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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310화 (310/346)

310화

VM 측에서는 언제나 그랬듯 먼저 부인 기사를 냈다.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 뿐, 아이템이 겹친다는 이유로 의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부당하다는 입장이었다. 그리고 무분별한 비난과 조롱에 대해서는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이쯤되면 인정 루트 아니냐?ㅋㅋㅋㅋ]

일단 부인하고 법적 대응 예고하고 결국에는 사실로 판명나서 사과문 올리는거

-병대 반성문 작성하고 있을듯ㅋ…

-사실 김병대가 이제야 터진게 제일 놀랍긴 함

└ㅇㅇ얘가 제일 먼저 일낼줄 알았는뎈ㅋㅋㅋㅋㅋ

-포커싱 멘탈 비브라늄될 듯

-조용히 넘어가나했다 ㅅㅂ 엊그제 컴백했는데

-진짜 포커스에 누가 살 날린 거 아님? 그게 아니고서야 이렇게 악재들이 겹칠 수 있나?

하지만 VM이 간과한 것이 있었다. ‘노룩계산남’ 사건이 더 비난을 받은 것은 당시 노인 관련 사회 문제가 사회적 이슈였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김병대의 폭로와 맞물려 노인 관련 사건이 터졌고, 눈덩이 불어나듯 일이 커졌다.

그리고 결정적인 증거가 하나 더 공개되면서 사건은 완전히 다른 국면을 맞이했다.

[노룩계산남이 빼박 김병대인 증거 나옴]

처음 폭로때 사진 보면 알겠지만,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님. 여기 방문할 때마다 저랬다는 걸 알 수 있지. 그래서 의상이랑 모자같은 아이템은 바뀌지만, 똑같은 아이템이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했음. 그리고 발견한게 바로 이 그립톡임.

(그립톡 사진)

뭐 그립톡도 우연히 겹친 거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절대 그럴 수 없음. 왜냐고? 이거 김병대가 주문제작한 그립톡이거든ㅋㅋㅋㅋㅋ 본인 딴에는 팬들 생각하면서 만든 그립톡이라고 했는데, 저거 분명 구라임ㅇㅇ 소통 관련해서 팬들 개지랄났을 때 무마시키려고 갑자기 많이 보낸날 한 말이거든. 어그로끄는 거 절대 아님 왜냐면 나도 일주일 전까지는 김병대 크림 구독한 순덕이었거든ㅎ… 아무튼 이 그립톡이 거의 모든 사진에 등장함. 되게 작아가지고 사람들이 놓친 듯.

주문 제작한 그립톡까지 우연의 일치라고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그날 김병대는 사회면과 연예면을 통합시키는 일생일대의 커리어를 달성했다.

[늘어나는 노인문제… 인기 아이돌도 가해자]

[포커스 김병대는 정말 ‘노룩계산남’일까?]

[주문 제작한 그립톡의 진실은?]

VM은 그 주의 활동까지 아무렇지 않게 진행했다. 하지만, 무대 이외에서 김병대를 마주치는 순간이 없었다. 나중에 강도현에게 물으니, 괜히 밖에 돌아다니다가 또 말실수하거나, 문제 되는 행동을 하게 될까 봐 예방 차원으로 대기실에서만 지내게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각종 방송사 시청자 게시판은 김병대의 출연을 금지해야 한다는 항의글로 도배되고 있었다. 김병대 개인뿐 아니라 포커스 자체의 출연을 막아야 한다는 여론도 점점 불타오르고 있었다. 결국 VM은 처음 계획한 4주 활동을 2주로 변경했다. 멤버 컨디션 및 체력 관리를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누가 봐도 여론을 의식한 결정이었다.

물론 나도 최대한 포커스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오재성과의 충돌은 막을 수 없었다. 뮤직 쇼에서 나를 보자마자 오재성은 다짜고짜 멱살부터 잡고 시작했다. 도리어 내가 주변에 아무도 없는지 확인해야 했다.

“이거 놓고 말해!”

“너 솔직히 말해 봐. 이거 다 알고 있었지? 이미 다 예상하고 일부러 나한테 접근한 거지?”

