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5화 (65/270)

65화

“……커헉!!”

“씨발! 저거 뭐야?! 저걸 어떻게 잡으라고!!”

“도망쳐!! 30분…… 아니, 이제 25분만 버티면 된다고!!”

“미친…… 5분 동안 30명 넘게 죽었어. 저런 놈에게 25분은커녕 1분도 더 못 버틴다고!”

“그럼 뒈지든가. 왜 나한테 지랄이야!”

여기저기에서 욕지거리가 터져 나왔지만 누구하나 서로 싸울 생각은 하지 못했다.

자신들을 향해 언제 날아올지 모르는 뿌리사냥꾼의 검을 피하는 것만으로도 벅찼기 때문이다.

“저거 뭐야?”

“와…… 설마 저거 시체임?”

보스방에서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와중에도 섬에서 룬과 무구를 얻어 내려오는 사람들은 끊임없었다.

“야!! 들어오지 마!! 다 죽는다!!”

“자기들만 후보가 되려고 아주 약을 파네.”

“야, 야! 다들 들어가!”

모두가 똑같은 반응이었다.

룬은 먹은 자나 무구를 얻은 자나 갑작스럽게 얻은 힘에 마치 자신들이 세상을 구하기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에 빠진다.

“……쿨럭.”

그리고 그 경계 안으로 발을 들여 놓는 순간 사람들은 자만이 얼마나 멍청한 감정인가를 깨닫게 된다.

죽음과 함께 말이다.

“다, 다들 물러서!!! 저 안으로 들어가면 다 뒈진다!”

“그래. 어차피 몇 분 동안 살아남으라는 얘기도 없었어. 카운트가 끝나는 시점에 맞춰서 방에 들어가며 되잖아?”

“크크, 우리 대신 욕봐라.”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며 보스 방에 있던 나머지들은 뿌리사냥꾼의 머리 위에 모래시계가 떨어지기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조금은 잔머리를 굴리는군.’

남궁은 그런 그들을 힐끔 바라보고는 쯧- 하고 혀를 찼다.

세상이 단 한 번이라도 어디 자기 마음대로 돌아간 적이 있는가.

▶ 뿌리사냥꾼이 일정량의 피를 흡수하였습니다.

▶ 지하목이 자라납니다.

▶ 보스의 영역이 확장됩니다.

▶ 뿌리사냥꾼의 개수가 늘어납니다.

“……어?”

보스방 밖에 있던 사람들이 멈칫 한 순간 경계가 순식간에 확장되었다.

어리둥절한 순간,

슉-! 슈슉--!!

그들의 뒤에서 또 한 마리의 뿌리사냥꾼이 나타나 검을 찔러대기 시작했다.

“크아아악!!”

“사, 살려!!”

반항도 하지 못한 채 뿌리사냥꾼의 검에 무참히 살해당하는 사람들. 하지만 놈은 아랑곳하지 않고 시체에 검을 박아 넣었다.

취이이익……!!

그러자 새하얀 연기와 함께 시체 속 피를 빨아먹는 것처럼 검신이 꿀렁거렸다.

그리고 검에 흡수된 혈액은 지하목과 연결되어 있는 놈의 등에 나 있는 줄기를 통해 흘러들었다.

“도…… 도망쳐야 해!!”

외침이 무색하게 이미 계단까지 보스의 영역이 된 지금, 그들에게 탈출은 불가능했다.

▶ 보스의 영역이 추가로 확장 됩니다.

▶ 뿌리사냥꾼의 개수가 늘어납니다.

급속도로 증가하기 시작하는 보스의 영역은 이제 지하가 아니라 솔빛섬 전체로 확장되었다.

“역시…….”

공포는 급속도로 퍼졌고 죽어가는 사람들에 보스 사냥의 난이도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대로 있으면 나머지 2개의 섬까지 모두 보스의 영역이 될 거다.’

규율은 바뀌었지만 결국 경매의 결과는 똑같았다.

보스를 사냥하지 않으면 모두 죽는다.

부우웅-!!!

남궁이 참회자의 검을 들어 있는 힘껏 뿌리사냥꾼을 향해 휘둘렀다.

캉! 캉!! 카가강!!!

뿌리사냥꾼이 남궁의 검을 막으며 뒤로 물러섰다.

[크륵…….]

놈이 경계하듯 후드 아래에 으르렁거림이 들렸다. 놈이 검을 들어 올리자 뒤에 증식되었던 나머지 한 마리가 남궁에게 달려들었다.

화아악……!

하지만 그 순간, 영혼 병사들이 소환되어 남궁을 공격하려던 뿌리사냥꾼을 막아섰다.

부우웅---!!

