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7화
“무대하는 건 승빈이인데 왜 내가 더 떨리냐…….”
투마월 시작부터 거의 매 순간의 승빈을 담기 위해 스케줄에 참여했지만, 오늘만큼 떨리는 날은 처음이었다. 혜진은 애꿎은 카메라만을 만지작거리며 빨리 승빈이 무대를 마치길 바랐다. 그런 그녀의 마음이 전해진 것일까, 승빈으로부터 크림 메시지가 왔다.
[승빈이♡: 떨리네ㅎㅎ]
[승빈이♡: 혜진이도 떨려?]
“응, 떨려서 죽을 거 같음…….”
[승빈이♡: 내 걱정은 하지마ㅋㅋㅋ 엄청 열심히 준비했어]
[승빈이♡: 오늘 무대 기대해달라구]
[승빈이♡: 그리고 응원 많이 해주라! 떨려도 클로버 보고 목소리 들으면 한결 나아지더라고~]
“확성기를 챙겨 왔어야 했나…….”
지난주 승빈이 뜻밖의 실수를 하고, 최악의 여론 한가운데에서 진행될 무대였다. 모두 이 무대를 기점으로 또 득달같이 물어뜯을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자신을 포함한 승빈의 팬들은 언제라도 그런 반응에 더 지랄맞게 대응할 준비를 하고 있지만, 승빈의 마음이 다치는 것은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분명 잘해 내겠지, 하지만 스스로 쌓아 온 실력을 부정당한다면 분명 크게 상심할 거야.’
평소 승빈을 절대적으로 신뢰하지만, 이번만은 예외였다.
[승빈이♡: 그동안 열심히 했으니까! 오늘도 잘 해낼 거야]
조바심을 떨쳐낼 수 없던 찰나, 승빈의 메시지는 조용히 강한 힘이 되었다.
“그래, 잘할 거야. 승빈이가 누군데-”
“국내외를 넘나드는 인기로 유명한 아이돌 그룹 크리드의 감미로운 목소리, 가수 문승빈 씨의 축하 무대입니다!”
혜진은 긴장을 놓지 않고 걸어오는 승빈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고 또 한 번 탄식했다.
“미치겠네…….”
승빈의 인이어에 문제가 생긴 듯했다.
* * *
“문승빈 씨, 스탠바이 해 주세요-”
“네!”
마지막으로 인이어를 정리하고 대기실을 나갔다. 여전히 상태창은 회생 불가한 고장 상태였지만 이 정도는 이제 귀여운 수준이다. 무대 위에서 모든 것을 쏟아 낼 준비를 마쳤다.
“승빈 씨, 이제 무대로 이동할게요-”
“네-”
무대 위로 올라오니 예상보다 더 많은 클로버의 응원봉이 보였다. 내심 안심이 됐다. 그리고 음악이 시작된다는 사인을 확인하는데,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인이어가 작동하지 않는 거였다.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무대 위에서 다양한 사고가 있었지만, 인이어가 고장난 것은 또 처음이었다. 분명 방금 전까지 문제없이 작동하던 인이어가 이렇게 갑자기 고장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교활한 상태창의 마지막 발악인 듯했다.
결국 무용지물인 인이어를 빼 버렸다. 최대한 현장 스피커 소리를 의존해서라도 박자를 가늠해야 한다. 너무 최악의 일을 미리 겪어서일까, 오히려 멘탈에 타격은 없었다. 이건 내 실력의 문제가 아니니까. 이렇게 나를 무너뜨리려고 한다면, 내가 쓰러진다고 한들 상태창의 추악한 패배일 뿐이다.
[…하늘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별자리가
반짝이고 있을 거야
비록 네가 본 별빛은
셀 수 없이 먼
과거의 부서짐일 테지만]
그리고 상태창이 간과한 것이 있다. 오늘 내가 부를 노래는 이미 천 번은 더 불렀다고 자신하는 내 자작곡 ‘별자리’니까.
다행히 박자를 얼추 맞췄고, 그다음부터는 다시 인이어를 꼈다. 어차피 현장 소리는 원래 박자보다 더 늦게 내 귀에 들어오기 때문에 더 혼란을 줄 뿐이다.
‘정신 차리자. 녹음실과 연습실에서 몇백 번, 아니 몇천 번은 더 부른 노래야. 내 몸이 기억하는 대로 믿어 보자.’
귀에는 어떤 노래도 흘러나오고 있지 않지만, 수천 번 들은 멜로디를 떠올렸다. 조용히 눈을 떴다. 신기한 광경이 펼쳐졌다. 상태창이 점점 옅어지고 있었다.
