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328화 (328/346)

328화

무대를 마치고 숙소에 돌아오니 멤버들이 거실에 모여 있었다. 꽤 늦은 시간인데, 무슨 일이지.

“다들 뭐 해요?”

“너 슬럼프 극복 기념으로 우리가 뭐 준비했지!”

“네?”

대체 무엇을 준비한 건가 하고 봤더니, 일곱 개의 컵케이크 위에 초코 아이싱으로 [축 슬럼프 극복!]이 적혀 있었다. 덕지덕지 발라서 엉망인 생크림 위로 삐뚤빼뚤 적힌 글씨 때문에 한참을 웃었다.

“이런 건 언제 준비한 거예요?”

“다 같이 모여서 너 무대하는 거 보고 부랴부랴 만들었지.”

“진짜… 고마워요.”

“뭐야, 울어? 우는 거야?”

“너무 감동이었나?”

“웃겨서 웃는 거예요, 이 사람들아!”

곧장 핸드폰을 꺼내 여러 각도에서 열 장 넘게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멤버들과 먹어 치웠다. 분명 평범하기 그지없는 푸석한 컵케이크였는데, 그 어떤 디저트보다 달콤했다.

“누가 낸 아이디어야?”

강도현은 주변을 잠시 살펴보더니, 유현이 형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작게 귓속말했다.

“놀라지 마, 유현이 형이 하자고 했어.”

“유현이 형이?”

“응. 애들도 다 너랑 같은 반응이었음. 유현이 형이 말 안 해도 너 슬럼프 있는 동안 고민 많아 보였어.”

평소의 유현이 형이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이벤트였기 때문에 더 감동이었다. 다른 멤버들에게도 고마움이 컸다. 슬럼프는 당사자도 힘들지만, 주변인들에게도 힘든 시간이다. 내가 조금 늦더라도 곁에서 기다려 주겠다는 지운이 형의 말이 단순히 나를 안심시키기 위한 말이 아니었음을 확인받는 순간이었다.

“맞다. 이거 클로버 보여 줘야지.”

“헐, 형 여기 ‘축’ 자 제가 쓴 거라고 꼭 말해 주세요. 재봉이가 제-일 잘 썼다는 멘트도 붙여 주면 고맙고요~”

“야, 무슨 네가 쓴 게 제일 잘 썼냐? 저기 ‘슬’이 제일 예쁘지 않냐?”

“완전 도토리 키재기, 오십보백보야.”

“윤빈아, 그런 표현은 또 어디서 배웠어?”

“지난번에 선우 형이 추천한 웹툰 보는데, 거기서 배웠어요. 지운이 형도 볼래요?”

강도현과 박재봉은 서로 윤빈 형의 말을 부정했다.

“오십보백보?”

“도, 도토리 키재기요? 저 형이 쓴 거랑 내 꺼가?”

“둘 다 비교할 수 없이 잘했다는 뜻이었는데…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닌가 보네, 미안…….”

시무룩해진 윤빈 형에 두 사람 모두 안절부절못하며 해명하기 시작했다.

“아, 그런 뜻이었어요? 아니에요! 형 한국어 실력은 최고예요!”

“그게 그…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쓸 때 사용되는 표현이어서 그런 거였어요.”

“아, 그래? 그럼 이럴 땐 뭐라고 해?”

“우열을 가릴 수 없다?”

“용호상박?”

‘윤빈 형은 사람이 너무 착해서 탈이라니까?’

“윤빈아, 이렇게 우열을 가릴 수 없이 못하는 두 가지를 비교할 땐 도토리 키재기라고 해도 돼!”

“선우 형, 형이 쓴 게 제일 못났거든요?”

“막말하지마, 도현아~”

정말 저 셋은 한시도 티격태격하지 않는 순간이 없다. 가운데에 있는 윤빈 형만 너털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일 뿐이었다.

“아니면 클로버한테 글씨 맞춰 보라고 할게.”

“오, 그거 재밌겠다.”

“내 글씨체는 당연히 알아보겠지?”

[승빈이♡: (사진)]

[승빈이♡: 짠! 오늘 무대 마치고 숙소 가니까 멤버들이 서프라이즈 준비해줬어ㅋㅋㅋㅋ]

옆에서 보던 강도현이 틈을 놓치지 않고 장난을 걸었다.

“와, 이름 옆에 하트 뭐냐?”

“또혀니라고 한 네가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

“클로버가 투표로 정해 준 거거든?”

“그래서 귀엽다고~”

[승빈이♡: 멤버들 너무 귀엽짘ㅋㅋㅋㅋㅋ유현이 형이 하자고 했대]

순식간에 다양한 답변들이 쏟아졌다.