동시에 아스가 도끼를 들어 처음 대치했던 뿌리사냥꾼을 향해 휘둘렀다.

쿠웅!! 쾅-!!

폭음과도 같은 요란한 굉음과 함께 각각의 사냥꾼들에게 영혼 병사들이 붙었다.

‘나머지 한 마리는…….’

남궁은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수십 명을 순삭시킨 뿌리사냥꾼이 여전히 남아 있는 사람들을 쫓아 날뛰고 있었다.

‘어쩔 수 없지.’

어차피 모두를 다 살리는 건 욕심이다.

‘물가에 억지로 끌고 온 것도 아니고 자신들이 목이 말라 스스로 찾아온 것이니까.’

삶이란 누군가 떠먹여 주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선택의 연속이며 그 대가 역시 스스로 져야 한다는 건 아포칼립스가 일어나기 전이나 후나 같았다.

촤르르륵!!!

뿌리사냥꾼들이 뒤에 있던 지하목에서 송곳같이 날카로운 줄기들이 튀어나왔다.

카앙-!!

남궁이 자신을 노리는 줄기에 검을 박아 넣었다.

“훕……!”

그가 두 손으로 검의 손잡이를 잡고서 있는 힘껏 가로로 줄기를 베어냈다.

크드드득.

검이 단단한 껍데기를 파고들며 줄기를 가르자 안쪽에는 마치 인간의 근육처럼 붉고 축축한 살점들이 보였다.

[캬악!! 캬각!!]

지하목이 공격을 당하자 여기저기 떨어져 있던 뿌리사냥꾼들이 일제히 괴로운 듯 비명을 질렀다.

‘역시 모두 연결되어 있군.’

사냥꾼들의 허리 뒤에는 마치 호스처럼 줄기들이 지하목으로 이어져 있었다.

부우웅-!!

줄기의 공격으로 주춤하는 사이 영혼 병사들이 뿌리사냥꾼들을 넘어뜨렸다.

콰앙!!!

아스가 한 놈의 목을 도끼로 후려쳤다.

쾅! 쾅! 쾅!!!

거기에 그치지 않고 마치 으깨 버릴 듯이 계속해서 도끼로 놈을 내리쳤다.

턱-

수십 번의 도끼질이 멈췄다.

[크르르르…….]

뿌리사냥꾼이 바닥에 처박힌 채로 아스의 도끼날을 한 손으로 움켜잡았다.

끄극…… 끄그극…….

힘겨루기를 하며 천천히 놈이 일어서기 시작했다. 위에서 내리치던 아스의 몸이 조금씩 뒤로 밀렸다.

도끼질에 너덜너덜해진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놈은 놀랍게도 아스를 점점 누르기 시작했다.

‘아스가 힘에서 밀린다?’

츠즈즉-

하지만 놀라움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걸레짝이 되었던 뿌리사냥꾼의 상처들이 순식간에 회복되는 것이 아닌가.

“으악!!”

“아아아악!!!”

비명 소리에 남궁은 황급히 시선을 돌려 지하목을 바라봤다. 나무에서 뻗어 나온 수십 갈래의 줄기들이 죽은 시체들에 박혀 피를 빨아먹고 있었다.

“……빡세겠어.”

지하목의 가장 무서운 점이 바로 저것이었다.

생명체에 자신의 줄기를 박아 죽을 때까지 양분을 뺏어 먹으며 그것으로 엄청난 회복력을 가진다.

‘경매의 규율이 바뀌면서 너도나도 보스방에 들어오는 바람에 녀석의 먹잇감만 늘어난 꼴이 되어버렸으니까.’

덕분에 지하목의 줄기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고 뿌리들은 솔빛섬뿐만 아니라 나머지 2개의 섬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었다.

수천 명의 인명(人命)이 놈의 먹잇감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그 많은 사람들을 먹어 치우게 된다면 과연 얼마나 성장을 해버릴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남궁이 노리는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놈이 더욱더 비대해지는 것.

“그래, 배가 터질 때까지 어디 한 번 먹어봐.”

파바밧……!!

남궁이 줄기들을 뚫고 지하목의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푸욱-

파고든 남궁이 지하목의 핵이 있는 기둥에【백천강검】을 박아 넣었다.

“소민아!!”

그 순간 그가 딸의 이름을 불렀다.

콰앙! 쾅! 쾅! 쾅!!!

마치 피뢰침처럼 검이 박혀 있는 곳을 향해 소민의 뇌화가 날아들었다.

콰가가강---!!

요란한 굉음과 함께 떨어진 뇌화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새하얀 낙뢰였다.

차르릉-

동시에 그녀의 목에 걸려 있던 목걸이가 가볍게 떨렸다.

