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화 (31/270)

31화

“……빌어먹을!!!”

알렉 트라만은 있는 힘껏 별해검을 휘젓고 있었다.

부우우웅---!!

그의 검이 공기를 가를 때마다 촤아악! 하고 핏물이 사방으로 터졌다.

“헉…… 헉…… 헉……!!”

숨을 쉴 때마다 폐를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질 만큼 그는 자신의 몸을 혹사 키고 있었다.

“젠장!! 젠장…… 젠장!!!”

그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면서도 계속해서 싸웠다.

퉁-! 퉁-! 투두두둥--!!

상공에 떠 있는 2번째 지옥문에서 마치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마물들이 한강 아래로 떨어졌다.

[슈욱……! 슈우욱……!!]

놈들은 한강을 건너 육지를 향해 계속해서 건너오고 있었다.

“제길, 순식간에 퇴로가 막히다니…….”

“도대체 이놈들은 또 뭐야?! 그 전에 나타났던 놈들과는 차원이 달라!”

건물에서 나온 한슨과 요한나나 역시 이미 도로를 빼곡하게 채운 마물들에 그들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누가 상상이라도 했겠는가.

자신의 나라도 아닌 먼 타국에서 이렇게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을 줄이야.

“크아아아!!!”

콰강---! 콰가가강--!!

알렉의 검이 바닥을 내려쳤고 마치 파도 갈라지는 것처럼 아스팔트가 검을 중심으로 V자로 부서졌다.

“……달려!!”

그야말로 엄청난 위력이 아닐 수 없었다.

그의 외침에 나머지 두 사람은 제빨리 몸을 날렸다. 하지만 순식간에 밀려드는 마물에 그들의 진격은 속도가 붙지 않았다.

“알렉 트라만?”

쓰러져 있는 이고르를 부축해서 간신히 1층으로 내려 온 명훈은 지친 듯 숨을 토해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저 정도 맴버로도 고작 도로를 빠져나가는 정도인가…….”

이미 빠져나갔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세 사람이 가시권에 있는 걸 보고는 명훈은 지금 나타난 마물이 일전에 싸웠던 고블린과는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콰가가가강……!!

요란한 폭음과 함께 알렉이 검을 가로로 긋자 검신의 길이가 장대처럼 길어지더니 그를 포위 하고 있던 마물들의 허리를 단박에 갈라 버렸다.

타다닷……! 타닷……!

마물의 피가 허공에서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전에 그는 질주하듯 달리며 또 다른 마물을 사냥했다.

한슨과 요한나의 실력도 대단하지만 솔직히 그의 앞에서는 빛을 발하지 못했다.

“저 검도 대단하지만…… 과연 SLS부대 출신답군. 아니, 단순히 훈련을 받아서 가능한 게 아냐.”

명훈은 알렉의 전투를 바라보며 말했다.

“처음에는 어설펐는데 자세가 갖춰지고 있어.”

“칫…… 됐습니다. 제 눈엔 그래도 형님의 검술이 더 대단하십니다.”

호준이 명훈의 말에 콧방귀를 뀌었다.

빠진 팔을 욱여넣어 보려고 노력했지만 잘 안 되는 듯 신음만 뱉어낼 뿐이었다.

우드득-!

“컥!”

보다 못한 명훈이 호준의 팔을 잡아 그대로 어깨 뼈 안으로 밀어 넣었다.

“아마도 검이 그의 전문(專門)이 아니기 때문일 거야.”

고통에 신음을 뱉어내는 호준을 뒤로하고 명훈은 알렉의 검술에 대해 말했다.

검을 수련했던 그였기에 단박에 알렉의 실력을 간파할 수 있었다.

‘이런 장검을 실전에서 쓰지는 않을 테니까. 스텝이 가벼운 걸 봐서는 좀 더 가벼운 무기 쪽인 것 같은데…….’

특별히 따로 수련을 한 것이 아니라면 과연 그가 장검을 잡은 경력은 얼마나 될까.

‘남궁 형님의 말대로라면 계시자가 된 이후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기껏해야 며칠.’

그 전에 경험이 있을 수는 있지만 크게 시간을 투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저 정도의 습득력이라면…….’

그야말로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엄청난 속도가 아닐 수 없었다.

‘다음에 만나면 분명 지금보다 더 큰 걸림돌이 될 것이 분명하다.’

명훈은 알렉을 주시하며 생각했다.

‘지금 당장 죽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저 괴물 같은 검을 상대 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겠지.’

그는 알렉의 공격을 막고서 아직도 저릿한 팔에 힘을 주며 생각했다.

남궁에게 빌렸던 검도 다시 돌려 준 지금 알렉을 상대한다는 것은 욕심이었다.

