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화
계약 연장 공식 발표 후 환희에 가득 찬 크리드 팬들과 달리 포커스 판은 말 그대로 초상집이었다.
[걍 허무하다]
강도현 2년 재계약 시킨다는건 결국 포커스는 버릴거라는 뜻이잖아ㅎ… 애들 개과천선해서 잘 되길 바랐던 내가 미XX였네
-강도현 없이 하면 되는거 아님?
└그럼 춤노래예능홍보 다 오재성이 해야 함
└이건 걍 오재성 솔로잖아
[그래도 내새끼는 드라마 캐스팅 됨ㅎㅎ]
재성이는 그냥 배우하자 저런 무수리들이랑 팀 할바엔 해체하고 배우 전향하는 게 현명한 선택일 듯 나머지 멤들은 ㅅㄱ해
-역시 팬은 가수 따라가는구나…
-진짜 맞말이다…쳐맞을 말
-오재성이 그나마 웹드 조연 자리라고 하는게 포커스 인지도 때문인건 죽어도 모를 듯ㅇㅇ
└ㄴㄴ알면서 필사적으로 흐린눈 하는거지
“이번엔 미션을 성공했나 보네.”
이젠 그냥 오재성이 별문제 없이 조용히 살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 * *
계약 연장 발표 후 첫 에이앱 라이브는 접속 인원이 폭주했다. 잠시 딜레이가 생길 정도였으니 상상 이상의 화력이었다. 댓글은 온통 계약 연장을 축하하는 팬들로 가득했다.
-축하해 애들아아아아
-크리드 뽀에버
-내새꾸들 축하해ㅠㅠㅠㅠㅠㅠㅠㅠ
“팬분들이 정말 좋아할 만한 소식이 있었잖아요?”
“그니까. 아직도 꿈같은데-”
“저 요즘 가만히 있다가도 가끔씩 웃음이 나와요.”
“어쩐지… 강도현, 요즘 혼자 히죽거려서 왜 저러나 했는데.”
“형은 안 신나요?”
“그럴 리가? 야, 너. 기사 뜬 날 나 못 봤어?”
“아, 맞다. 선우 형, 기사 뜬 날 기뻐서 뛰어다녀서 층간소음으로 한 소리 들었잖아요.”
“그렇게 말하면 오해하신다고, 회사에서 기뻐서 복도 뛰어다니다가 대표님한테 잔소리 들은 거예요-”
“그때 형, 완전 신난 원숭이 같았어.”
“와- 문승빈, 너도 하루 종일 벅차 올라 가지고 가만히 있다가 우리 붙잡고 이거 꿈 아니냐고 백번 물어봤잖아!”
-승빈앜ㅋㅋㅋㅋㅋㅋ
-신난원숭이 ㅅㅂㅋㅋㅋㅋㅋㅋ
-아이고 운 사람은 없었어?
“운 사람이요?”
“말해도 되나?”
“유현이 형이 말하지 말래~”
“그래요. 운 사람이 어떻게 유현이 형이라고 말해요~”
-????
-정유현이?
-유현이 울었다고?
-이 크리드밖에 모르는 놈아…
“…눈에 뭐 들어간 거라니까?”
머쓱해하는 유현이 형에 멤버들은 놀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아니 근데, 이 형 우는 게 너무 웃겼어요.”
“맞아. 기사 뜨기 전에 도현이가 먼저 말했거든요.”
“밥 먹다가 체할 뻔했잖아-”
“다들 막 신나서 난리였는데, 유현이 형만 가만히 있는 거예요.”
“나는 그래서 역시 리더는 다르구나… 언제든지 평정심을 잃지 않는 멋진 리더다- 하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까 울고 있는 거예요. 저렇게 미동 없이 우는 사람 처음 봤잖아.”
“맞아. 진짜 흐트러짐 없이 눈물만 또르륵 흘러내렸다니까요?”
-ㅁㅊ나도 보고싶다 밥먹다 우는 정유현…
-형아 놀리면 못써 애들아
멤버들은 기쁜 마음을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 오죽하면 지켜보는 팬들이 저렇게 웃으면 광대가 아프지 않나- 걱정할 지경이었다.
“맞다. 저희 전원 계약 연장 확정되고 대표님이 고기 사 주셨어요!”
“겨우 고기 사 줬냐고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그날 저희가 잡은 소가…….”
“소만 잡으면 다행이지, 돼지도…….”
-아닠ㅋㅋㅋ먹짱들만 모였네
-잘먹어서 좋아ㅠㅠㅠ더 더 먹어
-크리드 볼살 지켜…
-1g이라도 사라지지 말라고
“왜 이렇게 텐션이 높냐고요?”