‘멤버들이 곁에 있는 것도 아닌데 여기 누가…….’
그리고 머리끝까지 전율이 느껴졌다. 상태창을 희미하게 만든 것은 팬들의 응원봉 빛이었다. 그동안 상태창이 가려진 것은 직접적인 터치나, 가까운 거리에서 진심을 나눴던 사람이었다. 이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내 생각보다 더 팬들의 응원으로 버티는 사람이구나. 화면이 뒤죽박죽 진동하는 상태창에서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았다.
[먼 곳을 여행하고 있더라고
절대 잊지 않겠다는 약속은 유효해
눈물이 날 거 같을 땐
서로의 맹세를 기억해
언제라도 서로를 향해 빛나겠다고]
똑똑히 지켜보라고, 네가 바라는 결말은 절대 이뤄지지 않을 거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나고, 주인공은 절대 무너지지 않으니까.
희미하던 상태창은 곧 팬라이트 사이로 사라졌다. 그리고 거짓말 같게도, 인이어가 다시 작동하기 시작했다. 약간의 오차도 없이 마음속으로 플레이했던 음악과 일치하는 순간, 말로 이루 다 표현할 수 없는 쾌감을 느꼈다. 그리고 곧장 인이어를 빼고 현장의 응원 소리를 들었다. 이 소리를 듣고 싶어서 인이어에서 노래가 나오길 간절히 바랐던 것 같다.
[끝도 없는 이 우주 속
너는 내 별자리를 선택했고
나는 네게 빛을 보냈어
그날의 목격자가 되어
모두가 날 잊는데도 네가 기억해 주길
단 하나의 소망을 담아 흩어질게]
먼지만큼 남아 있던 불안함도 사라지니 그다음부터는 정말 물 만난 물고기처럼 무대를 즐길 수 있었다. 무사히 무대를 마치고 내려오니 스태프와 매니저 형이 걱정 가득한 눈으로 달려왔다. 인이어를 준비한 스태프는 사색이 되어 있었다.
“괜찮아?”
“죄, 죄송해요. 제가 인이어를 확인했어야…….”
“아니에요. 인이어에는 문제없었어요, 걱정마세요.”
“넌 이 상황에도……!”
“정말이에요, 형. 이분 잘못 아니에요.”
누구라도 억울하게 비난받는 상황을 원하지 않았다. 이건 정말 상태창의 한심한 장난이었으니까.
“그래, 미안해. 네가 어떻게 준비한 무대인지 알아서… 더 화가 났던 거 같다.”
“그래도 저 잘하지 않았어요? 처음에만 잠깐 삐끗했지. 저 실수 많이 했어요?”
축 처진 매니저 형을 달래려고 일부러 더 과장해서 물었다. 형은 절대 아니라며 손사레를 쳤다.
“처음에 살짝 실수한 거 아니었으면 절대 몰랐을 거야. 다들 네 인이어에 문제가 있다고는 생각도 못 했더라고.”
“그 정도였어요? 하, 문승빈 또 해냈네-”
“…왜 이렇게 강도현 같지?”
“…역시 안 맞아.”
분위기를 풀어 보려고 강도현식 자기애 충만한 멘트를 해 봤는데, 역시나 몸에 맞지 않았다.
* * *
4시간 같았던 4분이 지나 무대가 끝나고 나서야 문스트럭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긴장감에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였다. 문스트럭을 부축하며 K가 홀린 듯 말했다.
“혜진아… 승빈이 신이 맞는 거 같다.”
“나 진짜 걱정돼서 죽는 줄 알았어-”
결론적으로 승빈은 최악의 조건 속에서 레전드 무대를 만들어 냈다. 그동안 승빈의 멘탈이 얼마나 강하고, 무대 위에서 프로페셔널한지 의심할 겨를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그 경지를 넘어섰다. 무엇보다 무대 아래 팬들을 바라보는 눈빛이 그전과 비교해도 무언가 달랐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영상을 확인하면서 확신했다.
물론, 승빈이 팬을 보는 눈에는 언제나 애정이 가득했다. 하지만, 오늘 무대에서는 단순한 애정을 넘어서 의지하고, 경이로워하는 것이 보였다.
“우선 프리뷰 영상이라도 올려야겠다.”
그리고 곧 무대 반응을 확인했다.
