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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화 (44/270)

44화

“……컥!!”

도망치려고 바닥을 기던 남자의 발목이 비정상적으로 꺾였다. 순식간에 수십 명의 사람들을 쓰러뜨린 명훈은 낮게 숨을 토해내며 뻐근한 듯 손목을 돌렸다.

“이런 말 하면 우습지만…… 세계가 변하고 좋은 점도 있네요. 이 정도를 상대했는데 숨 하나 흐트러지지 않다니 말이죠.”

“세계가 변하기 전에도 이 정도로 숨이 차면 운동 부족이지.”

남궁의 대답에 명훈은 피식 웃었다.

“너희들 중에 대가리가 누구야?”

“크윽!!”

그는 발목이 부러진 남자의 뒤통수를 들어 올리며 으르렁거리듯 물었다.

“긴말하지 않겠다. 나를 목적으로 온 것이니 서로 피곤하게 굴지 말고 얘기하지. 죽고 싶어질걸.”

“크, 크큭…… 죽여? 웃기지 마. 이 새끼야. 대한민국에서 멋대로 살인? 배짱 있으면 해보시지!”

푸욱-

그 순간 남궁이 바닥에 떨어져 있던 칼을 그의 허벅지에 박아 넣었다.

“크, 크아아악!!”

“내 말뜻을 이해 못 한 모양이군. 죽이겠다는 게 아냐. 죽고 싶어지게 해주겠다는 거지.”

푹! 푸욱! 푹!!

남궁은 아무렇지 않게 몇 차례나 남자의 허벅지에 칼을 찔러 넣었다.

“자, 잠깐! 잠깐!!!”

다리에 감각이 무뎌져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게 되자 결국 그는 비명을 지르며 남궁을 향해 황급히 손을 저었다.

“저, 저……!”

하지만 그는 겁에 질려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눈동자가 움직이는 모습만으로도 남궁은 누가 무리의 우두머리인지 알 수 있었다.

“너냐.”

그는 한 사람을 바라봤다.

놀랍게도 다리가 찔린 남자의 시선이 잠시 멈췄던 곳은 남궁을 습격한 무리들 중에서 가장 어려 보이는 남자였다.

“무, 무슨…… 아닙니다. 저는 그냥…….”

“그래?”

남궁의 물음에 그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모습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컥……! 마, 맞습니다!”

하지만 남궁이 쓰러진 사내의 목덜미를 잡아들어 힘을 주었다.

“저 사람이 천일…… 쿨럭!!”

목뼈가 단박에 부러질 것 같은 고통에 남자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겠다는 듯 비명을 지르며 소리쳤다.

퍽!

하지만 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날카로운 단도가 남궁이 잡고 있던 남자의 이마에 정확히 꽂혔다.

“하여간 입이 문제지. 입이. 회장님은 저런 승냥이까지 받아줘서 문제라니까.”

“…….”

남궁은 그대로 고개가 뒤로 젖혀져 자신을 바라보는 시체를 바닥에 내려놓고는 쯧, 하고 혀를 찼다.

“어려 보이는데 손이 맵군. 이름이 뭐지?”

“천일회 간부 최광필.”

그때였다.

무리의 뒤에서 들려오는 여자의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한 곳으로 쏠렸다.

탕-!

하늘을 향한 총구가 불을 뿜었다.

“모두 바닥에 엎드려!!”

그녀는 다름 아닌 박효주였다. 총을 겨눈 그녀가 한달음에 남궁에게로 달려왔다.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그리고 쟤들 이미 바닥에 엎드려 있는데. 총알 낭비할 필요 없어.”

“……기껏 도우러 왔는데 하여간.”

남궁의 인사에 박효주는 머쓱한 듯 입술을 삐쭉이며 그에게 대답했다.

“그 총은 뭐야? 이제 총 같은 건 별로 의미 없다는 걸 알 텐데.”

“그거야 우리 같은 사람들이나 그렇죠. 아직까지 잘 모르는 사람들에겐 날붙이보다 총이 더 먹힌다고요.”

박효주는 말했다.

“헤어지고 나서 바로 팀에 연락해 인천항을 조사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어젯밤 수상한 선박이 들어왔다더군요.”

“선박이라…….”

‘천일회는 어쨌든 인천에 거점을 두고 있다. 딱히 배를 통해 들어 올리는 없고. 마약을 실은 게 아니라면…….’