“지금 들어오셨나 보다-”
“저희가 계약 연장을 했거등여~”
-그렇게 좋냐곸ㅋㅋㅋㅋㅋ
-클로버보다 애들이 더 좋아하는거같음
-이제 고용불안정에서 탈출했으니까 좋을수밖엨ㅋㅋㅋㅋ
“클로버만큼이나 저희에게도 기쁜 소식이었어요.”
“맞아. 앞으로 4년이나 더 할 수 있는 거잖아.”
“그때쯤에는 그냥 우리끼리 회사 차릴까?”
-승빈스쿨에서 승빈 엔터 되는거냐곸ㅋㅋㅋ
-난 찬성
-그때까지 클로버하겠다는 피의 연합
-최장수 아이돌 가보자고
“클로버가 디너쇼 하재-”
“그때까지 저희 좋아하실 거예요?”
“야, 넌 무슨 그런 질문을 하냐? 당연히 좋아해 주시겠지-”
“그때 되면 다들 지팡이 들고 춤추고 있는 거 아니야?”
“맞네, 우리가 문제다.”
-아 선우야!!!!!
-지팡이 댄스? 오히려 좋아
-굿즈로 지팡이 가보자고
우스갯소리였지만 그 짧은 순간, 우리가 나이를 먹은 후에도 함께인 모습을 상상했다. 옆에서 웃고 있는 멤버들을 보니 울컥했다. 이렇게 마음 편하게 웃을 수 있게 될 때까지 이겨 내야 했던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2년 뒤, 어쩌면 정식 그룹이 된 먼 훗날의 우리는 분명 지금과는 다르겠지. 하지만 그때가 되면 지금을 일말의 후회도 남지 않은 시간이라고 자신할 수 있지 않을까?
-승빈이 왜 힝구강아지가 됐어ㅠㅠㅠㅠㅠ
-애기 아까전부터 말이 없네ㅠㅠㅠㅠ
-우는 거 아니지?
나도 모르게 상념에 잠겨 있었구나, 댓글을 확인한 후 알아차렸다. 앞에 있던 지운이 형이 고개를 돌려 조용히 눈을 마주쳤다. 말하지 않아도 내 상태를 살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형도 안심하고 다시 라이브에 집중했다.
“저 괜찮아요! 그냥 잠깐, 정말로 디너쇼 하면 어떨까? 상상하고 있었어요.”
“이런 거 제일 관심 없어 할 거 같은데, 은근히 상상력 풍부하다니까?”
“이거 하나는 확실한데, 그때도 너랑은 티격태격하고 있을 거 같음.”
“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래야 투닥즈짘ㅋㅋㅋ
-평생 철들지마라 애들아…
“정말 소중하게 주어진 기회인 만큼, 앞으로도 여러분에게 최고의 모습만 보여 드릴게요.”
“이렇게 되면 우리 막 팬 미팅이랑 콘서트에서 울었던 거, 너무 민망해지는 거 아니에요?”
“그러게…….”
재봉의 말에 모두 잠시 조용해졌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우리는 늘 기한이 정해진 그룹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매 순간이 소중하고 아쉬웠으니까. 첫 번째 콘서트에서 시간이 흐르는 게 아깝다고 한 소감이 영상으로 남아 있는데, 누군가가 남긴 댓글에는 겨우 1년밖에 안 됐는데 유난이라고 하는 말도 있었다.
나는 침묵을 깨고 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민망하면 어때? 우린 항상 서로에게 애틋하니까 그런 거지. 맞죠, 클로버?”
“형, 요즘 어디서 멘트 배워 와요?”
“승빈이, 완전 로맨티스트였네-”
사실, 지금도 완전히 안심할 수 없다. 여전히 내 눈에는 상태창이 보이고, 계약 연장이 정식 그룹과는 다른 것이니까.
그 뒤로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밝아졌고, 즐거운 마음으로 에이앱을 종료했다. 아직 계약 연장에 대한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멤버들에게 유현이 형이 말했다.
“이제부터 새로운 시작인 거 알지? 기쁜 마음은 너무 잘 알지만, 이럴 때일수록 중심을 잘 잡아야 해.”
라이브 중간중간 텐션을 주체하지 못하고 실수할 뻔한 순간이 있었기 때문에 한 말임을 모두 이해했다. 유현이 형의 뼈가 있는 조언에 멤버들 모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너무 까불긴 했어. 죄송해요.”
“아니야. 더 기뻐해도 좋아. 다만, 팬분들 앞에서는 조금 조심하자는 거지.”
