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341화 (341/346)

외전 3화

“그럼, 녹음 시작할게, 승빈아-”

“네!”

“Universe 도입부부터 하자.”

[You are my Universe

One & Only Universe

너란 우주 속 자유롭게 유영해]

“오케이!”

“지금 감정이랑 보이스 톤 너무 좋았어.”

“컨디션 좋아 보이는데?”

새벽까지 연습하고 와서 컨디션 조절이 잘 안될까 봐 걱정했다. 잠도 잘 오지 않았고. 하지만 생각보다 녹음이 수월하게 시작되었다. 컨디션에 구애받지 않을 정도로 철저히 준비했다는 반증이겠지.

이후로도 녹음은 막힘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순식간에 가장 걱정했던 하이라이트 파트 순서가 되었다. 크리드 활동 때보다 더 높은 음의 고음이었기 때문에 걱정이 많았다. 게다가 고음만 있으면 그나마 할 만한데, 쪼개는 박자에 고음이 끝나고 바로 저음으로 바뀌니 말 그대로 총체적 난국인 파트다.

‘다른 파트보다는 자신 없는데…….’

처음 이 노래를 타이틀로 밀려고 할 때 이 파트를 소화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슈가 있었다. 연습할 때도 가장 막혔던 파트였다. 그럴 때마다 상태창이 그립기도 했다. 하지만, 네가 나 없이 뭘 할 수 있겠냐고 성질을 긁던 상태창을 떠올렸다. 나를 얕잡아 본 상태창 따위 없어도 성장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이 파트를 해내는 것이 나에겐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끝이 없는 이 우주 속

너의 흔적을 따라

끝없는 영원을 약속해

Cause you are my universe

내 우주는 온통 너로 가득하니까]

‘…됐다!’

두 눈을 감고 오직 노래와 목소리에만 집중했다. 지금 내 스텟 속 포인트는 얼마일까? 따위의 생각이 들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했다. 그리고 초고음 파트에서 완전히 나를 던진다는 감각으로 소리를 냈다.

그리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연습 중에도 이렇게 깔끔하게 소리가 나온 적이 없었다. 내가 낸 소리인데, 스스로 놀랄 정도였으니까. 온 힘을 다 썼더니 절로 벽에 등을 기대게 되었다.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이제 겨우 한 곡 녹음이 끝났는데, 다음 녹음은 다른 날 해야 하는 것 인가- 진지하게 고민했다.

녹음실 유리 너머로 윤빈 형과 지운이 형의 얼굴이 보였다. 둘 다 입을 벌린 채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며 입 모양을 보이자, 윤빈 형이 조용히 엄지를 치켜들었다.

“…대박.”

“이것보다 더 잘 나올 수 없을 것 같아, 승빈아!”

그제야 긴장이 풀렸고, 벽을 타고 주르륵 녹아내렸다.

“하…….”

이유는 모르겠지만, 입꼬리가 자꾸 씰룩거렸다. 웃음이 나오는 걸 참기 힘들었다. 분명 눈앞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 올랐다.

‘분명 어딘가 지켜보고 있겠지, 난 네가 없이도 잘 해낼 수 있다고 고물 덩어리 새X야.’

“승빈아, 그렇게 좋아? 하긴, 저 파트를 그렇게 소화하는데 나였어도 기분 째졌을 거 같다.”

“형, 째진다라는 건 어디서 배운 거예요?”

“노래에서 들었어!”

윤빈 형의 순수한 답에 더 속절없이 웃었다. 결국 나머지 녹음은 다음 날로 미뤄졌다. 이렇게 체력 소모가 큰 녹음은 오랜만이었다. 당분간 이 상태를 유지하겠지. 하지만 걱정은 없다. 더 이상 상태창이라는 허상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니까. 홀가분했다. 아주 작은 순간이지만, 이제야 진짜 이 세계에서의 삶이 시작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으니까.

숙소로 향하는 길에 지운이 형이 넌지시 말을 걸었다.

“너 오늘 뭔가 벽을 넘어선 느낌이었어.”

“그래요? 사실 상태창… 이제 안 보이거든요.”

또 다른 큰 변화. 이제는 비밀을 공유할 사람이 있다.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그래?”

