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335화 (335/346)

335화

지운이 형의 컴백 첫 예능 프로그램에 함께 출연하게 되었다. ‘캐치맨’은 최 피디님이 처음으로 운동이 주제가 아닌 예능을 제작해서 화제가 되었는데, 서로의 팔찌를 끊으며 꼬리잡기를 하는 포맷의 예능 프로그램이다.

“승빈이는 이제 거의 단골손님이야?”

“아휴, 피디님, 또 저 안 나오면 서운해하실 거잖아요~”

“지운 씨는 솔로 데뷔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솔로 데뷔하고 첫 예능인데, 최 피디님 예능이어서 마음 편하게 즐기고 갈 수 있을 거 같아요.”

“지운 씨는 솔로 데뷔 때문이고, 승빈이는 왜 나온 거니?”

“와, 피디님. 저 서운하려고 하는데요?”

“장난이지, 장난-”

“그럼, 지운 군 타이틀곡 살짝만 보여 줄 수 있나요?”

피디님과 스스럼없이 티키타카가 오가는 것을 다른 출연진들이 신기한 눈으로 쳐다봤다.

“저도! 영화 홍보하려고 나왔습니다-”

“오, 영화 드디어 나와?”

“네. 이제 촬영 마쳤고 아마 올 겨울쯤에 개봉할 거 같아요.”

“겨울에 개봉할 영화 홍보를 지금 한다고?”

“미리 미리 각인하는 거죠~ 재미와 감동, 청춘들의 열정을 담은 웰메이드 영화 ‘드리밍’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뻔뻔하게 홍보를 이어 가자 최 피디님도 마음에 들었다는 듯 자지러지며 웃었다. 내가 피디님과 편하게 소통하자, 지운이 형도 다른 예능 촬영보다 더 편하게 촬영할 수 있었다. 형과 같이 출연하겠다고 한 이유이기도 하다.

개인 활동을 할 때, 혼자 촬영장에 있으면 심심하기도 하고 멤버들 생각이 많이 났었다. 늘 일곱 명이 왁자지껄했던 것이 갑자기 사라지니 공허하기도 했고. 더군다나 지운이 형을 강한 이미지로 인해 첫인상에 좋게 보는 사람이 많이 없었다. 겉모습만 보고 오해하는 사람도 많았기 때문에, 최대한 옆에서 형의 진짜 모습이 나오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지운이 형에게 먼저 말을 걸거나 가까이 다가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최 피디님이야 이전에 같이 예능 촬영을 해서 지운이 형이 얼굴과 성격이 딴판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지만.

“최 피디님 예능이 좀 특이하죠?”

“응. 전에도 대본이 거의 없이 진행돼서 신기했는데 이번엔 완전히 상황만 제시하고, 다른 게 없네.”

“최 피디님이 중요하게 여기시는 게 리얼리티거든요. 최대한 본연의 매력을 보여 줄 수 있도록 예능을 만드세요.”

초반에는 아직 몸이 풀리지 않아서 소극적이던 형도, 점점 최 피디님의 예능 방식에 녹아들어 갔다. 그리고 마침내 형에게 딱 맞는 예능 타이밍이 왔다. 평소 웃음 포인트가 독특하고, 한번 웃으면 쉽게 멈추지 않는 점이 최 피디님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그다음부터는 자연스럽게 지운이 형을 몰아가면서 조금은 짓궂은 장난을 치거나, 아재 개그를 하면서 형의 자연스러운 웃음을 끌어냈다.

“지운 씨, 왜 웃는 거죠?”

“좀비가 멍청한 이유가 머리가 좀 비어서가 너무 웃기대요.”

“승빈이는 거의 지운 씨 통역사네.”

“저희 멤버들한테는 너무 일상적인 모습이라…….”

그러다 보니 다른 출연진들도 점점 지운이 형에게 경계심을 풀었다. 형 웃는 모습이 여간 반전이어야지.

“사실 지운 씨가 너무 잘생기고, 포스 있어서 잘 못 다가갔던 건데 내가 완전 오해했네-”

“제가 낯을 좀 가려서요.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랑 개그 취향이 비슷한 거 같던데요?”

“아, 정말요?”

이 정도면 오늘 목표한 바를 다 이루고도 남았다.

“같이 출연하자고 한 건 소속사에서겠지?”

“음, 제가 같이 나가고 싶다고 했어요. 갑자기 멤버들 없이 스케줄 하면 어색하니까 첫 예능 촬영만 같이 하겠다고요.”

“잘했네. 덕분에 지운이도 적응 잘한 거 같고.”

