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화
3집 앨범 재킷 사진 촬영 날, 이번에는 새로운 사진 작가분과 촬영을 할 거라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데뷔 때부터 쭉 함께 작업했던 사진작가가 같았기에 어떤 작가인지 더 궁금했다. 그리고 촬영장에 도착해 작가의 정체를 알게 되었을 때,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오랜만이다?”
“누나?”
“문해빈 작가님?”
문해빈이 여유롭지만,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나를 맞이하고 있었으니까.
“뭐야, 왜 말 안 했어, 누나?”
“내가 내 일하러 오는데 굳이 말해야 하나?”
“…….”
“그리고, 여기에선 누나 말고 작가님이라고 부르는 게 어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원래 서로 일하는 분야에서는 전혀 간섭이 없던 사이었으니까. 그리고 친누나여서 실감하지 못했지만,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진작가니까. 그리고 너무 오랜만에 만나서 잊고 있었다. 문해빈은 비즈니스에 있어서는 인간 문해빈과 사진작가 문해빈을 완전히 분리한다는 것을.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사진작가 문해빈입니다. 크리드랑은 첫 작업인데, 잘 부탁해요.”
“저희도 잘 부탁드립니다!”
나와 누나 사이의 흐르는 묘한 긴장감에 멤버들도 기합이 잔뜩 들어간 게 느껴졌다.
“자, 오늘 수중 촬영 있는 거 알죠? 다행히 물 무서워하는 멤버는 없는 걸로 확인했고요. 맞죠?”
“네!”
“전문가분하고 같이 촬영하는 거니까 사고의 위험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촬영 중에 어려움이 있거나, 이상이 있으면 무조건 말해 줘요. 사고 없이 촬영하는 게 제 철칙이거든요.”
누나의 촬영 작품은 여러 번 봤지만, 그 과정이 담긴 현장을 본 것은 나도 처음이다. 자꾸만 내가 알고 있는 누나와 괴리감이 생기는 기분이 들었다. 촬영뿐 아니라 능숙하게 현장을 지휘하는 모습은 장난기 가득한 평소와는 180도 달랐다.
수중 촬영은 이번 앨범의 콘셉인 ‘몽환’을 표현하는 데 최적화된 콘셉이었다. 처음에는 물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것이 불편했지만, 지도해 주는 분의 디렉팅에 따라 움직이며 서서히 적응했다. 어릴 때부터 수영을 했던 윤빈 형은 처음부터 어색함 없이 촬영에 임해서 모두의 환호를 받았다.
“윤빈 형, 완전 인어인데?”
“저 물 먹고 기절하는 거 아니에요?”
“에이, 설마.”
“방금 움직임 좋았어요!”
천이 길게 늘어진 의상이 물결에 따라 화려하게 움직였고, 그 자체만으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와, 대박.”
“보정 들어가면 더 예쁠 거예요.”
“완전 기대돼요!”
내 순서가 다음 차례가 되면서 막바지 연습에 매진했다. 그런데 갑자기 상태창이 이상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서서히 반짝이는 빛이 커지더니, 불규칙하게 반짝이기 시작했다.
‘아직은 조금 신경 쓰이는 정도야.’
눈을 감으면 불빛의 움직임이 둔해져서 촬영 전까지는 최대한 눈을 뜨지 않기로 작정했다. 누나 앞에서 하는 첫 촬영인데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았으니까.
“다음으로 승빈 씨 촬영 들어갈게요!”
“네!”
소품으로 긴 천을 받았다. 물에서 자유롭게 컨트롤할 수 있다면 멋진 사진이 나오겠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더 어려운 촬영이었다. 자꾸만 머리칼이 얼굴에 달라붙었고, 옷자락은 기대만큼 멋있게 움직이지 않았다.
“승빈 씨, 조금만 더 역동적으로 움직여 볼까요? 지금 너무 경직되어 있어.”
“네!”
“해파리가 됐다고 생각해 봐요-”
해파리라니,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막느라 고생했다. 그래도 누나의 의견을 적극 반영 하여 온몸에 힘을 빼고 팔다리의 움직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뭐야, 잘하네! 진작에 이렇게 하지… 그러셨어요.”
아무리 그래도 동생이라는 건가. 평소 둘이 있을 때 말투가 튀어나오는 건가 했다.
누나의 칭찬인 듯 칭찬 아닌 말에 힘입어 더 적극적으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서히 움직임이 자연스러워지고, 온몸에 긴장감이 사라지고 흐물흐물한 해파리가 된 기분이었다.
