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6화
“안 돼…….”
그 말을 마지막으로 시야가 흐릿해졌다. 귀에는 매니저 형의 걱정 어린 외침이 울리고 있었다. 희미해지는 눈에는 일그러진 상태창의 얼굴이 보였다. 익숙한 불쾌감과 함께 시공간이 뒤틀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압박감에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절대자 앞에서 느끼는 무력감이란 이런 것일까? 그리고 상태창은 이전에 본 적 없는 방식으로 메시지를 보였다.
[!ERROR! TIME OUT!]
[!ERROR! TIME OUT!]
[!ERROR! TIME OUT!]
[!ERROR! TIME OUT!]
[!ERROR! TIME OUT!]
이제 형체도 거의 남지 않아 폐기 직전의 고물이 된 상태에서도 마지막 발악을 하겠다는 섬뜩한 의지였다.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무력감을 준 채로 상태창은 유유히 폭주를 멈췄다.
제대로 정신을 차렸을 땐, 지운이 형이 입원한 병원 병실 안이었다. 산소 호흡기에 의지한 채 눈을 감고 있는 형은 회귀 직전 내가 본 모습 그대로였다. 너무나도 똑같은 모습에 어쩌면 지난 4년이 꿈이었나 싶었다. 그 정도로 믿기 힘든 현실에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옆에서는 멤버들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도현아, 재봉이는…….”
“탈진해서 잠시 수액 맞으러 갔어. 넌 좀 괜찮냐?”
“…아니. 나 너무 무서워.”
눈가가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강도현도 어렴풋이 느꼈겠지, 내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걸. 가만히 지켜보다가 나를 껴안은 강도현의 손도 볼품없이 떨리고 있었다. 모두 황망한 얼굴이었다.
“말도 안 돼…….”
“이럴 수 없는 거잖아요!”
윤빈 형은 큰 몸을 웅크린 채로 일으켜 세우려는 매니저 형의 손을 내쳤다. 무대 세트로 사용된 낙후된 구조물이 지운이 형에게 추락한 것이었다. 사전 녹화에 참여한 팬들과 스태프들 앞에서 벌어진 사고라서 더 큰 논란이 되었다.
코어는 우선 크리드 전 멤버의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멤버들의 멘탈 건강을 위한 조치였다. 인터넷은 온통 지운이 형의 이름으로 가득했다. 팬들 역시 패닉 상태였다.
“다들 한동안 SNS나 TV는 피하자.”
매니저 형의 말이 옳았다. 자극적인 제목과 루머가 판을 치고 있었으니까.
[이 정도면 어디서 사주 받은 거 아님?]
차지운 누구한테 원수 진 일 있었음?
-학폭했던 거 업보 돌아온거지ㅇㅇ
└닌 진짜 지옥가도 할 말 없다 ㅁㅊ놈아
└애는 아직도 꼬리표처럼 욕먹고 있는데 최초 루머 유포한 새끼는 잘먹고 잘살고 있을 거란게 너무 화난다
└아 차지운 학폭 아니었음? 아님 말고ㅋ
[지금도 전세계에서 몇천명이 죽고 있는데 왜 이렇게 유난임?]
전쟁이랑 가난으로 죽는 애들한테나 이렇게 관심 가져봐ㅋㅋ
죽은 것도 아닌데ㅋㅋ
-인류애가 사라진다 진짜
-너같은 애가 전쟁이나 가난으로 죽는 애들한테 관심 가진다는 거 자체가 말이 안 돼 보이는데?
-연예인 걱정해봤자 오늘 내일 지나면 다들 관심 사라질걸?ㅋㅋㅋ
└냄비근성 어디 안 가지ㅋㅋㅋ
-환멸난다 진짜
-다들 병먹금하고 코어로 메일로 보내자
└ㅇㅇ저런애들 관심 안 주면 알아서 입닥칠 애들임
회귀 전이나 지금이나, 이 세계는 지독히도 가혹했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팬들과 멤버들, 가족들에 대한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승빈아.”
“…어머니?”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 보니, 문 앞에 지운이 형의 부모님이 계셨다.
“너도 많이 놀랐겠구나.”
“…죄송합니다.”
“왜 죄송하다고 하는 거니? 너희 잘못이 아니잖아…….”
“그냥, 그냥… 다 죄송해요.”
회귀 전에도 의식 불명인 아들을 보고 얼마나 큰 충격에 빠지셨을까, 그 마음을 다 가늠할 수 없었다. 어쩌면, 그 고통을 두 번이나 겪게 한 것이 아닐까- 라는 죄책감이 밀려왔다.
