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318화 (318/346)

318화

“대박, 올해도 세 개 부분 다 대상 후보야…….”

기대는 했지만, 정말 ‘올해의 음원/음반/가수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니 얼떨떨했다. 지금까지 숱하게 많은 상을 받았지만, 언제나 가슴 떨리는 순간이었다. 이번 시상식 퍼포먼스는 크리드의 정체성 시리즈 세 곡을 매시업한 무대로 준비했다. 그리고 내년에 예정된 4번째 활동곡을 스포할 예정이다.

‘Definition’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거대한 비행선이 현장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리허설이 끝나고, 내내 떠오른 생각을 윤빈 형에게 전했다.

“역시 윤빈 형 프로듀싱은 최고예요.”

“네가 좋은 의견 많이 줘서 그런 거지.”

‘Chance’, ‘Rise’, ‘Issue’ 모두 색이 뚜렷한 곡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 세 곡의 매시업이 상상되지 않았다. 하지만, 윤빈 형은 세 곡이 가지고 있는 감성의 공통이 될 법한 것들을 발견했다. ‘Chance’의 청량함과 ‘Rise’의 강렬함, ‘Issue’의 날카로움을 한데 어우르는 편곡이었다. 지운이 형과 강도현이 준비한 안무와도 좋은 시너지를 냈다.

리허설을 마치고 대기실로 돌아왔다. 연습 중에는 편하게 하지 못했던 말을 전했다.

“오늘 혹시 대상 받게 되면, 끝나고 밝히고 싶어요.”

“뭘?”

“저희 정식 계약 한 거요.”

“그거 아직 기사 안 뜨지 않았어?”

“그래서 더 하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미심쩍어하던 유현이 형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시상식이 시작되었고, 스페셜 무대 퍼포먼스는 완벽했다. 실수 하나 없이 각자의 역할을 200% 발휘한 무대였다.

“자, 이제 영광의 대상 시상만 남았는데요. 후보 먼저 만나고 올까요?”

대상 후보는 역시 쟁쟁했다. 음반은 확실히 크리드가 받을 가능성이 있지만, 다른 두 영역은 확신할 수 없었다. 안 떨리는 척하는 강도현에게 짓궂게 물었다.

“뭐야, 긴장돼?”

“아니!”

“너, 손 덜덜 떨리고 있는데-”

“조용히 좀 해, 너 때문에 더 긴장되니까.”

“발표하겠습니다, 올해의 음원상… 축하합니다, 크리드!”

“와아아아!”

‘음원이 제일 걱정이었는데 다행이다.’

작년에 받지 못한 상이어서 그런지, 멤버들 모두 감회가 남달라 보였다. 이제 팬덤뿐 아니라 대중성까지 꽉 잡은 그룹이 되었다는 걸 증명받은 순간이었다.

“이제, 음반 영역 수상자를 발표하겠습니다. 후보 먼저 보고 오겠습니다.”

음반 영역 역시 후보들이 쟁쟁했다. 하지만 예상대로 우리의 이름이 호명됐다. 방금 음원상을 받은 기쁨이 가시기도 전에, 또 이름이 불리자 멤버들은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하나만 수상해도 큰 영광인 대상을 두 개나 받다니, 꿈만 같아요!”

소감을 말하는 재봉의 벅차오르는 마음이 얼굴에 다 보인다. 작년에는 윤빈 형 다음에 마이크를 살짝 내려야 했는데, 이제는 곧장 소감을 말할 수 있을 만큼 컸다. 그래도 여전히 아빠미소 짓게 하는 막내다.

“그리고 제가 곧 스무 살이 돼요! 십 대의 마지막 날, 이런 큰 상 받을 수 있어서 심장이 터질 거 같습니다! 앞으로도 이 상에 부끄럽지 않게 더 멋진 크리드가 되겠습니다!”

소감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재봉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머리 망가진다며 입을 삐죽이면서도 피하지 않았다.

“이제 수상 소감도 씩씩하게 잘하고 다 컸네!”

“당연하죠~ 전 이제 성인이니까!”

‘스무 살 되면 엄청 심취하겠구만…….’

아무렴 어떤가, 최고의 스무 살을 선물해 줬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드디어 대망의 올해의 가수상을 시상하겠습니다. 올해 국내외를 가장 빛낸 가수에게 시상하는 상인 만큼, 후보가 정말 쟁쟁했죠? 저도 정말 기대가 됩니다.”

시상자는 큐시트를 확인하고,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역시 이분들이네요. 축하합니다, 크리드!”

“뭐?”