“자, 이제 눈 뜨고 촬영해 볼게요!”
‘괜찮겠지……?’
촬영이 시작되고 한 번도 상태창의 불빛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경계를 풀었고, 곧 최악의 판단임을 깨달았다. 지금까지의 고요함은 한여름 밤의 꿈이었나? 의심될 정도로 강한 불빛을 내며 발광하고 있었다. 최대한 눈을 질끈 감으며 정신을 가다듬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물속이어서 숨 쉬는 것은 더 불편했고, 움직임은 둔해졌다. 물 밖에서 마주할 때보다 더 빨리 의식이 잃어 감을 감지했고, 더 있다가는 정말 큰일을 당할 것이라는 공포감에 휩싸였다.
“승빈 씨, 눈을 감지 말… 야!”
결국, 참지 못하고 물 위로 발버둥 치며 올라왔다. 여전히 반짝이는 불빛에 두 손으로 시야를 가렸다. 멤버들과 현장 스태프들의 웅성거림이 들렸다. 허우적대는 나를 누군가의 손이 강하게 붙잡았다. 그리고 그 그림자에 가려져 더 이상 불빛이 보이지 않고 나서야, 눈을 뜰 수 있었다.
“누나……? 아, 아니 작가님.”
“누나라고 해. 리버, 이 미련한 놈아!”
‘하여간 제멋대로야…….’
그 와중에도 호칭을 바꾸는 나를 보고 누나의 두 눈이 더 빨개졌다. 전혀 누나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웬만큼 화가 나거나, 당황하지 않으면 리버라고 부르지 않는데, 거의 5년 만에 들어 보는 영어 이름이었다. 안도감과 함께 긴장이 풀렸다. 낑낑거리는 누나 곁으로 멤버들의 손이 겹쳐 왔다. 부축을 받으며 물 밖으로 빠져나왔다. 아직 옷을 갈아입지도 않았는데, 누나가 나를 품에 안으며 더 다친 곳이 없는지 팔다리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괜찮아, 그리고 누나 옷에 물 묻어. 붙지 마.”
“힘들거나, 어려우면 말하라고 했잖아…….”
“나 정말 괜찮다니까? 잠깐 다리에 쥐가 났던 거 같아.”
오히려 내가 덜덜 떨리는 누나의 손을 잡아 줬다. 떨림이 잦아들 때까지 꼼짝없이 누나의 품에 안겨 있을 수밖에 없었다. 최대한 물이 묻지 않게 손을 허공에 두었지만, 누나가 세게 안아 오는 바람에 아무 쓸모가 없었다. 우리 남매가 이렇게 길게 서로 안겼던 적이 있었나? 어색함에서 오는 불편함과 우리가 남매라는 사실을 알려 주는 아늑함이 뒤섞였다.
결국 촬영은 다음 날로 연기되었다. 누나의 상태도 문제였지만, 카메라가 완전히 박살 났거든.
“저, 문 작가님이 그렇게 당황한 거 처음 봤어요.”
“맞아. 원래 촬영하다가 뭐 세트가 떨어지거나, 모델이 사고 쳐도 전혀 동요하지 않던 분이거든요? 근데 승빈 씨 상태 이상한 걸 가장 먼저 감지하자마자 카메라는 내팽개치고 달려가시더라고요.”
“나 솔직히 좀 감동받음…….”
현장 스태프들의 말을 우연히 엿들었다. 내가 알던 누나와 전혀 다른 모습을 한꺼번에 마주하니, 누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어떠한 위로도, 사과도 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고 누나로부터 연락이 왔다.
[몸은?]
[괜찮아.]
[너, 물 무서워했어?]
[물 무서워서가 아니라 그냥 다리에 쥐 나서 그런 거라니까?]
“아, 너무 싸가지 없게 보냈나…….”
곧 누나에게 혼날 각오를 하던 중 뜻밖의 메시지를 받았다.
[다행이다.]
한동안 아무 말도 보낼 수 없었다. 그리고 곧장 전화를 걸었다. 텍스트로는 도저히 전할 수 없는 마음이었으니까.
“뭐야, 갑자기 전화?”
평소와 같은 말투에 괜히 전화했나? 후회가 됐다. 역시 우리 남매에게 이런 건 어울리지 않는다니까.
“그…….”
[할 말 없으면 끊는다? 나 바빠. 오늘 촬영한 거 먼저 보정해야…….]
“오늘 걱정하게 해서 미안해.”
