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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317화 (317/346)

317화

실성하듯 웃고 울던 오재성은 제풀에 지쳐서는 의식을 잃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승빈이 역시 쓰러졌다.

“승빈아!”

“형, 오늘 일은…….”

“말하지 마. 119 부를게.”

그렇게 문승빈은 주문을 외우듯 계속해서 미안하다는 말과, 잊어 달라는 말을 반복했다.

“내가… 기억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

병원으로 실려 가는 순간에도 승빈이는 기억하지 말라는 말을 중얼거렸다. 어쩌면, 내가 회귀와 관련한 비밀을 알게 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며 살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놀랍게도 누구도 그날을 기억하지 못했다. 분명 앰뷸런스가 와서 승빈이와 오재성을 태우고 병원에 갔지만, 그 어떤 기사도 나오지 않았으며 멤버들조차 그날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른다. 그 하루가 세상에서 사라졌다.

‘왜 나만 기억하는 거지……?’

상식을 벗어난 현실이지만, 평소와 다를 것 없이 행동했다. 승빈이 역시 모두의 기억에서 그날이 삭제된 것을 알아챘는지, 나에게 넌지시 물었다.

“형, 혹시 그날…….”

나는 누가 봐도 안절부절못하는 두 눈을 보며 천연덕스럽게 답했다.

“그날? 언제? 무슨 일 있었나?”

“아, 아니에요.”

승빈이는 그제야 안심이 되는지, 별일 아니라며 자리를 피했다. 아직도 가끔 악몽을 꿀 만큼 그때의 기억이 선명하지만, 계속 이렇게 지낼 생각이다. 그 애가 모르길 바란다면, 영원히 모른 채 살 수 있으니까.

* * *

결국 오재성은 자진 입대를 선택했다. 그가 남긴 손 편지에는 아이돌 생활로 인한 피로감, 앞으로의 진로에 대한 고민 때문에 입대를 서둘렀고, 놀랐을 팬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이 담겨 있었다. 한 페이지 조금 되지 않는 편지 한 장으로 오재성의 아이돌 인생은 마침표를 찍었다.

[포커스 데뷔팬인데 이게 뭐냐?]

ㅅㅂ 아무리 애들 연속으로 병크터져도 어떻게든 그룹 붙잡으려고했다. ㅈㄴ미운데 얘네 좋아한 시간이 아까워서 제발 반성하고 좋은 모습 보여주길 바라는데 군대행 하… 몸에서 사리 나올거같음. 아니, 가기전에 이유라도 말해주면 안 되는거냐? 아무리 드라마 제작 무산되고 포커스 해체라고 해도 이렇게 군대런을 해? 포커스 니들은 진짜 평생 미안한 마음으로 살아라

-나 진짜 꿈꾸는거같음ㅋㅋㅋㅋㅋㅋㅋ군대? 이제 이십대 초반인 애가 군대를ㅋㅋㅋㅋㅋ오재성은 대체 뭔 짓을 한거냐?

-이정도면 그냥 아이돌 은퇴라고 봐야하는거 아님?

└ㅇㅇ빼박 은퇴지…연예계 다시 돌아올지 몰라도 아이돌은 다시 못하지

└내가 못하게 할거임 xx놈아 남들 하는 만큼만 하는게 그렇게 힘드냐

-무슨 잘못을 했길래 갑질, 열애설, 태도논란 난 애들도 안 간 군대를 감?

-몇년뒤에 은근슬쩍 복귀하겠지ㅎ

자살 소동은 나와 오재성을 제외한 모든 이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아마 오재성의 상태창이 소멸되면서 그에 대한 기억도 사라지게 된 것이겠지. 갑작스러운 오재성의 입대 발표에 포커스의 팬덤은 물론, 일반 대중 사이에서도 화제가 됐다. 오재성의 자진 입대 발표 며칠 뒤, 포커스의 해체도 공식화되었다.

[안녕하세요, VM 엔터테인먼트입니다. 지난 4년 동안 포커스를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멤버들과의 심도 깊은 논의 끝에 강도현을 제외한 다섯 멤버와의 전속 계약을 종료했습니다. 앞으로 새로운 길을 걸을 다섯 멤버들의 앞길에도 많은 응원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귀사는 앞으로도 소속 아티스트인 강도현을 위해 아낌없는 서포트를 지원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감사합니다.]

