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0화 (40/270)

40화

남궁은 자신의 주위를 떠다니는 영혼의 구슬을 바라보며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령술로 사역시킬 수 있는 건 오직 인간의 영혼뿐인데…….’

마물 중에서도 던전의 보스인 미노타우르스의 영혼이 그의 앞에 나타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스으으으으…….

그가 손바닥을 위로 펼치자 혼구(魂球)가 그 위에 내려앉았다.

“이게 뭔가요?”

박효주는 영롱하게 반짝이는 그 구슬을 바라보며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만지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마물의 영혼은 강력한 독을 머금고 있으니까. 중독되면 지금 모은 헤드를 다 써도 해독할 수 없을걸.”

“윽…….”

남궁의 말에 박효주는 뻗었던 손을 황급히 뒤로 감췄다.

▶ 사역하시겠습니까?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화아아악……!!

그 순간 붉은 구슬 안에 들어 있는 미노타우르스의 영혼이 마치 부화하는 것처럼 구슬을 깨며 두터운 손이 튀어나왔다.

“……!!!”

“……!!!”

그 광경에 장길수와 박효주는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 영혼 사역 Lv2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 사역 가능한 영혼의 수가 최대치를 초과하였습니다.

▶ 사역 가능한 사령의 수 3/3

“흐음…….”

남궁은 잠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노타우르스라면 던전의 보스. 확실히 현충원의 영령들보다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

사역 가능한 영혼의 수가 이미 최대치인 이상 놈을 길들이기 위해서는 영령 중 하나를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녀석은 자신과 함께하는 호국영령들과 달리 인간이 아닌 마물이었다.

과연 놈이 자신에게 우호적인가에 대해 확신을 할 수 없었다.

‘사령술을 다루는 데 있어서 중요한 건 다루는 사령들이 얼마나 내 명령을 잘 따르는가이다.’

오히려 강력한 힘을 가진 사령이 반발을 일으키기라도 한다면 더욱 골치 아픈 일이었으니까.

“네게 묻겠다. 너는 어째서 나를 따르려 하는 거지? 나는 널 죽인 자인데.”

남궁은 자신의 앞에 선 미노타우르스의 영혼을 바라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크르르르…….]

뭔가를 말하려는 녀석은 괴로운 듯 머리를 움켜잡기 시작했다.

쩌적…… 쩌저적…….

그 순간, 미노타우르스의 가죽이 마치 허물을 벗듯 세로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놈의 몸 안에서 튀어나온 또 하나의 손이 서서히 그 갈라진 틈을 양쪽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저, 저게 뭐야?”

“괴물의 안에 누가 있는 건가?”

경악스러운 그 광경에 남궁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파앗……!!

그리고 소의 가죽이 모두 찢어발겨진 순간, 그곳엔 전혀 다른 존재가 서 있었다.

인간(人間)이었다.

[부디 나를 이곳에서 벗어나게 해주시오…….]

그는 남궁의 앞에 무릎을 꿇은 채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남궁은 그제야 인간의 영혼을 다루는 일곱 뱀의 계시자인 자신이 어째서 마물의 영혼을 사역할 수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사, 사람?”

장길수는 남궁의 앞에 나타난 영혼을 바라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미노타우르스는 반인반우(半人半牛)의 마물. 반은 마물이지만 반은 인간인 존재…… 설마 그냥 단순히 괴물이 아니라 인간의 영혼과 마물의 영혼이 함께 있다는 뜻인 걸까요?”

하지만 박효주는 그의 영혼을 보며 놀란 눈으로 남궁을 바라봤다.

“신화를 잘 알고 있나?”

“그냥…… 어느 정도는요. 고등학교 시절 꽤나 빠져 있었던 때가 있었거든요. 별로 어울리지 않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하던 그녀는 남궁에 말에 살짝 어깨를 움찔거렸다.

“녀석에 대해서 또 아는 게 있나?”

“으음…… 여담이긴 하지만 우리가 부르던 미노타우르스는 그의 진짜 이름이 아니에요. 그저 미노스왕의 소라는 뜻일 뿐이니까요.”

“그럼?”

“아스테리온(Asterion).”

남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뇌광(雷光)이라…… 썩 그럴싸한 이름을 가졌는걸.”

저벅- 저벅- 저벅-

그는 천천히 아스테리온의 영혼 앞으로 걸어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곳을 나가게 해준다면 너는 내게 뭘 해줄 수 있지?”

[…… 무엇이든.]

그는 남궁을 바라봤다.

“하지만 너와 계약을 맺으려면 나는 가지고 있는 영혼 병사를 소멸시켜야 한다. 그들은 나를 위해 싸우고자 하는 자들. 내가 내 욕심에 또다시 그들을 죽여야 할 정도로 너는 가치가 있는 자인가?”