“내가? 일부러? 그건 내가 너한테 해야 할 말 아닐까?”

“얼마나 더 내 인생을 조져야겠냐?”

“네 인생 조져 놓은 건 너 한 사람뿐이야, 멍청한 새X야!”

방송국이기 때문에 최대한 말조심을 하려 했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네 그 추악한 열등감과 피해 의식 때문에 지운이 형은 죽을 뻔했고, 나도 영문도 모른 채 이곳으로 오게 된 건 생각 안 하냐?”

“아아악!”

바로 앞에서 악을 지르니 고막이 터질 듯 귀가 아파왔다. 제대로 접촉하니 처음으로 느껴졌다. 오재성의 상태창이 미친 듯이 발광하고 있었다.

“이거, 이것 좀 어떻게 해 봐! 미쳐 버릴 거 같다고!”

안타깝게도 통제력을 잃어 가는 상태창을 잠재울 방법은 없다. 자신을 진정으로 믿어 주는 동료가 필요한데, 오재성은 절대 불가능이겠지. 나 역시 초반에 발광하는 상태창을 몸이 견디지 못한 채 몇 번을 기절했다. 이제는 멤버들 덕분에 어느 정도 통제력을 가지게 되었지만, 처음 겪는 것이라면 분명 속수무책 당할 것이다.

오재성은 나를 압박하던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쥐어 잡고 고통스러워했다.

“더 이상 잃고 싶지 않으면, 죽을힘을 다해 지켜.”

“…뭐?”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내 옷깃을 구겨 쥔 반대편 손도 떼어 내고 현장을 벗어났다. 엉망이 된 옷과 머리를 다듬고 대기실로 돌아오는 길에 김병대를 마주쳤다. 김병대는 화들짝 놀라며 내 눈을 피했다. 저 녀석이 정신 차리길 바랐는데. 여전히 문어대가리의 편애를 받고, 소속사에서는 칭찬과 좋은 말만 들었겠지. 비뚤어진 가치관과 행동을 교정해 줄 이도 없었을 테고.

그래도 한때 같이 연습한 정이 있어서 밑바닥까지 추락하는 걸 보고 싶진 않았는데.

이번 일로 제대로 혼나긴 했는지 쥐 죽은 듯 소리도 내지 않고 내 옆을 빠르게 지나갔다. 그 뒤로 강도현이 보였다. 처음으로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뭐야, 너. 상태가 왜 그럼?”

“늦잠 자서 급하게 나오느라 정리가 좀 안 됐네.”

“아, 혹시 오재성 봤어? 곧 리허설인데 안 보여서.”

“아까 비상구 쪽으로 가는 거 같던데.”

“그래? 하, 이 새X 또 담배 피우러 갔나…….”

그날 결국 오재성은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리허설을 했고, 겨우 무대를 마치자마자 병원으로 향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본래 자신의 것이 아니었던 것을 탐낸 자의 대가는 예상보다 더 무거웠다. 어쩌면 내 바람보다 더한 것을 치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섬뜩함을 느꼈다. 지금도 내 눈앞에서 유유히 떠다니는 이 상태창은 언제나 변덕스러웠지. 더 이상 남은 변수가 떠오르지 않을 만큼이나.

* * *

VM은 단순 컨디션 난조로 인한 실신이었다고 공지를 냈지만, 성난 팬심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미 세 명의 멤버가 연속으로 말도 안 되는 사고를 쳤기 때문에 오재성은 포커싱의 최후의 보루였다. 그런 그까지 건강 이상과 함께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모습을 연달아 보여 주자, 포커스 그룹의 존속까지 걱정하는 여론이 서서히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내가 작년에 포커스 타로를 봤는데]

거기 주인장이 얘네 서로 너무 안 맞는 카드들이라고 내년에 한번 크게 터질거라고 했음ㄷㄷ

근데 더 소름인건 상반기부터 서서히 균열 생길거라고 했는데 첫 럽스타그램 터진게 4월이잖아…

근데 여름 지나고 누구 하나 갑질 터질거라고 했거든? 근데 딱 9월쯤에 갑질 터지고 김병대도 터진거임.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이거임, 얘네 올해 넘기기 힘들다고 했음ㅇㅇ 앞에 다 맞는거 보면 신빙성 있지 않음?