VM의 야심작으로 시작한 포커스의 말로가 이토록 초라할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해체… 허무하다]

김병대 연생때부터 파던 사람인데 그냥 너무 허무함. 물론 애가 생각도 어리고, 논란도 많았지만 아이돌 능력치도 괜찮았고 팬서비스도 잘하던 애여서 쭉 응원했거든. 그리고 워낙 개인적인 일로 힘들 때 잡았던 최애라…그래서 노룩계산 논란 떴을때도 필사적으로 흐린눈했었음. 적어도 내가 팬싸나 콘서트, 팬미팅에서 본 모습이 진짜라고 생각했으니까. 근데 이제 놓아줄 때가 된 거 같음. 나는 얘라는 사람을 좋아한 게 아니고 얘를 좋아했던 그때의 나를 못 놓고 있었던 거야.

-아 눈물나

-진짜 번듯한 아들놈 잡길 바란다…

-나도 최애를 좋아했던 그때의 내 감정을 도저히 부정할 수 없어서 탈덕 못하고 있었는데 글 보고 정신차렸다 고마워ㅠㅠㅠ

-난 이제 돌판 떠나려곸ㅋㅋㅋㅋㅋㅋ

[다들 수고 많았어]

솔직히 잘못은 오빠들이 하는데 왜 빠순이들이 기죽고 살아야 함? 다들 훌훌 털어내고 진짜 좋은 최애 잡았으면 좋겠어. 솔직히 말해서 포커스 쉴드친다고 팼던 타팬들한테 사죄하고 싶은 마음임 특히 ㅋㄹㅂ…

-클로버인데 너네 잘못이 아예 없는건 아니지만 사랑은 미친짓이니까…

└ㅇㅇ저땐 그냥 미XX이었음

-잘못은 오빠들이 하고 사과는 빠순이가 하는 문화 사라져야 함ㅇㅇ

└듣고있냐 최애야 이제 너 쉴드쳐주고 뜯길 머리카락도 없다

-다들 좋은 기억만 가지고(있을진 모르겠지만?) 좋은 오빠들 찾아가길…

-웃기는 놈들이넼ㅋㅋㅋ 이런다고 없던 일이 될 거 같음? 클로버 판 들어오지말고 공중분해된 포커스 개인팬이나 하세요ㅠ

“이렇게 갑작스럽게 해체할 줄이야…….”

“난 오재성이 갑자기 군대를 간 게 더 어이없어.”

“그러니까. 도현아, 넌 뭐 아는 거 없어?”

“나도 몰라. 회사 사람들도 엄청 말렸는데 얘가 너무 단호하게 가야 한다고 했다는 것만 들었어.”

“포커스 해체는?”

“그건 이미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어서… 다른 애들은 회사 측에서 먼저 제안했어. 다른 소속사에서 영입 제의가 왔었대, 여기 남을지 아니면 옮길지. 나는 계속 데리고 있을 작정이었는지 그런 얘기는 듣지도 못했고.”

“그래서, 다른 애들은 옮기기로 한 거야?”

“그런 셈이지. 아무리 VM이 대기업이라고 한들, 더 이상 서포트하지 않겠다는 뜻인데 다른 소속사에 들어가는 게 더 낫긴 하지.”

VM의 입장에서는 아직도 팬덤이 견고하고, 1군인 루커스와 함께 새로운 신인에 투자하는 것이 더 이득이다. 애매하게 포커스를 데리고 있을 바엔 빨리 손 떼는 게 서로에게 낫겠지.

“웃긴 거 알려 줄까? 김병대는 어디로 갔나 했는데 문어대가리 있는 곳으로 갔더라.”

“문어대가리, 이제 VM 아니야?”

“응. 포커스 성적 안 좋아지고, 김병대 사건 터지면서 윗선에 완전 밉보였거든. 신생 소속사로 옮긴 지 꽤 됐어.”

“김병대 걔는 왜 그렇게 그 사람을 따르는 거야?”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이 문어대가리밖에 없었던 거지… 안타깝게도.”

아이돌 세계의 문제 중 하나였다. 미숙한 어린 시절에는 판단력이 흐릿할 수밖에 없으니까. 게다가 문어대가리가 아니었다면 데뷔하지 못했을테니 더 의존했겠지.

“나는 형들이 있어서 다행이에요.”

같은 또래인 김병대의 초라한 결말 때문이었을까, 박재봉은 생각이 많아 보였다.

“아무리 곁에 좋은 사람이 있어도 그걸 아는 사람이 있고, 모르는 사람이 있는 거야. 재봉이 너는 그걸 알고 있으니까 우리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여길 수 있는 거고.”

내 위로에 시무룩했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만약 김병대가 나와 강도현과 VM에서 데뷔했다면 지금의 박재봉과 같았을까? 아니었을 것이다.

“맞아. 재봉이 같은 애가 막내여서 우리도 고맙지.”

