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339화 (339/346)

외전 1화

“후…….”

“뭐야, 너답지 않게 왜 긴장을 하고 그래!”

“영화 시사회는 너무 오랜만이어서…….”

“엥, 시사회가 오랜만이라고? 처음 아니고?”

“아, 맞죠! 제가 잠깐 드라마 제작 발표회랑 헷갈렸나 봐요.”

회귀 전 마지막 영화 이후 거의 5년 만에 시사회를 하게 되었다. 마치 ‘어쩌면 그날’ 첫 시사회를 한 날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심장이 터질 듯 두근거리고 있었지. 아침부터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청심환을 먹기도 했으니까.

‘그때 진짜 흑역사였는데…….’

이번에는 절대로 청심환을 먹지 않을 예정이다. 그때 긴장감을 이겨 내지 못하고 청심환을 먹었다가 필요 이상으로 긴장이 풀렸고, 혀가 잔뜩 꼬이고 말했다. ‘너무 긴장된 나머지 청심환 먹고 시사회 온 배우’ 짤이 돌아다닐 정도였으니까.

“우리도 응원하러 갈 건데, 걱정하지 마!”

“와서 이상한 소리 하면 안 된다?”

“야, 넌 친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 거냐?”

‘그야… 내가 아는 놈 중 제일 장난기 많은 인간?’

“너한테만 하는 말 아니야.”

거실에서 게임을 하고 있던 박재봉과 선우 형의 어깨가 잠시 움찔하는 게 보였다.

“너무 기대된다. 빨리 보고 싶어.”

“저도 완성된 영화는 처음이라서 너무 궁금해요.”

“맞다. 시사회 전에 기자 간담회 먼저 하지?”

“답변 준비 좀 했어?”

“네. 근데 크게 걱정은 안 하려고요.”

“오, 자신 있는 거야?”

“영화를 찍은 건 저잖아요. 영화에 대해 제가 제일 잘 알고 있으니까 어떤 질문이 들어와도 답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때 머리 위로 손바닥이 턱, 올라오는 느낌에 잠시 움찔했다. 고개를 돌려보니 유현이 형이었다.

“뭐예요?”

“기특해서.”

“네?”

문득 ‘어쩌면 그날’ 시사회 전날 유현이 형이 떠올랐다. 영화에 대해 이것저것 얘기를 하면서 형이 말했었지, 이렇게 열심히 답변을 준비할 필요가 있냐고. 어차피 영화를 찍은 건 자신인데 모르는 질문이 나올 수 있겠냐고.

‘딱히 그때 형의 말을 떠올린 건 아니지만-’

형에게 기특하다는 말을 들은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아닌가, 처음이었나?

* * *

기자 간담회 대기실에 도착하니, 유현재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천하의 유현재도 첫 주연 영화의 시사회는 긴장되겠지. 예상 답변을 준비한 것인지 종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지난번 먼저 온 게 우연이 아니었나 보네요?”

“내가 너보다 먼저 온 게 그렇게 신기하냐?”

“아니, 형은 안 그래도 완벽한데 이렇게 먼저 와서 기다리는 준비성까지 갖출 필요가 있나 해서요-”

“이게 아주 사람을 쥐락펴락하려고 하네?”

“에이, 제가 거짓말하는 거 본 적 있어요?”

말은 저렇게 해도 입꼬리가 올라가는 건 못 숨긴다. 넘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 벽 너머 유현재의 모습을 보는 게 무척 즐거웠다.

“오늘 준비 잘했냐?”

“무슨 질문이 들어올까 궁금해요.”

“너는 긴장 안 하냐?”

“아침에 멤버들하고 얘기하고 오니까 다 풀리던데요?”

“…좋겠네.”

맞다, 하이드가 해체한 걸 잠시 잊었다.

“형은 긴장돼요?”

“나? 안 하지-”

테이블 위의 종이를 둥글게 말아서 마이크로 만들었다. 갑자기 마이크를 들이밀자 유현재가 주춤했다.

“드리밍의 가장 큰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이렇게 갑자기?”

얼른 대답해 보라는 듯 종이 뭉치를 내밀자 목을 몇 번 가다듬더니 답을 했다. 그렇게 몇 가지 질문을 더 하자 완전히 긴장이 풀린 듯했다.

“너는 안 하냐?”

