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화 (70/270)

70화

[나와 조건을 비교해 보겠다……?]

쭈뼛-!!

뒤통수가 저릿해지는 느낌.

[겁대가리를 상실한 건지…… 아니면 대범한 건지…….]

남궁은 자신도 모르게 뒤로 물러나려는 다리에 억지로 힘을 주며 바닥을 눌렀다.

[뭐가 되었든 간에 너 같은 인간은 처음이군. 위상의 계시자라고 우리가 널 받들 거라는 생각이라면 그건 오산이야.]

‘……여기서 물러나면 안 된다.’

마른침을 삼키는 목젖의 떨림을 느끼며 남궁은 무휘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콰아아앙---!!

콰가강--!!

긴장감이 전신을 휘감는 찰나, 옥좌에 앉아 있던 거대한 무휘가 엄청난 속도로 남궁을 향해 튀어나왔다.

“……!!!”

광풍이 몰아치는 듯한 위압.

[흐, 흐익?!]

규류는 본능적으로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콰앙-!!!

하지만 남궁은 그의 공격을 피하지 않았다.

그림자 뒤로 영혼 병사들이 소환되어 무휘의 공격을 막았다.

콰가가강……!!!

무휘의 주먹이 3명의 영혼 병사들을 그대로 찢어발겼다.

[진귀한 놈이로군.]

마지막으로 아스가 들고 있던 도끼가 박살 난 뒤에야 무휘가 멈춰 섰다.

[과연 일곱 뱀의 주인이 고른 계시자답군.]

퍼억--!!

무휘는 씨익 웃으며 멈췄던 주먹을 한 번 더 펼쳤다가 움켜잡았다.

주먹을 쥐었다 핀 것뿐인데 마치 공기가 압축되어 폭발하는 것처럼 아스의 앞에서 둔탁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쿵!! 파스스슥……!!

충격에 뒤로 쓰러진 아스가 그 자리에서 바스러지며 사라졌다.

‘고작 한 방에…….’

남궁은 다시 한번 무휘의 강함을 실감했다.

영혼 병사들과 달리 아스는 데미갓이라 할 수 있는 영웅급 영체였다.

그런 영체를 부순 무휘의 힘.

[재밌는 힘을 가졌어.]

그는 자신감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츠즈즈즉…….

츠즉…….

무휘는 자신의 주먹에 뭍은 영혼 병사들의 가루를 털어내듯 손을 저었다.

‘……강하군.’

남궁은 생각했다.

지금의 무휘는 자신이 기억하는 무휘와는 확실히 달랐다.

그에게선 생기가 느껴졌다.

단지 25년 전이라는 젊음을 가졌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차라리 내 밑으로 들어와라.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우승자가 될 수 있다.]

남궁은 그의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우스운 얘기지만 남궁은 저런 자신만만한 무휘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전생의 무휘는 약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약해지고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죽어가고 있었으니까.’

생명을 가진 자라면 당연히 시간이 흐를수록 나이를 먹고 죽음으로 향해 가는 것이 순리지만, 무휘는 다른 수장들보다 조금 더 빨리 죽음으로 향해 가고 있었다.

그는 병에 걸렸다.

“재밌는 얘기긴 한데…… 믿음이 가진 않는군.”

[……뭐?]

“나보다 빨리 뒈질 사람을 내가 어찌 믿고 대업을 도모할 수 있겠나.”

그 순간 무휘의 얼굴이 굳어졌다.

[감히……!! 그따위 망언을!!]

[죽여 버리겠다!!]

주위에 있던 야차들이 일제히 소리치며 일어섰다.

[조용.]

하지만 그들과 달리, 무휘는 오히려 조금 전 오만함은 사라지고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너는 나를 아는 모양이군.]

“그렇지 않았다면 야차를 고를 이유도 없었지. 야차가 아시아를 관할한다 하지만 현재 대리자 일족의 실세는 거인족이니까.”

[과연…….]

무휘는 그 순간 손을 저었다.

[다들 물러가라.]

주위가 정리되자 둘 사이에서는 묘한 기류가 흘렀다.

“꽤 오래전부터 아마 느끼고 있었을 거야. 왼쪽 아랫배를 쿡쿡 찌르는 듯한 통증 말이야. 아마 지금은…… 왼팔까지 저려 오지?”

[……어디까지 아는 거냐.]