“넵, 앞으로도 지금처럼 훌륭한 막내가 되겠습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도현이 형만 빼고?”

회귀 후 얻은 가장 큰 선물이 뭐냐고 물으면, 주저 않고 멤버들이라고 할 것이다. 서로에게 좋은 시너지를 주는 건강한 사람끼리 팀이 된 것만큼 축복받은 일은 없으니까.

* * *

포커스의 해체 후, 모두 강도현의 행보에 주목했다. 이미 크리드와 2년 계약 연장을 한 강도현이 어떤 방식으로 크리드 활동을 이어 갈지가 가장 큰 이슈였다. 자연스럽게 크리드의 정식 그룹 계약에 대한 여러 의견도 오갔다.

[포커스도 해체했으니]

이제 크리드 정식 그룹 되는 건 시간 문제 아닌가? 솔직히 VM빼고 다 긍정적이었잖아

-VM이 계약 연장에 부정적이었다는 건 어떻게 확신함?

└이걸 누가 모름…?

└시조새파킹합니다 애진작에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 딴소리하네

-VM도 골치아플듯ㅋㅋㅋㅋ 강도현 수혈이라도 하려고 했는데 개같이 망했으니… 솔로로 내거나, 신인에 끼워넣어야겠네. 후자는 에바고 그나마 솔로 활동인데, 그럴 바엔 크리드 활동이 더 돈이 되지ㅋㅋ

이미 VM을 제외한 모든 소속사에서는 코어의 정식 그룹 계약 변경을 찬성했다. VM만이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코어의 제안을 거절하고 있었다. 포커스의 해체 발표 이후에도 VM은 미적지근한 포지션을 유지했다. 정식 그룹이 되면 기존 계약 기간 만료 이후에도 재계약의 여지가 생긴다. 소속사 겸업은 가능하지만, 해당 멤버의 아이덴티티가 완전히 크리드로 확정되는 것이다.

“솔직히 이제 시간 싸움인데 VM에서 빨리 입장을 내 줬으면 좋겠어.”

강도현이 맥주를 홀짝이며 하소연했다. 나 역시 VM의 빠른 결단을 바랐다. 이제 12월 막바지를 향하고 있기에 미션 성공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모두가 기다린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오늘 내가 너희를 모두 부른 이유는, 마지막으로 계약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야.”

모두 기대 반, 긴장 반으로 대표님의 말에 집중했다. 혹시 VM과의 협상이 불발되거나, 최악의 경우 강도현을 제외하고 계약 변경을 하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VM과 기나긴 협상과, 논의가 있었고… 드디어 결론이 났다.”

“제발…….”

“도현이 형도…….”

“축하한다, 이제 크리드는 프로젝트 그룹이 아니라 코어 소속 정식 그룹이야!”

정식 그룹이라는 말에 소름이 쫙 돋았다.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드디어 기나긴 여정의 끝을 맞이했다. 지난 1년간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안도감에 눈물이 고였다.

“…정말로요?”

“우, 우리 일곱 명 다 말하는 거죠?”

“그래! 크리드가 당연히 일곱 명이어야지! 물론 원래 소속사 활동과 병행하겠지만, 크리드 활동을 최우선으로 하는 조건으로 계약서 쓰기로 했어.”

재차 일곱 명을 강조하는 대표님의 말을 듣고 나서야 멤버들은 마음껏 기뻐할 수 있었다. 윤빈 형은 영어로 신에게 감사하다는 기도를 했고, 유현이 형은 멤버들을 한데 모아 끌어안았다.

“이거 꿈 아니죠?”

“꼬집어 줘?”

“아, 아니요! 지난번에 형이 꼬집었다가 퉁퉁 부었다고요-”

한참 얼싸안고 환호하던 중, 지운이 형이 울먹이며 물었다.

“우리 이제 계속 함께 할 수 있는 거지?”

“당연하죠! 이제 우리 멤버들 아무 데도 못 가요! 저랑 계속 크리드 해야 하니까-”

이제 곧 스무 살이라며 부쩍 어리광이 줄었던 박재봉도 다시 열여섯으로 돌아간 듯했다.

“정말 오랜 시간 멀리 돌아왔네…….”

“고생 많았어.”

한숨처럼 튀어나온 말에 지운이 형이 답했다.

“제가 한 것도 없는걸요.”

“에이, 이거 다 네가 만든 작품이야.”

잠시 흠칫했다. 다 알고 있다는 듯 말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리랑 같이!”

나와 우리가 같이 만들었다는 의미였구나, 괜한 걱정을 했다. 형의 활짝 웃는 얼굴에 비로소 함께 웃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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