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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338화 (338/346)

338화

두 가지 힘이 충돌하면서 온몸이 타오르는 통증을 느꼈다. 금방이라도 도망치고 싶었지만, 마지막 힘을 쥐어짜 상태창과 반대로 움직이는 힘을 따라갔다.

손가락이 [NO]를 향할수록 점점 상태창의 붕괴가 시작됐지만,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발광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상태창의 형체가 점점 사라질수록, 회귀 전 세상의 내 모습도 점점 변하고 있었다. 공간의 배경 역시 바뀌었다. 화려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황폐해진 얼굴을 마주했다.

그리고 그 균열 때문에 발생한 에너지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기이하게 몸이 뒤틀리는 또 다른 나를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울렁거렸다.

“절대… 안 돼!”

의식은 흐릿해지고,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급격하게 힘이 빠져 가던 중, 누군가의 목소리가 빠르게 나를 스쳐 갔다.

‘승빈아!’

“…지운이 형?”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젖 먹던 힘을 다해 [NO]를 선택했고, 마침내 굉음 소리와 함께 상태창이 산산조각이 났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빛이 한순간에 폭발했다.

“…윽!”

파편조차 남지 않은 완전한 소멸이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드디어 끝났다는 해방감과 함께 온몸의 힘이 풀렸다. 동시에 허탈함이 밀려왔다.

“다 끝났구나, 진짜 다 끝났어…….”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이 없었다. 겨우 눈만 깜빡일 수 있었다. 그리고 마주한 것은 피폐해진 내 모습이었다. 사건 이전보다 족히 10kg은 빠져 보였다. 오랫동안 은둔 생활을 이어 온 탓인지, 머리카락은 엉망진창이었다.

“형이 나 때문에…….”

역시 상태창이 나를 현혹하기 위해 사용한 환각이었다. 형을 잃은 내가 멀쩡했을 리가 없지. 나는 조용히 울고 있는 내 곁으로 걸어갔다. 조심스레 품에 안았다. 품에 안긴 또 다른 나는 통곡하며 더욱 깊숙이 파고들었다.

언젠가 회귀 전의 나와 만나게 된다면 꼭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나, 내가 잃었던 것이 헛되지 않도록 정말 열심히 살았어.”

회귀 전의 내가 그리워지거나, 이 세계에 온 것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던 시간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형은 내가 꼭 지킬게. 믿어 줘.”

그로부터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또 다른 내가 무언가 결심한 듯 눈물을 닦아 내며 말했다.

“…내가 이곳을 떠날게.”

예상 못 한 말에 놀랄 틈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네가…….”

“알아. 내가 있는 이 세계는 완전히 소멸하겠지. 나조차도… 하지만, 거기엔 지운이 형도 있고, 네가 정말 원하던 무대 위의 삶을 살고 있잖아. 그걸로도 충분해.”

“…….”

“그래도 너는 나 기억할 거잖아. 맞지?”

텅 빈 눈이 처음으로 빛났다.

“그래. 다 기억할게. 네가 했던 노력, 무대를 사랑하고 그리워했던 마음 전부 없던 일이 되지 않도록 내가 잘 기억할게.”

“네 말 믿을게. 꼭 그래 줘야 해.”

또 다른 내가 손을 내밀었다. 나는 살풋 웃으며 악수했다.

“4년 만에 만나자마자 작별 인사라니. 뭔가 아쉽네.”

“내가 너고, 네가 나잖아. 넌 항상 나와 함께였어.”

망돌 생활부터 배우가 되기까지, 숱하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 낸 내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 이 세계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나에게 해답을 준 것은 회귀 전의 나였다.

“안녕.”

“…잘 가.”

“울지 마. 난 슬프지 않아. 네 세계에 들어가는 게 기대될 뿐이야.”

“마지막으로 안아 보자.”

이번엔 내가 안겼다. 또 다른 나는 내 등을 포근하게 쓸어내렸다. 다 이해한다고 말하는 듯했다. 온기는 서서히 사라졌다.

누군가의 세계가 사라지는 건, 꽤 추운 일이었다.

* * *

툭, 마침내 등을 감싸던 손은 힘없이 떨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거짓말처럼 현실 세계로 돌아왔다. 시계를 보니 아직 1분도 지나지 않았다.

57, 58, 59.

마침내 12시가 되었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미동도 없이 눈을 감고 있던 형이 두어 번 눈을 깜빡인 것이다. 심지어 살짝이지만, 손가락도 움직이고 있었다.