무휘가 물었다.

[당신의 투기가 곧 사라질 거라는 것. 그래서 어떤 수장들보다도 후계자를 빨리 정하고 싶어 한다는 것. 그리고…….]

남궁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거인족의 수장, 티탄이 당신의 심장을 터뜨려 버릴 것이라는 것 정도?”

부웅---!!

그 순간 무휘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그의 강권이 남궁을 강타했다.

콰아아아앙---!!!!!

마치 폭발이 일어난 것처럼 요란한 굉음과 시커먼 연기가 홀을 채웠다.

[감히…… 티탄 따위가 나를? 헛소리!! 네놈은 결국 회귀자인 척하더니 세 치 혀를 놀리는 사기꾼에 불과하구나!

“…….”

연기가 가라앉자 무휘의 주먹 아래에 있는 남궁의 모습이 보였다.

머리 위로 엑스자로 교차한 【참회자의 검】과 【백천강검】으로 남궁이 공격을 막았다.

[흥, 그런 얇디얇은 날붙이로 나를 막을 수 있을까?]

“물론. 막는 것뿐만이 아니지.”

피잇-

그 순간, 무휘의 팔뚝에 미세한 붉은 선이 생기더니 옅은 상처와 함께 핏물이 맺혔다.

[……제법이구나. 내 가죽을 뚫고 상처를 입히다니. 잔재주는 있는 모양이야.]

무휘는 팔을 들어 흐르는 피를 혀로 핥으며 남궁을 향해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무휘, 이제 좀 솔직해 는 게 어때? 우리 둘밖에 없는데 그리 자존심을 챙길 필욘 없을 것 같은데.”

[……뭐?]

“당신도 알잖아. 유니크 등급 이상의 무기가 아니면 아무리 날고 기는 실력을 가졌다 한들 야차의 수장인 당신에게 상처를 입힐 수 없다는 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궁은 그에게 상처를 입혔다.

어째서일까.

“바로, 상성의 효과. 그건 무기의 예리함도 내 실력도 아니지.”

치이이이익…….

그 순간 무휘의 팔에 난 상처가 놀랍게도 아물지 않고 반대로 얼어붙기 시작했다.

“야차의 피는 뜨겁지. 괴물 같은 회복력도 들끓는 피의 열기에서 나오니까. 반대로 거인족의 피는 차갑다. 티탄은 얼음에서 태어난 괴물이고.”

야차와 거인족.

이 두 대리자 일족들은 불과 얼음처럼 상극으로 오랜 세월 서로 세력을 다투어 왔었다.

“그런데 지금 염화(炎火)의 극(極)이라 할 수 있는 야차의 수장이 고작 매직 아이템이 뿜어내는 냉기에 피부가 얼어버렸군.”

[…….]

“몸속에 흐르는 피의 열기가 점점 식고 있다는 뜻이지. 복부에서 느껴지던 통증이 이제는 양팔과 다리까지 퍼졌지?”

남궁의 말에 무휘의 눈빛이 살짝 굳어졌다.

“야차의 생명력은 불과 같다. 저릿한 통증이 더해진다는 것은 그만큼 열기가 사라지고 있다는 뜻이니까.”

그를 바라보며 남궁이 말을 이었다.

“인정해. 당신은 죽어가고 있다. 노쇠해 가고 있지. 그 속도는 생각보다 빠를 거야.”

[네놈…….]

“과연 이걸 다른 야차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아니, 그 전에 이 사실이 거인족에게 들어가면?”

빠득-

무휘의 입술이 들썩였다.

“티탄은 이 절호의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겠지.”

[네 말대로 내 불꽃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내 아래는 뛰어난 자식들이 있고 내 빈자리를 채워줄 후계자도 정해질 것이다.]

그는 눈을 부릅뜬 채 소리치듯 말했다.

[야차가 죽음을 두려워할 것 같으냐!]

“야차의 용맹함이야 나도 잘 알지. 그런데 아무리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해도 이왕이면 살고 싶지 않나?”

[……뭐?]

“살 수 있는 방법도 있다.”

꿀꺽-

무휘의 목젖이 움직였다.

[정말인가.]

워낙 거대한 크기였기 침을 삼키는 소리만으로도 그의 다급함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거인족의 수장인 티탄은 얼음에서 태어났지. 그의 몸은 그야말로 살아 있는 얼음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차가워. 하지만 그의 심장은 분명 뛰고 있다.”