모두가 들떠 있는 중에도 중심을 지킬 줄 아는 사람이 우리 리더여서 참 다행이었다.
* * *
계약 연장이 확정된 후부터는 확실히 여유가 생겼다. 국내 컴백과 미국 활동을 동시에 준비해야 해서 체력적으로 버거운 순간이 있었지만,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안정적이었다. 가끔 상태창이 변덕을 부리더라도, 멤버들이 항상 곁에 있어서 컨트롤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서 발생했다. 캐스팅된 드라마 제작이 무산되면서 오재성의 폭주가 걷잡을 수 없을 수준이 된 거다. 오재성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잘못했어]
[이제 욕심내지 않을게]
[그러니까 이 상태창만 어떻게 해줘…]
[이번 미션도 실패하면 정말 큰일이야]
하도 메시지가 쏟아져서 번호를 차단하면 어떻게 알아낸 건지, 다른 멤버를 통해 다시 메시지를 보내 왔다. 오재성은 점점 통제력을 잃어 갔다. 처음에는 사과를 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회유를 하다가, 분노에 가득한 메시지를 보내고, 다시 사과하는 걸 무한 반복했다.
[너도 다를 바 없잖아?]
[이 상태창 결국 네꺼에서 떨어진 거잖아. 내가 이지랄이 났는데 네가 멀쩡할 리가 없지]
[승빈아 나 정말 이번엔 제대로 살아볼게 한번만 도와줘]
[이 X같은 XX야 넌 항상 다 가졌었잖아 나도 XX 제대로 살아보고 싶었을뿐인데]
오재성의 연락은 필사적으로 숨기려고 했지만, 다른 멤버에게도 연락 테러를 하면서 더 이상 숨길 수 없었다. 멤버들은 나보다 더 분노하며 한마디씩 거들었다.
“이거 완전 X친 새X 아니야?”
“왜 진작에 얘기 안 했어?”
“VM은 얘가 이러는 거 알고 있어?”
강도현이 굳은 표정으로 답했다.
“VM은 이제 포커스에 손 뗄 준비 하고 있어. 신인 준비하는 데 정신 팔렸거든.”
문득, 며칠 전 포커스의 미래를 걱정하며 올라온 글이 떠올랐다.
[포커스 이제 놔줄 때 된 거 같다]
아는 지인이 계자인데 VM 이미 포커스 포기한 지 오래라고 함ㅋ… 포커스 담당하던 핵심인력들 다 신인개발팀으로 이동한 거 업계에선 이미 공공연하게 알려진 일이래
-어쩐지 헤메코 성의 뒤졌더라
-근데 나같아도 지들이 알아서 퇴물된 애들 데리고 있을 바엔 신인개발에 집중함
-도현아 도망쳐
-아무리 그래도 VM에서 공들여 만든 그룹 아님? 겨우 이런걸로 해체시킨다고?
└VM이 포커스를 공들여만들었다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랬으면 김병대를 안 넣었지 알못아
└ㅇㅇ그전에 잘하던 애들 다 내보냈는데 강도현이 크리드로 데뷔해버려서 부랴부랴 뽑아가지고 만든 그룹인데 뭐래
오재성이 정도를 모르고 폭주하는 가장 큰 이유겠지. 아직 배우로서 입지를 제대로 다지지 못했는데, 포커스마저 공중분해된다면 말 그대로 방치될 것이 뻔하다.
[난 이 세계를 끝내는 방법을 너무 잘 알아]
[마지막 인사는 해야 하지 않겠어?]
“이 미X놈이……!”
[어차피 또 미션을 실패했거든]
[마지막 기회야]
[네가 최악의 기억을 가지고 최악의 순간으로 돌아가길 바라.]
오재성이 보낸 마지막 메시지는 장소와 시간이었다. 이미 작정을 한 녀석을 더 자극하다간 손쓸 방법이 없기에 누구와도 대동하지 않았다. 그리고 도착한 곳에는 난간 위에 위태롭게 선 오재성이 있었다. 우선 저 녀석을 진정시켜야겠다는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최대한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고 오재성을 회유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넌 이번이 세 번째인가?”
“일단 내려와.”
“반갑다. 난 처음인데, 네 마지막 모습은.”
“오재성!”
“아, 걱정하지마. 이번엔 관객이 하나 더 있거든.”
“뭐?”
온몸이 불안함으로 잠식되었다.
“곧 올 거야. 그 형, 시간 하나는 잘 지키는 사람이잖아?”
시계를 보던 오재성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철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달려 들어왔다. 고개를 돌렸고, 심장이 머리에서 발밑까지 떨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지운이 형?”
불안한 예감은 언제나 들어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