“세 개 부분 다 우리라고?”

세 개의 대상 모두를 수상할 거라고는 누구도 예상 못 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시상식 역사상 두 개 부분 수상이 최고 기록이었기 때문이다.

“…가자.”

얼어붙은 채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하는 멤버들을 일으킨 건 유현이 형의 한마디였다.

“승빈아, 이거 방, 방송 사고 아니겠지?”

“당연히 아니죠, 지운이 형!”

수많은 선배, 후배 가수의 축하를 받으며 시상대로 향했다. 우리의 이름을 열렬히 외치는 관중들의 함성을 들으며 짜릿함을 느꼈다.

“인사드리겠습니다. 본 투 샤인! 안녕하세요, 크리드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커다랗고 거침없는 인사였다.

“안녕하세요, 크리드 리더 정유현입니다. 우선 이렇게 과분한 상 받을 수 있게 해 준 우리 클로버! 너무 감사합니다. 올해 정말 많은 일이 있었어요. 좋은 일도, 조금은 힘든 일도. 하지만 언제나 멤버들과 클로버와의 믿음으로 이겨 낼 수 있었습니다. 투마월부터 데뷔, 첫 1위, 신인상, 첫 대상 그리고 이렇게 세 부분에서 대상을 타기까지 한 계단씩 성장할 수 있음에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이 모든 것은 저희가 아니라 여러분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유현이 형을 시작으로 한 명씩 소감을 이어 갔다. 작년에도 올랐던 자리지만, 여전히 떨렸다. 이곳의 모든 하이라이트가 집중된 이 순간, 나는 크게 심호흡했다. 원래대로라면 시상식이 끝나고 에이앱에서 말하려고 했지만, 지금이 바로 완벽한 타이밍 같았다.

그 어느 때보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지만, 내 앞에 반짝이는 클로버의 응원봉을 보며 힘을 얻었다. 이 빛들과 함께라면 어떤 어둠도, 두려움도 이길 수 있으니까.

“작년에 처음 대상을 받았을 때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제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지키겠다고, 조금은 무모한 약속을 했었습니다.”

눈앞의 상태창은 미션 성공을 알리고 있었다. 작년 오늘, 저 상태창을 보며 망설이지 않고 했던 약속이 떠올랐다. 크게 심호흡을 했다.

“늘 클로버에게 하고 싶지만, 하지 못했던 약속이 있었어요. 절대 여러분 곁을 떠나지 않겠다는 약속이요. 시작과 함께 끝을 생각해야 하는 게 항상 미안했습니다.”

잠시 감정을 추스르는 시간이 필요했다. 행여 눈물 때문에 이 순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정말 제대로 전달하고 싶은 진심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제 당당하게 약속하려고 합니다. 앞으로 프로젝트 그룹이 아닌 정식 그룹으로서 언제라도 클로버 곁에 있을게요. 더 이상 헤어짐을 예정하고 아쉬워하지 않기로 해요. 앞으로도 초심 잃지 않고, 성장하는 크리드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식 그룹이라는 말에 눈물을 쏟는 팬이 여러 명 보였다. 나만큼이나 팬들도 이 순간을 기다렸을 것이다.

‘실망시키지 않아서 다행이야.’

소감을 마치고 멤버들의 곁으로 돌아가는데, 뒤늦게 손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눈물을 참으려고 얼마나 세게 쥐고 있던 건지, 손바닥에 손톱자국이 가득했다. 유현이 형은 급하게 눈물을 닦아 내고 애써 담담하게 칭찬했다.

“잘했어.”

“너, 왜 이렇게, 흑, 말을… 눈물 나게-”

“대표로 잘 말해 줘서 고맙다.”

나보다 더 우는 선우 형과, 윤빈 형을 달래 주면서 조금씩 진정이 되는 듯했다.

“너랑 데뷔해서, 너무, 다행이야.”

하지만, 고개도 들지 못한 채 꺽꺽거리며 우는 강도현 앞에 도착했을 때는 조금 위험했다. 끝까지 참으려고 했지만, 지운이 형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무너지듯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고생 많았어. 진짜 고생 많았어, 승빈아…….”

따뜻하게 등을 쓰다듬어 주는 형의 손길에 어린아이처럼 울 수밖에 없었다. 형은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그 모든 비밀을 마주하고도 나를 비난하지 않았던 형의 위로여서 더 벅차올랐다.

“이제 다 괜찮아, 정말 고마워…….”