“…형? 정신이 들어요?”

“뭐? 지운이 형 깨어났어?”

“유, 유현이 형 불러올게!”

“의사 선생님부터 불러야지!”

멤버들이 우왕좌왕하며 병실 밖으로 나갔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지운이 형의 손을 붙들었다.

“형, 나 알아보겠어?”

“…….”

형이 작게나마 고개를 끄덕였다. 이 순간 떠오르는 모든 신에게 감사함을 전했다.

“정말 형을 잃는 줄 알았어…….”

한숨과 함께 주저앉았다. 아직 산소 호흡기를 하고 있어서 말은 할 수 없었지만, 형은 엄지손가락으로 내 손등을 만지작거렸다. 아직 손힘이 다 돌아오지 않아 덜덜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형은 살짝 미소 지으며 몇 번 눈을 깜빡였다. 이젠 다 괜찮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지운아!”

“형!”

“흐어아어엉…….”

의식을 되찾았다는 소식에 유현이 형과 선우 형, 재봉이가 한걸음에 달려왔다.

“진짜 무서웠다고요… 다시는 이러지 마요, 알겠죠? 계속 우리랑 같이 있어야 해요.”

“지운아…….”

유현이 형은 한참 동안 주저앉아 무언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두 손을 꼭 모으고 있는 걸 보니, 형 역시 자신이 믿는 신에게 감사함을 표하고 있는 중이겠지.

의사는 이렇게 빠른 시간에 의식을 찾은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기적이라고 했다. 형의 부모님은 눈물을 멈추지 못하셨다.

아직 완전히 움직이지는 못하지만, 산소 호흡기를 떼고 간단한 대화가 가능해졌다.

“걱정하게 해서,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 금지예요!”

“맞아. 깨어나 줘서 고마워요.”

모두 지운이 형의 곁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새벽이 가도록 누구 하나 잠이 들지 않았다. 평소의 유현이 형이었다면 지운이 형의 컨디션을 위해서라도 자라고 했겠지만, 형 역시 지운이 형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길 원하는 것 같았다.

“우리 오늘은 모두 여기서 자요!”

“좁은데 괜찮겠어?”

박재봉이 지운이 형 옆에 어깨를 들이밀었다.

“제가 지운이 형 옆에 누울게요!”

“재봉아, 너 이제 170cm 꼬마가 아니에요~”

“네가 지운이 형보다 큰데 되겠냐?”

“그, 그래도 저 아직 막내인데!”

“얼씨구, 예전에는 막내 취급 하지 말라고 하더니 이젠 막내가 좋아?”

“참나, 문승빈은 이미 자리 잡았네.”

나는 형의 옷소매를 잡고 고개를 묻었다. 되찾은 평화가 벅차올랐기 때문이다. 남들 다 웃는데 나 혼자 우는 건 너무 민망하잖아.

“그럼 지운이 형 오른손은 나!”

윤빈 형이 지운이 형의 오른손을 덥석 잡고는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이럴 때마다 단합력 하나는 완벽한 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현이 형은 지운이 형의 머리맡에 팔짱을 낀 채로 잠을 청했다. 좁은 병실에 남자 일곱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걸 보자니 웃음이 삐져나왔다.

내 선택이 옳았음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이 세계는 내가 아끼는 것들로 가득하다.

“잘 자요, 형. 우리 눈 뜨고 나서도 또 봐요.”

드디어 그토록 바라던, 미래가 왔다.

* * *

아침에 눈을 뜨니 더 이상 병실이 아니었다. 우리는 숙소 거실에 널브러져 있었다. 종아리에 얼얼함이 느껴져 내려다보니, 강도현이 내 다리를 베고 누가 업어 가도 모를 만큼 깊이 잠들어 있었다.

“뭐야……?”

설마 다른 세계로 이동한 건가? 하지만 멤버들이 모두 있는 것을 보면, 그건 아니다. 나는 조심스럽게 강도현을 밀어내고 천천히 주위를 살펴봤다. 그런데, 지운이 형이 없다.

“…형? 지운이 형?”

더 이상 형이 없는 세계는 끔찍했다. 순식간에 식은땀이 흐르던 찰나,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는 손이 느껴졌다.

“뭐 해, 승빈아?”

“형?”

“응. 어제 너무 늦게 잤지? 1위 파티 준비해 줘서 고마워.”

“다행이다…….”

