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화
미국 에이전시와의 2년 계약 체결 소식에 크리드 팬덤은 축제 분위기였다. 크리드 계약 연장에 힘을 실어 줄 만한 계약이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해외진출 마음에 안 들었는데]
이제 ㅈㄴ 예뻐보임ㅋㅋㅋㅋㅋㅋ이대로 계약연장 가보자고
-계약연장 진짜 꿈이 아니고 현실 될 거 같음;;
-난 이미 계약연장했다고 믿고있음
└뭐 알아?
└아니? 하지만 진실은 언제나 수면 위로 드러나니까…
-클로버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이게 되네…
프로젝트 그룹이 미국의 거대 에이전시와 정식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은 한동안 연예면에 대서특필되었다. 많은 문화 평론가도 크리드의 차별화된 매력, 현지 진출 성공 전략에 대해 분석했다. 여러 기사와 논평을 읽던 문스트럭은 심드렁하게 혼잣말했다.
“이렇게 어렵게 말할 필요가 있나? 실력 좋지, 노래 좋지, 비주얼 피지컬 미쳤지, 팬 서비스 최고지, 홍보 잘하지. 무엇보다 승빈이가 있잖아?”
“지독하다…….”
“야, 너도 솔직히 그렇게 생각 안 함?”
“하긴, 지운이가 있는데 안 먹힐 수가 없지.”
오랜만에 K와 만난 그녀였다. 한동안 일이 몰려서 덕질을 하지 못했던 K는 이렇게 휴덕을 하는 것인가- 했지만, 미국 계약 체결 소리와 함께 중력에 이끌리듯 다시 지운에 대한 애정이 불타올랐다.
“난 승빈이를 너무 사랑하는 듯.”
“차지운 언제 질리지?”
“야… 넌 글렀어. 아직도 비행기 못 판 거 보면-”
“혜진아, 말은 똑바로 해야지. 못 파는 게 아니라, 안 파는 거야.”
“시세가 몇이냐?”
“지난번에 그냥 재미 삼아 자랑하려고 올렸었거든? 해외 클로버가 400만 원 제시하더라… 나 숫자 잘못 센 줄?”
“400? 이런 X친-”
“아주 잠시 혹했지만? 이제 얼마를 줘도 못 팔지-”
“1억은?”
“응 안 팔아~”
“10억.”
“더 해 봐.”
“50억?”
“안 돼.”
“너는 진짜… 71억이랑 소중한 기억 중 고르라고 하면 기억 고를 듯.”
“지는?”
놀랍게도, 둘 중 누구도 저 말이 우스갯소리라고 생각 안 했다. 역대 최애들을 생각하며 저 질문을 받을 때는 당연히 71억을 골랐으니까.
“솔직히 71억 골라서 승빈이랑 소중한 기억을 사고 싶은데, 좋아했던 기억을 지우면 너무 아까울 듯.”
“71억보다 가치 있으니까-”
“진짜… 이렇게 말하는 게 솔직히 징그럽긴 한데, 승빈이는 그걸 가능하게 함.”
“와… 난 네가 아이돌한테 그런 말 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함.”
문스트럭과 K는 서로의 덕질 역사를 너무도 잘 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깊은 덕심을 보는 것은 둘 다 처음이었다. 크리드가 데뷔하고 벌써 3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적응이 안 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세상에 이런 우연이 있을까? 오랜만에 올라온 크리드 자체 콘텐츠 ‘크리데이’에서 밸런스 게임 질문 중 같은 질문이 나왔다.
“소중한 기억이랑 행복한 71억?”
“이게 무슨 소리야?”
“아, 대박.”
승빈이 윤빈과 도현에게 ‘기억’과 ‘71억’의 상관성을 열심히 설명하는 모습에 문스트럭은 무의식중에 웃음이 나왔다. 자기보다 덩치가 큰 늑대와 너구리한테 이것저것 알려 주는 말티즈를 보는 기분이었다.
“이해됐어요?”
“응! 한국어 너무 재밌어.”
“강도현은 아직 이해 안 된 거 같은데-”
-승빈스쿨 이제 신조어 강좌도 하냐곸ㅋㅋㅋㅋ
-제일 쪼끄만 애가 열심히 알려주는 거 왜케 귀엽짘ㅋㅋㅋ
“그러니까 기억이랑 71억이랑 고르라는 거네?”
“전 71억을 골라서 클로버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겠습니다!”
“아니지. 71억 받으면 기억 속에 클로버가 사라지는 거야.”
그 말에 박재봉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당혹스러움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그건 싫어요오…….”
-재봉이 나라 잃은 얼굴인데?
