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8화
재재계약은 작년 여름부터 오가던 주제였다. 데뷔 6년 차가 되었지만, 여전히 화력이 사그라들지 않는 크리드를 보며, 각 소속사에서도 크리드를 유지하는 것에 긍정적인 시그널을 보냈다.
역시나 VM 소속인 강도현이 가장 아슬아슬했지만, 강도현은 크리드 활동을 조건으로 VM과의 재계약을 약속했다. VM 역시 포커스 이후 준비한 신인 그룹이 기대보다 더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굳이 강도현을 중간 투입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더 이상 그룹에 강도현을 투입하는 것보다 크리드로 유지시키는 것이 VM 입장에서도 더 현명한 선택이었겠지.
무엇보다, 코어 엔터테인먼트가 윤빈 형과 박재봉의 소속사를 인수한 것이 큰 역할을 했다. 비록 소속은 원소속사로 되어 있지만, 실질적인 매니지먼트권은 코어의 손에 들어온 것이다. 실질적으로 유현이 형과 강도현만 코어 밖의 소속이 되면서 크리드의 재재계약은 더욱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었다.
재재계약을 체결한 날,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콘서트 연습을 했다. 처음 재계약을 했을 때보다는 차분한 분위기였다.
“완전 여름이야.”
“맞아. 우리 너무 더울 때 데뷔했어-”
“그래서 좋지 않아요?”
“맞아. 추울 때 데뷔한 것보단 나은 듯?”
“팬들한테는 어떻게 전할까요?”
“우리, 서프라이즈로 발표할까?”
장난기 가득한 선우 형의 눈에, 멤버들은 잠시 멈칫했다.
‘저 형 머릿속에 또 무슨 괴상한 아이디어가 있을지…….’
“말해 봐.”
“콘서트에서 최초 공개 하는 거야!”
“그럼, 해체 콘서트인 줄 알고 왔는데 재계약 소식을 듣는 거야?”
“재밌을 거 같지 않아?”
“클로버 너무 놀라는 거 아니야?”
역시나 생각도 못 한 발상이었다. 하지만, 이런 선우 형의 의견이 의외로 회사 사람들과, 멤버들에게 먹혀들어 갔다. 콘서트 연습 기간 동안 재재계약 소식이 밖으로 퍼지지 않도록, 멤버들도 극도로 입조심을 했고 회사 내에서도 그 어느 때보다 철저하게 비밀을 지켰다.
콘서트 전날, 오랜만에 거실에서 단체로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 중대한 발표를 하는 날이니 꼭 멤버들과 함께 자야겠다는 박재봉의 끈질긴 부탁 때문이었다.
“아오, 박재봉 다 큰 줄 알았는데 아직도 애였네-”
“재봉이가 이제 스물셋인가?”
“그, 그래도 저 막내잖아요!”
“얘 진짜 웃기다니까? 스무 살 전에는 그~렇게 애 취급하지 말라고 형한테도 말대꾸하던 놈이었는데-”
“형은 잠이나 자요!”
박재봉이 깐족거리는 강도현의 눈에 강제로 안대를 씌웠다. 지운이 형이 불을 끄자, 거실은 금세 깜깜해졌다.
“지난 7년 동안 정말 수고 많았고-”
“아, 뭐예요! 이러니까 진짜 끝나는 거 같잖아요!”
“뭐라는 거야, 앞으로도 잘해 보자고 하려는 건데?”
“유현이 형은 사람이 너무 진지하다니까?”
“네가 너무 가볍다고는 생각 안 하니, 선우야-”
“그래서 크리드가 이렇게 균형 잡힌 그룹이 된 거잖아요~”
선우 형의 능글맞은 대답에 유현이 형이 작게 헛웃음을 터트렸다. 잠시 정적이 오가고, 나는 넌지시 말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유현이 형.”
“맞아요. 형이 앞으로 몇 년… 아니 적어도 10년은 더 고생해 줘야 할 것 같아요!”
“어차피 나도 이제 너희 없으면 지루할 거 같다.”
“네?”
“…진심이에요?”
믿을 수 없다는 멤버들의 반응에 유현이 형은 귀에 이어폰을 꽂고 냅다 눈을 감았다.
“대박, 박재봉 이거 못 들어서 어떻게 하냐?”
“아싸, 이걸로 박재봉 놀려야지-”
“아무래도 강도현이 들어야 했던 철, 문승빈이 다 가져간 거 같지?”
“형이 할 말은 아니거든요?”
한참을 투닥거렸을까, 박재봉이 뒤척이는 소리가 들렸다. 서로 유치한 말싸움을 하던 두 명과 함께, 나와 지운이 형, 윤빈 형까지 숨을 죽였다.