“홍콩에서 온 배더군요.”

“삼합회 놈들이군.”

남궁은 박효주의 말에 대답했다.

“그들의 행적을 조사하던 도중에 인천에서 천일회들의 움직임을 포착했고 바로 뒤따라온 겁니다.”

“흐음…….”

‘삼합회가 항구로 들어오고 나서 바로 천일회가 움직였다? 뭐, 그들이야 전부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니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문제는 놈들이 노린 타겟이 나라는 것이겠지.’

그는 생각을 정리했다.

‘천일회는 그냥 도구에 불과하다. 나를 노리는 건 녀석들이 아니라 삼합회라고 보는 게 맞겠지.’

그리고 삼합회의 뒤에는 팔무성의 한 명인 연금술사, 진웨이가 있었다.

‘아마도 내가 알렉과 접선했다는 걸 알게 되어 왔을 가능성이 높다.’

란의 둥지도 그렇고, 이제 슬슬 위상들이 자신을 견제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 그건 남궁이 노린 부분이기도 했다.

처음부터 회귀 자체를 모른다면 모를까 회귀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숨을 순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남궁은 알렉 트라만과의 만남에서부터 니나가와 에리카를 끌어들이는 것까지.

하나의 계획을 세웠다.

그것은 대놓고 회귀자라 표명하지 않지만 계속해서 의심을 사는 것.

그리하여 오히려 계시자들이 자신을 찾아오게 만드는 것이었다.

‘지옥문이 열리고 그것을 닫으면 남은 마물이 쏟아진다.’

아포칼립스의 대전제인 그것은 바뀌지 않는다.

즉, 마물은 끊임없이 나온다는 말이다. 그리고 남궁은 계시자들을 불러냄으로써, 그들의 힘을 이용해서 대한민국의 마물을 막으려는 것이었다.

“와준다면…….”

그리고 놈들을 바라보며 남궁은 피식 웃었다.

“감사히 이용해 먹어야겠지.”

저벅- 저벅– 저벅-

남궁은 최광필에게로 걸어갔다.

“어차피 너희들은 들러리에 불과하다. 천일회 따윈 관심 없어. 진짜 놈들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미친 새끼…… 누구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입은 좀 다물어야겠다.”

“닥쳐!!”

스악-!!

그때였다.

최광필이 손이 빠르게 횡으로 허공을 갈랐다.

인간의 속도를 뛰어넘은 빠르기.

‘룬의 힘인가?’

하지만 남궁은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뒤로 그의 공격을 피했다.

“쯧쯧…… 어린 나이에 간부까지 오른 걸 보니 그래도 조금 치나 본데. 상대는 봐가면서 해야지.”

“불쌍해라…….”

그런 최광필을 보며 명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박효주 역시 반응은 마찬가지.

“뭐, 뭐야?”

오히려 자신을 불쌍하게 보는 두 사람의 시선에 최광필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퍽-!

그 순간 별이 번쩍였다.

미간에 꽂힌 남궁의 주먹에 그의 시야가 불을 끈 것처럼 까맣게 변했다.

“……컥!!”

그의 머리가 뒤로 젖혀지면서 코피가 터져 주르륵 흘렀다. 남궁은 휘청거리는 그의 한쪽 팔을 잡고서 그대로 발등을 발로 찍어 눌렀다.

우드득……!!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그의 발등이 움푹 들어갔다. 너무나 극심한 고통에 최광필은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헉, 헉…….”

간신히 숨을 토해내는 그를 바라보며 남궁은 그의 손가락을 하나씩 펼쳐서는 쥐고 있던 나이프를 꺼냈다.

“운이 좋았는걸. 최하급 룬을 몇 개 집어 먹은 모양인데…….”

서걱-

남궁이 그의 아킬레스건을 끊었다.

“크아아악!!”

“다리를 못 쓰면 무용지물이지.”

최광필이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자 주위에 있던 천일회의 일당들이 슬금슬금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도, 도망쳐!!”

“으아아아!!”

결국 누군가의 외침을 시작으로 그들은 황급히 흩어지기 시작했다.

“거기 멈춰!!”

박효주가 그들을 향해 소리쳤지만 그녀의 총은 수십 명의 사람들 중 누구를 겨누어야 할지 몰라 다급히 움직일 뿐이었다.

