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329화 (329/346)

329화

그룹의 첫 번째 솔로 활동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나의 자작곡뿐만 아니라 다른 멤버들도 형의 앨범에 지원 사격을 자원했다.

선우 형과 강도현은 랩 가사 메이킹과 녹음에 참여했고, 유현이 형은 브릿지에 참여했다. 형의 솔로 앨범임에도 불구하고, 크리드의 연장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마지막 트랙인가요?”

“응.”

“여러 곡을 미리 작업해서 준비 기간이 짧았다지만, 이렇게 빨리 마칠 줄은 몰랐어요.”

“여름 데뷔를 목표로 작업해서 그런 거 같아.”

“마지막 트랙 제목이… ‘Promise’네요?”

“응. 그래서 우리 팀 모두한테 피처링을 부탁한 거야.”

약속을 의미하는, 가제로만 알던 곡이었는데 형의 단독 작사‧작곡으로 만들어진 곡이다. 가장 궁금한 곡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이번 앨범명도 ‘Promise’이잖아요.”

“응. 가장 이 앨범을 잘 표현한 곡이어서 제목을 똑같이 지었어.”

“근데 왜 우리 모두를…….”

“내 솔로 활동이지만, 크리드의 연장선인 앨범으로 만들고 싶었거든.”

내가 느꼈던 감상과 똑같은 말을 해서 조금 놀랐다. 보통 그룹에서 솔로 활동을 하면 그룹 색을 벗어난 콘셉트나 음악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룹을 떠올리게 하면 신선함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반응이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또, 그룹 활동을 하면서 하지 못했던 음악을 하면서 개인적인 아쉬움을 푸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 점에서 지운이 형은 꽤 똑똑한 선택을 했다. 분명 크리드의 음악과는 색이 다른 개성이 강한 곡들과 비슷한 감성의 곡들을 섞어서 앨범을 구성한 것이다. 트랙 구성을 절묘하게 하니,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형, 저희 왔어요!”

“어? 문승빈 너는 언제 와 있었냐?”

“하여간, 다들 느려-”

“야, 약속 시간 안 지킨 건 너거든?”

“일찍 온 것도 안 지킨 거냐?”

“우리한테 느리다고 할 일은 더 아닌 거 같은데?”

이제는 익숙한 티격태격이다. 티키타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항상 난감하게 가운데에서 웃던 지운이 형도 익숙하다는 듯 나와 강도현은 뒤로 두고 다른 멤버들에게 디렉팅을 하기 시작했다.

“파트가 적지만, 그래도 참여해 준다고 해 줘서 고마워.”

“에이, 파트가 중요한가요? 형 앨범에 참여하는 게 중요한 거지-”

“맞아. 우리한테도 피처링 요청이 올 줄은 몰랐어요.”

“너희 목소리가 꼭 필요해서-”

형의 가이드로 들었을 때도 좋은 노래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지만, 전체로 들으니 우리의 목소리로 채워질 결과물이 더 기대됐다.

“선우 형 먼저 녹음 시작할까요?”

“알았어. 나 근데 부르다가 좀… 울컥해도 놀리지 마라?”

“뭐야, 벌써 밑밥 깔고 가는 거예요?”

“근데 솔직히 인정해 줘야 해. 지운이 형이 작정하고 쓴 거 같던데?”

선우 형은 굳게 결심한 듯 위풍당당하게 녹음실로 들어갔다.

[뜨거운 여름 눈물과 웃음 속에서

서로의 약속을 맹세했어

절대 뒤 돌아보지 않고

잡은 손을 놓지 않기로]

형의 낮은 목소리로 차분하게 시작한 랩은 점점 고조되는 멜로디와 함께 감정을 터트렸다.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까지

끝을 알 수 없는 길일지라도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이겨 내자는

약속을 믿고 험한 길도 피하지 않아]

“선우 형 저렇게 거칠게 랩하는 거 너무 오랜만에 듣는 거 같아.”

밖에서 선우 형이 언제 울지 내심 놀릴 생각으로 기다리던 멤버들도 점점 진지하게 형의 녹음에 빠져들었다.

“지운아, 미안하다, 너무 감정적으로 한 거 같아.”

“아니야, 선우야. 딱 좋았어. 네 목소리에서 가장 듣고 싶었던 소리가 나와서 너무 좋았는데?”

“정말?”

“응. 그리고 안 울었잖아. 그걸로도 이미 백 점이야.”

“나 진짜 필사적으로 참았다!”

