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4화
“나 정말 K가 이럴 줄 몰랐음.”
“10년지기 덕친인 나도 몰랐음.”
“사랑이 이렇게 무서운 거구나.”
세 사람은 눈앞의 광경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한마디씩 거들었다. 그녀들의 눈엔 휘황찬란한 디자인의 현수막과 온갖 풍선, 장식이 가득했으니까.
[축 지운이 솔로 데뷔 축]
“야, 최애 솔로 데뷔 날인데 이 정도 축하는 당연히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아, 네네~”
아예 방을 잡고 세팅을 마친 K는 주문 제작한 케이크를 들고 왔다.
“대박, 여기 예약하기 엄청 힘들지 않아?”
“다행히 솔로 데뷔 기사 뜨고 예약 시작해 가지고 광클해서 성공했어.”
요즘 아이돌 팬들 사이에서 ‘개떡같이 그려도 찰떡같이 레터링 디자인해 주는’ 케이크숍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소량만 주문 제작해서 문스트럭도 몇 번 실패한 전적이 있는 곳이었다.
“기사 봄? 애들 카메오 출연한다더라.”
“아, 진짜? 애들 찾는 재미도 있겠네.”
6시가 되자마자 세 명 모두 스트리밍 권장 리스트를 설정하고 뮤직비디오로 눈을 돌렸다.
“이런 X친, 장발!”
-충격 차지운 장발 실존
-장발이 어울려야 진짜 남자임ㅇㅇ
-ㅈㄴ아름다워 미X
“지운이는 동양풍이 진짜 잘 어울려.”
“방금 지나간 거지 두 명 재봉이랑 선우 아님?”
“아, 꼬질한 시골 강아지들 같아, X나 귀엽네.”
실시간 댓글에서도 깨알같이 등장한 멤버들을 찾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아이곸ㅋㅋㅋ큐ㅠㅠㅠㅠ
-왜케 꼬질하냐ㅋㅋㅋㅋㅋ귀여웤ㅋㅋㅋㅋ
-아니 왜 선우만 거지 분장임ㅡㅡ
-사격중지 선우 크림왔는데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한거란다
└예전에 아역으로 거지 역할도 했었잖앜ㅋㅋㅋㅋㅋㅋㅋㅋ
└백만년만에 끌올해야겠다
K는 입도 뻥끗하지 못하고 뮤직비디오에 몰입한 지 오래였다. ‘적화’라는 제목에 걸맞게 붉은 색감이 많이 사용되었다. 붉은색과 검은색의 조화가 묘한 섹시함을 주기까지 했다. 퓨전 동양풍이어서 다양한 장르가 섞여서 기존의 동양풍과는 차별점을 두었다.
붉은 계열의 두루마기를 입었는데, 지운의 슬렌더 체형에 딱이었다. 스타일링에도 공을 많이 들였다고 들었다. 넥 라인이 깊게 파여서 유독 긴 목선이 잘 보이는 점도 좋은 선택이었다. 눈가의 붉은 기가 도는 화장은 지운의 흰 피부를 더욱 희게 보이게 했다.
[오늘 밤 저 달이
붉게 피어올라
한 송이 꽃을 피워 내
네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
각자 최애 찾기에 몰두한 중, 드디어 승빈이 등장했다.
[스치듯 바람 타고
날아간 꽃잎이여
붉게 떠오른 달 위로
고요히 내려는 날
모든 달빛을 품에 안으리]
“아, 미X…….”
사극 분위기를 내는 승빈은 시크릿 싱어 도령 캐릭터 이후로 처음이었다. 게다가 허리까지 내려오는 장발이라니. 사실 승빈과 지운의 칼싸움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비주얼이 주는 충격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이런 ㅁㅊ
-저런 푸르뎅뎅한 아이새도우가 잘 어울릴 수 있는거임?
-둘다 비주얼 도랐다 진짜
-적색과 청색의 대결이냐고;;
짧은 분량이었지만 엄청난 충격이었다. 이미 짹짹이 실시간 트렌드에는 지운과 승빈의 이름으로 도배가 되었다. 발 빠른 일부 팬 계정에서는 여러 보정법으로 둘의 칼싸움 장면을 움짤로 만들어서 올리고 있었다.
“야, 된 거 같지.”
“무조건.”
“이건 1위가 문제가 아니라, 케이 팝 역사에 길이 남을 명반이다, K야.”
“지금 승빈이 장발에 눈이 돌아 버린 건 아니고?”
“어쩌다가 딱 나랑 정연이를 불렀냐?”
“아니 시간 되는 애들 부른 건데.”
그사이 멤버들의 크림 메시지도 불타오르고 있었다.
