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342화 (342/346)

외전 4화

혜진은 시계를 보며 손톱을 깨물었다. 승빈의 음원 공개가 3분도 남지 않았다.

“아, 긴장돼 죽겠네… 어? 떴다!”

드디어 뮤직비디오가 공개되고, 혜진은 떨리는 마음으로 영상을 재생했다. 영상 시작부터 흑백 무성 영화에서 볼 법한 자막이 나오고, 카메라를 유심히 보다가 렌즈를 닦아 내는 승빈이 등장했다.

[안녕하세요?]

[아, 제 소개가 늦었군요?]

[우주를 여행하는 방랑자… 아니, 좀 더 멋있는 이름은 없을까요? 그래, 히치하이커랍니다!]

마치 B급 무성 영화를 보는 듯 삐걱거리는 느낌이 있지만, 그래서 더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연출이었다.

[지도 하나 없이 이 넓고 거대한 우주를 여행하는 건 완전히 미친 짓!]

땡그란 안경을 쓴 채 가슴팍에 엑스자를 긋는다. 고개를 세차게 도리도리, 괴팍한 역할도 잘 어울리는 승빈이었다.

[그래서 준비한 이 안내서! 이것만 있으면 당신도 문제없이 히치하이커의 삶을 살 수 있답니다! 뭐라고요? 못 믿겠다고요? 제가 그렇게 아마추어로 보이나요?]

“아, 귀여워!”

[흠… 그럼, 나와 함께 떠나 볼래요?]

승빈이 손을 내밀자, 화면이 잠시 암전이 되었다. 뒤이어 고장 난 주파수와 같은 화면이 보인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뮤직비디오가 시작됐다.

[You are my Universe

One & Only Universe

너란 우주 속 자유롭게 유영해]

“스타일링 미친…….”

처음 시도한 장발에 가까운 병지 머리였다. 거기다가 반묶음으로 묶은 머리가 묘하게 섹시한 느낌을 주었다. 금테 안경까지 착용하니 지적이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Love is so mystery

마치 은하수 한가운데를

두 발로 달려가는 기분

말로 설명 못 해 이 순간]

뮤직비디오는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었다. 화려한 영상미와 스토리, 승빈의 훌륭한 연기 실력까지 아쉬움이라곤 전혀 없는 영상이었다. 무엇보다 노래와 안무가 역대급이었다. 절도 있지만, 마냥 딱딱하지 않은 안무가 승빈의 춤 스타일과도 딱 맞았다.

“맞다, 진입 순위!”

당연히 좋은 성적을 얻을 거란 데에는 의심이 없었지만, 굳이 차지운과 비교하며 걱정하는 척 내려치는 어그로들이 있었기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대박.”

하지만 걱정은 기우였다. 타이틀곡부터 수록곡까지 완전히 차트 올킬, 1위부터 6위까지 줄 세우기를 했으니까.

타이틀곡 1위 진입과 전곡 차트 진입은 예상할 수 있었지만, 수록곡까지 상위권 줄 세우기를 할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다.

[ㅁㅊ승빈이 현재 30만장 터짐ㄷㄷ]

지금 1시간 동안 기록이 30만인데 이번에 초동 진심 100만 넘는 거 아님?

-솔로로 초동 100만이면 어느 정도인거임?

└루커스 멤버 솔로 초동이 80만이었음

└이런 ㅁㅊ

[전곡이 1~6위로 진입할 수 있는 거임?]

케이팝 쌉고인물인데 이런거 ㅈㄴ처음봄ㅋㅋㅋㅋㅋㅋㅋㅋ

-문승빈 폼 미쳤네

-진심 전곡 차트인만 해도 미친건뎈ㅋㅋㅋㅋ

“내 새끼가 기어코 역사를 쓰는구나…….”

승빈을 처음 본 날,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매번 최애를 잡을 때마다 ‘이 애는 특별해’라고 생각했지만, 승빈은 그중에서도 남달랐다. 앞으로 또 어떤 기록을 세울지, 상상만으로도 즐거웠다.

* * *

솔로 무대 사전 녹화는 처음이었다. 몇 번 스페셜 무대를 준비하면서 멤버들 없이 사전 녹화를 한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완전히 혼자 사전 녹화를 하는 것은 또 다른 긴장감을 주었다.

“승빈아!”

“클로버 안녕! 많이 기다렸죠~”

“아니야~”

하지만, 무대 뒤에서 긴장한 것이 무색하게 팬들 앞에 서니 긴장감이 눈 녹듯 사라졌다.

“이번 노래 어때요?”

“완전 좋아!”