“저는 그때그때 나오는 답변이 제일 베스트여서-”

“내가 한 답변 따라하지 마라?”

“참나, 이따가 기억도 안날 걸요?”

“내가 한 말인데 기억해야지!”

‘긴장 풀리니까 더 기고만장해졌네. 그래도 이제야 좀 유현재답네.’

“배우분들 입장 준비할게요-”

기자 간담회는 생각보다 더 치열한 분위기였다. 분명 스포츠 청춘물 영화인데, 아무래도 영화 밖의 질문들이 많았다. 이미 학생 시절부터 주목을 받았지만, 고집 있는 작품 스타일을 고수한 김 감독의 독특한 행보였으니 더 그랬겠지.

“스포츠 청춘물로 기획한 이유가 있나요?”

“그동안 너무 무거운 분위기의 영화를 주로 만들었는데, 스포츠물이 주는 감동을 나도 만들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이 저의 승부욕을 자극했습니다. 그리고 스포츠 청춘물이긴 하지만, 마냥 열혈 스포츠 만화와 같은 스토리는 아닙니다. 충분히 저의 과거 작품 스타일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크리드의 문승빈 군은 데뷔작부터 주연 자리를 꿰찼는데, 김성진 감독이나 이전 파아란 감독과의 친분이 어느 정도 연관이 된 건 아니었나요?”

“영화 이외의 질문에는 답변하지 않는 게 가장 좋겠지만, 확실히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어그로의 목적이 분명한 질문에 김 감독님이 더 못마땅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겨우 친분 가지고 영화를 만들 만큼 가벼운 마음을 가지고 감독이 된 사람이 있을까요? 애초에 드리밍의 ‘지석’을 만들 때부터 승빈 군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승빈 군이 아니라면 지석을 100퍼센트 표현할 수 없다고 확신했기 때문에 캐스팅했고요.”

“그렇다면 지석 역할을 꼭 문승빈 군이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 있었나요?”

기자 역시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나중에 매니저 형을 통해 들어보니, VM에 호의적인 기사를 쓰고 크리드와 코어에 대해서는 꾸준히 악의적인 기사를 쓰는 것으로 유명한 기자라고 했다.

“그건 오늘 시사회에서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 감독님은 자신만만한 미소로 답변을 마쳤다. 해당 기자는 더 말할 것이 남아 보였지만, 다른 기자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으며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승빈 군에게 질문드립니다. 첫 영화에서 주연 자리를 맡은 만큼 부담감이 엄청났을 거 같은데, 해소하는 방법이 있었을까요?”

“처음 영화에 캐스팅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너무 기뻐서 부담감을 가질 틈이 없었던 것 같아요. 워낙 존경하고 좋아하는 감독님의 작품이었고, 스포츠물 역시 평소 즐겨 보는 장르였으니까요. 그런데 확실히 촬영을 시작하니 더 잘하고 싶다는 부담감이 생겼어요. 그럴 때마다 저희 크리드 멤버들, 감독님 그리고 같이 촬영하는 다른 배우분들에게 조언을 구했어요. 다들 저와 영화에 대해 잘 아는 분들이어서 제 고민에 공감해 주고,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던 것 같습니다.”

“지석 캐릭터를 연구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특징이 있었나요?”

“아시다시피 지석은 상실을 경험한 캐릭터입니다. 그래서 지석이 가진 상실에 대해 깊이 고민했어요. 상실을 경험했을 땐 어떤 감정일까, 주변 사람들에겐 어떻게 행동할까? 또 그 상실을 인정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어떻게 이겨 냈을까 등 다양한 관점에서 지석이의 상실을 관찰했던 것 같아요.”

김 감독님과 유현재는 만족스러운 답변이었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드리밍이 관객들에게 어떤 영화로 기억되길 바라나요?”

“음… 상실을 겪은 분들에게 슬픔 다음에도 분명 희망이 있다고 위로하는 영화로 기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영화를 촬영하고, 개봉하여 사람들 앞에 보일 때까지 내가 이 영화로 가진 목표는 단 하나였다. 무언가를 잃더라도, 분명 얻는 것이 있으니 절대 포기하지 말자는 영화의 메시지가 온전히 전달되는 것. 오직 그뿐이었다.

간담회를 마치고 김 감독님이 다가왔다.