우는 것으로 놀릴 수가 없으니, 녹음실에 나온 형에게 레드 카펫처럼 연습실에 있던 수건을 깔았다.

“이건 뭐야?”

“자, 울지 않고 녹음을 마친 선우 형 나오십니다!”

“다들 박수!”

잠깐 어이없다는 듯 우리를 흘겨보던 선우 형이 머리를 쓸어 넘기며 표정을 싹 바꿨다.

“아, 이런 거까지 준비했을 줄이야…….”

그러곤 정말 뻔뻔하게 수건으로 만든 길을 사뿐사뿐 걸어갔다. 지운이 형은 아예 엎드려서 들썩이며 웃었고, 유현이 형만 또 이마를 짚었다.

* * *

“이제 2회차만 남았다니.”

“확실히 영화 촬영이 드라마 촬영보다 빨리 끝나긴 하는구나.”

“뭔가… 시원섭섭하네요.”

“그러게, 나랑 또 언제 같이 작업을 할지 모르겠어서 더 아쉽지?”

유현재 이 인간, 까칠함이 줄어든 공간을 능글거림으로 채운 게 분명하다.

“아, 예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지난 2년 동안 유현재는 톱스타 반열에 올랐으니까. 20대 남성 배우 중 인기 투표를 하거나, 대중성을 지표로 내면 언제나 1, 2위를 다투는 위치가 되었다. 배우계에서는 더 이상 라이징이 아니었다.

“형, 드리밍 다음에 차기작 정해졌다고 했죠?”

“응.”

“장르가 뭐예요?”

“로맨스…….”

“오, 드디어 좀 착한 역할을?”

“스릴러.”

“아.”

순식간에 유현재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래도 로맨스니까…….”

“소시오패스 역할이야.”

“…와우.”

“게다가 상대역이 하, 이게 제일 문제다.”

“설마 민정 누나예요?”

“어.”

결국 참지 못하고 의자가 휘청거릴 정도로 웃었다. 저 둘이 교복 입고 청춘 로맨스 찍을 때도 놀리는 재미가 있었는데 로맨스 스릴러? 이거 완전 10년 치 놀림감이다.

“기대할게요!”

“하… 왜 이렇게 김민정이랑 붙는 작품이 많지?”

둘은 화가 나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얼굴 합이나 연기할 때 케미는 무시할 수 없다. 괜히 ‘파아란’ 당시 서브 커플이었는데도 공식 커플보다 더 인기를 얻었던 게 아니었다.

“너는 계획 없어?”

“음… 계속 시나리오랑은 들어오고 있는데 지금은 신중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같은 팀 형이 솔로 앨범 준비 중이거든요. 앨범에 참여하게 돼서, 당분간은 거기에 집중할 것 같아요. 형 솔로 활동 끝나면 크리드 앨범 준비도 해야 하고요.”

“역시 바쁘네.”

“근데 드리밍처럼 놓치기 싫은 작품 만나면… 꼭 하고 싶어요.”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연기 안 하기엔 아까워.”

“뭐야, 형 그런 말도 할 줄 알아요?”

“내가 뭐?”

“벌써부터 소시오패스 연기 하는 거 아니죠?”

“아니,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눈 하나 깜짝 않고 거짓말하는 게 소시오패스잖아요.”

유현재는 어이가 없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더니 내 코를 아프지 않게 쥐고 흔들었다.

“아주 그냥 형한테 못 하는 말이 없어-”

“아, 메이크업 쌤한테 혼나요!”

“나한테 혼날 거는 생각 안 했냐?”

결국 감독님께 곧 촬영인 놈들이 코랑 귀가 빨개져서는 잘하는 짓이라고 한 소리를 들었다.

“잘하셨어요. 오늘 마침 현수 대신 지석이가 맞는 장면 촬영하는데 분장 안 해도 좋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두 분이 촬영 전부터 이렇게 몰입할 줄이야…….”

“저희가 잘못했어요, 감독님!”

영화 촬영을 하면서 하루종일 붙어 있는 날이 많아서였을까, 김성진 감독과도 허물없이 농담이 오가는 사이가 되었다.

“자, 빨리 메이크업 수정하고 촬영 시작합시다!”

“네!”

[지석, 일진 무리에게 집단 폭행을 당하는 현수를 발견. (충격받은 얼굴) 들고 있던 경기 분석 노트를 떨어트리고 곧장 달려간다. 학생을 밀치고 현수를 일으켜 세우지만, 곧 폭행에 휘말리게 된다.]

