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취…… 취이익…….]
남궁은 동굴 안쪽 벽면에서 뭔가를 집었다.
동굴 안에 자라 있는 수초들 사이로 집어넣은 손을 당기자, 그 안에는 삼엽충처럼 수십 개의 다리를 가진 갑충이 있었다.
‘해암충(海巖蟲).’
바다 안쪽 돌이나 수초들 사이에 서식하는 벌레.
껍질이 단단한 것 말고는 이렇다 할 위협이 되는 녀석은 아니었다.
물속에서 오래 살아와 입과 눈이 모두 퇴화되어 그저 다리가 달린 돌멩이를 보는 것 같은 특이한 형태였다.
파르르……! 파르!
몸을 뒤집자 녀석은 위험을 감지 한 듯 수십 개의 다리를 빠르게 흔들었다.
콰직-!
남궁은 벌레는 벽에 가져가서는 거침없이 검을 찔러 넣었다.
껍질이 부서지면서 녹색의 점액이 주르륵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순간, 물속임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달콤한 향이 나는 것 같았다.
‘좋아.’
점액은 신기하게도 물속임에도 흩어지지 않고 몽글몽글 덩어리가 되어 수면에 떠다녔다.
남궁은 마치 환(丸)처럼 생긴 점액 덩어리 몇 개를 잡아 터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손에 쥐었다.
콰아아앙--!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영혼 병사들이 일제히 입구를 막고 있는 해마를 향해 달려들었다.
부웅……! 쿵! 쿠웅!
아스의 도끼가 물살을 가르며 해마의 머리를 때렸다.
투웅……!
도끼가 튕겨 나가며 아스의 몸이 휘청거렸다. 물속이라 위력이 반감된 듯 오히려 반동으로 튕겨 나간 아스가 허우적거리며 뒤로 밀려났다.
[캬악!!!]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해마가 주둥이를 벌렸다.
그러자 마치 불가사리처럼 4개 방향으로 쪼개진 입안에서 촉수가 튀어나와 아스를 휘감았다.
[……!!]
촉수는 아스의 허리와 목을 감싸고서 있는 힘껏 그를 잡아당겼다.
부글……! 부글……!!!
허우적거리는 아스의 몸이 해마 쪽으로 빨려 들어가듯 휩쓸리며 물보라를 일으켰다.
[캬아악!!]
해마가 튀어나온 이빨로 아스를 콱 깨물었다.
캉! 캉!! 카캉!!
그러자 주위에 있던 다른 해마들까지 그에게 달라붙어 여기저기 물어뜯기 시작했다.
콰직! 콰드드득……!!
수십 마리의 해마들의 주둥이에서 튀어나온 촉수들이 그를 잡아당겼다.
‘네게 고생스러운 일을 시키는군.’
그때였다.
거미줄처럼 사방에 당겨진 촉수들 사이로 남궁이 미끄러지듯 헤엄쳐 들어왔다.
그 순간 아스는 온 힘을 다해 자신의 몸에 감긴 촉수들을 끌어안았다.
부우우웅……!
촉수의 끝에 달려 있던 해마들이 휘청거리며 아스 쪽으로 끌려갔다. 그렇게 해마들이 아스의 몸과 부딪히기 바로 직전, 남궁이 손바닥을 부딪쳐 쥐고 있던 점액을 터뜨렸다.
파앗!!
풍선이 터지듯 점액들이 터졌다.
신기하게도 터진 점액들은 물속임에도 마치 연기처럼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켁…… 케켁…….]
그 순간 해마들이 괴로운 듯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꽈악……! 꽈그극……!!
퍼지는 점액 안개를 피해 해마들이 도망치려 했지만, 아스는 더욱더 촉수를 꽈악 움켜잡았다.
[켁! 케켁!!]
안개에 닿은 해마들이 괴로운 듯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아스는 더욱더 녀석들의 촉수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크륵……! 크르르륵……!!!]
[캬카카각!!!]
