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313화 (313/346)

313화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하게 스밍 준비를 마친 문스트럭은 경건한 마음으로 뮤직비디오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이전에 공개된 수중 촬영 사진으로 한바탕 난리였기 때문에, 뮤직비디오에 대한 기대감이 머리끝까지 차오른 상태였다.

그리고 오프닝부터 물속에 웅크린 승빈이 등장하자, 문스트럭은 입을 틀어막았다. 자신이 본 게 현실인가 몇 번이고 재생바를 뒤로 갔다가 멈추는 것을 반복했다.

[정신 차려 보면 어느새 또

네 작은 상자 속 심해로

허우적거리기만 해]

승빈의 표정 연기는 물속에서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한 마리의 인어를 보는 오묘한 기분에 잠시 숨 쉬는 방법을 잊은 듯했다.

[모든 걸 다 알겠지

소설의 작가는 내가 아니니

But I don't mind

Cause I’m not your Issue

마음껏 즐겨 봐

어차피 네 작은 박스를 떠나면 허상이 될

I’m your CREED, delusion.]

‘I’m your CREED, delusion’ 파트에서 승빈의 옆으로 유현과 지운이 귓속말을 하는 안무가 있는데, 시선을 내리깔고 있던 승빈이 눈을 들어 살짝 비웃듯 미소 짓는데 소름이 오스스 돋았다. 실시간 팬 반응은 잠시 마비가 올 정도로 폭발적이었다.

-이런 미친!!!!!!

-잘생긴애잘생긴애잘생긴애 조합 미쳤다

-도랐나!!!!!

-좋은 생이었다…

-ㅈㄴ절경이네요 장관이고요

처음에는 심해와 같은 사랑에 빠진 이야기인가 했지만, 작은 상자는 핸드폰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대중의 작은 핸드폰 속 변화무쌍하게 바뀌고, 진실이 아닌 모습들이 덧칠되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비판하고 있었다. 기존의 아이돌들이 몽환 콘셉을 가져올 때 밝은 이미지를 가져오는 것과 달리, 알 수 없는 으스스함을 더한 몽환 콘셉을 가져온 것이 신의 한 수였다.

[점점 더 멋대로 움직일걸

My ego, My way, My mind

네 작은 상자를 뛰어넘어]

마침내 수면 위로 올라온 크리드 멤버들이 눈부신 태양에 눈을 피하다가도, 정면으로 마주하는 장면으로 뮤직비디오가 끝났다.

인터넷상에는 벌써부터 뮤직비디오 해석에 대한 여러 가지 의견들이 오가고 있었다.

[이번 노래 가사가 너무 마음에 들어]

먼저 ‘모든 걸 다 알겠지, 소설 속 작가는 내가 아니니’는 자신의 신념으로 만든 크리드의 모습이 전부라고 믿는 사람들한테 결국엔 다 소설이라고 하는 거잖아. 노래 제목처럼 자극적인 이슈에만 눈이 멀어서 진실은 외면하려는 걸 비판한 거 같음ㅇㅇ

그리고 크리드랑 Creed로 언어유희한 것도 신박했음.

Creed가 신념이라는 뜻이잖아, delusion은 망상이고 ‘크리드는 이럴거다’라고 굳게 믿고 있지만 결국엔 핸드폰을 벗어나서 현실로 돌아오면 허상이고, 망상일 뿐이라는거지ㅋㅋㅋ애들 진심 기존쎄여서 너무 좋음.

처음에는 이런 흐름에 휩쓸리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뮤직비디오 후반에 가서는 그 흐름 속에서도 자유롭게 유영하고, 여유로운 모습까지 보여줌… 이게 성장이 아니면 뭐냐고ㅠㅠ

-ㅁㅊ이런건 어떻게 알아오는거냐? 난 그냥 크리드 존잘 하고 있었는데

-그릇된 신념과 망상으로 자기들을 보고 있어도 어차피 우리는 당신들이 아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고 당당히 말하는거 너무 멋있음…

-맨날 짱이 돼서 크리드 괴롭히는 애들 패고다녀야지 했는데 이미 애들이 너무 잘 패네…

* * *

3집 활동 ‘Issue’는 선우 형의 예상대로 좋은 성적을 거두며 시작되었다. 특히 수중 촬영 콘셉의 사진이 화제가 되었다. 아이돌의 수중 촬영은 4년 뒤에는 꽤 흔한 일이었지만, 이때는 거의 처음으로 시도한 거였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가사로 인한 잡음이 있었지만, 오히려 적절한 바이럴 효과를 얻는 것으로 그쳤다.