“오늘 저 어때요? 멋져요?”

“예뻐!”

“예뻐요? 아싸, 성공했다! 제가 오늘 진짜 스타일링 잘해 달라고 신신당부했거든요. 첫방 사녹이니까~”

“최고야!”

“귀여워!”

내 말 한마디를 놓치지 않고 열성적으로 반응해 주는 팬들을 보니 절로 행복해졌다. 이래서 팬들과 마주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이 사람들만큼 나에게 집중하고, 궁금해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자~ 예쁜 승빈 군, 첫 번째 녹화 시작할게요~”

“아이, 자꾸 피디님 계신 걸 까먹고 애교를 부리게 되네요-”

피디와의 티키타카에 팬들이 까르르 웃는다. 이렇게 무장 해제가 될 수 있나? 조금 자제해야 하는 건가 싶기도 하다.

“왜요~ 나도 승빈 군 애교 봐서 기분 좋은데?”

“제가 민망해서 그래요!”

“네~ 예쁜데 민망한 승빈 군, 스탠바이하세요~”

역시 한마디도 지지 않는 피디님이다. 자리로 돌아가 준비 포즈를 취했다. 그저 포즈를 취했을 뿐인데 이곳저곳에서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화이팅!”

“귀여워!”

반주와 함께, 팬들의 응원법이 시작됐다. 인 이어를 뚫고 들릴 만큼 우렁찬 소리였다.

“유어 마이 유니버스 문!승!빈!”

[You are my Universe

One & Only Universe

너란 우주 속 자유롭게 유영해]

“유영해!”

박자에 맞게 들리는 응원법은 언제나 전율이 느껴질 만큼 쾌감을 준다. 전날 밤잠을 설쳐서 몸이 덜 풀렸을까 걱정했는데, 평소보다 더 안무가 잘 맞았다. 팬들의 응원은 연료와도 같다. 내가 멈추지 않고 달려갈 수 있는 원동력인 셈이지.

[끝이 없는 이 우주 속

너의 흔적을 따라

끝없는 영원을 약속해

Cause you are my universe

내 우주는 온통 너로 가득하니까]

“약속해!”

“너로 가득하니까!”

[You are my Universe

중력 없는 이 우주 속

네게 끌리는 아이러니]

“아이러니!”

이번 노래의 좋은 점은 마음 편히 웃으면서 무대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강렬하거나 아련한 콘셉을 할 때는 팬들의 응원소리를 들어도 무대 연기를 위해 쉽게 웃을 수 없다. 그런데 이번 곡은 여유로우면서, 청량한 콘셉이기 때문에 진심으로 웃을 수 있었다.

노래의 하이라이트, 잠시 무음이 되어 조용히 속삭이는 파트다. 무언가를 붙잡으려는 듯 손을 뻗어 옅게 웃었다.

[너의 우주에서 기다릴게-]

함성 소리로 가득하다가도 그 파트만 되면 모두 쥐죽은 듯 조용해지는 것이 신기했다. 이렇게 손발이 잘 맞는 팬덤이라니, 괜히 뿌듯했다.

첫 번째 녹화가 끝나고 피디 역시 팬들을 칭찬했다.

“어우, 중간에 싹 조용해지는데 깜짝 놀랐잖아? 오늘 첫방이라고 하지 않았나? 다들 그새 연습하고 온건가?”

“클로버 짱이죠?”

“와아아아!”

피디님은 말없이 엄지를 치켜들었고, 팬들의 사기도 더 올라가는 듯 했다.

“크리드 활동 때도 느꼈지만, 클로버들은 응원법 장인이라니까요? 클로버만큼 응원법 잘하는 사람들 없을걸요?”

“더 잘해 볼게!”

“클로버 칭찬 들으면 내가 다 뿌듯하다니까요?”

내가 팬들의 자부심인 만큼, 팬들 역시 나의 자부심이니까.

* * *

“오늘 1위 후보라며?”

“컴백 주부터 1위 후보가 될 줄은 몰랐는데…….”

“1위 발표를 네가 하는데 1위 하면 기분 되게 좋겠는데?”

“놀리지 마요-”

“놀린다니~”

어느덧 김민정과의 음악 방송 MC도 5년 차에 접어들고 있다. 이렇게 오랫동안 MC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 했다. 보통 길어도 2~3년이 마지노선인데, 나나 김민정이나 5년 동안 인기가 식은 일이 없었고 오히려 더 상승세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겠지.

“근데 상대가 루커스라서… 1위 못 할 가능성이 높아요. 다음 주면 몰라도.”

“1위 공약은 정했어?”