[문승빈 ㅁㅊ]
완전 미X놈 아님? 누가 인이어 없이 무대를 저렇게 햌ㅋㅋㅋㅋㅋㅋ
-ㅅㅂ인이어 체크도 제대로 안하고 뭐하는짓임
-인이어 문제 있었음? 앞에 10초 놓쳤는데 아무 이상없었던 거 같은데
└ㅇㅇ도입부 박자 살짝 놓침
-문승빈은 이제 탈아이돌인듯ㅇㅇ
└ㄴㄴ탈인간
[초반에 실수 때문에]
까려고 시동걸던 어그로들도 입 다물게 만드는 문승빈;;;
-진짜 난놈임…케이팝 썩은물인데 저런 놈 처음 봄
-ㅇㅇ초반에 댓글 ㅈㄴ살벌했는데 그거 때문에 승빈이 실력만 더 부각되고ㅋㅋㅋ
-지들이 생각해도 인이어 없이 저정도 하는건 말도 안된다고 생각한거짘ㅋㅋㅋ
-하 문승빈 뽕은 빠지는 날이 없네
-어그로에 실력으로 대응하는 난놈이 내 최애라니
[현장에 있던 클로버인데]
승빈이 무대하는 동안 진짜 죽어라 응원했음ㅠㅠ 분명 당황했을텐데 너무 잘 해줘서 고마운 마음뿐임…
-나도 현장 있었는데 처음에 박자 밀리고 인이어 만지작거릴 때 미쳐버리는 줄 알았음
└라이브로 보던 나도 심장 떨어지는 기분이었는데 현장에서는 진짜 돌아버렸을 듯
[지금 문승빈뽕 차오른 승프들아]
다들 문스트럭님 영상 보고 와라 (링크) 니네 다 운다에 내 전재산 건다
-안 그래도 보고 오는 길인데 ㅈㄴ 울고 옴
-다음 생에 너로 태어나 나를 사랑할 거라는 말 떠오르는 영상임 다들 꼭 보고 와
“영상이 벌써 저기까지 퍼졌나?”
계정을 확인한 문스트럭은 하마터면 지하철에서 소리를 지를 뻔했다. 하트와 리짹이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올라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xx0331 축하무대
내가 너를 보는 눈으로
너도 나를 보고 있다고 확신한 순간
(영상)]
-아 나 또 우네…
-승빈이 눈빛 너무 따수워ㅠㅠㅠㅠㅠㅠㅠㅠ
-멘트가 너무 감동적이뮤ㅠㅠㅠ승빈이도 우리를 저런 눈으로 보는구나 내가 승빈이 볼때랑 너무 똑같아서 눈물 남
-아이돌이 팬 보는 눈 맞음? 아무리 봐도 문승빈이 팬이고 클로버가 아이돌같은데;;
-저게 데뷔 5년차 아이돌의 눈이라고 하면 믿겠냐고
└동태눈깔 그거 어떻게 하는건데
└승빈이는 진짜 평생 동태눈깔 되는 거 공감 못할 듯
-승빈이는 늘 내가 주는 것보다 많은 걸 돌려주는 애임…개미지옥같은 놈아ㅠㅠㅠㅠ
영상으로 인한 벅차오름이 채 가시기도 전에, 승빈의 크림 메시지는 또 한번 팬덤을 불타오르게 만들었다.
[승빈이♡: 오늘 무대하는데 노래 가사랑 너무 딱 맞아 떨어지는거야]
[승빈이♡: 사실 엄청 당황했었는데]
[승빈이♡: 클로버가 빛나줘서 실수 없이 마칠 수 있었어]
“…와.”
이보다 더 감탄하고, 사랑하는 순간이 올까? 스스로도 의심하지만 언제나 역대급을 만들어 오는 승빈이었다. 마지막 메시지에서는 도저히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승빈이♡: 고마워, 빛나줘서]
자신이 늘 승빈에게 하던 말이었다. 최애를 사랑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결국 ‘빛나기’ 때문이었다. 승빈은 늘 빛났다. 무대 위에서도, 아래에서도.
반짝거리는 별을 동경하고, 반짝임의 순간을 담아 내는 것으로 만족한다 생각하면서도, 자신은 승빈에게 어떤 존재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말로만 사랑하고, 빛난다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텍스트에는 감정이 담길 수 없다지만 오늘 무대에서 승빈의 진심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이 진실됐다. 직접 그 눈빛을 보고 왔기 때문에 저 메시지에 감동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문스트럭은 앞으로도 승빈을 사랑하는 일에 의심하거나, 지치지 않기로 했다. 사랑하는 이의 눈에 비친 자신은 빛나고 있다는 믿음을 선물 받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