“물론 형은 저 없이도 잘했겠지만…….”

음료수를 한 모금 넘기던 최 피디님이 스쳐 가듯 물었다.

“네가 이제 스물둘인가?”

“네. 다 컸죠? 피디님 처음 뵀을 때가 열여덟이었는데.”

“그때부터 알아봤지, 범상치 않은 신인이라고-”

“역시 피디님이 보는 눈이 있으세요.”

“이젠 능글맞아지기까지 했네!”

아직도 최 피디님이 열여덟인 나에게 어떤 가능성을 봤던 건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시간이 지나도 신뢰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꽤 멋진 어른이 된 건 아닐까.

* * *

차지운의 솔로 활동 성적은 성공적이었다. 각종 음원 사이트 상위권에 랭크되었고, 역대 남자 솔로 앨범 초동 판매량 1위를 기록했다. 특히, 승빈이 선물한 ‘날개’는 타이틀곡이 아님에도, 수록곡 맛집으로 홍보가 되면서 타이틀곡과 함께 10위권에 머무는 쾌거를 이뤘다.

그리고 지운이 뮤직 쇼 1위 후보로 선정된 날, K는 피 튀기는 폼림픽에 성공하였다.

[아 ㅁㅊ 오늘 지운이 1위하면 승빈이가 상 주는 거임?]

[벌써 눈물나네]

영화 촬영을 마친 승빈은 다시 뮤직 쇼 MC로 발탁되었다. 한 음악 방송에서 두 번이나 MC를 맡게 되는, 전례 없는 행보였던 거다. 덕분에 지운의 솔로 데뷔를 함께할 수 있었다. TV 앞에서 대기하던 문스트럭은 오직 승빈과 지운의 인터뷰 장면, 지운의 무대, 앵콜만을 기대했다.

“오늘의 1위 후보 만나 볼 텐데요, 이분은 승빈 씨가 잘 알죠?”

“그럼요~ 제가 아는 형 중에 제일 멋있고, 노래 잘하고, 춤 잘 추고…….”

“어휴, 숨 좀 쉬고 말해요, 승빈 씨!”

승빈의 주접에 지운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같이 1위 후보인 다른 가수들도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고 있었다.

“크리드에서 솔로로 돌아온 차지운입니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처음으로 솔로 앨범을 낸 크리드의 차지운입니다.”

“곡 소개 부탁드려요.”

“타이틀곡 ‘적화’는 동양적인 멜로디가 매력적인 곡으로, 붉은 달이 뜨는 날 당신의 가슴에 붉은 꽃으로 피어나겠다는 이야기를 담은 곡입니다.”

“오늘 1위 할 자신 있나요?”

“옆에 후보분들도 정말 쟁쟁해서… 하지만 클로버를 믿습니다.”

“1위 공약이 있을까요?”

“붉은 장미꽃을 입에 물고 춤을 추겠습니다! 같이하실래요?”

“그럴까요?”

지운의 깜짝 제안에 흔쾌히 수락하는 승빈을 보며 문스트럭은 ‘나이스’를 외쳤다. 이미 음악 방송 1위 예측 계정에서 지운의 1위를 확신했기 때문에 기대감이 증폭됐다. 지운이 1위 하는 것도 정말 중요하고 축하할 일이지만, 붉은 장미를 물고 동양풍 노래에 춤을 추는 문승빈? 이건 못 보면 평생 후회할 것이었다.

지운의 무대는 기대 이상이었다. 사실 지운이 혼자 4분 가까이 무대를 채울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다. 솔로로 무대를 채우기 위해서는 실력뿐만 아니라, 무대 장악력을 위한 스타성까지 갖춰야 한다. 많은 그룹 출신 가수가 호기롭게 솔로로 나왔지만, 극소수만이 살아남은 이유다. 무대 장악력이 없다면 제아무리 좋은 곡과, 안무, 실력일지라도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기 힘들기 때문이다.

팀 내에서 조용히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멤버였기 때문에, 혼자 무대를 채우는 모습이 더욱 기특하게 느껴졌다.

K는 이미 단톡방에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아마 지운의 무대에 나노 단위로 과몰입하고 있겠지.

“이번 주 뮤직 쇼 대망의 1위는… 차지운! 축하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기쁨이 가득한 표정과 목소리였다. 결과는 이변 없이 차지운의 1위였다. 음원과 음반, 투표까지 완벽한 승리였다. 문스트럭은 승빈의 1위 공약이 성사된 것에 방방 뛰며 기뻐했다. 차지운은 잠시 입을 틀어막고, 상을 받으면서도 승빈에게 반복적으로 ‘진짜?’라고 물었다. 겨우 진정하고 소감을 말하는 눈가가 촉촉했다.