[…….]
“누나 일하는 곳에서 당황스럽게 만든 것도 미안하고, 내가 스스로 컨디션 체크 잘 못한 것도 미안해. 그리고…….”
[뭐가 그렇게 미안한 일이 많아? 너, 오늘 나한테 미안해야 할 일은 나 걱정시킨 거 말고 없어.]
“…응.”
[물론 그게 좀 큰 잘못이긴 하지만?]
“아무튼 미안해.”
[네가 자꾸 미안하다고 하니까 나도 미안해지잖아- 민망해서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하여간 눈치 없기는.]
잠시 정적이 오갔고, 누나가 말을 이어 갔다.
[나도 미안해. 아무리 직장이라도 동생한테 누나라고 못 부르게 한 건… 잠깐, 융통성 없는 건 나였네? 야, 이거 유전인가 봐. 어떡하냐?]
“참나… 내가 얼마나 융통성 있는 사람인데!”
[어쭈, 누나한테 대들어? 미안하다고 전화한 사람이 누구더라?]
“네, 네. 죄송합니다-”
역시 진지한 분위기가 5분 이상 유지되지 않는 남매다. 그래도 누나의 마음은 진실했음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너, 기억나? 어렸을 때 동네 바다에서 장난치다가 다리에 쥐 나서 못 빠져나왔던 거.]
“음… 아니?”
[다행이네, 너한테는 트라우마로 남지 않아서.]
“아, 다섯 살 때 말하는 거야?”
누나의 말을 듣고 정말 오랜만에 떠올랐다. 너무 어렸을 때의 일이고, 그 이후에도 물에 대한 큰 무서움 없이 살아왔다. 그래서 그날의 일은 부모님의 입을 통해 몇 번 들은 게 다였다.
[그때 내가 널 두고 다른 친구랑 놀아서 네가 큰 사고를 당한 거라고 생각했어.]
“…….”
[다 잊은 줄 알았거든? 근데 네가 또 눈앞에서 물에 빠진 걸 보니까… 그때로 돌아간 기분이더라고.]
담담하게 말하지만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처음 보는 누나의 약한 모습이었다.
“누나랑 같이 작업할 수 있어서 신기했어.”
[나도 네가 나랑 작업할 정도가 됐다는 게 무척 자랑스러웠단다?]
“두고 봐, 내가 문해빈보다 유명해질 거다-”
[야, 말은 바로 해야지. 너, 이미 나보다 유명해~]
“근데 어쩌다 우리 앨범 촬영을 하게 된 거야?”
[꼭 내가 부탁한 것처럼 말한다? 너희 소속사에서 촬영 의뢰가 왔으니까 했겠지?]
“그래도, 전에는 거절했었잖아.”
사실 이전에도 앨범 및 콘셉 사진 촬영 작가로 누나에게 몇 번 섭외가 들어갔다고 했다. 그런데 그때마다 가족과는 작업하지 않는다며 단칼에 거절했다고 한다. 물론 그때는 약간 서운했다. 하지만 누나가 바라는 이상적인 촬영 현장이 어떤 것인지 알기 때문에 조용히 모른 척했다.
[오늘 같을까 봐.]
“응?”
[난 촬영할 때는 최대한 이성적이고 싶어. 근데 네가 있으면 그럴 수가 없잖아. 아무리 그래도 넌 내 동생이니까.]
항상 누나와 나는 서로에게 큰 기대도, 실망도 없는 사이라고 생각했다. 서로에게 감정적인 사이도 아니라고 생각했고. 그런데 완전히 잘못 넘겨짚은 거였다.
[뭐, 우리가 서로 죽고 못 사는 사이의 남매는 아니잖아? 그래서 지금 무슨 오그라드는 소리를 하나 싶겠지만, 어쩔 수 없더라고.]
“아니야. 고마워.”
[으, 내가 오그라든다. 더 할 말 없는 거지? 끊는다?]
“조만간 한번 보자.”
[죄송하지만, 저희 내일도 촬영 있어요, 문승빈 씨.]
“…끊어.”
[민망해 가지고 말 돌리는 거 보면 하나도 안 컸다니까? 알았어. 조만간 보자~]
“아이, 진짜!”
뚜- 소리와 함께 전화는 끊긴 지 오래였다. 그래도 입꼬리는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이 세계에는 소중한 것들이 너무 많다. 내가 그동안 알지 못했던 것들, 미처 이루지 못한 것들. 그 모든 것들을 지켜 내야겠다고 또 다짐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