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당신……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겁니까?”
남궁의 말에 창백해진 얼굴로 박효주가 그에게 물었다.
“세상에 남의 정보를 캐는 곳이 국정원만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되지. 하다못해 시정잡배들도 흥신소를 차리고 대신 사람을 찾아주는데 말이야.”
“과연…… 711부대의 대장답군요. 지금은 사라졌지만 과거에 최고의 팀이라고 들었습니다. 전술은 물론이거니와 정보전(情報戰)에까지 대한민국 톱이었다죠?”
박효주는 남궁을 바라봤다.
“711이 아직까지 특수부대의 정점이라 칭해진다면 지금 남아 있는 대원들은 그만큼 별 볼 일 없다는 말이겠군. 스스로 최고가 아니다 인정하는 건가.”
“아뇨. 그건…….”
“핑계로 자신을 납득시키려 하진 말지?”
냉정한 남궁의 한마디에 박효주는 아무런 반박을 하지 못한 채 입술을 깨물었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전(前) 부대의 리더가 아닌 민간인으로서 대하겠습니다.”
하지만 질 수 없다는 듯 그녀는 남궁을 향해 말했다.
“정부의 명 아래 움직이는 저희와 달리 민간인이 남의 뒷조사를 하는 것은 그다지 떳떳한 일이 아닌데 아무렇지 않게 말씀하시는군요. 남의 신상을 파는 게 자랑은 아니잖습니까?”
“국정원 요원들은 참 웃겨. 꼭 자신이 무슨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베일에 싸인 인물이라고 착각하거든.”
“그게 무슨…….”
“여의도 CCTV를 확인했다면 내가 강호준과 최명훈 이외에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는 걸 알 텐데.”
남궁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그곳에 전태호 선수와 그의 아들인 전경인 학생이 있었다는 걸 당신도 알겠지.”
“…….”
“전태호 선수와 당신의 아버지 박 장관이 어린 시절부터 죽마고우였다지? 이름도 비슷해서 형제처럼 지냈다던데.”
그의 말에 박효주는 아무런 반박을 하지 못했다.
“전 선수께 들은 이야기야. 국회의사당 생존자 명단이 뉴스에 나왔을 때 박 장관의 얘기가 나왔고, 그의 여식이 지금 국정원에 있다는 것까지 말이지.”
사실 전태호에게 들었다는 건 거짓말이었다.
박효주에 대한 내용은 전태호에게 들은 것이 아니라, 전생에 당사자에게서 직접 들은 것이었으니까.
‘계시자도 아니고 회귀에 대한 걸 말해봤자 이해할 리도 없으니…….’
남궁은 자신이 기억하는 정보를 이용해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녀의 정체를 밝힌 것이었다.
‘서재욱이 박효주가 박대호의 딸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다.’
그가 두 사람이 부녀 관계라는 것을 여기서 말한 이유는 서재욱이 아닌 박효주 때문이었다.
‘박대호 장관의 의중을, 어쩌면 박효주는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
사실상 경고였다.
박효주를 통해 박대호에게 전하는 경고 말이다.
“흥미로운 대화이긴 한데…… 총리님을 앞에 두고 나눌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만.”
그때였다.
서재욱 옆에 있던 비서실장이 헛기침으로 두 사람의 대화를 끊으며 말했다.
“사적인 대화는 따로 나누시는 게 어떠십니까.”
“……죄송합니다.”
박효주는 그제야 아차 싶은 표정으로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한번 고려를 해주실 순 없으시겠습니까. 대통령이란 구심점을 잃은 지금 국민들은 혼란과 공포에 빠져 있습니다.”
서재욱은 남궁을 바라봤다.
“갑작스럽게 생성된 차원문과 이형의 괴물들, 그리고 야차라는 대리자 일족과 보따리의 각종 도구들까지…… 사람들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고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알지 못합니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사실 그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이런 혼란을 줄이고 사람들을 이끌기 위해서 계시자란 존재가 있는 것이었으니까.