“얘들아, 이제 자자. 내일 일찍 일어나야지.”
“응.”
“넵.”
이미 스물셋이나 되었지만, 여전히 잠귀 밝은 막내일 뿐이다. 그리고 우린 잠귀 밝은 애가 깰까 봐 여전히 전전긍긍하는 형들이었고.
눈을 감아도 쉽사리 잠이 들 수 없었다. 우리의 7년이 마무리됨과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콘서트인 만큼 부담감도 컸다. 지난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잠이 안 와?”
“형도 안 자고 있었어요?”
“아닌 척했는데 긴장되긴 하나 봐.”
“내일 잘할 수 있겠죠?”
“당연하지. 난 널 믿어.”
언젠가 내가 형에게 말했었지, 스스로를 못 믿을 땐 자신을 믿어 주는 사람의 안목을 믿으라고. 형의 믿음을 확인했을 때, 비로소 편안히 잠이 들 수 있었다.
* * *
7년 동안 함께해서 즐거웠고, 앞으로 크리드와 클로버가 함께할 시간을 기대한다는 말을 분명 귀로 들었지만, 머리로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무슨 소리야? 재, 재계약한다는 거야?”
혜진은 방금 자신이 들은 내용을 믿기 힘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모두 이번 콘서트가 해체 콘서트라고 생각했으니까. 서바이벌로 만들어진 프로젝트 그룹에겐 한 번의 재계약만으로도 기적이기에, 아쉽지만 크리드와 멋지게 이별할 각오로 온 콘서트였다. 그런데 재재계약이라니?
“재계약이 아니고 이건 재재계약이잖아!”
“우리 클로버 연장된 거야?”
“해, 해체 안 한다는 소리지?”
“이런 X발… 왜 자꾸 나 울리냐고오오…….”
눈물을 흘리는 건 혜진뿐만이 아니었다. 옆자리 K 역시 믿기지 않는 듯 얼어 있다가 한순간에 눈물샘이 개방되고 말았다. 단체 메신저방 역시 불타고 있었다.
[수연: ㅅㅂㅅㅂㅅㅂㅅㅂㅅㅂㅅㅂㅅㅂㅅㅂ!!!!!!!!!!!!!!!]
[수연: 도현아!!!!!!!!!!!!!!!]
“아 씨, 오수연 때문에 눈물이 다 마르네.”
[정연: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크리드 뽀에버ㅠㅠㅠㅠㅠㅠㅠㅠ]
[정연: 우리 앞으로도 클로버다ㅠㅠㅠㅠㅠㅠ]
[래빗드림(초연): 언니들이랑 계속 덕질할수있어서 너무 좋아요ㅠㅠㅠㅠ]
주변에서는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된 듯,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런 팬들에게 다시 각인하듯, 승빈이 마이크를 들었다.
“우리 이러다가 진짜 디너쇼까지 가는 거 아니에요? 처음에는 5년이었는데, 7년으로 연장하고 이젠… 솔직히 한 10년은 더 할 생각으로 재계약한 거인데?”
“으아아아!”
“크리드 영원해!”
공연장의 열기는 걷잡을 수 없이 뜨거워졌다. 마지막 소감이 끝나고 실신하듯 울던 팬들은, 이제 안도의 눈물을 쏟아 냈다. 혜진 역시 마지막은 눈물로 보내지 말자고 다짐했지만, 화장이 다 번지도록 울고 난 후였다.
“그래서! 아직 남은 무대가 더 있다고요!”
“와아아아!”
“클로버, 너무 울어서 뛸 힘 없는 거 아니에요?”
“헉, 그럼 안 되는데?”
“아니야!”
“클로버, 더 놀 수 있죠?”
“응!”
“근데 윤빈 형이랑 선우 형도 거의 클로버랑 맞먹는데?”
“저 형들 너무 울어서 우리가 무대 못 하겠는데?”
혜진은 이렇게 한결같은 아이돌이 있을지, 다시금 자신의 안목에 감탄한다.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일곱 명이 처음 하나가 되었던 그 여름날 같았다.
“자! 그럼 마지막까지 달려 보자고요!”
파이팅 넘치는 강도현의 외침과 함께 반주가 흘러나왔고, 혜진은 그 어느 때보다 크게 함성을 질렀다.
[어쩌면 널 만나기 위해
난 태어난 건지도 몰라
세잎클로버처럼 마냥 행복을
때론 네잎클로버의 행운을]
앵콜곡은 팬 송 ‘클로버’였다. 문득, 지난 팬 미팅에서 진행한 팬들의 떼창 이벤트가 떠올랐다. 클로버와 크리드가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가장 잘 담은 곡이었다. 하늘에서는 클로버 모양 꽃가루가 떨어지고 있었다. 클로버가 머리 위로, 손바닥 위로 떨어진다.