‘더 강해져야 한다.’

서걱-!!

새하얀 냉기를 뿜어내는 그의 검이 리자드맨의 목을 꿰뚫었다.

쩌저저적……!!

순식간에 얼어붙은 마물의 가슴을 있는 힘껏 발로 차자 얼음덩이가 산산조각 나며 부서졌다.

‘놈이 형님에게 다가가지 못하도록.’

▶ 3헤드가 적립되었습니다.

명훈은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쿠그그그그……!!

2번째 지옥문에서 나타난 마물의 개체는 도마뱀의 형상을 하고서 이족보행을 하는 리자드맨들이었다.

[캭! 캬악!!!]

엉성한 무기를 들고 싸우던 고블린과 달리, 놈들이 쥔 3개의 날이 돋아 있는 창은 제법 완성도가 있는 것들이었다.

‘고블린이 끝이 아니었어. 시간이 지날수록 저 빌어먹을 문에서 나오는 마물도 더 강해지는 건가.’

그만큼 얻을 수 있는 헤드의 수가 늘긴 했다.

처음 고블린을 잡을 때만 하더라도 1헤드밖에 주지 않았지만 지금은 3헤드.

던전 보상이나 월드 보스 사냥 때문에 적어 보였지만 사실상 3배나 오른 것이었다.

‘이것은 결코 호재가 아니다.’

그는 리자드맨의 공격을 피하면서 생각했다.

획득할 수 있는 헤드가 높아진다는 건 그만큼 더 위험하다는 의미였으니까.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마물들을 상대해야 하는 걸까…….’

부상을 당해 쓰러져 있는 이고르와 톤파를 잃은 것도 모자라 한쪽 팔이 탈골되어 제대로 싸우지 못하는 호준을 보며 그는 빠득- 하고 이를 갈았다.

[크르르륵……!!]

그의 분노처럼 손에 쥔 【백천강검】이 새하얗게 빛났다.

퍼억!!!

검이 리자드맨의 몸통을 찌르는 순간 새하얀 얼음가루들이 사방으로 터졌다.

하지만 생각이 너무 많았던 걸까. 명훈은 그만 뒤를 놓치고 말았다.

[……캬악!!!]

“형님, 조심하십시오!!!”

호준의 외침에 황급히 몸을 돌리려 했지만 그의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리자드맨의 창을 피할 수 없었다.

“……큭?!”

알렉을 비롯한 세 사람은 명훈의 위기를 바라봤다.

슉-!! 슈슉--!!

하지만 그 순간 날아오는 화살들.

명훈의 뒤를 노리던 리자드맨의 머리를 화살들이 뚫어버렸다.

“아저씨!!”

그 순간 맞은편 빌딩숲 사이로 경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타다다다닥……!!

리자드맨을 뚫고 길을 열던 그가 갑자기 방향을 틀었다.

“저기다.”

알렉의 말에 한슨과 요한나는 각자 흩어지며 마물들을 피해 몸을 숨겼다.

“……조심해!!”

경인이 있는 건물로 질주하는 알렉을 본 명훈이 소리쳤다.

“어딜.”

경인이 황급히 내려가려 건물의 옥상문을 열려는 순간, 놀랍게도 알렉의 검이 그가 있던 건물 자체를 베어 버렸다.

쿠그그그그……!!

사선으로 잘린 건물은 마치 미끄러지듯 부서져 내렸고 그 위에 있던 경인이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으, 으악?!”

옥상의 난간을 잡은 채 무너지는 건물 위에서 경인이 비명을 질렀다.

“날 방해한 놈이 네놈이로구나. 활솜씨는 굉장해도 신체 능력은 대단찮은가 보지?”

건물의 외벽을 한달음에 올라간 알렉이 경인의 앞에 나타나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멈춰!!!”

명훈이 황급히 그를 막으려 달렸지만 백여 미터가 넘게 떨어진 거리에는 이미 리자드맨들이 가득했다.

퍼억--!!

콰가가강---!!

경인이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명훈은 마물을 베고 또 베었지만, 그가 마물을 죽이는 속도보다 한강을 건너오는 리자드맨들의 수가 훨씬 더 많았다.

“젠장!!!”

생각지 못한 알렉의 급습에 명훈이 소리쳤다. 하지만 안간힘을 써도 오히려 밀려드는 마물에 점차 더 뒤로 밀려날 뿐.

“……감히 날 물 먹여? 내가 이대로 그냥 빈손으로 돌아갈 것 같아?”

츠즉…… 츠즈즈즉…….

그 순간, 별해검의 검날에 날카로운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뇌전이 검날을 감싸고 검신은 새하얗게 불타올랐다.

