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7화 (37/270)

37화

‘이상한데……?’

남궁은 수어들이 갔었던 루트를 따라 미로를 달리면서 뭔가 이질적인 느낌을 받았다.

‘방향은 정확한데…….’

3마리의 수어들은 분명 하나의 공통된 장소에 도달했을 때 모두 사라졌다.

그 말은 적어도 그가 그곳으로 가는 3개의 길을 확보했다는 의미기도 했다.

‘나오질 않는다.’

1번째 수어의 루트를 따라 길을 갔을 땐 수어가 죽은 공간이 나와야 할 곳에 막다른 길이 있었다.

그는 다시 입구로 돌아와 두 번째 수어의 루트를 따라 길을 갔다. 하지만 그 끝에는 깊은 낭떠러지가 나왔을 뿐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수어가 갔던 방향을 따라 미로를 공략하고 있는 남궁은 이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쉽게 들여 보내주지 않겠다는 거로군.’

마치 뫼비우스의 띠 위에 달리고 있는 것처럼, 그는 끝없이 계속해서 미로의 길을 달리고 있었다.

“사, 살려줘……!!”

그때였다.

날카로운 여자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남궁은 낯익은 그 목소리에 달리던 발을 멈춰 섰다.

“박효주?”

“허, 허, 헉……!!”

맞은편 어둠 속에서 달려오는 그녀는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박효주!!”

남궁은 황급히 달려오는 그녀의 팔을 움켜잡으며 자신 쪽으로 끌어 당겼다.

“어떻게 된 거야?”

“마물이…… 마물이 있었어요. 끔찍한…… 부대원들이 모두 죽었습니다.”

부들부들 몸을 떠는 그녀는 초점 없는 눈으로 남궁을 향해 소리쳤다.

“무슨 소리야? 부대원들이라니. 여긴 우리 셋만 들어왔잖아. 정신 차려!!”

혹시 그녀가 정신 공격을 받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남궁은 그녀의 어깨를 흔들며 말했다.

“셋이라뇨. 정신 차려야 할 건 당신라고요! 모르겠어요? 지금 소중한 제 부대원들이…… 모두 죽었다고요!”

오싹-

그 순간 남궁은 자신을 바라보는 박효주의 눈빛에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떨었다.

“모른 척하지 마. 내 부대원들을 네가 사지로 몰아넣었잖아.”

“……뭐?”

“네가 시킨 거잖아. 그들에게 서울역 지하철 터널 안을 지키라고 했지. 시간을 벌어달라고. 네가 다 해결하겠다고. 하지만 이게 뭐지?”

꽈악-!!

박효주가 남궁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빌어먹을 마족을 잡으려고……! 자기 혼자 과거로 돌아가겠다고 너는 내 부대원들을 그냥 인간 방패로 쓴 거야!!”

그녀의 말에 남궁은 마치 머리를 둔기로 맞은 것처럼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너를 믿고 그 지옥 속으로 들어 간 내 부대원들…… 아니…… 나도…… 죽어서도 널 원망…… 할…….”

솨아아악……!!

그 순간 박효주의 얼굴이 마치 녹는 것처럼 피부가 흘러내렸고, 붉은 살점들이 잘려 나가듯 툭툭 떨어지며 사라졌다.

“…….”

남궁은 그 자리에 굳어버린 것처럼 우두커니 서 있었다.

“가짜에 현혹되지 말게나. 미궁이 자네의 마음을 헤집고 있는 거니까. 오히려 단순하게 생각해. 그러면 혼란이 줄어들 걸세.”

“장길수…….”

뒤에서 그의 어깨를 툭 치며 나타난 길수를 바라보며, 그는 더욱더 혼란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어떻게 여길?”

“하하, 길이 없으면 만들면 되지. 미로의 벽을 그냥 부수고 계속 직진해 버렸어.”

남궁은 그의 말에 피식 웃고 말았다. 과연 장길수다운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조금 정신이 드네요. 당신 말대로 미궁이 아무래도 환각을 일으키는 모양입니다.”

“그렇지. 하지만 그게 환각인지…… 아니면 진짜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

“그게 무슨……?”

“자네 정말로 회귀를 했다고 생각하는가? 자네가 잡으려고 하는 마지막 마족 말일세. 그루터기의 악마. 그는 영혼을 다루지.”

그 순간 자신을 바라보는 장길수의 눈빛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그를 죽인 걸까? 영혼은 정신의 본질이지. 그 악마의 술수에 지금 빠져 그저 자네가 바라는 꿈을 꾸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나?”