“승빈아, 너 캐스팅과 관련한 질문은 신경 쓰지 마.”

“전 괜찮아요. 오히려 감독님이 더 기분 상하셨을 질문이어서…….”

“난 괜찮아. 그리고 개봉하면 저런 반응도 싹 사라질 거야. 나, 이번 영화 진짜 자신 있거든.”

확신에 가득한 감독님의 눈에 신뢰감이 상승했다. 절대 허투루 말하는 분이 아니니까. 아무래도 이곳에선 그저 드라마 하나 찍은 신인 배우이니까. 내 실력을 모두 운으로 치부하고 싶어 하는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그런 편견을 깨부술 때가 가장 짜릿할 테니까.

* * *

“오늘 이렇게 저희 ‘드리밍’ 시사회에 와 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정말 진심을 다한 영화이니 재밌게 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혜진은 그토록 꿈꿔온 순간이 눈앞에 펼쳐짐에 감격했다. 처음 ‘시크릿싱어’에서 도령 옷을 입은 것을 보고, 언젠가 반드시 커다란 영화 스크린으로 승빈을 보는 날이 오기를 그 누구보다 기다렸으니까.

영화는 감동적이었다. 승빈이 아닌 ‘지석’만이 남은 영화였다. 단순히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을 넘어서, 캐릭터의 삶에 녹아들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절망 앞에서 좌절하지 않고 나아가는 지석의 캐릭터가 승빈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더욱 영화에 감정 이입할 수 있었다.

‘연기력이랑, 경력으로 걱정하는 척 내리치기 하던 놈들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겠네.’

그리고 승빈을 제외하더라도, 영화 자체가 정말 잘 만들어졌다. 적절한 개그 요소와 실감 나는 경기 장면, 인물들 간의 섬세한 감정 묘사까지-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영화였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자마자 박수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혜진을 포함한 몇몇은 자리에 일어나 환호하기도 했다.

아이돌 승빈이 아닌 배우 문승빈이 주는 새로운 감동에 한동안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다들 영화 잘 보셨나요?”

“네!”

“최고였어요!”

“오늘 시사회와 무대 인사에 이벤트가 하나 있는데요! 바로 추첨을 통해 배우분들과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회를 드립니다!”

“헐!”

“자. 그럼, 먼저 감독님이 뽑아 볼까요?”

혜진의 자리는 C8. 혜진은 두 손을 모아 간절히 바랐다.

‘당첨되게 해 주시면 평생 승빈이만 덕질할게요!’

“숫자부터 말하겠습니다. 8!”

“이런 미X, 제발…….”

“앞의 알파벳은… D!”

“아 씨! 팔인데!”

당첨된 D8번보다 더 큰 혜진의 목소리가 영화관 가득 울려 퍼졌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혜진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그 C… 8번님.”

“푸하하하!”

“저분도 사진 찍어 드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 아니에요! 공평하게…….”

“와, 엄청 양심적인 분인데요? 공평하게 해야 한다고 하시고-”

하지만 승빈 앞의 유현재 순서까지 혜진의 이름이 불리는 일은 없었다. 마지막 기회는 승빈뿐이었지만, 혜진은 이미 포기한 상태였다.

‘될 리가 있나… 그냥 여기서 많이 찍어 가야지.’

그런데, 카메라에 담긴 승빈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옆에서 종이를 확인한 유현재도 고개를 뒤로 젖혀 가며 웃었다. 그리고 혜진은 순간 소름이 돋았다. 분명히 승빈이 혜진의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고는 종이를 공개하며 얼른 오라고 손짓하는 것 아닌가.

“그, 말로 하기 조금 애매한 자리여서… C열 8번!”

“으아아아아악!”

“저분 리액션이 너무 좋은데요?”

혜진은 거의 날아갈 듯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그리고 승빈 앞에 서자마자 바리바리 준비한 플래카드와 머리띠를 내밀었다.

“누나, 여기서도 챙겨 온 거예요?”

“어, 어. 누나 항상 가지고 다니지~ 언제 어디에서 승빈이 볼 줄 누가 알아?”

최애와 셀카를 찍는 날이 오다니. 앞으로 승프 19,283,740년 연장이었다.

누가 덕계못이래. 문승빈 덕질하면 덕후도 계를 타는 세상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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