[승빈이!: 지운이 형 노래 나왔다(불꽃 이모티콘)]
[승빈이!: 뮤직비디오도 잘 봤어? 노래 짱 좋지!!]
[승빈이!: 나는 지금 멤버들이랑 같이 뮤직비디오 보는 중ㅎㅎ]
[승빈이!: 수록곡 중에는 뭐가 제일 좋아? 아~ 날개라고?]
[승빈이!: 답정너 같다고?]
“승빈이 이렇게 신나서 쫑알거릴 때마다 진심 한입에 넣고 싶어.”
“승빈이 요즘 되게 투명해진 거 같지 않아? 뭔가 더 솔직해진 느낌이야.”
“맞아, 장난도 많이 치고 귀여워-”
“이제 노래 좀 제대로 들어 보자. 수록곡들도 맛집이라고 벌써 난리 남.”
“날개부터 들어도 됨? 승빈이 피셜 제일 좋은 곡이라네?”
“네 뇌피셜은 아니고?”
문스트럭과 정연이 ‘날개’를 더 기대하는 이유가 있는데, 2절 중간에 승빈의 피처링이 있기 때문이다.
[Spread my wings
끝없이 펼쳐진 하늘 위로
멈추는 방법 따윈 잊어버려]
“미X, 지운이 음색 왜 이래?”
“나 이 음역대 지운이 목소리 진짜 좋아하는데, 승빈이 천재 아니야?”
“당연하지!”
평소 크리드의 타이틀곡에서는 좀처럼 듣기 힘든 음역대의 목소리였다. 역시 멤버가 만들었기 때문에, 노래를 부를 사람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곡이었다. 평소 승빈의 서정적인 감성이 들어간 자작곡을 좋아하는 문스트럭은 언젠가 승빈이 커버해 주길 바랐다.
[더 높이 날아 봐
이카루스의 날개가 되어
설령 추락한다 하더라도
Trust your wings
다시 날아오를 날개가 내겐 있어]
드디어 승빈의 파트가 나오고, 혜진과 정연은 숨 쉬는 타이밍조차 잃은 듯했다. 그리고 승빈의 커버에 대한 열망은 더욱 강해졌다.
[절대 꺾이지 않을 My wings
태양 가까이 더 올라가 봐 Like Icarus
But I won’t fall
Go up, never stop!]
K 역시 가사를 보며 승빈에 대한 고마움을 감추지 못했다.
“지운이도 크림 왔다.”
“히익, 엄청 장문이네?”
“응. 지운이 가끔 삘 받으면 이렇게 엄청 장문으로 와.”
“스크롤을 내려야 할 정도인데?”
[지운: K! 드디어 오랫동안 준비했던 솔로 앨범이 공개됐어요. 마음에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잘 들어 줬으면 좋겠어요… 같이 도와준 멤버들에게도 고마운 하루입니다. 이번 활동도 다치지 않고 K와 클로버들에게 행복을 줄게요. 항상 고마워요, 사랑합니다.]
“아직 말 안 놓았구나?”
“맞아. 유현이랑 지운이는 아직 존댓말 쓰더라.”
“근데 또 잘 어울려, 그게.”
“근데 또 중간중간 이모티콘은 엄청 많이 넣어서 의외야.”
크림 메시지로 촉촉해진 마음이 곡 소개를 보고 나서는 더욱 뭉클해졌다.
[새로운 도전을 앞둔 지운이 형에게 날개를 선물하고 싶었습니다. 형에게뿐만 아니라, 날아오르고자 하는 모든 분에게 위로와 힘을 주는 곡이길 바랍니다.]
짧지만 멤버 형에 대한 애정과, 노래를 듣는 사람들에 대한 마음이 담긴 소개 글이었다.
“승빈이는 애가 왜 이렇게… 기특한 말만 하냐?”
“야, 그러니까 내가 지금 5년 가까이 승빈이한테 붙잡혀 있는 거 아니겠냐?”
“나도 벌써 3년 지남…….”
“정연이 너는 진짜 혜진이 때문에 벼락 맞은 거 아니었냐?”
“K 네가 할 말은 아닌 듯…….”
“솔직히 제일 벼락은 너 아니냐? 무슨 카메라에 들어온 얼굴이 전생에도 사랑했을 얼굴이라 하지 않나…….”
“아니, 근데 그게 진짜라니까? 삘이 찌르르 왔다고-”
넘쳐나는 아이돌 판은 이미 돌림판이 된 지 오래였다. 매번 대세가 바뀌는 이 살벌한 판에서 5년 가까이 한 아이돌에게만 올인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셋 중 그 누구도 이렇게 오랫동안 사랑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근데 솔직히 아직도 크리드가 제일 재밌음.”