‘내 말을 들은 거야, 만 거야?’

“준비한 소품이 있긴 해요.”

“그래? 잘 준비해 봐~ 마지막 방송인데, 네가 1위 해야지.”

“…….”

잠시 말이 없어진 나에게 김민정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5년 동안 수고 많았다.”

“누나도요.”

1위 발표 시간이 다가올수록 알 수 없는 긴장감과, 기대감, 그리고 걱정이 밀려왔다. 음악 방송 1위는 이제 셀 수 없이 많이 했지만, 솔로 앨범으로의 1위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음원 점수입니다, 음반 점수입니다, 온라인 및 실시간 문자 투표 점수를 합산한 이번 주 1위는…….”

결과가 나오기 전, 김민정은 나에게 손짓했다. 1위 발표는 나보고 하라는 사인이었다.

“1위는… 승빈의 유니버스입니다!”

“와아아아아아!”

크리드와 지운이 형의 1위를 호명한 적은 있어도, 내 이름은 처음이었다. ‘승빈의 유니버스’라고 하는 순간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의 소름이 온몸을 감쌌다.

“1위 소감 부탁드려요, 승빈 씨.”

“어… 정말 예상을 못 해서 지금 머릿속이 새하얀데요. 우선 우리 클로버! 항상 저 응원해 주시고, 승빈이가 최고다, 자부심이라고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여러분의 자부심이 되도록 노력할게요. 그리고 우리 멤버들! 나 1위 했어!”

크리드로 1위 했을 때만큼이나 두서없고, 흥분에 가득 찬 소감이었다.

“멋진 곡 선물해 준 윤빈 형, 그리고 가사 만들어 준 지운이 형, 매 순간 응원해 줬던 선우형, 재봉이, 유현이 형, 강도현! 진짜 너무 고맙다. 그리고 항상 도와주시는 우리 코어 스태프 식구분들께도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뮤직 쇼 제작진분들, 너무 감사합니다. 클로버, 사랑해요!”

“승빈 씨, 1위 축하합니다! 그리고 저희가 오늘 뮤직 쇼 시청자분들에게 전할 소식이 있죠?”

“저희가 지난 오늘을 마지막으로 MC 자리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음… 처음 뮤직 쇼 MC가 되었던 날이 떠오르는데요. 처음이라서 서툴렀던 모습까지도 예쁘게 봐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뮤직 쇼 식구들…….”

아, 울고 싶지 않았는데. 무대 앞에서 조용히 눈물을 훔치는 작가님들과 피디님을 보니 울컥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지난 5년 동안 매주 뮤직 쇼와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고, 너무나도 행복했습니다…….”

“승빈 씨만큼이나 저도 정말 아쉽지만, 우리 웃는 모습으로 인사하기로 해요.”

단단해 보였던 김민정의 목소리도 미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자, 그럼 인사드리겠습니다! ”

“음악과 함께하는 시간! 지금까지 뮤직 쇼 MC 김민정.”

“문승빈이었습니다!”

1위 앵콜을 마치고 내려오자, 김민정과 스태프분들이 모두 대기실에 모여 있었다.

[우리 오늘부터 다시 1일 하자…]

[문승빈 네가 말아주는 뮤직쇼 MC 아니면 안 먹을 거라고]

“푸하하! 이게 뭐예요-”

“이렇게라도 안 하면 오열 파티 될 거 같아서…….”

그렇게 말하는 작가님들의 눈도 퉁퉁 부어 있었다.

“그동안 정말 감사했어요.”

“우리가 더 고마웠지, 그 힘든 스케줄 사이에도 힘든 티 한 번을 안 내고…….”

“이건 우리가 주는 상장!”

[최고의 MC 상]

크리드의 문승빈은 20XX년부터 20XX년까지 약 5년이라는 시간 동안 뮤직 쇼를 빛내 주었고, 이 점을 높이 사 이 상을 수여함.

-뮤직 쇼 제작진 일동-

추신: 승빈 군의 성장을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어요.

마음이 뭉클하다. 신인인 나를 믿고 MC 자리를 맡긴 것부터 이 사람들이 나에게 걸었던 기대와 신뢰가 얼마나 컸을지 잘 알기 때문이다.

“아이, 울지 마세요~ 저 어차피 다음 주에도 여기 와야 하는데요?”

“생각해 보니까 그러네?”

“그리고 앞으로 크리드 활동하면서 자주 볼 거니까~”

간단한 쫑파티를 마치고, 뮤직 쇼 MC 대기실을 빠져나왔다.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문 앞에 붙은 [MC 문승빈] 종이를 떼어 냈다.

“고생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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