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324화 (324/346)

324화

이번 활동 승빈의 단독 화보는 예약 판매가 올라오자마자 품절됐다. 잡지가 출간된 이후 가장 단기간에 품절이 된 것으로, 화제가 되었다.

[Q: 단독 화보는 오랜만이다. 화보 촬영할 때 특별히 신경 쓰는 부분이 있는지?]

[A: 표정에 주목하려고 한다. 아무래도 무대 위에서도 표정 연기를 하는 직업이고, 연기를 할 때도 감정을 어떻게 표정에 담을 수 있을까 고민하기 때문이다.]

승빈의 이번 화보 콘셉은 ‘어린 왕자’다. 이번 화보의 디렉터가 승빈의 팬인데, 한 번쯤은 꼭 어린 왕자 콘셉으로 화보를 찍어 보고 싶다며 강력하게 추진한 덕분이었다.

영화 촬영 때문에 탈색모는 어렵지 않을까 했지만, 다행히 지석 캐릭터가 염색이 예정된 캐릭터여서 금발을 할 수 있었다.

금발 탈색모에 붉은 블러셔와 주근깨 메이크업은 몽환적인 소년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하지만 마냥 사연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 천진한 소년의 모습을 담은 사진도 있었다. 아련한 눈으로 장미꽃을 마주 보는 컷은 에디터와 현장의 스태프 모두 극찬한 사진 중 하나였다.

[Q: 최근에 생일이었다. 팬들이 준비한 이벤트 포토 부스를 갔다 왔던데?]

[A: 그건 어떻게 아셨지? (승빈은 정말로 놀란 듯 두 눈이 동그래졌다.) 맞다. 클로버는 매년 내 생일마다 멋진 이벤트를 준비해 주는데, 올해는 포토 부스 이벤트가 있었다. 멤버인 도현이가 사진을 보고 한참 동안 주지 않더라. 포토 부스 이벤트가 신기했던 거 같다.]

[Q: 한 팬의 목격담도 큰 화제가 되었다. 어쩌려고 그렇게 설레는 멘트를 한 것인지?]

[A: 설레는 멘트라니, 절대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냥 너무 떨려서 사랑한다는 말이 안 나왔구나 싶었다. 나도 그런 기분을 잘 안다. 콘서트나 팬 미팅 등 팬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사랑한다는 말이 잘 나오지 않을 때가 있다. 가끔 너무 벅차면 사랑한다는 말이 부족하다고 생각이 들 때가 있거든. 그래서 더 좋은 표현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타이밍을 놓치는 거 같다. 그분의 마음이 공감이 가서 대신 말해 드린 건데, 설레는 멘트로 들렸을 줄이야… 어쨌든 클로버에게는 내 사소한 멘트도 설렘으로 다가온다는 뜻이겠지? 그건 기분 좋다.]

“그게 어떻게 설레게 하려는 의도가 없었다는 거지?”

전설적인 목격담의 주인공, 정연은 잡지 인터뷰를 보고 진심으로 의아해했다. 그때, 눈앞의 승빈은 마음만 먹으면 세상 모든 여자를 홀릴 수 있는 얼굴이었으니까. 그런데 ‘사랑해요’라니, 사모한다고 외치고 온 것이 쪽팔리다고 느낄 시간도 없었다. 마침 문스트럭과 K에게 연락이 와 있었다.

[문스트럭: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설레게 할 의도 없었댄다]

[K: 정연아 해명 좀]

[그때 문승빈 못 보신 분들이 말이 많네;;]

[문스트럭: 열받게 하지 마라. 원래 내가 편지 수거하러 가는 거였는데, 니가 늦어서 나만 허탕친 거잖아^^]

그녀는 이렇게 만날 것이었다면 음성 녹음이라도 해야 했다고 후회했다.

[Q: 스물둘의 승빈 군은 어떤 상태인가? 작년에 만난 승빈 군은 고민이 많다고 했다.]