“먼저 제 노래를 사랑해 주시고, 이렇게 좋은 상까지 받게 해 준 우리 클로버! 너무 고마워요. 그리고 이번 활동에 도움 준 우리 멤버들, 코어 식구분들, 무대 위해서 힘써 주시는 스태프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 전하고 싶습니다. 저 혼자서는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겁니다. 항상 확신이 부족했던 제 옆에서 잘할 수 있다고 격려해 준 승빈이, 그리고 모든 분들께도 감사합니다. 그리고 우리 가족! 저 이렇게 잘해 내고 있어요. 걱정 마세요. 뮤직 쇼 정말 감사합니다!”

공약대로 승빈은 붉은 장미꽃을 입에 물고 지운과 앵콜 무대를 꾸몄다. 뮤직비디오 의상이 아닌 것에 아쉬워할 틈도 없이, 지운의 백댄서들이 푸른 도포 상의를 가져왔다. 승빈은 뒤로 넘어갈 정도로 웃다가 옷을 어깨에 걸쳤다.

푸른 도포 자락에 붉은 장미라니, 문스트럭은 당장 영상 편집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앵콜 무대의 축복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원래는 백댄서와 하는 페어 안무를 즉석에서 승빈과 보여 준 것이다.

“둘이 조합 미쳤네…….”

1위를 한 지운만큼이나 승빈도 신이 난 얼굴이었다. 멤버의 일을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응원하는 것을 보니 크리드를 향한 승빈의 애정이 얼마나 깊은지 가늠할 수 없었다.

* * *

1위 발표 큐 카드에 형의 이름이 적혀 있을 때 하마터면 표정 관리를 못 할 뻔했다. 크리드가 1위 할 때도 그렇고, 내가 진행하는 음악 방송에서 1위를 할 때 가장 기분이 좋다.

“형, 1위 축하해요!”

“고마워. 오늘 아침부터 응원하러 와 줘서 내가 더 고맙지. 앵콜도 같이 해 줘서 더 고마워.”

“나중에 저 솔로 활동 하면 형도 꼭 응원 와 줘야 해요-”

“당연하지!”

“다음 스케줄 있다고 했죠?”

“응. 짧게 에이앱 하고, 내일 음방 사전 녹화하러 가야 해.”

“피곤할 텐데 컨디션 관리 잘해요.”

“그래.”

내가 1위 한 것도 아닌데, 그 이상으로 뿌듯함을 느꼈다. 많은 사람이 형의 음악을 좋아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형이 솔로 활동 잘 시작해서 제가 다 뿌듯해요.”

“다행이다. 잘하고 있는지 확신이 없었는데, 너한테 그런 말 들으니까 힘 난다.”

“형은 늘 잘했잖아요-”

“숙소로 바로 가지? 오늘 피곤했겠다. 일찍 자.”

“응, 형도 마저 고생하고 내일 봐요!”

“그래-”

서로 다른 차를 타고 방송국을 떠났다. 오늘도 아침부터 ‘드리밍’ 관련 인터뷰, 뮤직 쇼 MC, 앵콜 무대까지 하고 숙소에 돌아오니 피로가 쏟아졌다.

[형, 사녹 잘하고 와요!]

지운이 형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잠이 들었다. 나를 다급하게 깨우는 매니저 형의 손길에 눈을 떴을 때, 무언가 잘못됐음을 감지했다. 인간의 직감은 불안이 동반될 때에만 적중한다. 너무나도 익숙한 상황과 매니저 형의 표정이었으니까.

“승빈아.”

매니저 형이 말한 건 고작 내 이름 세 글자였는데, 심장이 발밑으로 추락하는 오싹함을 느꼈다. 본능적으로 다음 말은 들으면 안 된다는 것을 확신했다.

“형.”

“승빈아, 지운이가…….”

숨이 턱 막혔다. 침대를 벗어나는 다리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매니저 형의 말이 귀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희미하게 ‘사전 녹화’, ‘구조물 추락’, ‘의식 불명’ 따위의 단어만이 귓속에 들어오다가 튕겨 나갔다.

“그럴 리가 없는데… 아니잖아요, 형. 그럴 리가 없잖아요…….”

“승빈아, 지운이 어떻게 하니…….”

“하지만, 오늘은, 그럴 수가 없는데, 아직.”

횡설수설하며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 전원을 켰을 때, 12시가 막 지나 있었다. 그리고 비로소 깨달았다.

오늘은 회귀 전 형이 사고를 당한 그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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