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자, 잠깐…… 전설급 자질?”
남궁은 넋이 나간 얼굴로 눈앞에 나타난 알림과 함께 자신의 딸을 번갈아 가며 바라봤다.
‘소민이에게 마력의 자질이 있다……?’
몰랐던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옥문이 열린 직후 딸을 잃었으니까.
‘단순히 우연이라고 할 수는 없어.’
남궁은 25년 동안 계시자들을 제외하고 전설급의 자질을 가진 자를 본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
하지만 놀라움과 기쁨도 잠시 그는 심란한 얼굴로 딸을 바라보며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아무리 뛰어난 자질이라 한들 제대로 갈고닦지 않으면 무의미했다.
“결국 저 어린 손에 피를 묻혀야 하는 건가…….”
“형님. 원치 않으신다면 소민이에게 마력을 배우게 하실 필욘 없습니다. 솔직히 괴물들을 상대하는 거…… 어른들인 저희도 버거운 일이잖습니까.”
남궁의 탄식에 명훈이 말했다.
“뭐가 어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세상이 지옥으로 변해도 아이들은 저희보다 행복하게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좋은 것만 보게 해줄 순 없어도, 나쁜 것을 조금이나마 피하게 하는 게 어른의 몫일 테니까요.”
그는 사람 좋은 얼굴로 웃었다.
이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웃을 수 있는 게 아마 최명훈이 가진 가장 큰 무기일 것이다.
“하지만 만약에 소민이가 원한다면, 힘을 갖는 것도 틀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형님 말씀대로 이제 정말 지옥 같은 세상이 벌어지는 거라면…… 적어도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니까요.”
“그래…… 틀린 말은 아니지.”
“살고 싶지만 약해서 죽는 사람들이 수두룩할 겁니다. 어쩌면 신이 주신 기회일지도 모르죠.”
“신이라…… 네 말대로 그놈들은 정말 기회를 놓치지 않는구나. 끊임없이 인간을 시험에 들게 해.”
남궁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우웅…… 아빠?”
잠에서 깨어난 아이를 보며 남궁은 선뜻 손을 내밀지 못했다. 그의 손이 마물의 피로 얼룩져 있었기 때문이다.
“소민아!!”
“어? 아저씨?”
그 순간 명훈이 먼저 딸의 이름을 부르며 인사했다.
“우리 소민이. 못 본 사이에 이렇게나 컸어? 이제 조금 더 있으면 아저씨만큼 크겠다. ……응?”
하지만 명훈은 말을 다 잇지 못했다.
소민이 대뜸 자신의 소매로 명훔의 뺨에 묻은 피를 닦았기 때문이다.
“아저씨, 다친 덴 없어?”
“하하……. 그럼, 아저씬 멀쩡하지. 너야 말로 괜찮니?”
“네. 저도 괜찮아요. 그런데…….”
폐허처럼 부서진 건물들.
주위에 너부러진 마물의 시체들까지.
기절한 사이에 주변의 풍경이 너무나도 달라져 있었다. 좀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소민이 앞으로 나설 때였다.
“보지 마.”
단호한 음성과 함께 코트 자락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고개를 들자 남궁이 무뚝뚝한 얼굴로 서 있었다.
코트 자락으로 가려진 시체들 중에는 인간의 것도 있었다. 개중에 온전하게 죽은 자는 손에 꼽을 지경이었다.
그런 참담한 광경을 굳이 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런 남궁의 뜻을 이해했는지 소민은 그대로 그의 품 안을 파고 들었다.
따스한 온기와 함께 작은 떨림마저 고스란히 느껴지자 남궁은 묵묵히 소민의 어깨를 감쌌다.
남궁은 파르르 떠는 딸아이를 꼭 껴안아주었다.
“엄마!! 엄마!!!!”
그때였다.
“으아아아앙!!!”
“……어?”
어디선가 들려오는 남자아이의 울음소리에 세 사람은 고개를 돌렸다.
“흐아…… 흐아아앙.”
고블린의 박도가 절반 정도 옆구리의 박힌 채 쓰러진 엄마를 부둥켜안고 울고 있는 아이였다.
“어, 엄마가…… 엄마가…… 괴물들에게…….”
아이는 울먹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겁에 질려 떨던 소민은 주저앉아 있는 어린 소년에게 다가갔다.
꽈악–
그리고 남궁이 했던 것처럼 그 아이를 보듬었다.
“…울어도 돼.”
“흐, 흐흑…… 흑…….”
파르르 떨렸던 두 손은 언제 그랬냐는 듯 용기를 내어 자신보다 더 슬퍼하는 아이를 감싸고 있었다.
“우리 엄마도 하늘나라에 계셔. 운다고 바뀌는 건 없지만…… 그래도 조금은 나아지니까.”
자신의 경험담일까.
또래답지 않은 딸의 말에 남궁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으아앙! 엄마!!!”