“재밌기만 하냐? 잘생겼음.”
“근데 효자임.”
“이게 제일 중요하지.”
크리드는 이런 그녀들을 또 감탄하게 만들었다.
[지운이 형 솔로 축하해 줄 클로버 구함!]
“진짜 한시도 한눈팔 틈을 안 준다니까?”
“단체 에이앱인가?”
세 명의 기대에 부응하듯, 단체 에이앱이 시작됐다. 멤버들과 같이 뮤직비디오를 보고 있다는 것이 일종의 스포였다.
“클로버! 지운이 형 노래 나왔어요!”
“노래 너무 좋죠?”
‘크망진창’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었다. 가운데에 앉은 지운과 유현, 승빈을 제외한 네 명은 카메라 밖으로 나가면서까지 격하게 축하했다.
“애들 텐션 미쳤네.”
-솔로 데뷔 축하해 지운아!!
-애들 너무 따숩…
폭주하는 텐션 속에서 승빈이 익숙하게 진행자 역할을 했다.
“오늘 저희가 이렇게 다 같이 모인 이유가 있죠?”
-승빈이가 고생이 많다…
-애들 저러다가 유현이한테 한 소리 들을거같음ㅋㅋㅋㅋㅋㅋㅋ
“원래 지운이 형 솔로 에이앱이 예정되었는데, 형이 꼭 저희랑 같이해야 한다고 해서~”
“그게…….”
-지운이 부끄러워한닼ㅋㅋㅋㅋㅋ
-볼 빨개졌엌ㅋㅋㅋㅋㅋ
“아직 저 혼자 뭔가를 한다는 게 어색하기도 하고, 이번 앨범에 멤버들이 정말 많이 도움을 줬거든요. 승빈이는 곡도 선물해 주고, 윤빈이는 프로듀싱할 때 많이 도와줬고, 다른 멤버들은 뮤직비디오 출연도 해 주고… 그래서 멤버들과 함께 앨범 얘기도 하고, 편한 분위기에서 에이앱하고 싶어서 다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댓글로 궁금한 거 질문해 주세요!”
“으아- 너무 빨라요, 클로버! 조금만 천천히!”
-그게되나 적당히 댓글 쓰는게
-승빈이 당황한 거 왜이렇게 귀여워
“오, 이거 좋은 질문이다. 앨범 제목이 ‘Promise’인 이유는?”
“많은 의미가 있어요. 음악으로 기쁨을 드리겠다는 약속, 솔로 앨범이지만 크리드로서의 정체성은 잃지 않겠다는, 오래오래 클로버 곁에서 음악하겠다는 약속이 담겨 있는 앨범이라서 ‘Promise’로 정했습니다.”
“앨범 곡 중 최애곡은?”
“음, 마지막 트랙인 ‘Promise’와 승빈이가 선물해 준 ‘날개’요.”
“오, 감동인데요?”
“‘Promise’는 가사 쓰면서 정말 많이 고민했던 노래예요. 우리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거든요. 다행히 멤버들이 옆에서 격려해 주고, 도와준 덕분에 무척 마음에 드는 결과물이 나왔다고 생각해요.”
“그 노래 녹음할 때 모두 목표가 안 울기였잖아요.”
-ㅁㅊ
-하긴 나였으면 녹음하다가 오열해서 퇴장당함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이겨내자는 약속을 믿고 험한 길도 피하지 않아- 이런 가사 어떻게 생각해낸거임
-선우는 백퍼 울었을듯ㅋㅋㅋㅋㅋ
“…살짝 울컥했지, 울진 않았어요!”
박선우의 속이 다 보이는 거짓말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날개는 일단 승빈이가 선물로 줬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곡이에요. 제가 한번은 왜 이 곡 나한테 선물했냐고 물은 적이 있거든요. 그때 대답이 되게 인상적이었어요, 감동받았고.”
“뭐라고 했는데요?”
“그냥 본능적으로 이 노래는 저한테 줄 곡이라고 느꼈대요.”
지운의 말에 세 명 모두 들고 있던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제가 곡을 만들 때, 주변 사람들한테 영감을 많이 받거든요. 다른 멤버를 보고 떠오르는 감상이나, 영감도 곡으로 만들곤 했어요. ‘날개’는 오롯이 지운이 형을 떠올리며 만든 곡이에요. 많은 분이 가사가 지운이 형과 잘 어울린다고 해 주셔서 뿌듯했습니다!”
셋은 오늘도 문승빈에게 졌음을 인정했다. 아무리 크리드를 사랑해도 문승빈을 이길 수 없다는 묘한 패배감까지 느껴질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