-유현이가? 대박

-따수운 크리드ㅠㅠㅠㅠㅠㅠㅠㅠ

-슬럼프 극복했다고 이벤트 해주는 아이돌이 있냐고…

-케이크 상태 무슨일이얔ㅋㅋㅋㅋㅋㅋㅋㅋ

[승빈이♡: 멤버들이 한 글자씩 적은 건데 서로 자기 글씨가 제일 예쁘다고 싸웠엌ㅋㅋㅋㅋㅋ 어떤 게 제일 예뻐?]

-‘프’랑 ‘복’이 제일 예쁘네

-프!

-복이 그나마…

-프나 복 유현이랑 지운이가 썼을 듯?

“아니, 어떻게 내 글씨를 못 알아보는 거지?”

“근데 프랑 복이 유현이 형이랑 지운이 형이 쓴 게 맞아?”

“…어.”

“아, 자존심 상해.”

[승빈이♡: 역시 유현이 형이랑 지운이 형 글씨가 예쁘지]

[승빈이♡: 재봉이랑 강도현 엄청 자존심 상해 하고 있엌ㅋㅋㅋㅋㅋ]

“아, 그런 거까지 다 말해 버리면 어떻게 해-”

“너도 크림으로 해명하든가~”

“당장 이 오명에서 벗어나겠어.”

덕분에 팬들에게는 재밌는 이벤트가 열렸다. 강도현과 박재봉이 상태 메시지를 [‘슬’프지 않아], [‘축’하해줘요!]라고 하자 알아챈 팬들이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슬을 도현이가 한거였냐곸ㅋㅋㅋㅋㅋ

-미안하다 도현아 그래도 차마 제일 예쁘다고 할 수 없을 거 같아

-나름대로 티 안내고 알려준거 아니냐곸ㅋㅋㅋㅋ

-골때렼ㅋㅋㅋㅋㅋㅋ

-지운이가 ‘프’였나봨ㅋㅋㅋ‘프’사 뭐로 바꿀까요 랰ㅋㅋㅋㅋ

-윤빈이는 ‘lum’pumpum이라고 했넼ㅋㅋㅋ

“애들 상태 메시지가 왜 이래?”

뒤늦게 확인한 유현이 형이 물어보자, 박재봉이 어깨를 으쓱였다.

“도현이 형과 도토리 키재기 같은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아서요.”

“나도거든!”

“재밌어 보여서요!”

“형도 해 봐요~”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유현이 형은 말없이 우리를 지켜보다가 곧장 방으로 향했다.

“우리 엄청 유치하게 보였나 봐.”

‘그럼 아니겠냐고…….’

나도 유현이 형의 뒤를 따라 방으로 향했다.

“더 놀다가 들어오지.”

“저 오늘 무대 잘했어요?”

“처음에 인이어는 왜 그랬던 거야?”

“에이, 티 안 나는 줄 알았는데 역시 형은 알아봤네요.”

“그런 건 잘 확인했어야지.”

“그래도 잘 불렀죠?”

답정너로 보이겠지만, 듣고 싶은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 또 슬럼프라는 핑계로 그러면 가만 안 둘 거야.”

“저도 사람인데- 그때도 이렇게 옆에서 응원해 줄 거잖아요.”

뻔뻔한 응석에 유현이 형은 고개를 저으며 헛웃음을 지었다.

“하여간, 뻔뻔해지기만 했어.”

“크리드 5년 차면 이 정도 뻔뻔함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죠-”

“…….”

“넵.”

금세 깨갱하는 나를 보고 유현이 형이 이불을 꽉 쥐는 것이 보였다.

‘왜 저러지, 너무 선 넘었나……?’

하지만 곧 박장대소하는 유현이 형을 보고, 되려 내가 당황했다. 저 형이 저렇게 웃는 건 처음 봤다. 아니 근데, 지난번 계약 소식에 기척도 없이 눈물을 흘리던 것처럼 웃는 것도 뜬금없구나.

“넌 진짜… 애가 종잡을 수가 없어.”

“저는 꽤 얌전한 편 아니에요? 선우형이나 재봉이에 비하면.”

“넌 너무 혼자 해결하려고 하고, 조용히 사고 치는 타입이잖아. 그게 더 힘들어. 선우나 재봉이는 요란하니까 내가 바로 알아채는데, 넌 극한까지 갔을 때야 눈치채게 되니까 더 어려워.”

“…형한테 그러지 말라고 했던 게 저였던 거 같은데.”

“맞아. 너도 좀 그렇게 해 봐. 네가 말을 안 하면 내가 알 수 없잖아.”

난감했다. 망할 상태창 새X가 자기가 만든 시나리오대로 움직이지 않으니 제 스텟창에 장난을 치고, 멘탈을 흔들었어요- 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힘들면 힘들다고 꼭 말할게요.”

