 들고 사라졌다.

“흐음.”

혼자가 된 남궁은 그제야 홀가분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탑 안에서 비전서를 익히기 위해서는 오로지 위층의 연무장에서만 가능하다.’

모든 비전서에는 결계가 쳐져 있었고 연무장에서만 결계가 해지되기 때문이었다.

그 말은 규류 역시 술법을 익히기 위해서는 연무장에 갈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

즉, 지금 이곳은 오롯이 남궁 혼자다.

“흠…….”

남궁은 규류가 준【역진경】을 조용히 책장에 밀어 넣었다.

“확실히…… 유니크 등급의 비전서는 최소 10개의 문은 지나야 얻을 수 있을 만큼 희귀한 거긴 하지.”

이제 고작 2개의 문이 끝난 시점에서 이곳에 있는 무엇을 익혀도 월등한 차이를 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번뿐인 기회.

최고를 놔두고 굳이 그 밑의 것을 배울 이유는 없었다.

저벅- 저벅- 저벅-

그는 거침없이 책장의 뒤로 걸어갔다.

‘모든 야차의 수장들은 자신의 술법을 비전서로 남긴다. 그리고 여긴 그들의 모든 비전서들이 모여 있는 곳이지.’

32권의 비전서.

하지만 역대 야차의 수장은 무휘를 제외하고 모두 33명이었다.

‘이곳에 없는 1권.’

남궁은 그것을 얻고자 했다.

전생의 무휘는 그에게 규류를 부탁하며 한 가지 비밀을 얘기했었다.

폐위되어 그 존재마저 은폐된 수장.

‘무량의 아들. 무명(無名).’

그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야차였다.

하지만 수장에 자리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어떠한 기록에도 남겨지지 않고 철저하게 은폐되었다.

사실, 힘을 최고라 칭해지는 야차의 세계에서 폐위가 된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초대 수장인 무량은 강했다. 그의 역진경을 이길 수 있는 자는 사실 일족 내에서 없었으니까.]

남궁은 무휘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하지만 역진경은 투기를 익힐 수 있는 위대한 술법이지만 아주 큰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투기가 짙어질수록 점점 더 자신을 잃고 포악해진다는 점이지.]

투기(鬪氣)란 말 그대로 전투의지를 극대화시키는 것이었다.

[무량은 결국 미치고 말았다. 일족 중 누군가는 그를 죽여야 했다. 하지만 누구도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를 죽인 게 아들인 무명이었군.”

[맞아. 그는 무량의 술법을 파훼할 새로운 술법을 창안했다. 그리고 결국 미쳐 버린 아버지를 죽이고 수장의 자리에 올랐지.]

“흐음…….”

[하지만 그는 무량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벗어나지 못한 모양이더군. 결국 스스로 수장의 자리에서 내려와 자신의 행적을 모두 감추었다.]

“야차답지 못하군.”

남궁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크, 크큭…… 야차다운 것이 무엇이지?]

“너희는 원래 선대 수장을 죽임으로써 자리를 물려받잖아.”

[사실 그건 무량의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만들어진 의식이다. 힘을 숭상한다는 의미는 선대를 죽이기 위한 핑계였지. 역진경을 익힌 야차들은 결국 시간이 지남에 미쳐 버릴 수밖에 없으니까. 미치기 전에 우리 손으로 끝내는 것이지.]

“힘에 대한 믿음이라기보다는 다음 수장의 죄책감을 없애기 위함이었나.”

남궁은 그의 말에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뭐…….]

그의 반응은 미묘했다.

“한 가지 궁금하군. 당신 역시 선대 수장을 죽이고 그 자리에 올랐겠지. 죄책감을 가지는가?”

[아니.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야차는 자신보다 강한 자에게 죽는 것을 최고의 죽음이라 여기니까.]

무휘는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일족 중 누구도 무량을 죽이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죽음을 선사한 무명은 오히려 자랑스러워해야 하지.]

쯧-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은 이거다. 만약 네가 통천루에 들어가게 된다면…… 무명의 술법을 익혀라.]

그리고 그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무명의 것이야말로 야차 중 최고다.]

‘문제는 무휘도 무명이 남긴 술법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지.’

통천루까지 들어오는 것은 성공했다.

하지만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으니 남궁으로서는 막막할 수밖에 없었다.

‘무명은 무량을 죽인 죄책감으로 수장의 자리까지 내려놓은 자다.’

그렇다면 그는 무휘의 말처럼 일반적인 야차들과는 다른 심정(心情)을 가진 자인 걸까?

‘역진경을 파훼할 수 있는 술법을 만들었지만 그는 자신의 술법 대신 무량의 술법을 최고로 두었어.’

아버지에 대한 예의일까?

“…….”

‘그렇지 않다면 지금까지 역진경이 야차의 최고 술법으로 존재할 수 없었겠지.’

철저하게 감추려 했을 것이다.

“설마?”

남궁은 황급히 조금 전【역진경】을 꽂아 두었던 책장으로 달려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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