“소민이는 잘 해낼 겁니다.”
명훈은 그런 소민의 모습을 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형수를 닮은 거겠지.”
그때였다.
‘설마……?’
그때, 남궁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딸의 마력이 어쩌면 자신의 아내와 연관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수아의 죽음…… 현실 의학으로는 병명조차 찾아낼 수 없었던 것이었지만, 지옥문이 열리고 난 뒤엔 오히려 그녀와 비슷한 증상을 보인 자들이 있었어.’
그리고 그것은 하나같이 마력에 의한 것이었다는 걸, 그는 떠올렸다.
“에이, 강단이라고 하면 711부대의 남 대위님을 빼놓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생각에 빠진 남궁의 옆구리를 명훈이 쿡 찔렀다.
“난 약해. 그러니까 두려워 한 것이겠지. 내가 고통스러웠으니까. 처음부터 벽을 치고 아이를 가두려고 했어.”
잠시 고민은 접어두고 남궁은 현실로 돌아와 대답했다.
“당연한 것 아닙니까. 아버지니까요. 저야 처자식도 없고 부모님도 안 계신 고아지만 그래도 형님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됩니다.”
남궁은 그의 말에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다.”
그렇게 소민의 품 안에서 서럽게 울던 아이는 울다 지친 듯 이내 잠들어 버렸다.
소민이 잠든 아이를 한쪽에 조심히 눕힌 뒤 남궁에게 말했다.
“아빠. 쟤도 우리랑 같이 가면 안 돼?”
“아빠도 그러고 싶지만 그러기는 힘들어. 왜인지는 소민이도 알지?”
“응…….”
소민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에 젖은 강아지처럼 축 처진 그녀의 모습에 남궁은 괜히 가슴이 아려왔다.
차라리 되도 않은 억지를 부렸다면 크게 혼이라도 낼 텐데, 그러지 않고 알아서 체념하는 딸의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짐덩이나 다름없는 아이를 데리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
남궁의 머리가 복잡해져 갈 때였다.
[거봐라. 내가 뭐라 했느냐. 스스로 족쇄를 차게 될 것이라고 했지? 사(死)를 조종하는 자가 생(生)의 길을 가려는 것이 가당키나 한 소리냔 말이다.]
그때였다.
남궁의 앞에 공간이 일그러졌다.
“……요르?”
[잘도 이런 짓을 했구나. 문이 열린 첫날에 고블린 로드를 잡아 버리다니…… 계획대로라면 자정이 되기 전에 성채가 지어져서 도시 전체에 고블린들이 생성돼야 하는데…….]
툭- 툭-
아공간에서 나타난 요르는 고블린 로드의 시체를 발로 차면서 말했다.
“……위상이 이런 식으로 개입해도 괜찮나?”
[네가 활약한 덕분이지. 로드가 죽는 바람에 더 이상 고블린들이 만들어지지 않게 되었거든.]
“그게 뭐가 문제지? 내가 활약 할수록 네게 좋은 것 아닌가?”
[그럼. 그럼. 네가 발악해 줄수록 나머지 녀석들보다 내 점수가 올라가니까. 상관없어. 어차피 문은 계속 열린다.]
요르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
하지만 남궁은 그의 마지막 말에 살짝 얼굴이 굳어졌다.
결국은 모두가 죽을 때까지 이 지옥과도 같은 짓이 반복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다만…… 예정된 계획보다 너무 많은 인간이 살아남았다는 게 문제지.]
“뭐?”
[그래서 지금 위상들이 난리가 났다고. 낄낄.]
갑작스러운 그의 등장에 명훈과 소민은 깜짝 놀란 듯 뒤로 살짝 물러섰다.
“계획이 실패한 것치고는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실패라니. 그건 나머지 위상들이나 그렇게 생각하지. 난 전혀 다른걸. 명백한 내 계시자의 활약이지, 다. 안 그래?]
“칭찬을 하러 온 것 같진 않고. 무슨 꿍꿍인지 본론만 말해.”
[위상들이 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런 건 처음부터 예상했던 일이잖아? 앞으로도 수십 번 너희들의 계획을 뒤집어 놓을 거야. 이제 시작인데 설마 벌써 쫀 건 아니겠지.”
[크, 크큭…… 미친놈. 하여간 말하는 거 하나는 마음에 든다니까.]
요르는 남궁의 대답에 배를 움켜잡고 웃었다.
[위상들이 이의를 제기했다. 이곳의 영령들을 사령술로 흡수하다니…… 솔직히 나는 기가 막히다 생각했는데 말이야. 하여간 속이 좁아서는…….]
“딱히 이의를 받을 일은 없는 것 같은데. 사령술로 사령을 부린다. 뭐가 문제지?”
[카니발이 열리기 전에 죽은 자들이니까.]
“별 시답잖은 소리 하고 있네. 입이 심심하면 가서 엿이나 먹으라고 해.”