[가끔은 두려워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지
한순간의 꿈은 아닐지
하지만 널 생각하면
한없이 강해지는 나야]
혜진은 클로버를 보며 다시금 행복감에 차올랐다. 행운이자, 행복. 크리드는 그 자체였다. 이제는 클로버를 크리드라 불러도 될 정도였다.
‘너희를 만나 정말 행운이었고, 행복했어.’
내가 놓으면 언제나 끊기는 관계라고 생각한 지난날들이 부질없이 느껴졌다. 이벤트 슬로건이 혜진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했다.
[우리는 언제나 서로를 놓지 않을 거야]
그래. 까짓것 한번 믿어 보려고 한다, 영원이라는 것을.
* * *
앵콜 송 ‘클로버’가 끝이 나고, 정말 콘서트의 마지막을 알릴 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여느 때와 다르게 멤버들의 눈에는 더 이상 아쉬움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 형식적으로라도 활동 종료 인사는 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안 돼에에에-”
“아이, 유현이 형이 괜한 말 해서 클로버들 울잖아!”
“미, 미안해요! 그래도 우리 앞으로 더 오래 볼 수 있잖아요!”
안절부절못하는 유현이 형에 눈물을 훔치던 팬들도 웃음이 터졌다. 하긴, 유현이 형이 몰이 당하는 건 정말 보기 드문 일이니까.
누가 먼저 말하지 않았지만, 어느새 서로의 손을 잡고 있었다. 이제는 눈만 봐도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볼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는 걸 확신했다. 서로 맞잡은 손에 믿음을 전한다. 모두의 마음이 나에게도 전해지는 듯하다. 우리가 함께할 때 가슴이 뛰지 않은 순간이 없었지. 영롱하게 반짝이는 팬라이트를 향해 힘차게 외쳤다.
“자, 마지막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 크리드였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고개 숙여 인사하자 팬들의 함성과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이별을 약속한 채로 시작된 우리의 만남은, 운명을 벗어나 영원을 향해 나아갈 첫 발걸음을 내딛었다.
“자, 단체 사진 찍을 시간이에요!”
“클로버들 울다가 웃네-”
“다들 눈물 뚝 그치고! 제일 멋진 포즈 지어 보자고요~”
찰칵 소리와 함께 폴라로이드 사진이 찍혔다. 진짜 엔딩곡이 흘러나오고 하늘에선 하얀 꽃가루가 눈처럼 쏟아진다. 반짝이는 눈으로 팬들을 바라보는 멤버들의 얼굴, 목이 터져라 노래를 따라 부르며 응원봉을 흔드는 팬들의 얼굴… 그 모든 것을 눈에 담고 보니, 어느새 사진이 서서히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언젠가 이 순간이 꿈처럼 느껴지는 날이 오겠지. 하지만, 걱정하지 않는다. 우리의 시간은 이 사진 속에 영원히 담겨 있을 테니까.
“승빈아!”
지운이 형이 멀리서 고개를 돌려 내 이름을 외친다. 세상 모든 행복을 담은 얼굴,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수많은 얼굴. 잠시 시간이 멈춘 듯 멍하니 서 있었다. 멍청하게 서 있는 나에게 멤버들이 달려온다. 내가 지켜 내고자 한 것들이 이곳에 다 있다.
나를 품에 안은 지운이 형, 어깨동무를 하는 강도현, 어깨에 얼굴을 걸치고는 애교스럽게 볼을 붙여 오는 박재봉, 양옆에서 안겨 오는 윤빈 형과 선우 형, 그리고 틈이 보이지 않자 조용히 머리 위로 손을 얹어 머리칼을 헝클어트리는 유현이 형.
“행복하지!”
지운이 형의 질문에 홀린 듯 답할 수밖에 없었다.
“응, 행복해. 그것도 아주 많이!”
행복하다는 말이 사방에서 터져 나온다.
“나도!”
“저도요, 형!”
“당연하지!”
“세상에서 제일 해피한 사람이 나일걸?”
“너희랑 함께해서 행복하지.”
우리들의 이야기는 이렇게 막을 내린다. 지금 이 순간이 우리를 사랑한 모든 이에게 잊지 못할 한 페이지로 기억되길. 우리는 언제나 이곳에 있을 것이다. 그리워질 때면 언제라도 펼쳐 볼 수 있는 책갈피를 남긴다. 함께 울고, 웃었던 지난 시간들이 당신에게도 위로가 되었길.
나의 시간을 함께해 준 모든 이에게 감사를 전하며, 나는 앞으로도 나의 세계를 지켜 나갈 것이다.
이제는 나 혼자가 아닌, 우리라는 이름으로.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