“응. 지금까지 눈앞에 보이던 게 갑자기 안 보이니까, 아무렇지 않게 지내려고 해도 의식적으로 신경 쓰게 되더라고요.”

“너에게 정말 큰 도전이었겠네?”

“맞아요. 예전에는 얼마만큼 성장하고, 어떻게 연습해야 하는지 다 볼 수 있었는데 이젠 알아서 해야 하니까-”

“그럼 애매할 때마다 우리한테 물어보면 되겠다! 서로가 그… 상태창? 그런 역할 해주면 되겠네.”

내 새로운 상태창이라니, 계속 내 옆에서 나의 성장을 위해 함께 한다는 점에서 최고의 상태창이었다. 그런데 이제 나를 해하지도 않고, 100% 신뢰를 주는 상태창.

상상만 해도 피식, 웃음이 나왔다. 강도현, 박재봉, 선우 형이 상태창이라면 분명 시끄럽다고 매일 귀를 틀어막고 살지 않았을까? 기왕이면 지운이 형이나 유현이 형 같은 상태창이 좋을 거 같은데 말이지. 둘이라면 언제든 대환영이다.

나보다 몇 걸음 앞서 걸어가던 지운이 형이 잠시 멈춰 섰다.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형의 그림자를 내려 보다가, 고개 들어보니 형이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무언가 말하려는지 입술을 달싹이고 있었다.

‘무슨 할 말이 있나……?’

고개를 갸웃하니 싱긋 웃는다.

“우리가 정말 잘돼서 기뻐.”

새벽에 가까운 밤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왔다. 문득 티벡스 시절 우리의 짠내 나던 새벽 퇴근길이 떠올랐다.

“최고의 아이돌이 되자고 했던 다짐, 지켜 줘서 고맙다.”

미래가 보이지 않은 순간에도 힘든 티 내지 않았던 형의 얼굴이 오버랩되었다. 우두커니 서서 눈물이 흐르는 대로 두었다. 이제는 나 혼자만의 기억이 아니었다. 눈물 때문에 짠맛이 나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했다. 내가 우는 것을 발견한 형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형의 눈도 토끼 눈이었다.

“우리 이제, 그때 기억은 내려 두고 앞으로의 기억으로 채우자.”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회귀 전 세계의 나를 잊겠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그저, 이 세계에서의 삶을 살면서 그때의 기억에 숨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다 큰 줄 알았는데, 내 동생 여전하네.”

“형도 여전히 눈물 많고요.”

소심한 말대꾸에 형은 코를 훌쩍이며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승빈아, 이제 너도 말 편하게 하는 거 어때?”

“네?”

“윤빈이랑 도현이나 재봉이도 이제 형이라고 호칭만 붙이고 편하게 말하는데 너만 아직도 존댓말 쓰는 거 같아서.”

“아…….”

정말 형다운 부탁이었다.

“알았어, 형.”

내 반말에 잠시 지운이 형이 놀란 눈을 하다가, 이내 반달눈이 되었다. 나도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도 없는 골목길에 우리의 웃음소리만 가득했다.

* * *

[장하다, 혜진아! 드디어 우주 최고 승프로 이름 날릴 기회가 왔구나!]

[조용히 해라]

[야, 그런 프로그램 특징 알지? 승빈이 무조건 나옴.]

[나오는 게 더 문제야 ㅅㅂ… 내 주접을 내 최애가 직관한다? 혀 깨물고 죽고 싶지 않을까?]

문스트럭은 아이돌 팬들의 리얼한 덕질을 소개하는 위튜버 채널 콘텐츠에 섭외가 되었다. 처음에는 거절했다. 하지만 제작진들의 끈질긴 설득과, 곧 솔로 앨범이 나올 승빈에게 손톱만큼의 도움이라도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출연을 결정했다.

그리고 걱정이 무색하게 문스트럭은 인터뷰 내내 날아다녔다. 한번 터진 주접은 모터라도 단 듯 쏟아졌고, 특유의 친화력으로 다른 출연진과도 활발하게 소통했다.

“마지막으로 최애에게 한마디 한다면?”

“승빈아, 넌 내가 만난 최애 중에 최고야. 실력도, 얼굴도, 인성도, 팬들 사랑하는 마음도, 주변 사람들 챙기는 섬세함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우주 최고의 강아지란다.”