정말 듣고 싶었던 말이다. 매번 죽을 듯이 미션을 수행하고, 위기를 극복하면서 ‘이것만 견디면 괜찮아지겠지?’ 스스로 위로했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지운이 형이 고개를 묻은 어깨도 점점 젖어 가고 있었다. 내 욕심이라고 생각했던 꿈이 현실이 되었다. 누구 하나 잃지 않고, 일곱 명이 함께할 수 있다.

그동안 나를 힘들게 했던 모든 것들이 하찮게 느껴졌다. 이곳에 올 땐 모든 것을 잃었지만, 이제 모든 것을 얻었다. 비로소 회귀 전의 것에 가졌던 모든 미련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마음껏 기뻐하고, 눈물 흘렸다. 절대 돌아오지 않을 순간이니까.

* * *

지난 4년간 거의 모든 순간의 승빈을 카메라에 담았지만, 이렇게까지 무너지듯 운 것은 처음이었다. 처음 소감을 말할 때부터 평소와 다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식 계약’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문스트럭도 이성을 잃었다.

“정식 계약?”

“K야… 내,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냐?”

“지금 프로젝트 그룹이 아니라 정식 계약이라고 했잖아? 야, 울어?”

문스트럭도 승빈만큼이나 울었다. 언젠가 크리드와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매 순간 최선을 다하면서도 두려웠다. 이들이 없는 일상을 꿈꾸고 싶지 않지만, 대비해야 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승빈의 소감은 순식간에 주요 포털 사이트 연예란의 헤드라인을 장식했고, 실시간 트렌드와 SNS에는 온통 소감에 대한 얘기뿐이었다.

[이제 크리드 억까들은 뭐로 까냐ㅠㅠㅠ]

허구언날 시한부 그룹이라고 조롱하던 애들 어쩌냐ㅠㅠㅠ 이제 정식그룹이라서 천년만년 크리드 할건데ㅋ

-삶의 낙을 잃었겠네ㅠㅠ

-아 통쾌해ㅎㅎ

[대상은 애들이 탔는데]

왜 내가 오열을 하짘ㅋㅋㅋㅋㅋㅋㅋㅋ큐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진짜 감격스러움

-소리질렀잖아ㅠㅠㅠㅠㅠ너무 놀라서

-애들이랑 클로버들 마음고생한 거 다 보상받는기분이야ㅠㅠㅠ

-승빈이가 그런 약속을 마음에 두고 있는줄 몰랐으뮤ㅠㅠㅠㅠㅠㅠ

-이제 진짜 X된거임…크리드 아니면 뛰지 않는 심장이 되버렸다고

문스트럭은 솟구치는 기쁨을 참지 못하고 곧장 이벤트를 열었다.

문스트럭 @moonstruck_bean 1분 전

사랑하는 크리드의 정식그룹 확정을 축하하며 리짹이벤트를 합니다. 리짹한 분들을 대상으로 당첨된 분에게는 소정의 덕자금(50.0)과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보내드립니다!

앞으로 ‘정식그룹’ 크리드 많관부♡

-50만원이 소정의 덕자금이요…?

-문스트럭 엄마…

-저요저주세요제가아니면안돼요

* * *

시상식을 마치고 돌아온 대기실은 말 그대로 축제였다. 매니저 형과 스태프분들은 멤버들이 들어올 때마다 폭죽을 터트리며 축하했다.

“2년 연속 대상, 전체 수상 신기록 축하한다, 얘들아!”

“너무 축하한다, 이놈들아…….”

“헐, 매니저 형 눈 왜 이래요?”

“어우, 말도 마. 너희 올해의 가수상 수상자로 호명되자마자 오열을…….”

“대기실 물바다 되는 줄?”

매니저 형은 퉁퉁 부은 눈을 숨길 생각도 없어 보였다. 나는 매니저 형의 어깨를 토닥이며 감사함을 전했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우리가 진심으로 잘되길 응원하던 사람이었으니까.

“형, 진짜 고마워요.”

“나한테 고마울 게 뭐가 있겠냐-”

“저희한테는 형이 최고의 매니저인데 당연히 고맙죠!”

“최고의 매니저…….”

매니저 형은 우리의 얼굴을 눈에 담았다. 이미 충혈되어서 빨개진 지 오래였다.

“아, 형, 더 울잖아요~”

“맞네. 이건 윤빈 형이 잘못했네-”

매니저 형은 울다가도 간헐적으로 웃었다. 앞으로 정식 그룹이 된 크리드로 새롭게 써 내려갈 시간들이 기대됐다.

‘더 이상 미션이 없는 상태창은 무슨 의미일까…….’

한 가지 의문이 남았지만, 지금은 중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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