남궁이 그를 바라봤다.

“차가운 몸속에서 세차게 뛰는 심장. 아이러니하지만 티탄의 심장만큼 뜨거운 것은 없다.”

[설마…….]

“그러기 위해서는 티탄의 얼음 심장을 빼앗아야겠지.”

[전쟁을 시작하라는 거군.]

“맞아.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야차와 거인의 전쟁이잖아. 아마도 계약자가 정해지고 나면 그들을 앞세워 자연스럽게 시작되겠지.”

무휘는 남궁이 생각하는 계획이 무엇인지 알겠다는 듯 떨리는 눈동자로 그를 바라봤다.

“전쟁의 승패는 결국 일족의 계약자들의 어깨에 달렸다. 야차 일족의 명운, 아니, 그 전에 당신의 목숨이 내게 달려 있다는 것이지.”

[무엇을 원하느냐.]

“이제야 말이 좀 통하는군.”

무휘의 물음에 남궁은 마음에 든다는 듯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조건을 비교하지 마. 그냥 너희 야차가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내게 주면 된다.”

* * *

[도대체 아버지를 어떻게 구워삶으신 겁니까?]

시체를 처리해야 하는 게 아닐까 조마조마했던 규류는 홀의 문을 열고 남궁이 걸어 나오자 오히려 어이가 없다는 듯 바라봤다.

‘살아 나온 것도 모자라서 아버지께서 통천루(通天樓)를 개방해 주라고 하다니…….’

규류는 무휘가 있는 홀을 나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일족의 마을 중앙에 세워진 하늘을 찌를 듯한 거대한 탑을 보며 그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저긴 나도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인데…….’

통천루(通天樓).

그곳은 일족의 보고이자 오직 수장에게만 공개되는 성역이었다.

무구와 보구뿐만 아니라 수많은 비급서까지.

그야말로 야차 일족의 모든 것이 집대성되어 있는 곳이었다.

[와…… 부럽습니다. 다녀오시면 안에 뭐가 있는지 저도 알려주십시오.]

탑의 문 앞에 서자 규류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너도 같이 들어갈 거야.”

[……네?]

“문 열어.”

[네? 네. 네? 진짜요?]

생각지도 못한 남궁의 말에 규류는 입을 다물지 못한 채 황급히 탑의 문을 두들겼다.

구그그그그…….

[진짜 저도 들어가도 되는 겁니까?]

“그래. 무휘의 말로는 다른 일족들의 경매가 끝날 때까지는 대략 3일 정도가 걸릴 거라고 하더라. 그는 우리에게 그 3일 동안 통천루를 열람할 수 있는 기회를 줬거든.”

[미쳤다…… 내가 이곳에 들어가 보다니!!]

규류는 뛸 듯이 기뻤다.

[……혹시 저, 저도 여기에 있는 비급서를 볼 수 있을까요?]

그는 입맛을 다시는 듯 혀로 입술을 핥으며 기대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물론이다. 너도 알지? 저 안에 들어 있는 비급서는 모두 최상급이라는 거.”

[무, 물론입죠.]

“내가 특별히 부탁했다. 한 가지로 제한이 되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무휘가 네게도 비급서를 볼 수 있도록 해줬다.”

[와씨…… 대박!! 현류 녀석이 이걸 알아야 하는데! 위계를 물려받기도 전에 통천루에 들어간 야차는 제가 처음일 겁니다!]

남궁의 말에 그가 방방 뛰며 소리쳤다.

“무휘가 네게 허락한 비급은 투갑술(鬪鉀術). 야차의 술법 중 방어력을 올려주는 최상급 술법이지.”

[오…….]

규류는 눈을 반짝였다.

[투갑술…… 키야……! 이름만 들어도 맘에 드네요. 이게 다 남궁 님 덕분입니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그래야지. 나도 네 도움이 필요하거든.”

[그럼요!! 누구 말씀인데요. 얼마든지 시키십시오!]

규류가 경례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고로 술법은 그냥 익힌다고 되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쓰면서 몸에 익혀야 하는 법인데 말이야.”

[어휴, 그렇죠.]

“그런데 물어보니 안에 샌드백이 없다고 하더라.”

[네?]

남궁은 탑 안으로 걸어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