[누구도 죽일 필요 없습니다. 나는 더 이상 누구도 죽이고 싶은 마음이 없으니까.]

그때였다.

그가 뜯고 나온 미노타우르스의 영혼 껍질이 순식간에 재가 되면서 남궁을 덮쳤다.

“……!!!”

강렬한 소용돌이와 동시에 그의 전신에 잿가루들이 파고들었다.

▶ 영혼 흡수 Lv2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 미노타우르스의 영체가 당신에게 스며듭니다.

‘이건…….’

그 순간 남궁은 전신에 퍼져 있는 혈관들이 날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영웅의 영체를 흡수하였습니다.

▶ 상위의 영체와의 접촉으로 사역 가능한 영혼의 수가 증가합니다.

▶ 사역 가능한 사령의 수 3 → 4

꽈악-

영혼이 남궁의 손을 움켜잡았다.

“가죽을 버리고 영혼을 구원하겠다는 건가. 지독하지만 던전의 주인다운 모습이로군.”

간절하게 움켜잡은 그 손을 바라보며 남궁은 남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받아들이겠다.”

우우우우우우--!!

그때였다.

마치 소의 울음소리 같은 구슬픈 바람 소리가 그들이 서 있는 제단의 홀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 진혼의 사역을 완료하였습니다.

▶ 영혼 기사가 당신을 따릅니다.

사역을 알리는 알림이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

영혼이 아닌 진혼.

과연 던전의 보스이자 데미갓(Demigod)답게 현충원의 영혼과는 다른 짙고 응축된 영혼이었다.

꽈악-

남궁은 자신의 앞에 나타난 영혼을 바라보며 본능적으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쿠웅……!!

아스테리온의 영혼 주위로 검은 연기가 감싸더니 두터운 갑옷과 함께 거대한 도끼가 그의 손에 쥐어졌다.

그 순간 나머지 3명의 영혼 병사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서 한쪽 손을 바닥에 짚었다.

촤르르르륵……!!

그들의 발밑에서 검은 가시들이 튀어나오더니 그들을 뒤덮기 시작했다.

▶ 진혼의 기운이 병사들의 영혼을 짙게 만듭니다.

▶ 영혼 병사들이 강화됩니다.

‘영혼 병사들이 강화된다고?’

남궁은 들려오는 알림에 눈이 커졌다.

“으흠…….”

그는 변해 가는 영혼 병사들을 바라보며 옅은 신음을 토해냈다.

‘전생에 내가 다뤘던 영혼 병사들은 모습부터 제각각이었고 마지막 하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평범한 인간의 영혼들이었어.’

사실 그에게 있어서 병사들은 일종의 소모품에 불과했다.

물론, 그렇다고 그들의 소멸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병사들이 소멸할 때마다 그 고통은 계약자인 자신에게 고스란히 스며들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남궁은 영혼 병사들을 계약하는 데 있어 그 무엇보다 신중을 기했다.

‘그런데 이제 그들까지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일지 모른다.’

쿠웅-!

아스테리온이 거대한 도끼를 세우며 남궁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는 다른 병사들보다 훨씬 더 두터운 중갑옷을 입고 있었다.

게다가 갑옷의 연결 부위에는 혼구에서 봤던 붉은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 영혼 병사들의 강화가 완료되었습니다.

알림을 끝으로 아스테리온의 뒤에 있던 3명의 병사들이 서서히 일어섰다.

두근…… 두근…….

지금껏 어떤 일이 벌어져도 평정심을 유지했던 남궁조차 이 순간만큼은 떨리지 않을 수 없었다.

철컥- 쿠웅-!!

회색의 가면 뒤로 없었던 푸른 안광이 빛나고 있었다. 남궁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힘이 그들에게서 느껴진다는 것을.

“재밌어지는군.”

남궁은 그들을 바라보며 묘한 웃음을 지었다.

* * *

“오늘 일은…….”

“아무에게도 얘기할 생각 없네. 이래 봬도 난 협회장일세.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말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니까.”

던전에서 나온 장길수는 제단에서 봤던 일을 함구하겠다는 듯 손가락을 들어 지퍼를 잠그듯 자신의 입술을 가로로 그었다.

“혹여나 그게 자네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이라면 더더욱 말이지. 자넬 적으로 돌릴 생각은 없으니까.”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요. 저 역시 마장동의 기술자들과 힘을 합치고 싶거든요.”

“앞으로 계속해서 이런 괴물들과 싸워야 한다면 얼마든지. 자네 같은 강자와 함께하는 건 살아남을 확률을 높이는 거니까.”

“아저씨!!!”

“이제 오시는 거예요?”

“저 밑에 뭐가 있었어요? 얘기해주세요!”