“지운이가 전해 달라고 한 게 있었어. 혹시라도 자기가 줄 수 없는 사정이 생기면 꼭 대신 전달해 달라고 신신당부했어.”
“이건…….”
“그때는 왜 그랬을까 싶었는데, 이렇게 사고가 나다니.”
착잡한 얼굴로 지운이 형 어머니가 건넨 것은 작은 USB였다.
“우리도 아직 열어 보지 않았어. 꼭 너 혼자만 알기를 바랐던 거 같았거든.”
“감사합니다.”
“밥 잘 챙겨 먹고, 얼굴이 너무 상했네.”
“어머니도 눈 좀 붙이세요. 어제부터 한숨도 못 주무셨다면서요.”
“그래야지, 우리 지운이도 내가 이러는 거 바라지 않을 거니까. 그렇지?”
“네. 지운이 형 강하니까… 꼭 이겨 낼 거예요.”
어깨를 토닥여 주는 손에 허탈함이 느껴졌다. 잠시 휘청거리는 아버님을 부축하며 급히 병실로 들어갔다. 두 분 모두 억지로 눈물을 삼키고 계셨다.
한참 동안 형이 남긴 USB를 멍하니 봤다. 무엇이 담긴 USB일까, 왜 나에게만 남긴 것일까, 형은 어떤 마음으로 이걸 맡긴 걸까. 사고가 날 걸 알기라도 한 걸까.
시간이 얼마나 더 지났을까, 유현이 형이 병실 밖으로 나왔다.
“여기 전부가 머물 수는 없어. 돌아가면서 자리 지키자.”
“제가 남을게요.”
“아니야. 네가 제일 충격이 컸을 거고, 한동안 의식이 없었잖아. 지금 형을 계속 보면…….”
거부를 더 했다가는 억지로라도 숙소에 데려갈 눈이었다. 결국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형은 여기 있어 주세요. 다른 멤버들은 아직 형이 필요할 거예요.”
“그럼 너는?”
“저는 매니저 형이랑 같이 갈 건데 뭘 걱정해요.”
“숙소에서는 혼자 있어야 하잖아.”
“제가 애도 아니고.”
무엇보다, USB에 대해서도 확인이 필요했으니까.
* * *
숙소로 가는 내내 매니저 형은 의식적으로라도 나에게 말을 걸었다. 아마 다른 생각을 못 하게 하려는 거겠지.
“형도 많이 놀라셨죠?”
“하… 눈앞이 캄캄했지.”
“제가 지금 쉬어도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형은 지금…….”
“승빈아.”
말을 끊는 매니저 형이다. 이렇게 단호한 반응은 낯설었다.
“물론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을 말이라는 건 알지만, 이럴수록 무너지지 말아야 해. 네가 잘 먹고, 쉬는 건 하나도 미안한 일이 아니야. 지운이 기다려야지. 어쩌면 아주 오랜 기다림이 될 수 있을 텐데, 그러기 위해선 힘을 내야 하잖아. 절대 죄책감 갖거나 이기적인 거 아니야.”
그렇게 말하는 매니저 형도 눈가를 훔치고 있었다. 형을 기다리는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의 짐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래, 언제 또 상태창이 장난을 칠지 모르고, 형이 일어날 때까지 옆에 있어야 하잖아.
“넌 언제나 또래 아이들보다 어른스러웠다는 걸 알아.”
“저는…….”
“하지만, 방금처럼 죄책감이 들 땐 네 곁에 너를 위해 흔쾌히 달려올 사람들이 아주 많다는 것 잊지 마. 알겠지?”
“네.”
차 안에는 훌쩍이는 소리만 가득했다.
“필요한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 유현이도 곧 올 거야.”
“네. 못 잤던 잠도 자고, 밥도 잘 먹을게요.”
“…그래.”
홀로 남은 숙소는 평소보다 크게 느껴졌다. 방에 들어가니 형의 빈 곳이 더 크게 느껴졌다. 엊그제만 해도 1위 후보 소식에 누구보다 기뻐했던 공간인데, 이젠 적막만 남았다. 다시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꾹 참고, 노트북에 USB를 연결했다.
“이건가……?”
[승빈]
영상을 클릭하자, 형의 얼굴이 보였다.
“잘 나오나? 이렇게 영상 찍으려니까 되게 어색하네… 뭐, 어차피 보여 줄 일 없는 영상일 텐데.”
“형?”