“……무슨 헛소리지?”

“헛소리라니. 이 친구야.”

쩌적…… 쩌저저적……!!

순간 장길수의 입이 양쪽 입꼬리를 따라 찢어지며 벌어졌다.

“고작 네놈을 과거로 보내기 위해서 나와 내 아우들이 그 악마 놈에게 사지가 뜯겨 죽었다는 걸 잊은 거냐? 그런 주제에 감히 나를 또 찾아와? 낯짝도 두껍구나……!!”

“……!!!”

입안에 마족의 얼굴이 튀어나와 그를 향해 뱀과 같은 혀를 파르르 떨며 말했다.

[날 죽였다고 생각했지? 클클…… 바보 같은…… 너는 666,666개의 마족의 머리를 모두 모은 게 아냐. 그냥 내가 만든 환영 속에서 놀아나고 있을 뿐이지.]

마족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남궁에게 말했다.

“남궁…… 어째서 우리를 사지로 보냈지?”

“당신을 믿었는데…….”

“위업을 달성했다고? 웃기지 마…… 너는 그저 우리의 죽음을 이용했을 뿐이다.”

마치 메아리처럼 남궁의 귀에 수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꽈악-

남궁은 누군가 자신의 바짓가랑이를 당기는 기분에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피투성이가 된 팔.

꽈악-

또 다른 손이 그의 팔을, 허리를, 어깨를, 얼굴을…… 시체의 썩은 내와 함께 여기저기 부패한 수많은 팔들이 그를 어둠 속으로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크, 크클…… 이게 현실이다. 너는 속았어. 망가져도 좋다. 어차피 회귀 같은 건 처음부터 없었…….]

퍼억--!!

그때였다.

남궁은 장길수의 몸속에서 튀어나온 마족의 머리를 향해 사정없이 주먹을 찔러 넣었다.

“그래?”

그는 찌그러진 마족의 머리를 잡아당기며 자신의 앞으로 끌고 왔다.

“이게 현실이라고? 그럼 이제부터 죽여주지. 네놈부터 시작하겠다. 666,666마리 중 몇 놈이 살아 있지? 아니, 모두 다 살아 있다 해도 상관없어. 모조리 썰어줄 테니까.”

[네, 네놈……!!]

“고작 이 정도일까? 나는 수십, 수백이 아닌 수천, 수만의 목숨을 짊어지고 네놈들의 목을 베어왔다. 고작 과거로 보내는 일?”

남궁은 참회자의 검을 뽑았다.

“목숨을 내어준 그들에게 있어서 나의 회귀는 고작이 아니다. 누군가는 원망하겠지. 희생을 강요당한 자들도 수없이 많을 거다.”

촤악---!!

그가 검을 휘두르자 그에게 들러붙었던 수많은 팔들이 단박에 잘려 나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피 냄새에 코가 마비되어 더 이상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게 되었을 때, 그의 주변엔 더 이상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콰직!!!

그는 검을 마족의 얼굴에 박아 넣었다.

[크아아아악!!!]

“그럼에도 나는 내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원망하라면 하라지. 저주하려면 해라. 그 죄악마저 나는 받아들일 것이다. 하지만…….”

까드드득……!!

이마에 꽂힌 검의 손잡이를 꺾자 마지 뼈가 갈리는 듯한 기괴한 소리가 들렸다.

[크…… 크헉…… 커커컥…….]

마족의 얼굴이 검에 의해 서서히 갈라지기 시작했다.

“내 삶을 가짜라고 말하는 놈은 누구도 용서하지 않겠다.”

남궁은 반토막이 난 마족의 얼굴을 짓밟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화아아악---!!

그 순간, 마치 안개가 걷히는 것처럼 장길수의 시체와 마족의 잘린 머리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환각이었나.’

전신을 뒤덮었던 핏물도 사라졌고 숨을 들이마시자 젖은 이끼의 냄새가 오히려 상쾌하게 느껴졌다.

“나왔군.”

남궁은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거대한 문을 바라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궁이 인간의 마음까지 갇히게 만드는군. 정말 지독한 곳이야.”

그는 피곤한 듯 문에 기대었다.

자신을 공격했던 환각들 속 존재들이 했던 말들이 하나둘 그의 머릿속에 다시 새겨지는 기분.

‘도대체 장길수는 이 환각을 어떻게 공략한 거지? 웬만한 정신력으로는 버티기 힘들 텐데.’

콰아앙--!!

그때였다.

남궁이 서 있던 문의 오른쪽 벽이 요란한 굉음과 함께 와르르 무너졌다.