남아 있던 녀석들은 괴로운 듯 알 수 없는 비명을 지르더니 남궁을 향해 달려들었다.
‘해암충의 점액은 독이 아냐. 이걸로 놈들을 죽일 순 없다. 하지만……!’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촉수를 보며 남궁은 피하지 않았다.
서걱……!
해마의 머리가 두부 잘리듯 떨어졌다.
그를 향해 날아오던 촉수가 힘없이 흐물거리며 물에 떠오르는 순간,
촤악- 촥-! 차자자작-!!
아스에게 촉수를 붙들려 도망치지 못한 해마들이 순식간에 조각조각 찢겨 나가기 시작했다.
[케…… 케켁!!]
놀랍게도 터진 점액에 닿는 순간, 아스의 도끼에도 흠집 하나 나지 않던 해마의 비늘이 흐물거리며 녹아버린 것이다.
부우우웅……!!
풀려난 아스가 도끼를 휘두르자 해마들이 수압에 풍선 터지듯 터져 버렸다.
남궁은 너덜너덜해진 해마의 시체에서 내장을 뽑아내어 그것들을 연결하기 시작했다.
밧줄처럼 길게 늘어진 해마의 내장으로 그는 알을 묶기 시작했다.
까닥-
그러고서 남궁은 녀석들을 향해 검지 손가락을 움직였다.
[크륵…… 크륵…….]
아직 살아남아 있는 해마들이 그 광경을 보고는 두려운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가자.”
남궁은 지체 없이 알을 묶은 내장을 늘어뜨려 고삐처럼 녀석들의 목을 휘감아 당겼다.
[…… 켁!!]
고삐를 있는 힘껏 잡아당기자, 해마들은 괴로운 듯 고개를 치켜들며 헤엄치기 시작했다.
* * *
부릉……! 부아아앙……!!
요란한 바이크 소리가 영종도를 울렸다.
밤공기를 찢는 듯한 배기음은 한두 개가 아니었다.
헤드라이트의 숫자만 하더라도 어림잡아 수십 대.
“야!! 모두 때려잡아!!!”
“이 개새끼들!!”
“죽어!!”
거칠게 바이크를 모는 무리들은 쇠파이프와 각목을 들고 질주하며 거리낌 없이 마물의 무리 안으로 파고들었다.
우우우웅……!
그중에서도 선두에서 바이크를 모는 운전수가 액셀을 당기자, 그의 주위로 붉은 기류가 생겨났다.
[카륵……!]
동시에 바다 아래에서 튀어나온 리자드맨들이 마치 마비가 된 것처럼 몸을 부르르 떨며 굳어졌다.
카그그그그그그극……!
동시에 운전수가 바이크의 앞바퀴를 들어 돌진하더니 리자드맨의 찍어 누르며 있는 힘껏 액셀을 밟았다.
거친 마찰음과 함께 리자드맨의 얼굴이 그대로 바퀴에 갈렸다.
퍼억-!! 퍽!!!
쓰러진 리자드맨을 주위에 있던 나머지 인원이 미친 듯이 두들겼다.
[케, 케켁……!!]
두들겨 맞은 리자드맨은 몸을 부르르 떨더니 그만 축 늘어지고 말았다.
“할 만한데?”
“내가 말했잖아! 내 힘이면 이 새끼들 별거 아니라니까?”
“다 죽었어!!! 덤벼!! 이 씨발!”
고작 마물 한 마리 잡은 것뿐이었지만 그들의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좋아! 오늘 헤드 좀 왕창 모아보자!”
조금 전 바이크의 앞바퀴로 리자드맨을 찍어 눌렀던 운전수가 헬멧을 벗었다.
“후아.”
짧은 스포츠머리에 남자는 기껏해야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앳된 아이였다.
“역시 성우 능력은 사기라니까!!”
“캬, 헤드가 아주 쭉쭉 오르네. 오늘 대박인데?”