[뮤직비디오를 보고도ㅋㅋㅋㅋ]

자기들 저격하는거냐고 부들부들거리는거 왜케 웃기냨ㅋㅋㅋ현대예술 보는거 같음

-ㅇㅇ위튜버 렉카들 발작해서 뮤비가 더 완벽해짐

-냅둬ㅋㅋㅋㅋ 저게 쟤네들의 크리드고 망상이니까

-현생을 살아 렉카들아

“곧 녹화 시작한다, 얘들아-”

“네!”

활동 첫 예능 스케줄은 최 피디님의 새로운 스포츠 예능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던 농구 만화가 있었다며, 언젠가 꼭 만들어 보고 싶다고 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 승빈아! 오랜만이네? 유니폼 잘 어울린다!”

목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알 수 있는 독보적인 목청이었다. 만화 주인공 그대로 스타일링을 한 피디님을 보고 웃음이 터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언제 파란색으로 염색을 하신 거야…….’

“피디님, 잘 지내셨죠? 농구 예능 하고 싶다고 하시더니, 진짜로 해내셨네요?”

“요즘 또 불이 붙었잖니?”

“첫 게스트로 불러 주셔서 감사해요.”

“말했잖아, 앞으로 예능 새로 할 때마다 부를 거라고. 마침 크리드 활동기에 겹쳐서 나온 게 다행이지~”

“프로그램명이 ‘버저 비터’라고 하셨죠?”

“응. 버저 비터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는 그런 열정! 패기!를 보여 주겠다는 의미로 지었지.”

“이름 정말 잘 지으신 거 같아요.”

첫 방송 포맷은 실제 청소년 농구 선수들과 3대 7로 붙는 것이었다. 키로는 어디 가서 꿀린다고 생각한 적 없었는데, 거의 190cm에 가까운 윤빈 형도 선수 옆에 서니 고만고만해 보였다. 2m가 넘는 선수 옆에 섰는데, 고목 나무에 매달린 매미가 된 기분이었다.

“윤빈 씨는 농구를 하셨다고 했죠?”

“네. 고등학생 때 동아리 활동으로 농구했었어요.”

“포지션이 따로 있었어요?”

“아뇨, 그냥 그때그때 다르게 다 했어요.”

“저희 팀은 윤빈 형만 믿으려고요!”

“아니야, 도현이도 잘해~”

다들 학창 시절 농구를 한 경험은 있지만, 간단한 드리블과 레이업 슛이 전부였다. 운동에는 영 소질이 없는 지운이 형과 선우 형은 큰 키를 최대한 활용하기로 했다.

“자~ 경기 시작합니다!”

휘슬 소리와 함께 경기가 시작되고 젖 먹던 힘까지 다해 경기에 임했다. 하지만 역시 선수는 선수였다.

“이, 이거 파울 아니에요?”

“아니에요!”

“점점 엉망진창 농구가 되고 있는 거 같은데…….”

시끄러운 쪽을 돌아보니 박재봉이 한 선수의 다리춤을 붙잡고 있었다.

“그래서! 여러분을 위해 아이템을 준비했습니다!”

“그걸 이제야 주시면 어떻게 해요!”

“달라고 안 했잖아요?”

“아, 피디님!”

곧 스태프 여러 명이 거대한 무언가를 가지고 왔다.

‘잠시라도 기대한 내 잘못이지…….’

거대한 손바닥 모양 판자였다.

“이걸로 어떻게 경기를 해요?”

“이런 미… 아, 아니 이런 미, 됐다. 말을 말자.”

선우 형은 도저히 미쳤다는 말로밖에 표현이 안 되는지 헛웃음을 짓다가 마른세수를 반복했다.

“상대적으로 키가 작은 여러분을 위한 슈퍼 울트라 자이언트 디펜스 핸드입니다!”

‘그냥 거대한 널빤지잖아……!’

“우와, 이름 진짜 대단한데요?”

“지금 우와- 할 때가 아니에요, 윤빈 형!”

“아, 미안.”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분명 우리를 도와주기 위한 아이템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된 게 볼수록 벌칙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너, 이거 무거워서 들고 뛸 수는 있어?”

“당연하죠! 헉, 헉…….”

박재봉은 널빤지를 휘두르다가 이미 파김치가 됐다. 선우 형은 분신술이라며 좋아하더니, 분신 인형에 걸려서 넘어지질 않나… 아무런 아이템도 없는 멤버들이 더 도움이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졌다.