“잔챙이들은 상관없어. 목적은 달성했으니까.”

“크, 크윽…….”

“최광필. 잘 들어. 여기서 몇 번 더 네 다리를 쑤셔주면 평생 불구로 살게 만드는 건 일도 아냐.”

남궁이 그의 머리채를 잡아 들었다.

“운이 좋다면 다리를 고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미 우리가 알던 세계가 아니다. 치료하기보다 마물들에게 뜯어 먹히는 게 더 빠르겠지.”

그 순간 최광필의 눈빛이 흔들렸다.

“도망친 부하들을 원망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너도 네 위에 대가리를 배신해야 할 테니까.”

“닥쳐…… 내가 네놈…… 으악!!”

남궁은 피가 흐르는 그의 발뒤꿈치에 쥐고 있던 나이프를 찔러 넣었다.

최광필이 몸부림을 칠 때마다 세로로 박힌 나이프가 덜렁거리며 떨렸다.

“여, 연안터미널로 가십시오!! 거기로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누가? 날 찾아오라고 한 놈이 천일회의 신태화야, 아니면 삼합회의 진웨이야. 그걸 말해야지.”

“그, 그건 저도 잘…… 그냥 명령만…… 아악!!”

남궁은 최광필의 다리에 박혀 있는 나이프를 비틀었다.

“회, 회장님이십니다. 삼합회 놈들이 어제 항구로 들어오긴 했는데…… 그들이 움직이기 전에 회장님께서 직접 명령하셨습니다!”

‘천일회가 날고 긴다고는 하지만 여의도의 사건이 있은 지 고작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어. 아직 내 정체까지 파악하긴 힘들 거야.’

그렇다면 원인은 아마 진웨이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건…… 아마도 알렉 트라만과 접촉했을 가능성이 높다.

‘천일회는 그런 삼합회를 통해서 내 존재를 알게 되었을 가능성이 높겠지.’

신태화는 하이에나 같은 자였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삼합회가 찾을 정도의 인물.

분명 뭔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 먼저 움직인 게 분명했다.

“하여간 냄새 하나는 기가 막히게 맡는군.”

콰직!!

남궁은 붙잡고 있던 최광필의 머리를 있는 힘껏 바닥에 찍었다.

둔탁한 충격과 함께 정신을 잃고 축 늘어진 그를 바닥에 내려놓고서 남궁은 천천히 일어섰다.

“놈을 데려가. 이 녀석이라면 마약 창고의 위치를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곧 팀원들이 올 겁니다. 터미널로 가시려는 거죠? 함께 가겠습니다.”

“아니. 괜찮아. 신태화가 진웨이보다 먼저 나를 찾았다는 건 비밀리에 나를 만나고 싶다는 뜻일 테니까.”

“위험합니다. 놈이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을 리가 없어요. 어쩌면 함정일지도 모르고요.”

“아마도 함정은 아닐 거야. 녀석은 삼합회와 나를 사이에 두고 저울질을 해볼 생각인 거겠지. 어디에 패를 걸어야 이득인지 말이야.”

박효주는 남궁의 대답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괜찮아. 오히려 걱정을 해야 할 건 그 녀석들일 테니까. 그리고 나 역시 녀석들에게 볼일이 있었는데…… 제 발로 찾아와 준다면 오히려 고마운 일이지.”

“볼일이요?”

“진웨이가 가진 신종 마약의 레시피. 그리고 그걸 제조할 공장까지. 결국 천일회와 관련된 것이니까.”

“그걸 막기 위해서 제게 녀석들을 주시하라고 하셨던 것 아닌가요?”

“물론 막아야지. 그걸 인간에게 사용하는 짓은 절대로 용납하지 못 할 일이야. 하지만 진웨이가 아닌 신태화가 나를 먼저 찾는 거라면 2번째 몬스터 웨이브의 대책을 세울 수 있을지도 몰라.”

남궁의 눈빛이 빛났다.

“1차 때와 마찬가지로 문이 닫히면 남은 마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소환되는 웨이브가 시작된다. 하지만 그 규모는 고블린 때와는 차원이 다를 거야.”

그의 말에 박효주는 긴장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하지만 만약 진웨이의 신종 마약. 그걸 인간이 아니라 마물에게 사용한다면……?”

남궁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 방에 몰살시켜 버릴 수 있지.”

박효주는 그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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