그리고 그의 뒤를 따르던 나머지 운전수들도 그와 비슷한 또래로 보였다.
“오늘 모조리 쓸어버리자!!!”
부아아아앙--!
그의 외침과 함께 나머지 사람들이 일제히 바이크의 액셀을 당겼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수십 대의 바이크가 시커먼 연기를 뿜었다.
“……저것들은 뭐야?”
창고 안에서 밖을 살피던 박효주는 리자드맨을 때려잡는 무리를 보며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이리로 오면 성가신데…….”
그녀는 아직 돌아가고 있는 기계를 보며 중얼거렸다. 국정원 팀장이 마약 제조 현장에 있는 것도 모자라 가담하고 있는 상황이니 말이다.
“뭐가 걱정이야? 기껏해야 애새끼들인데. 그냥 처리해 버려도 몰라.”
“사람을 죽이겠다는 말이야?”
“걱정 마. 당신한테 시키지 않을 테니. 공주님 같은 국정원 요원이 뭘 할 수 있다고. 별것도 아닌 일로 열내지 마.”
“……뭐? 별것도 아닌 일을 네가 먼저 당하고 싶은 모양이지? 조폭 새끼가 어디서!”
려진의 빈정댐에 박효주가 총구로 그녀의 이마를 찍어 누르며 으르렁거렸다.
“오, 그래? 어디 해보시든지!”
퍼억-!!!
그때였다.
서로 노려보던 중 창고 밖에서 들려오는 둔탁한 소리에 둘은 고개를 돌렸다.
“죽여!! 다 죽여 버려!!!”
창밖으로 보이는 광경은 생각보다 끔찍했다.
바이크 위에 타고 있던 아이들이 파이프로 리자드맨들을 곤죽으로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뭔가 이상하지 않아? 수가 많다고 해도 아직 애들인데…… 리자드맨을 저렇게 쉽게 잡을 수 있는 건가?”
“그럴 리가. 저기 봐.”
려진이 손을 뻗자 박효주가 그곳으로 바라봤다.
“쟤들 어깨 위로 붉은 오러 같은 게 있어. 그중에 저기 헬멧을 벗고 있는 애가 가장 짙어. 아마도 뭔가 특이한 능력을 가진 모양인데. 뭐 아는 거라도 있어?”
“흐음…….”
박효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르겠군. 뭔가 버프 형태의 능력인 거 같은데.”
“고작 애들이라고 했던 말은 취소해야겠군…….”
려진의 말대로 마물을 보기 좋게 집단 린치 하고 있는 그들을 보니 나이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하는 짓이 우호적이진 않을 것 같고…… 리자드맨을 아무렇지 않게 잡는 애들이야. 결코 쉽게 볼 애들이 아냐. 조심해.”
“야, 잠깐.”
부르르르릉--!!
그 순간, 성우라고 불렸던 아이가 바이크의 액셀을 밟으며 두 사람이 있는 곳을 향해 다가왔다.
꿀꺽-
언제 싸웠냐는 듯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눈짓을 교환했다.
“…….”
긴장감이 창고를 채웠다.
쿠웅--!!
하지만 그때, 지면이 흔들릴 정도로 육중한 무게의 뭔가가 바닥에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끼이이익…… ·!
콰그그극……!!
동시에 창고를 향해 달려오던 바이크가 미끄러지며 타고 있던 그 위에 타고 있던 아이가 튕겨 나가며 바닥을 굴렀다.
“……크윽, 어떤 새끼야!!”
지끈거리는 다리에 절뚝거리며 바이크 위로 걸어 나온 성우가 찌그러진 헬멧을 벗어 신경질적으로 던지며 소리쳤다.
“씨발…… 이건 또 뭐야?”
성우는 자신의 머리 위로 떨어진 거대한 알을 어이가 없다는 듯 바라봤다.
“밤늦게 시끄럽게 굴지 마라.”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낮은 목소리에 성우는 황급히 뒤를 돌아봤다.
남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