[말본새하고는…… 그들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다. 모든 시작은 카니발의 시작을 기점으로 해야 하니까.]
“어째서?”
[생각해 봐라. 만약 네가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단순히 인간의 영혼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까지 써버릴 수 있잖아.]
요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령 올림푸스라든지 발할라의 신족들 말이다. 우리보다 낮은 단계의 위상들이지만 어쨌든 제법 쓸 만한 힘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이지. 그들까지 끌어들인다면 균형이 맞지 않아.]
“그래서?”
오히려 이런 상황을 예상했다는 듯 그는 냉소를 지으며 상공을 바라봤다.
“너희들은 그냥 앉아 우리를 내려다보는 것뿐이겠지만 이쪽은 목숨을 걸고 있다. 쓸 수 있는 힘이 있는데 쓰지 말라고? 웃기는 소리.”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을 나머지 일곱에게 향하는 말이었다.
“내 위상이라면 내게 규율을 강요하기 전에 나를 보호할 생각부터 해라. 요르.”
[끄응…… 그렇게 나올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네게 타협점을 제시하러 온 거다.]
“그게 뭔데?”
[간단해. 등가교환(等價交換). 목숨은 목숨으로. 너는 이미 수 명의 영령의 힘을 흡수했지. 충분히 다른 위상들의 반발이 있을 수 있어. 하지만 우리가 놓친 실수도 있으니…….]
요르는 그를 향해 말했다.
[단 한 명의 목숨을 거두는 것으로 이번 일을 끝내고자 한다.]
“……뭐?”
[걱정 마라. 너와는 일면식도 없는 자도 되니까. 그래, 저 아이 어떠냐.]
그는 소민의 뒤에 서 있는 아이를 가리켰다.
[너도 저 아이를 두고 갈 생각이었잖아. 발목을 잡을 거라면 차라리 잘라내는 게 낫지. 냉정한 결단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누구보다 네가 잘 알 테고.]
요르가 씨익 웃었다.
뱀의 혓바닥같이 길고 가는 혀가 그의 입술을 핥았다.
“넌 뭐야!!”
명훈이 다급히 검을 들어 요르의 앞을 가로 막았다.
하지만 그 순간 그의 검보다 더 빠르게 요르의 등 뒤에서 피어 오른 검은 연기가 뱀의 형상이 되어 명훈의 팔과 다리를 옭아맸다.
“명훈아!!!”
[건방진…… 감히 위상의 앞을 가로막아?]
오싹–
그 순간 요르의 한마디에 일대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크윽……!!!”
명훈은 서서히 조여오는 뱀의 힘에 고통에 찬 비명을 터뜨렸다.
“그만둬!!!”
[취익!! 취익!!!!]
남궁이 그를 막으려 했지만 요르의 나머지 뱀들이 혀를 내밀며 그를 경계했다.
[말이면 말답게 행동해라. 주인에게 덤비는 건 썩 보기 좋지 않으니. 건방진 것도 받아주는 선에서 놀아야지.]
“너……!!”
[받아가마.]
요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뱀들이 소민의 품에 있는 아이를 향해 달려들었다. 두 아이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그저 서로 끌어안으며 눈을 꼭 감았다.
“……안 돼!!!!”
남궁의 비명이 들렸다.
있는 힘껏 팔을 뻗었지만 아이들에게 닿기엔 너무 멀었다.
잔혹하게도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기분.
뱀들이 그들을 에워싸는 것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였다.
‘이렇게 또……!’
그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화아아악--!!!
그때였다.
거대한 입들이 그들을 집어삼키려는 순간,
놀랍게도 남궁의 손에 들려 있던 보옥이 불꽃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 미약한 영혼이 당신을 다독입니다.
“……어?”
그때였다.
남궁은 자신의 품에서 흘러나오는 영혼을 느낄 수 있었다.
“……수아?”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손을 뻗었지만 이미 그 영혼은 불꽃에 휩싸인 소민을 감싸고 있었다.
“자, 잠깐!!”
▶ 영령이 남소민의 각성에 영향을 끼칩니다.
▶ 마력의 본질이 변화합니다.
▶ 마력이 영력으로 인해 더 짙어집니다.
▶ 마력 → 사상마력
“……!!!!”
솨아아악……!!!!
소민을 감싸던 불꽃이 화려한 오색빛으로 변화하더니, 순식간에 그대로 빨려 들어가듯 그녀의 몸 안으로 흡수되었다.
콰직……!! 콰지지지직……!!
그리고, 그녀의 양손에 각각 푸른 뇌전과 붉은 화염이 엉켜 붙기 시작했다.
▶ 능력치 : 사상마력을 습득하였습니다.
▶ 사상술(초급)을 익혔습니다.
콰가가가강–––!!!!!
그 순간, 보란 듯이 불꽃이 요르를 향해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