“……?!”

“워, 씨펄…… 뒈지는 줄 알았네.”

무너진 벽 뒤로 걸쭉한 목소리는 다름 아닌 장길수. 그는 여기저기 몸에 묻어 있던 이끼들을 떼어내며 무너뜨린 벽을 넘어 남궁에게 걸어왔다.

“오! 자네 있었군. 대단한걸. 내가 제일 먼저 도착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지금…… 벽을 부숴서 온 겁니까?”

“아아, 뭐. 입구에서부터 한쪽 방향을 잡고 그냥 계속 직진했지. 결국 이런 곳에 보스가 있는 곳은 두 가지잖아? 중앙이든지 가장 끝이든지.”

‘정말로 이게 부서지는 벽이었나?’

남궁은 장길수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무너진 벽의 잔해들을 바라봤다.

‘이런 식으로 미궁을 공략했을 줄이야. 단순한 건지…… 명쾌한 건지. 뭐, 그답다고 해야 하나.’

25년을 이 세계에서 굴렀던 그였지만 단 한 번도 던전의 벽을 부숴서 새로운 길을 만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던전은 인류가 만든 것이 아닌 이형(異形)의 건축물이다. 당연히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여겼었지…….’

파스스스……!

남궁은 너무나도 쉽게 부서져 손바닥 위에 가루가 돼버린 벽돌을 바라보며 쯧-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아직 무르군.”

그는 먼지를 털어내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고생하셨습니다.”

“고생은 나보다 자네가 한 것 같군. 몰골이 말이 아닌데…….”

“뭐…….”

남궁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닫혀 있는 문의 손잡이를 열었다.

철컥-

잠금쇠가 풀리는 소리와 함께 미궁의 문이 서서히 열렸다.

그러자 커다란 방의 한가운데 3개의 기둥이 세워진 제단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

“나머지 한 명이 있어야 작동을 하는 모양인데…… 그 친구는 괜찮을지 모르겠군.”

“올 겁니다. 뛰어난 자니까.”

“흐음…….”

장길수는 조금 못 미더운 표정이었다.

“헉, 헉…….”

하지만 그 순간,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땀을 뻘뻘 흘리는 박효주가 나타나 두 사람을 보더니 힘이 빠진 듯 그대로 주저앉았다.

“이보게, 괜찮나?”

“도대체 여기 뭡니까? 빌어먹을 악몽들이…… 죽는 줄 알았다고요.”

박효주는 장길수가 건네준 물병을 들이켜며 질린다는 듯 말했다.

“그래도 용케 도착했군. 고생했네.”

“……저 사람이 알려준 팁이 조금 도움이 되었거든요. 밑져야 본전이라 생각했는데 말이죠.”

“팁? 뭐야, 그런 게 있으면 내게도 알려줘야지. 사람이 참…… 치사하구만.”

“당신은 충분히 공략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투덜거리는 장길수를 바라보며 남궁은 박효주에게 물었다.

“환영을 본 건가?”

“네. 예전에 죽었던 부하들이 나타나더군요.”

“용케 벗어났군.”

“부하들의 모습이 좀 이상했거든요.”

“이상하다니?”

“나타났던 환영 중 한 명이 국정원 이전에 저와 함께 부대에 있었던 부하입니다. 작전 수행 중에 저를 감싸다가 다리가 잘렸죠.”

그녀는 쓴웃음을 지었다.

“우습지만 당신이 얘기했던 오른쪽. 그게 도움이 되었죠. 그 녀석이 잘린 다리는 왼쪽이었는데, 제게 들러붙은 환영은 꼭 거울에 비친 것처럼 반대쪽이 잘려 있었거든요.”

“오, 역시. 오른쪽이 답이라니까. 나도 오른쪽으로 부수고 왔지.”

“……네? 뭘 부숴요?”

“그런 의미가 아니었지만…….”

남궁은 전생에 장길수가 흘리듯 말했던 미궁의 공략법이 두 사람에게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되었다는 사실에,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뭐, 어쨌든 다들 살아서 만났으니 됐지.”

그가 제단 위에 올라섰다.

▶ 제물이 바쳐졌습니다.

알림을 따라 나머지 사람들까지 그 위에 모두 올라서자 허공에 붉은 글씨가 나타났다.

[제단에 바쳐진 제물 : 3/3]

쿠그그그그그…….

제단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거대한 문이 양쪽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 미궁의 주인이 나타납니다.

[쿠우우우!!!]

새하얀 입김과 함께 거대한 해머를 든 미노타우르스가 그들을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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