[A: 작년에는 그랬지. 팀적으로, 개인적으로 신경 써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새롭게 시작한 일도 많았고. 그래도 작년을 보내면서 깨달은 게 있다. 나는 내 생각보다 더 강하다는 것이다. 버틸 수 없다고 생각하던 순간에도 결국 시간은 흘렀고, 멤버들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 함께 이겨 낼 수 있었다. 그 시간을 온전히 견딘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강하다고 스스로 인정했다. 그 깨달음을 잊지 않고, 올해를 보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지금은 무척 안정적이고 행복하다. 크리드가 정식 그룹이 되고, 멤버들과 항상 함께할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만 잘한다면 팬분들도 곁에 있어 줄 거라는 믿음도 있고.(웃음) 이제 어떤 어려움을 만난다고 해도 이겨 낼 자신이 있기 때문에 고민이 오래가지 않는다.]

[Q: 확실히 작년보다 자기 확신이 강해진 모습이다.]

[A: 이것도 다 멤버들, 팬분들 덕분이다. 내가 망설이려고 하면 옆에서 계속 격려해 준다. 사실 이번 ‘드리밍’도 처음에는 출연을 고사하려고 했다. 그런데 도현이가 왜 그런 고민을 하는 거냐며 당연히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하더라. 자작곡도 마찬가지다. 1년 동안 미뤘는데, 윤빈 형과 지운이 형이 다시 시작하도록 도와줬다. 그리고 클로버의 반응도 너무 좋았고. 뭔가 해도 될까? 의심이 들어도 클로버는 내 선택이 옳았음을 늘 증명해 주니까. 자기 확신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승빈이 스물둘 맞아?”

자신은 스물두 살 때 학교 다니기도 바빴던 것 같은데, 저런 성숙하고 강한 사람이 됐다는 것에 기특하면서도 부러움을 느꼈다. 하지만 정연은 생각을 달리했다. 이전에는 연예인에게 부러움을 느끼면 스스로를 초라하다고 여기곤 했다. 하지만, 승빈을 덕질하면서 사고방식이 건강하게 바뀌었다.

“요즘 배워야겠다고 생각한 게 있는데, 클래스나 찾아볼까…….”

바로 승빈의 성장을 함께 보는 것만으로 멈추지 않고,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다.

* * *

3월에 가까워지고, 어느덧 촬영 중반에 도달했다. 김 감독님과의 작업은 언제나 즐겁다. 서로의 작업 방식이 잘 맞고, 완벽에 대한 기준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현재와의 호흡도 기대 이상이었다.

[현수, 반항기 가득한 눈빛으로 지석에게 쏘아붙인다.]

“그러는 지도 무릎 X신인 주제에…….”

[지석, 평소와는 다른 싸늘한 눈으로 말없이 현수를 응시한다. 입술을 꾹 깨물고 로커 룸을 떠난다.]

“…컷! 승빈 씨, 수정한 게 훨씬 좋네.”

원래는 지석이 화를 이기지 못하고 지석과 대치하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부상과 관련한 트라우마를 회피하고자 하는 것이 초반 지석의 감정선에 더 적합하다고 생각해서 의견을 냈던 부분이었다.

“와, 감독님. 현수 얘 어쩜 좋죠?”

“내가 만든 캐릭터지만 나도 한 대 쥐어박고 싶네요.”

“아니, 현재 형이 현수를 제일 싫어하면 어떻게 해요-”

“하, 나도 얘를 어떻게 연기해야 하나 고민이 많아. 연기하다 보면 갑자기 몰입 깨져서 회초리 들고 혼내고 싶다니까?”

‘그렇게 말하는 것치고 너무 잘 연기했는데…….’

“다음 작품은 꼭 착하고 순한 역할을 해야겠어. 이런 싸가지 없는 캐릭터 너무 힘들어.”

“…응원할게요.”

“그 못마땅한 표정은 뭐야?”

“진심이에요-”

착하고, 순한 역할의 유현재는 도저히 상상이 안 됐다. 분명 흑막이라고 스토리가 끝날 때까지 의심받을 것이다.

“다음 신은, 지석이 독백 신 준비할게요-”

“네!”

[로커 룸 앞에 주저앉아 무릎을 어루만지는 지석, 힘없이 중얼거린다.]

“너한테 내 전부를 주는 게 아니었는데.”

전부를 걸었던 도전에 처참히 배신당한 기분은 이미 너무 잘 알고 있다. 상실을 가진 인물에 쉽게 몰입할 수 있는 이유였다. 게다가 ‘드리밍’의 지석은, 연기를 해 본 적 없는 캐릭터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었다.