-귀여웤ㅋㅋㅋㅋㅋㅋㅋ
그저 밸런스 게임일 뿐인데, 일생일대의 선택을 해야 하는 것처럼 과몰입하는 멤버들이었다.
[그래도 클로버 없이 잘살 수 있지 않을까요?]
제작진의 질문에 일곱 명 모두 고개를 갸웃했다.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게 무슨 소리냐며 묻는 듯했다. 차지운의 굳은 얼굴도 오랜만에 볼 수 있었다. 예의상 하는 답변이라고도 생각 못 할 만큼 진심인 반응에 제작진들도 당황한 듯했다.
[미안해요, 지운 씨ㅠㅠㅠ]
“죄, 죄송해요! 제가 평소에도 무표정일 때 무섭다는 말 많이 들어요…….”
-지운이 눈으로 욕하는데요?
-살벌하다ㄷㄷ
-우리 애 착해요…
-크리드는 바보임…클로버밖에 모르는 바보
“진짜 착한 애라는 걸 알고 봐도 무섭게 생겼다니까?”
그때, 윤빈이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기억이 없는데 돈이 무슨 소용이에요?”
“…헐.”
“와…….”
-유죄인간아…
-역시 끝사랑 듣고 내가 자기 허즈번드냐고 한 애 다움…
-71억 고른 내가 쓰레기가 된 거 같음;;
-미안하다 빈아…반성한다.
이런 팬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해맑은 미소와 함께 말을 더했다.
“클로버도 당연히 행복한 기억 뽑았을 거니까! 저도 행복한 기억으로!”
-아아ㅠㅠㅠㅠㅠㅠ
-미안해ㅜㅠㅠㅠㅠㅠㅠㅠ
-71억이 뭐임? 당연히 기억이지^^;;
만장일치로 소중한 기억을 뽑은 크리드에 실시간 반응은 감동으로 물들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문장인데,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거래요. 저희 부모님도 항상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것의 소중함을 알고 살아야 한다고 하셔서… 71억이 소중한 기억을 이길 순 없을 거 같아요. 아무리 금액이 높아져도 결국엔 똑같은 돈일 뿐이잖아요, 저는 우리 멤버들하고 클로버와의 소중한 기억을 돈과 맞바꾸지 못할 거 같아요.”
-승빈아!!!!!!!!
-승빈이 부모님은 승빈이를 어떻게 키우신거야?
-명언제조기;;
-내새끼 말도 예쁘게해ㅠㅠㅠㅠㅠㅠㅠㅠ
“클로버도 기억을 선택했으면 좋겠지만… 71억으로 더 소중한 기억을 살 수 있다면 71억 선택했으면 좋겠어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니 없이 내가 어떻게 사냐고…
-어차피 다시 너 덕질해서 71억 꼴아박을거임
“내가 너 없는데 어떻게 소중한 기억을 가지냐고!”
참지 못하고 급발진하는 문스트럭을 보며 정연은 박수 치며 감탄했다.
“와… 명대사 나왔다, 혜진아.”
문스트럭은 뒤늦게 민망함이 밀려왔지만 변명하지 않았다. 정말로 자신의 소중한 기억에는 항상 승빈이 자리했으니까.
* * *
미국 활동이 종료되고 벌써 11월이 됐다. 따뜻한 지역에서 온 윤빈 형은 벌써부터 롱 패딩을 꺼내 입고 다녔다.
“으, 추워.”
“올겨울은 다른 때보다 더 추운 거 같아요.”
“맞아.”
“히익. 형, 코맹맹이 소리 나는 거예요? 안 되는데, 우리 곧 컴백해야 하는데.”
“아니야! 나 완전 건강해!”
윤빈 형은 온 힘을 다해 건강하다는 걸 증명하려는 듯 패딩을 찢을 기세로 벗어 던졌다.
“아, 알았어요. 그렇다고 누가 패딩을 그렇게 내팽개쳐요?”
내 말을 듣고 뒤늦게 민망함이 밀려왔는지, 조용히 가서 주섬주섬 주워 오는 형이었다.
“이번 앨범 특히나 형이 활약해야 하는데, 건강 조심해요.”
“너도! 이번에 네 파트 너무 기대돼. 내가 특별히 더 신경 썼으니까.”
“오늘은 좀 늦었네?”
“역시 지운이 형은 부지런하다니까?”
“저기, 나도 있거든?”
윤빈 형의 작업실에 들어가니 지운이 형과 선우 형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선우 형은 요즘 랩 메이킹에 새로운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책과 문학과는 담쌓았던 사람이, 갑자기 시집을 읽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소름이 돋기도 했다. 작사 실력 높이는 데 독서와 시집 읽기가 도움이 됐다는 지운이 형의 말 한마디에 저렇게 변했다는 것도 놀라웠다.