“왜 힘든지는?”

“이유를 알 수 없이 힘든 일도 있는 거잖아요?”

끝까지 굽히지 않는 선 앞에서 유현이 형은 더 넘어오지 않았다.

“그래. 가족 사이에도 비밀은 있는데.”

“이해해 줘서 고마워요.”

“대신 힘들 땐 힘들다 정도는 말해 줘. 난 이 그룹 리더야, 누구 하나의 기분이나 컨디션 때문에 팀이 흔들리는 걸 두고 볼 순 없어.”

매번 느끼지만 유현이 형이 리더여서 다행이다. 이럴 땐 절대 넘을 수 없는 상태창의 비밀이 야속했다. 만약 내 힘듦이 모두 터놓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면 유현이 형과 더 돈독해질 수 있었을까?

“그럼요.”

나중에 알았지만, 유현이 형의 상태 메시지도 바뀌어 있었다.

[행복만 남도록]

* * *

지운이 형의 솔로 앨범에 자작곡을 선물해 주기로 했다. 처음에는 나중에 내 솔로 앨범에 넣으라며 거절했지만, 끈질기게 밀어붙이니 형도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녹음 시작할게요!”

“응.”

형에게 선물한 곡의 제목은 ‘날개’다. 이번 솔로 앨범 활동을 통해 형의 음악과 실력에 날개를 달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가사는 전부 내가 작사했고, 작곡과 프로듀싱에는 윤빈 형이 공동 참여했다.

“인트로부터 가 볼게요-”

[Spread my wings

끝없이 펼쳐진 하늘 위로

멈추는 방법 따윈 잊어버려]

형의 유니크한 음색과 어울리게 변주가 많은 멜로디의 곡이다. 익숙한 코드 진행은 아니지만, 들을수록 귀에 꽂히는 매력을 노린 곡이었다.

“오케이! 오늘 목 상태 좋은 거 같은데요?”

“그래? 다행이다.”

처음에는 긴장한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던 형도, 첫 소절을 녹음한 후에는 거짓말처럼 여유롭게 녹음을 진행했다.

[이제는 날개를 펼칠 시간

움츠렸던 시간을 딛고

가장 높은 곳을 향해

Never look back again]

형은 특정 음역대에서 서늘한 느낌을 주는데, 그 매력을 극대화하고 싶었다. 청량함과 서늘함은 한 끗 차이고, 형의 목소리는 그 두 가지를 모두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절대 꺾이지 않을 My wings

태양 가까이 더 올라가 봐 Like Icarus

But I won’t fall

Go up, never stop!]

비교적 잔잔한 1절과 달리 강렬한 밴드 사운드가 들어가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전환되는 파트다. 형은 분명 좋은 음색과 보컬 실력을 가지고 있지만, 폭발력 있는 보컬을 보여 준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 곡을 통해 형이 이런 터트리는 보컬도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

“대박! 형, 너무 잘 나왔는데요?”

“고마워. 네 가이드 듣고 많이 연습했어.”

역시 내가 준 가이드와 보컬 연습 노트를 100% 소화한 형이다. 처음 보컬 노트를 줄 땐, 너무 집요하게 정리한 것을 보여 준 것 아닐까 걱정했는데 쓸데없는 고민이었다.

“녹음 마칠게요!”

“벌써?”

“네. 윤빈 형도 그렇고 제가 들어도 너무 완벽해서요.”

윤빈 형도 벌떡 일어서서 녹음실 부스를 향해 양손 엄지를 치켜들었다. 특유의 잇몸이 다 보이는 미소는 덤이었다.

나머지 작업이 남은 윤빈 형을 두고 먼저 숙소로 향하는 길에, 지운이 형이 물었다.

“근데 이 곡… 왜 나 준다고 한 거야?”

“원래 형 곡이었거든요.”

“원래 내 곡?”

형은 모를 수밖에 없다. 이 곡의 가사 대부분은 회귀 전 형과 작업했던 곡에서 가져온 것이었으니까. 티벡스로 도저히 미래가 보이지 않던 날 속에서 형은 음악 작업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우리 다음 앨범 활동할 때 쓸 곡은 항상 준비해야지.]

그땐, 다음 앨범이라는 게 있을까요? 라고 비관적인 질문이 나오는 것을 참느라 힘들었다. 목구멍 끝까지 차올라도, 확신에 가득한 눈으로 작업을 하는 형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 곡들은 당연히 세상에 나올 기회가 없었고, 작업실 컴퓨터 휴지통에 버려져 있겠지.

“노래를 만드는데, 그냥 본능적으로 느꼈어요. 이건 형한테 줄 곡이라고.”

나와 형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던 그 곡들, 차곡 차곡 꺼내 보자는 말은 홀로 삼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