계시자들은 자신만의 세력을 만들고 지금까지의 국가의 개념을 뛰어넘어 세계를 새로이 나누게 된다.
‘지옥문의 등장은 이제 기존의 우방이니 맹방이니 하는 질서를 모두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니까.’
질서가 깨지면 혼란이 찾아오는 법.
어쩌면 약육강식의 세계가 되는 지옥도의 미래에서 정부란 존재는 어쩌면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걸림돌일 뿐일지도 모른다.
“제가 이끌어주길 바랍니까?”
남궁은 서재욱을 바라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물론입니다. 남 대위는 지금 이 상황에서 누구보다 선두에 선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재욱은 조금 전과 다른 그의 대답에 조금은 희망적인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그렇다면 팀장이란 목줄을 걸어 절 이용하려 하지 말고 당신 자리를 내게 주시죠.”
“다, 당신……!”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남궁은 과거, 아니, 전생의 미래에서 파괴되고 무너진 서울의 풍경이 아직도 생생했다.
그는 스스로도 내뱉은 말이 말도 안 되는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몰아 붙이는 데엔 이유가 있었다.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다면 그럴 수도 있지. 나는 자리에 욕심이 있는 사람이 아닐세.”
“총리님!!”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서재욱의 말에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남궁은 그가 그런 말을 할 것이라는 걸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어차피 내어줄 수도 없고 내어 줄 생각도 없겠지만.’
단지 확인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남궁 그는 수없이 되뇌었던 것이지만 그들은 이제부터 가져야만 하는 것.
‘살아남기 위한…….’
결의(決意).
설사 그것이 입 발린 소리라 할지라도, 생각만 하는 것과 입으로 내뱉는 것은 분명 달랐으니까.
“제게 그 자리를 내어주시면 당신은 뭘 하실 겁니까? 의원이 아닌 민간인으로서.”
“살기 위해 싸워야겠지.”
“그 겁니다. 뒤에 있지 마십시오. 지킨다는 것은 단지 웅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공격이 최고의 수비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순간 서재욱은 쓴웃음을 지었다.
“……자네에게 가르침을 받았군.”
총리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나라를 위해 싸우겠다며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서재욱은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다.
‘이 세계에서 강해지려면 정치를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다.’
바로 스스로가 강해지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전장에 뛰어들어야 한다.
월드 보스를 죽이고 저절로 얻게 되는 헤드로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다.
‘서재욱의 죽음 이후 박대호가 권력을 잡은 것도 그가 강하기 때문이다.’
다른 관료들과 달리 그는 직접 군을 통솔하고 지옥문에서 쏟아지는 마물을 상대로 싸웠다.
당연한 결과지만 의회에서 누구보다 많은 헤드를 얻은 그를 막을 수 있는 자는 없었다.
‘총리의 죽음은 석연찮은 부분이 많았지만 그걸 떠나 만약 박대호가 힘으로 정권을 잡으려 했어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어.’
국방부 장관 박대호는 죽기 전 레어 등급의 무기까지 보유할 정도로 강력한 사냥꾼이었으니까.
그들을 견제하기 위해서, 그리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서재욱은 정치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전선에서 직접 싸워야 한다.
“대행이 아닌 리더가 되십시오. 당신이 지지를 받게 된다면 그때 생각해 보죠.”
“하하…….”
팽팽했던 긴장감이 풀리자 총리는 목을 조여 오던 넥타이를 풀고서 의자에 앉았다.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겠네.”
“저 역시.”
남궁과 총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 * *
탈칵-
접견실의 문이 닫히고 복도에는 두 사람만이 남았다.
“……댁으로 모시겠습니다.”
박효주는 굳은 얼굴로 남궁에게 말했다.
복도를 걷는 발소리만 들리는 정적 속에서 그녀는 결국 참지 못하겠다는 듯 남궁에게 물었다.