“와, 대박. 형 그거 콘셉질이 아니었네요?”
“이 자식이?”
이번 3번째 앨범에는 지난 팬 미팅에서 공개했던 솔로곡 이외의 새로운 곡이 들어갈 예정이다. 3번째 앨범의 주제는 ‘Issue’다. 그래서 멤버들 스스로가 생각하는 자신들의 ‘이슈’가 담긴 곡들로 구성될 예정이다.
“이번 타이틀곡, 너무 마음에 들어.”
“오, 선우 형이 마음에 든다고 이렇게 직접적으로 얘기한 건 이번이 처음 아니에요?”
“내가 좀 기준이 높지? 내가 마음에 든다고 한 거 보면 이번 앨범 진짜 잘될 거임.”
“저는 형의 그 자신감이 참 좋아요-”
“왜 이렇게 놀리는 거처럼 들리지?”
“그럴 리가요~ 맞다. 형, 2절 가사도 확정됐어요?”
“응. 한번 봐 볼래?”
지난 Definition 이후 회사에서도 윤빈 형과 지운이 형의 시너지가 엄청나다는 것을 인지하고, 최대한 둘의 협업을 지원해 줬다. 매번 타이틀곡 프로듀싱을 해야 하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을까 내심 걱정도 했다. 하지만, 둘은 창작의 고통보다 즐거움이 더 큰 사람들이었다.
문득, 티벡스 시절 형과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해낸다는 마음으로 해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왜 우리가 이런 것까지 해야 하냐며 불평하고, 불만이 가득했다. 언젠가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나를 다독이는 형이 미련하다고 생각한 순간도 솔직히 많았다. 제대로 된 케어를 못 받고 있다는 증거인데, 무슨 도움이 되겠냐는 마음이 컸으니까. 하지만, 두 눈을 반짝이며 적어 냈을 가사를 찬찬히 읽어 가며 떠오르는 감상을 부정할 수 없었다.
‘형 말이 맞았네.’
“이번 앨범 콘셉이 몽환이잖아.”
“몽환 콘셉인 타이틀은 처음이죠?”
“응.”
“난 그래서 이번 활동곡이 더 마음에 들어. 뭔가 몽환인데 으스스한 느낌?”
“맞아. 그래서 가사 쓰면서 재밌었어. 그리고 의외로 재봉이가 이런 가사를 잘 쓰더라고?”
“역시… 걔 놀이 기구도 잘 타고, 공포 영화도 잘 보잖아요.”
앨범과 타이틀곡에 대한 대화를 할 때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그사이 나머지 멤버들도 작업실에 도착했다.
“오늘은 누구 먼저 녹음할래?”
“7일이니까…….”
“에휴, 또 막내인 저죠?”
“3번, 선우가 하자!”
“아니 7일이랑 3번이랑 무슨 상관이 있는데?”
“둘 다 행운의 숫자잖아~”
“와, 유현이 형 그렇게 안 봤는데 진짜 억지스러운 사람이었네요-”
궁시렁거리면서도 녹음할 때는 어느 때보다 진지해지는 형이다.
[Check my Issue
네 입맛대로 적어 낸 소설 속
오늘의 난 어떤 캐릭터
또 덧칠해 더 칠해 봐
내 숨결도 느껴지지 않게]
안 그래도 낮은 목소리를 더 낮게 깔고 랩을 하니 긴장감이 더해졌다. 우리가 그동안 겪었던 수많은 이슈와 루머에 대한 분노를 대변하는 느낌이었다.
“형, 오늘 컨디션 최고인데요?”
“그래? 어쩐지, 오늘 잃어버린 줄 알았던 봉수를 찾아서 아침부터 느낌 좋다고 생각했거든!”
“봉수가 뭐야?”
“선우 형 침대 위에 있는 인형 백 개 중 하나요.”
방금 전까지 사람 하나 죽이고 남을 목소리로 랩 하던 사람이랑 어떻게 같은 사람이냐고.
내 녹음 순서가 오고, 나는 이 파트가 내 파트가 되었다는 것에 감격스러웠다. 언젠가 멤버들을 대신하여 꼭 하고 싶은 말이었으니까.
[모든 걸 다 알겠지
소설의 작가는 내가 아니니
But I don't mind
Cause I’m not your Issue
마음껏 즐겨 봐
어차피 네 작은 박스를 떠나면 허상이 될
I’m your CREED, delusion.]
우리의 추락을 바라는 손가락 따위에 더 이상 흔들리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