“그래도 30점 차면 꽤 적은 점수 차인데?”

“윤빈 형이랑 강도현, 합이 잘 맞아.”

“둘이 음악 작업할 때도 저렇게 잘 맞진 않을 듯?”

“형, 패쓰!”

“받아, 도현아!”

지난번 양궁에서 고전한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구기 종목에는 강한 모습이었다. 점수 차는 어쩔 수 없지만, 모두 온몸에 땀이 쏟아질 정도로 열정적으로 달렸다. 그리고 5초를 남기고 상대 팀이 골을 넣었을 때,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쩐지 이 공을 드리블만으로 끝내기에는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고 막무가내로 림을 향해 던졌다.

“야, 그래도 포기하면… 엥?”

링을 때리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공이 골대를 통과했다. 그리고 종료를 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비롯한 모두가 얼어붙었다.

“뭐, 뭐야?”

“…헐.”

“들어간 거야?”

“승빈아! 이 기특한 녀석!”

벤치에 앉아 있던 최 피디님이 입고 있던 져지를 벗어 던지며 달려왔다.

“진짜 버저 비터를 해낸 거냐!”

“그렇게 됐… 네요?”

다시 생각해 보니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하필 프로그램명이 버저 비터인 예능에서 정말 버저 비터를 해냈으니까.

“됐다, 이번 예능 시청률 최소 15% 간다!”

“그, 그 정도예요?”

“예고편 기가 막히게 나올 거니까 기대해!”

그리고 최 피디님의 말대로 첫 방송 예고편은 공개되고 1시간이 되지 않아 조회수 50만을 달성했다.

-이쯤되면 문승빈이 신이 아닌가 싶음

-최피디가 문승빈 예뻐할 수밖에 없네;;

-와중에 우리 애들 뭘 저렇게 큰걸 들고 다니는거임?

-농구예능맞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기인열전하는거같은데

-왜 고정멤버 아닌거냐ㅠㅠ

-충격 크리드 농구복 영상 실존

-윤빈이랑 도현이 폼 미쳤네

-윤빈이는 농구 오래한게 티가 나

여러모로 기분 좋은 활동 시작이었다.

* * *

컴백 후 바쁜 스케줄도 이젠 익숙했다. 새벽부터 사전 녹화와 본방송을 모두 마치고 도착한 곳은 팬 사인회장이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하는 공개 팬 사인회인지라 목적지가 좀 달랐다.

“와, 여기 우리 데뷔 앨범 때 왔잖아!”

“그러게, 그때 막 팬사를 여기서 했었나?”

지하 주차장에 내려 이동하다 보니 익숙한 공간이었다. 데뷔 앨범 활동기에도 팬 사인회를 했던 공간이었다.

“얘들아, 근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조심해야 할 거 같다.”

“그때도 많았는데요?”

“그 정도가 아니야.”

매니저 형이 경고할 정도의 일은 드물었던 지라, 다들 긴장 반 설렘 반으로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리고 쏟아지는 플래시 세례에 나도 모르게 눈을 깜박였다.

“승빈아! 여기 봐 봐!”

“헐, 크리드다.”

“지운아! 오늘 너무 예쁘다!”

쇼핑몰 1층에 위치한 팬사장까지는 좀 걸어가야 했는데, 가는 길목이 사람들로 가득했다. 실로 오랜만에 하는 공개 팬 사인회라 그런지 상상 이상의 인파가 몰린 거다. 마치 공항에서 출국할 때처럼 경호원들에 둘러싸여서야 겨우 발걸음을 뗄 수 있었다.

“와, 대박인데?”

“우리 그때는 이렇지 않았는데-”

“그러니까, 그때도 진짜 많다고 생각했는데.”

“비교가 안 될 정도네.”

기본적으로 집돌이 성향인 멤버들이었기에 더 놀란 듯했다. 물론 콘서트나 행사에서는 더 많은 팬도 만났지만, 이렇게 일상적인 공간은 또 다른 느낌이었으니까.

“엄마, 잘생긴 오빠들이야!”

“어머, 얘가 벌써 남자 얼굴 볼 줄은 알아서-”

팬들과 대중들에게 바쁘게 손을 흔들며 걸음을 옮기던 중, 엄마 손 꼭 잡은 꼬마 숙녀의 우렁찬 외침에 다들 웃음이 터졌다. 하여간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인 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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