장길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시장통에 있던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지켜야 할 사람이 있는 자는 강할 수밖에 없지.’

그의 주위에 아이들을 바라보며 남궁은 떠나기 전 장길수에게 마지막 당부를 했다.

“잼통이 부서진 건 아까운 일이지만…… 일단은 무기부터 사는 게 좋을 겁니다.”

“알겠네.”

던전에서 호되게 당했었던 그였기에 장길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놈들은 물을 통해서 나옵니다. 시장 안에서 놈들을 막는 것보다는 청계천 쪽에 있는 먹자골목의 건물들을 이용해서 사수하는 게 나을 겁니다.”

“으흠. 명심하지.”

“그리고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만약 가능하다면 사람 한 명 찾아주실 수 있으십니까.”

“누구 말인가?”

“만덕수라는 사람입니다. 제 기억엔 노원구에서 철물점을 운영하고 있었던 걸로 압니다.”

“만덕수…… 알겠네. 노원구라면 그리 멀지 않으니 말이야. 그쪽에 사는 아우들도 몇 있으니 찾아보겠네. 자네에게 연락하지.”

“감사합니다.”

남궁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공방왕(工房王)이라고 불렸던 만덕수는 수많은 도구와 생필품을 제작하는 능력을 가진 자였다.

‘만약 장길수와 만덕수가 힘을 합친다면…… 강북 쪽의 안전을 좀 더 단단하게 할 수 있겠지.’

“살아남아서 다음에 탁주나 진하게 합세. 고기는 내가 둘이 먹나 하나 죽어도 모를…… 아니, 그냥 기가 막히게 준비해 줄 테니.”

장길수는 이런 상황에 죽는 얘기를 입에 담는 것도 싫은 듯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살아남는 것으로 끝내지 마십시오. 이곳을 지키십시오. 더 많은 사람을 구하십시오. 당신이라면 할 수 있을 겁니다.”

“내 어깨를 무겁게 만드는구먼.”

남궁은 장길수의 주위에서 자신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빛을 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

* * *

“잠시만요!”

박효주는 남궁의 뒤를 따라 달려왔다.

“왜?”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녀는 어쩐지 머뭇거리며 그에게 물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의아하다는 듯 남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길은 분명히 알려 줬을 텐데. 장길수에게 칼을 쓰는 법을 배우도록 해.”

“그게 아니고요.”

“그럼?”

“……아버지의 일 말입니다.”

쉽게 꺼낼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미궁에서 남궁의 힘을 확인한 그녀는 남궁만이 해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 확신했다.

“없어.”

“……네?”

하지만 기대와 달리 그에게서 나온 말은 맥이 풀릴 정도로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 반란은 혼란 속에서 일어나는 법이니까. 혼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너희들의 역할이지 않아?”

남궁은 그녀를 바라봤다.

“총리에게 말했다시피 힘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총리가 창설하려는 마물전담팀, 당신이 꾸려봐.”

어차피 참악 부대는 그녀의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아래에서 팀원들이 강해진다는 것을 이미 전생에서 확인했었으니 믿고 맡길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결심이 선 듯 박효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금은 아버지를 믿는 것도 좋겠지. 적어도 그는 야심가이긴 해도 그 이전에 군인이니까. 나라를 망가뜨리면서까지 정권을 잡을 위인은 아니야.”

그의 말에 그녀는 조금 마음이 놓이는 듯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 있을 거야. 아마 이제 곧 전국 각지에서 생길 일이기도 하지.”

“그게 뭔가요?”

“차원문이 열리고 마물들이 쏟아지는 아포칼립스. 영화 속에서나 볼 법한 일들이 지금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어. 이런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무리들이 있지. 세상이 망했다고 울부짖는 자들 말이야.”

아포칼립스에서 두려운 건 단순한 재해만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사람으로 인한 인해(人害).

“마물은 사냥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무너지는 마음의 구멍은 사냥으로 채울 수 없어.”

남궁은 그녀를 향해 말했다.

“처음에는 몇몇이 피켓을 들고 확성기로 외치는 정도겠지. 하지만 그 작은 불씨는 순식간에 번지겠지. 대규모 집회들이 일어나고 결국 그들이 모습을 드러낼 거야.”

“그들이라뇨?”

박효주는 떨리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광신도(狂信徒).”

그는 낮게 숨을 토해냈다.

“인간이야말로 사실 마물보다 더 두려운 자들이니까. 3번째 지옥문이 열리기 전에…….”

센프란시스코, 리버풀, 나폴리, 시드니…….

종말론자들로 인해 수많은 도시들이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대한민국 역시 그들의 화마를 피할 수는 없었다.

“인천이 대한민국에서 사라지게 될지 모른다.”

“……!!!”

남궁의 목소리가 그녀의 귀를 때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