“비켜요, 쌤. 미쳤어? 비키라고!”

“너, 일주일 뒤에 윽, 시험인 놈이, 컥!”

[자신의 위에서 주먹과 발길질을 버티던 지석의 무릎을 노리는 것을 발견한 현수, 필사적으로 손을 뻗어 지석을 밀쳐 낸다. 폭행 사건에 휘말리면 출전 정지 처분을 받을 것을 걱정한 지석, 무리에 달려드는 현수의 발목을 붙잡는다.]

“작작해, 미X 새X들아!”

“안 돼, 현수야!”

대본을 읽으면서도 울컥한 부분이었는데, 연기에 몰입하니 저절로 눈물이 고였다.

[엉망진창이 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진수는 현수에게 묻는다. (약간 화가 난 목소리로)]

“왜 그렇게 무모하게 달려든 거냐.”

“그 새X…….”

“말, 험하게 하지 말라고 했지.”

“그럼 뭐라고 해요? 그 사람? 걔네? 그 친구? 새X라고 부르는 것도 많이 참은 거예요!”

[지석, 피식 웃음이 터진다.]

“그래, 나도 이번엔 나쁜 말 좀 해 보자. 그 새X들한테 왜 달려들었던 거야?”

“참으려고 했어요. 근데 그 새X들이 우리 팀을 욕했어요. X신같은 것들이 축구가 뭐냐고.”

“…못 참을 만했네.”

“그리고, 코치님 무릎을 노렸었다고요.”

[지석, 무언가로 뒤통수를 맞은 듯 깨달은 표정. 몇 걸음 앞서가는 현수를 뒤따라 머리를 헝크리며 말한다. ]

“역시, 우리 팀 공격수 에이스야.”

“컷!”

“수고하셨습니다!”

“승빈 씨, 마지막 표정 너무 좋았어요.”

“감사합니다! 다행이네요, 연습할 때 제일 고민했던 표정이었는데.”

지석이 온전히 현수를 시작으로 축구 팀에 마음을 주게 되는 장면이라고 생각해서 더 공을 들였다. 그런 점을 감독님이 바로 알아봐 주니 뿌듯함을 감출 수 없었다. 유현재 역시 눈물이 날 장면이 아닌데 위험했다고 말했다.

촬영을 마치고 감독님, 유현재와 함께 저녁 식사 장소로 이동했다. 종종 촬영이 끝나고 저녁 식사를 함께 했지만, 이 세 명의 조합은 처음이었다.

“저는 중간에 스케줄 때문에 먼저 가야 할 거 같아요.”

차기작 촬영이 잡힌 유현재가 떠난 후, 김 감독님과 둘만 남았다. 한두 잔 술이 들어가면서 김 감독도 점점 속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촬영하면서 어땠어요?”

“많이 배웠어요. 감독님과 정말 작업하고 싶었는데, 촬영마다 꿈꾸는 기분이었고요.”

“그 정도였어요?”

당연하지. 이미 한번 놓친 기회를 다시 얻은 건데, 매 촬영 그냥 보내는 날이 없었다.

“나는 승빈 씨 볼 때마다 아까워.”

“왜…….”

“가끔 그런 생각도 해, 승빈 군이 아이돌이 아니라 배우였으면 어땠을까?”

“제가요?”

“응. 만약 배우였다면 쭉 같이 작업했을 텐데. 가끔은 아이돌 활동하지 말고 배우만 해 달라고 하고 싶을 정도야.”

“…….”

“근데 아이돌로 무대 위에 승빈 군이 너무 행복해 보여서, 내가 괜한 욕심을 부리고 있구나- 깨닫지.”

기분이 묘했다. 회귀 전이었다면 분명 김 감독의 페르소나 배우가 되어 더 유명한 배우가 되었겠지. 하지만, 쓰게 웃는 김 감독에게 형식적인 미소만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기회만 되면 또 감독님 작품에 참여하고 싶어요.”

“그래요. 또 승빈 군이 아니면 안 되는 캐릭터를 만들면, 그때도 꼭 내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 줘요.”

“감사합니다.”

짠 소리와 함께 남은 미련도 다 털어 내듯 김 감독이 술잔을 비웠다. 어쩌면 내 회귀로 김 감독은 일생일대의 페르소나를 잃은 것이겠지. 뭔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일말의 아쉬움도 들지 않았다. 이제 내게는 크리드가 우선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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