“아무튼 내가 이렇게 영상을 찍게 된 이유는 너한테 하고 싶은 말도 있고, 부탁하고 싶은 일도 있어서야.”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말을 하는 형을 보고 있으니, 형의 사고가 더욱 믿기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은, 나에게 절대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어 줘서 고마워. 네가 아니었다면 난 크리드가 되지 못했을 거고,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아이돌이 어떤 건지 평생 몰랐겠지? 우리가 투마월… 아니, 티벡스 시절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티벡스?”
순간 머리끝까지 소름이 돋았다. 형이 티벡스에 대해 알 리가 없으니까. 분명 오재성의 사고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이 지워지면서 형의 기억 속에서도 당연히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티벡스를 알다니.
한 번도 티를 낸 적이 없어서 꿈에도 몰랐다.
“사실 나는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지 않아.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알았을 뿐이지. 그래서 지금의 나는 너에게 어떠한 실망이나, 아쉬움이 없어. 그저, 네가 나 때문에 갖고 있던 많은 것을 포기하고 이 세계로 왔다는 게 미안하고 고마울 뿐이야. 그리고 그 모든 기억을 가지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을 너를 생각하면…….”
형은 잠시 말을 멈췄다. 카메라 화면 밖으로 나섰다. 다시 돌아온 형의 눈은 잔뜩 충혈되어 있었다. 나 역시 이미 한 번 쏟아지기 시작한 눈물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회귀한 첫날부터 투마월에서 지운이 형을 다시 만난 날. 처음에는 지운이 형과의 데뷔만을 위해 달렸지만, 점점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동료가 생겼던 순간들. 마침내 함께 데뷔라는 꿈을 이룬 날, 크리드라는 이름으로 일곱 명이서 동고동락했던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평생 갚을 수 없겠지만, 최선을 다할게.”
닿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모니터에 손을 뻗었다. 형이 옆에 있었다면 분명 따뜻한 위로를 해 줬을 거다. 그런데, 이제는 그럴 수 없다는 현실이 끔찍할 뿐이다.
“그리고 내가 부탁하는 건… 사실 지금 말하는 이 순간에도 믿기지 않지만, 그곳에서 어떤 메시지를 봤어. 결국 운명은 반복된다고. 어쩌면… 네가 회귀하기 전 마지막 날이 반복될 수 있다는 뜻이겠지?”
어떻게 이리도 가혹할 수 있을까.
“덜컥 겁이 나긴 했는데, 그때랑 지금은 정말 많은 게 달라졌잖아? 네가 정해진 운명대로가 아닌, 새롭게 운명을 개척했으니까 어쩌면 다른 결말일 수 있겠다고 안심했어. 너는 이미 상태창의 제안을 거절한 적이 있잖아. 그래서 아마 네가 이 영상을 볼 일은 없을 거야. 정말 만~약의 상황을 위해 찍는 영상이니까.”
이상했다. 한순간도 눈물이 마르지 않았으니까. 사람의 몸에서 이렇게 많은 눈물이 나올 수 있는 건가?
“만약… 그때처럼 네가 선택해야 하는 일이 생긴다면. 설령 저울 위에 올라선 게 나일지라도, 꼭 너는 이곳에 남아서 이 세계를 지켜 줘.”
순간 거짓말처럼 눈물이 멈췄다. 숨이 턱 막혀 왔다.
“네가 앞으로도 사랑받고, 사랑을 주는 아이돌로 살았으면 좋겠어. 정말로 원했던 거잖아. 그리고 우리 멤버들, 누구보다 우리 팀에 진심이잖아. 더 사랑받고 행복해야지.”
형은 이미 알고 있는 거 같았다. 오재성의 상태창이 소멸되면서 사고에 대한 기억이 모두 사라졌으니까. 형이 이 세계에서 사라진다는 것은 곧 모두의 기억에서도 사라진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되면… 이 영상도 사라지려나? 음, 그건 좀 아쉽다. 하지만, 우리가 이곳에서 다시 만난 것처럼 언젠가 만날 기회가 또 생기지 않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난 그때도 너랑 같이 팀 하고 싶거든. 찍고 나니까 되게 낯간지러운 말만 했네? 평생 영상 볼 일 없으면 좋겠다. 부끄러우니까! 그럼, 안녕!”
언제나처럼 수줍지만 해맑은 형의 미소에 무너져내렸다. 뒤늦게 나를 발견한 유현이 형의 손을 붙잡고 몇 시간을 내리 울었다.
언제나 형의 말이라면 거절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아직 안녕을 말할 수는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