“조금 전 제게 했던 말이 무슨 뜻입니까?”
“뭘 말하는 거지?”
“제가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물으신 것 말입니까. 권력자라는 건…… 제 아버지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생각하기 나름이겠지. 나는 누구도 지칭하지 않았어. 당신이 그 사람을 가장 먼저 떠올린 데엔 이유가 있겠지. 안 그래?”
“…….”
복도를 지나는 길에 중앙정보부 시절부터 지금의 국정원이 되기까지의 변천했던 원훈들이 적힌 액자들이 걸려 있었다.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
[정보는 국력이다.]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無名)의 헌신]
[소리 없는, 오직 대한민국 수호와 영광을 위하여.]
박효주는 단 한 번도 의심해 본 적 없는 그 말들이 어쩐지 이 순간 자신의 마음을 찔렀다.
“이길 수 없는 적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엘리베이터 앞에 선 순간 그녀가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에서 어쩐지 조금 전과는 다른 기운이 느껴졌다.
‘역시…… 박대호의 의중을 알고 있는 모양이로군.’
국회의사당이 무너지고 대통령을 비롯한 의원들이 사망할 것이란 걸 박대호가 알았을 리는 없었다.
단지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가 야심이 가득한 자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일 테다.
‘서재욱 총리가 사라지면 그다음 주자가 그가 될 것이란 걸 말이지.’
전생에는 총리가 죽고 난 이후에나 마물전담팀이 꾸려졌다.
어쩌면 박효주는 자신의 아버지가 그를 죽였을지 모른다는 의심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에 대한 죄책감으로 더 열심히 마물을 사냥한 것일지도 모르지.’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단지 남궁은 박효주의 마음을 떠보기 위해 수를 던진 것뿐.
“이길 수 없는 적은 없어.”
남궁은 그런 그녀를 향해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내가 약한 것뿐이지.”
“…….”
“답은 이미 총리에게도 말했다. 지키고자 한다면 나부터 강해져야 한다고.”
“하지만 혼자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잖습니까.”
“평범한 세계였다면 그렇지.”
“……네?”
“지금은 우리가 알고 있던 상식이 통용되는 세계가 아니야. 개인이 생각보다 많은 것을 할 수 있지. 개미 떼가 코끼리를 이길 수 없듯이 더 이상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야.”
남궁은 그녀에게 말했다.
“당신도 마찬가지야. 조금 전에 단검을 다루던 방법. 평범한 게 아닐 텐데. 1번째 지옥문이 끝난 뒤에 빠른 사람들은 자신의 자질을 깨닫게 돼.”
움찔-
그녀는 자신을 꿰뚫어 본 남궁의 말에 가볍게 어깨가 떨렸다.
“염동력(念動力). 맞지?”
“……정확하시네요.”
“하지만 자질을 깨우친다고 해서 모두가 강해지는 건 아니지. 방법이 궁금하다면 오늘 저녁 마장동으로 와라.”
“……마장동?”
어느새 창밖으로 동이 트고 있었다.
“거긴 서울에서 가장 특이한 곳이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은 마물들조차 두려워하는 유일한 장소가 될 거야.”
“그게 무슨…….”
“서울에서 칼을 제일 잘 다루는 사람은 국정원도 특수부대도 아냐.”
잠도 자지 못한 채 아침을 맞이했지만 남궁은 어쩐지 피곤한 느낌을 받지 않았다.
남궁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바라봤다.
‘지금쯤이면 그자도 자신의 자질을 깨우쳤을 테니…… 박효주에게 그를 만나게 해주는 것이 좋겠지.’
마물의 사냥부터 해체까지.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마장동 축산시장의 발골 기술자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연합은 그 어떤 클랜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하고 패도적인 세력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이끌었던 한 사람이 있다.
“마장동 축산조합 회장 장길수.”
사람들은 그를 이렇게 불렀다.
폭식왕(暴食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