넘버링 431.

이름 : 갈라드의 마력 목걸이

등급 : 매직(최고)

▶ 대마법사 갈라드가 제작한 목걸이.

▶ 모든 속성을 무(無)로 변환시키며, 대신 마법에 소모되는 마력의 양이 2분의 1로 줄어들고 위력은 2배로 증폭시킨다.

▶ 시제품이라 1번 사용하면 팬던트의 회로가 타버려서 사용할 수 없다.

[케에에엑!!!]

[캬아악!!]

뿌리에 떨어진 전격이 줄기를 타고 뿌리사냥꾼들을 강타했다.

쩌적…… 쩌저적……!!

놈들은 괴로운 듯 비명을 지르며 몸을 부르르 떨다 새하얗게 얼어붙었다.

속성이 사라진 뇌화가 【백천강검】을 통하자 빙계의 속성을 입고 지하목을 서서히 얼어붙게 만들었다.

취이이익……!!

순간적으로 내려가는 온도에 놈은 체온을 유지하기라도 하려는 듯 계속해서 사람들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그만……! 그만해!! 이 자식아!!”

여기저기 터져 나오는 비명 소리에 소민은 이를 악물며 더욱 마력을 밀어 넣었다.

“후웁!!”

빠르게 고갈되는 마력에 머리가 띵해지며 정신이 혼미해지는 기분이었지만, 그럴수록 그녀는 더욱더 지하목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펑-! 퍼펑-!!

줄기에 달려 있던 얼어붙은 뿌리사냥꾼들이 소민의 뇌화를 버티지 못하고 부서지며 바닥에 쓰러지기 시작했다.

[크륵…… 크륵…….]

“……!!!”

그러자 지하목은 인간의 양분으로는 부족하다 여겼는지 떨어져 나간 뿌리사냥꾼의 시체마저 줄기를 꽂아 그 안에 머금고 있는 소민의 마력을 빨아들였다.

“아빠…… 이제 저놈이 내 마력을 흡수하고 있어!!”

소민은 뭔가 잘못되어 간다는 것을 직감했다.

처음에는 대량의 마력으로 순간 대미지를 주는 데에 성공했지만 한계치까지 마력을 사용한 소민의 공격은 점차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크르르륵…….]

반면 소민의 마력을 흡수하기 시작한 지하목은 오히려 빠르게 상처를 회복하고 더욱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파직……!! 퍽-!!

그 순간 소민의 목에 걸려 있던 목걸이가 한계인 듯 스파크를 뿜어내며 부서졌다.

“큭……!! 어, 어떡하지? 아무래도 실패한 것 같아. 오히려 놈이 더 비대해졌어.”

소민은 창백한 얼굴로 놈을 바라봤다. 마력 고갈의 여파로 소민의 다리가 휘청거렸다.

“아니. 잘했어. 마력이 아니었으면 저렇게까지 성장시킬 수 없었을 테니까.”

툭-

비틀거리는 그녀의 어깨를 남궁이 가볍게 지지했다.

“저 정도로 지하목을 키우려면…… 수백 명이 더 죽었겠지. 네가 남은 사람들을 구한 거다. 소민아.”

“……응?”

남궁의 말에 소민이 고개를 뒤로 돌려 그를 바라봤다.

“나머지는 아빠에게 맡겨.”

화아아악---!!!

그 순간, 영혼 병사들이 갈래를 나누며 양쪽으로 흩어져 지하목의 줄기를 쳐내기 시작했다.

타다다닥!!

남궁이 그들의 호위를 받으며 지하목의 핵이 있는 곳으로 뛰었다.

“잘도 처먹는군.”

처음 봤을 때보다 거의 2배는 더 커진 것 같은 지하목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럼 이것도 한 번 먹어봐.”

남궁은 뭔가를 품 안에서 꺼냈다.

【성장의 비약】이었다.

촤아악……!!!

놈의 핵이 있는 곳에 비약을 뿌리자 이미 커질 대로 커진 지하목이 미친 듯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쿠극…… 쿠그그그극…….

나무기둥의 두께가 순식간에 2배가 되었고, 줄기들은 마치 풍선에 바람을 넣은 것처럼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다.

쩌적……!

하지만 그 순간, 부풀어 오르던 줄기의 껍데기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는 듯 갈라지기 시작했다.

[……쿠륵?]

쩌저저저적……! 우드득!!!

부풀어 오르는 살점들이 여기저기 뿌리와 줄기 껍데기를 뚫고 튀어오르기 시작했다.

[키에에에에엑---!!!]

그 순간 놈의 비명 소리가 섬을 울렸다.

하지만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퍼어어엉---!!!

결국 배가 터져 버렸으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