상태창이 소멸되면서 형의 사고도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졌구나. 그제야 안심할 수 있었다. 조금이라도 상처가 남는 기억을 갖지 않길 바랐으니까.

“그리고, 또 고마워.”

“네?”

“이번에도 같은 선택을 해 줘서.”

“…형.”

“너 혼자 기억하는 건 너무 힘들잖아. 이제 내가 함께 기억할게.”

양팔을 벌리는 형의 품에 안겼다.

“뭐야, 아직도 1위 축하해 주고 있는 거야?”

“나도!”

“으, 머리 울려… 조용히 좀 해…….”

“야, 술찔이 강도현 일어났다.”

“므라는 그야.”

그토록 바랐던 지운이 형과의 7월 21일은 그다지 특별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다음 날이 나와 형에게 주어진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그리고 우리 둘뿐만이 아니라, 다섯 명의 멤버가 이렇게 함께하고 있다니.

이제 오늘부터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나도 모른다, 나도 처음 겪어 보는 시간들이니까. 실수하거나 예상치 못했던 어려움이 생길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 어떤 결말에도 우리가 함께 웃고 있으리라는 건 확신한다.

예측되지 않은 미래를 불안해하던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예측되지 않기에 기대가 된다. 이제 더는 뒤돌아보지 않고 나아갈 것이다.

나의 온전하고, 유일한 세계가 된 이곳에서.

“축하해, 승빈아.”

“엥? 문승빈도 축하받을 일 있어요, 형?”

“응.”

“뭐지? 뭔진 모르겠지만 일단 축하한다?”

“축하해요, 형!”

나도 나 자신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전했다.

축하해, 새로운 이야기의 첫 페이지를 쓰게 된 나.

* * *

“클로버! 즐거워요?”

“응!”

“네!”

“저희가 벌써 5주년이잖아요!”

“맞아, 맞아. 근데 우리 재계약 진짜 잘한 거 같아.”

“진짜! 5년은 너무 짧아~”

내가 바꾼 운명의 결과는 이렇게나 찬란하고 빛났다. 눈부시게 반짝이는 초록빛 응원봉 물결을 보며 다짐했다. 세상에 정해진 운명이 단 하나 있다면, 나는 이들을 위해 무대 위를 떠나지 않을 운명이라고.

“이번 무대는 승빈이 솔로 무대죠?”

“또 자작곡을 준비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요~”

“그건! 무대 시작하고 확인해 주세요!”

“우리 1열에서 구경하자!”

조명이 꺼진 넓은 무대 위에 나 홀로 남았다. 하지만, 전혀 외롭지 않았다. 내 앞에는 여섯 명의 형제들이 응원을 보내고 있고, 관객석을 가득 채운 수만 개의 불빛이 별처럼 빛나고 있었으니까.

“문승빈 파이팅!”

반주가 시작되었다. 심호흡을 하고, 노래를 시작했다.

[내 우주는 온통

초록빛 별들로 물들어 있어

방황하는 내 앞길을

환하게 비춰 줘]

내가 팔을 움직이는 방향대로 응원봉이 움직였다. 정말로 별들 한가운데 서 있는 기분이었다.

[네게 Signal을 보내

언제라도 날 알아볼 수 있게

기억을 잃는대도 괜찮아

우리가 만난 그 사실만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Truth]

나보다 먼저 눈가가 빨개진 멤버들을 보고 울컥했다.

[멀고 긴 시간을 지나

우리가 전혀 다른 세계에 있었어도

난 절대 잊지 않아

우리의 추억을, 너의 사랑을]

그 어떤 순간보다 행복하고, 벅차오르는 마음으로 노래했다. 내가 지켜 낸, 사랑하는 모든 사람 앞에서 노래 부르는 이 순간을 평생 잊지 않을 것이다.

어느덧 5주년 팬 미팅의 마지막 소감을 말할 시간이 되었다.

“정말… 여러분들과 함께하는 순간을 위해서 태어났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대 위에서 여러분을 볼 때 행복해요. 그리고 제가 여러분에게 또 하나 약속하려고 합니다.”

영원을 믿지 않았기에 그동안 하지 못한 말이 있었다. 하지만, 이 기회에 말하고 싶다.

“절대 어디 가지 않고, 오래오래 여러분 곁에서, 이 무대 위에서 노래하겠습니다. 크리드의 문승빈으로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새로운 이야기 첫 페이지의 첫 대사로 완벽했다. 완벽한 엔딩이자 시작이었다.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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