‘저, 저게 뭐지? 오러? 플라즈마……?’

경인은 마치 소설 속에나 나올 법한 광경에 넋을 잃고 바라봤다.

“신기할 것도 없어. 명훈이의 검은 얼어붙고 네 화살은 수백 미터 떨어진 목표도 맞히지.”

그때였다.

“이미 우리는 인외(人外)의 삶을 살고 있다.”

경인의 뒤에서 들려오는 나지막한 목소리.

“흐아아아!!”

알렉의 검이 그의 머리에 내리꽂히기 바로 직전,

카앙--!!

경쾌한 쇠의 마찰음과 함께 별해검이 경인의 머리 바로 위에서 멈추었다.

카득…… 카드드득……!!

알렉이 검을 쥔 손을 있는 힘껏 아래로 내렸지만 더 이상 검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검과는 반대로 칠흑과도 같은 검은 흑날이 그를 막아섰기 때문.

“너…….”

알렉은 그 검이 조금 전 명훈이 쓰던 것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그리고 지금 자신의 앞에 선 자가, 바로 이 검의 진짜 주인이라는 것도.

“아니, 그래. 네놈이구나. 저 새끼들의 뒤에 있던 자가 말이야.”

“생각보다 일찍 만났지?”

“그래. 내 생각보다 일찍 널 죽일 수 있게 되었군.”

콰아아앙---!!

알렉이 자신을 막고 있는 남궁의 검을 부수기라도 하려는 듯 다시 한 번 있는 힘껏 검을 내려쳤다.

캉! 캉! 카강--!!

수차례 이어지는 검격(劍擊).

하지만 폭풍처럼 쏟아지던 알렉의 공격도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

“…….”

어느 순간 3자루의 회색 날이 그의 목을 겨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아니다. 소환수? 아냐. 조금 달라…….’

알렉은 영혼 병사들을 바라보며 남궁의 내력을 알아내기 위해 생각했다.

“이제 좀 진정하지?”

“믿는 잔재주가 있긴 한가 보군. 신기한 걸 부리는 모양인데. 고작 이걸로 나를 죽일 수 있을 것 같아?”

“죽이긴 힘들어도 막을 순 있겠지. 아직 마물들이 잔뜩 남아 있다. 우리끼리 싸워봐야 시체만 하나 더 늘릴 뿐이니까.”

“그래. 시체는 하나지. 난 그 시체 위에 서 있을 테고.”

부우우웅---!!

알렉이 검을 그었다.

날카로운 풍압에 영혼 병사들이 튕겨 나갔다.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군. 너무 서운해하지는 마. 그래도 빈손으로 돌아가게 하지는 않을 테니까.”

다른 사람들은 압도적인 알렉의 위력 앞에 오금이 저릴 지경이었지만, 오히려 남궁은 그의 건재함에 오히려 기쁜 듯한 얼굴이었다.

“……뭐?”

그의 말에 알렉은 인상을 찡그렸다.

알아들을 리 없는 말에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본 순간, 알렉의 머리 위로 알림이 울렸다.

“일부러 널 위해서 여기까지 가지고 왔으니까.”

남궁은 품 안에서 뭔가를 꺼냈다.

알렉이 순간 경계하듯 뒤로 물러났지만, 남궁의 손에는 무기가 아닌 부러진 역린의 조각이 들려 있을 뿐이었다.

콰직-!!

남궁이 역린의 조각에 박혀 반짝거리는 핵을 있는 힘껏 부쉈다.

▶ 써펀트를 처치하였습니다!

▶ 반경 150m 내에 있는 모든 참가자에게 보상(기본)이 수여됩니다.

▶ 반경 50m 내에 있는 모든 참가자에게 보상(참가)이 수여됩니다.

그리고 새하얀 빛과 함께 알렉의 앞에 보상 상자들이 나타났다.

고블린 로드 때와 같은 나무 상자와 철 상자였다.

“……날 위해서라고? 웃기지 마.”

알렉은 그 상자들을 신경질적으로 걷어차며 말했다.

“이곳에 있는 네 수하들에게 보상을 먹이기 위해서 가지고 온 것뿐이잖아.”

“과연. 제법 머리가 굴러가는 녀석이라니까.”

남궁은 자신의 발밑으로 굴러온 상자를 집어 들었다.

“……!!”

그가 다시 자신에게 상자를 던지자 알렉은 그것을 받아 들며 인상을 찡그렸다.

“그럼 이제 눈치챘을 텐데? 네가 뭘 해야 할지 말이야.”

남궁은 하늘을 가리키며 그를 향해 말했다.

“차비 챙겨줄 때 조용히 받고 꺼져.”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