“이제 승빈 군을 아예 강아지라고 하시네요?”

“인간 중에 제일 강아지 같고, 강아지치고 인간 같은 게 바로 우리 승빈이입니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주접을 내뱉는 문스트럭에 모두들 못 말린다는 듯 웃었다. 입만 다물고 있으면 세상 차분하게 생긴 그녀였기에, 그 갭이 주는 재미가 더했다.

“네가 팬들에게 행복을 주는 만큼 너도 꼭 행복하길 바라. 네가 자주 하는 말 중에 하나가 행복하게 해 주겠다는 말이잖아. 그리고 크리드 말고도 행복을 느끼는 무언가를 만들라는 말도 잊지 않잖아. 우리도 같은 마음이야. 꼭 우리를 통해서가 아니어도 좋아. 우린 그저 네가 행복하게 오래오래 우리 곁에 있어주길 바라. 나는… 아무래도 너 만나기 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거든. 그러니까 우리 꼭 건강하게, 행복하게 서로에게 힘이 되자. 나도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게.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주는 사랑이 네게 가장 작은 크기의 사랑이었으면 좋겠다! 넌 사랑받아 마땅하니까!”

물론 프로그램에 승빈이 깜짝 등장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문스트럭의 인터뷰는 케이 팝 팬들 사이에서 소소하게 화제가 되었고, [아이돌을 대하는 바람직한 팬의 자세] 따위의 제목으로 퍼지기도 했다. 그리고, 그보다 더 큰 감동을 선물 받은 것은 며칠 뒤였다.

* * *

연습을 마치고 잠시 위튜버를 보며 쉬던 중, 흥미로운 제목을 발견했다.

[최애백서 : 문승빈 편 (역대급 텐션!)]

그리고 익숙한 카메라의 키링, 문스트럭이었다. 영상 속 팬들의 주접에 민망하지만, 너무 좋았다. 팬들만큼 나에 대해 열정적으로 분석하고, 애정을 주는 존재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팬들이 나에게 남기는 메시지에서는 살짝 울컥했다. 특히 자신의 사랑이 가장 작은 크기의 사랑이길 바란다는 말이 마음에 콕 박혔다.

차원과 기억을 넘어선 사랑이 가장 작은 사랑이라면, 내가 얼마나 더 가늠할 수 없는 사랑을 받길 기도하는 것일까? 연습실에서 눈물을 보이는 것만큼 꼴사나운 것도 없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았다.

결국 크림 메시지를 보냈다. 이 많은 사람의 마음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일 수 없는 게 아쉽다.

[승빈이!: 오늘따라 클로버가 너무 보고 싶어서 왔어!]

[승빈이!: 우리 클로버들이 나에 대해 엄청 자랑하는 영상 봤다?]

[승빈이!: 나 좋아해 줘서 너무너무 고마워]

[승빈이!: 근데 클로버가 주는 사랑이 가장 작은 사랑이면, 난 얼마나 더 큰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거야?]

[승빈이!: 나는 지금도 벅찰 정도인데!]

[승빈이!: 사실 나는 클로버가 주는 사랑을 전부 보답할 자신이 없어. 그건 아마 몇백 년이 걸려도 다 돌려줄 수 없을걸? 너무 많잖아!!]

[승빈이!: 우리 진짜 오래 보긴 해야겠다. 평생에 걸쳐도 다 보답 못 할 거니까, 아주 오랫동안 갚아나갈게.]

[승빈이!: 오늘도 클로버 덕분에 행복한 승빈이가♥ 다들 잘자~]

제대로 읽기 힘들 정도로 수많은 답장이 쏟아지고 있었다. 각기 다른 언어와 표현들이었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애정은 모두 같은 마음일 게 분명했다. 온 힘과 정성을 다해 솔로 준비를 하면서 몸은 피곤했지만, 기분만큼은 점점 더 몽글몽글해졌다.

지금 당장이라도 이번 앨범을 들려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솔로 데뷔가 이제 고작 일주일 남았지만, 그 시간마저 얼른 당기고 싶었다. 아마도 세상에서 제일 긴 일주일이 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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