“컷! 오늘 촬영은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수고 많았어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완벽한 현장, 배우, 스태프들과 일해서 만들어 낸 ‘지석’을 하루빨리 관객들에게 보여 주고 싶다. 새벽이 다 되어서야 숙소에 도착했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피곤하지 않았다. 모두 잠이 들었다 생각했지만, 지운이 형은 깨어 있었다.

“오늘도 늦었네. 촬영은 잘 끝냈어?”

“네. 근데 형은 왜 아직 안 자고 있어요?”

“음… 고민이 있어서. 너한테 조언 좀 얻으려고 했지. 마침 잠도 안 오고.”

“어떤 고민인데요?”

지운이 형은 말없이 물잔을 만지작거렸다.

“솔로 앨범을 해 보는 게 어떻냐고 제안받았어.”

“솔로 앨범이요?”

“응. 그동안 프로듀싱한 곡들이랑 새로운 곡들로 앨범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떠냐고…….”

“너무 좋은 제안인데요? 당연히 해야죠!”

“하지만, 내가 솔로 활동을 할 능력이 될까……? 난 메인 보컬도 아니고, 메인 댄서도 아니고, 그렇다고 랩을 잘하는 것도 아닌데.”

“그 말 진심이에요?”

지운이 형이 자신의 능력을 의심할 실력이 절대 아니다. 물론, 솔로 가수가 쉬운 일은 아니다. 4분에 가까운 무대를 혼자의 힘으로 채워야 하고, 이전에는 맡은 파트만 해내면 되지만, 솔로 가수는 모든 파트를 해결해야 하니까.

“아직 우리 그룹에 솔로 활동을 한 사람이 없잖아. 내가 스타트를 끊는 게 맞는 건가 싶기도 해.”

“형, 그동안 우리 타이틀곡에 아쉬움이 있어요?”

“아니? 너무 좋은 곡이지.”

“그 곡 형이 만든 거잖아요.”

“그건 윤빈이가 도와줘서…….”

“무슨 소리예요. 형의 가사랑 프로듀싱이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데요. 이렇게 약한 마음으로 만든 곡인 줄 몰랐어요.”

“약한 마음이라니!”

걸려들었다. 자존감이 낮은 모습을 보여 줄 때가 있지만, 누구보다 크리드의 노래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형이다. 승부욕도 강하고. 조금 전과는 확연히 다른 눈빛이었다.

“그럼 솔로 앨범으로 증명해요. 윤빈 형뿐만 아니라 우리 멤버 모두가 도와줄 건데 뭐가 그렇게 겁이 나요?”

“…….”

“형이 참여한 노래는 이미 많은 사랑을 받았고, 훌륭한 곡이라고 평가받았어요. 형은 메보도, 메댄도, 래퍼도 아니라고 했죠? 근데 형, 솔로 가수한테 제일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해요? 밸런스예요. 형은 특출나게 잘하는 게 없다고 했지만, 모든 영역에서 평균 이상의 능력치를 가진 멤버라고요. 사람들이 형 음색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아요? 당장 우리 무대 영상 중 아무거나 들어가서 댓글 봐 봐요. 나와 유현이 형한테는 느낄 수 없는 독특함이 있다는 말이 엄청 많아요. 그리고 형 춤선을 좋아하는 사람도 엄청 많다고요.”

“고마워, 그렇게 자세하게 말해 줘서…….”

말하다 보니 모터 달린 것처럼 형 칭찬을 해 버렸다. 하지만 정말이다. 나는 내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땅굴을 파는 꼴을 못 보는 사람이다.

‘형이 부족한 사람이면 말을 안 해, 근데 능력도 좋은 사람이 이러는 건 반칙이지.’

“나는 형이 가진 것을 더 표현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번 솔로 활동이 큰 도움이 될 거예요.”

“그래. 네 말 믿어 보지 뭐.”

“그리고 형. 형은 4분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서 있어도 무대를 채울 수 있는 사람이에요.”

형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형이 크리드의 첫 솔로 활동 스타트를 멋지게 끊어 줘요.”

“노력해 볼게.”

“노력으로는 안 돼요. 잘해야 해.”

“알았어. 잘해 볼게.”

“기대할게요.”

나는 말없이 손바닥을 내밀었다. 형은 의도를 모르겠다는 듯 잠시 갸웃하더니 힘차게 하이 파이브를 했다. 다가오는 여름에는 형의 솔로 활동이 시작되겠지. 4년 전 악몽 같았던 여름이 기대감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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