-민간신앙 믿는 클로버 수준;;

└아무도 클로버라고 안했는데 혼자 정신승리하는 포커싱 수준;;

-ㅁㅊ거기 어디 타로집이냐?

└홍대쪽인데 용함ㅇㅇ

-타로는 과학 아님?

-이제 하다하다 해체까지 소원하냐?ㅋㅋㅋㅋㅋㅋ…

-근데 오재성도 간당간당한데 나락가면 끝나는 거지 뭐

└아 우리반빼고 다 나가라고

이쯤 되니 각종 사주, 타로, 무속 채널에서는 포커스에 대한 콘텐츠를 앞다투어 내기 시작했다. 자극적인 방송에서는 멤버 중 하나가 죽을 위기라는 악담까지 퍼부었다. 일이 일파만파 커지자 갑자기 오재성의 라이브 방송과 크림 메신저 빈도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신체 및 정신적 건강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강조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팬들 외에는 효과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대중들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VM의 수법이었으니까.

[재성이 오늘로 10일째 크림 올출석!]

내새끼 누구보다 잘 먹고 멤버들이랑 행복하게 잘 지내는데 효자짱강아지 괴롭히는 ㅅㄲ들 내가 다 패버릴거임ㅅㄱ해

-지금 10일 올출했다고 저러는거임?ㅋㅋㅋㅋ

-10일 올출로 효자라고 하는 포커싱… 참 안타깝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래도 난 참 행복한 놈이구나 아무리 힘들어도 500일 가까이 올출하는 크리드팬이니까 화이팅!

└아 살살햌ㅋㅋㅋ울겠다

-VM이러는게 한두번이냐

└ㄹㅇ... 오재성 찐으로 아파도 병원 안보낼 듯.

천천히 끓는 물 속의 개구리는 한순간에 죽지 않는다. 서서히 자신도 모르는 새 숨통이 조여 오는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뜨거움을 느끼지만 끓는 물을 탈출 하기엔 이미 늦었다.

승빈은 문득, 어쩌면 가만히 상황을 주시하는 것만으로도 VM이 강도현을 풀어 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원흉은 승빈이 아닌 포커스 멤버들이 되겠지.

* * *

미국에서의 두 번째 활동은 첫 번째 활동과 비교해도 눈에 띄는 성장을 이뤘다. 무엇보다 알렉스를 통한 인지도 상승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미국 현지 에이전시와의 2년 계약을 성사했다. 그리고 이런 기대에 부응하는 듯, 크리드의 세 번째 노래는 현지에서 더 좋은 평가를 받았다.

대중성 있는 현지 예능과 인터뷰에는 거의 모두 참여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 바쁜 스케줄이었다. 체력적으로 힘든 순간이 많았지만, 크리드의 정식 그룹 만들기 프로젝트의 가장 중요한 미션을 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치 있었다.

이전에는 단순히 케이 팝을 좋아하는 이들 사이에서 화제였다면, 이제는 현지 가수들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은 인지도를 가지게 되었다. 미국 에이전시 대표는 여러 언론 인터뷰를 통해 크리드를 알아본 자신의 안목을 자랑하면서도, 크리드에 대한 애정을 강조했다.

“에디가 이렇게까지 우리를 좋아하는 줄은 몰랐네?”

“요즘 우리보다 에이전시 대표님이 인터뷰 더 많이 하는 거 같아.”

갑작스러운 인기에도 멤버들이 모두 중심을 잃지 않아 다행이었다. 회귀 전부터 연예계 생활을 하면서 인기가 많아지면서 우쭐하거나, 건방져지는 사례를 너무 많이 봐 왔다. 인기의 달콤함을 맛본 사람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땐 건방지게 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인기 있는 아이돌의 삶이 궁금했지.’

“오늘 점심엔 뭐 시켜 먹을 거예요?”

“너 요즘 배달 음식 너무 많이 먹는 거 아니냐, 재봉아?”

“그야 전 성장기니까-”

“그만 커, 인마.”

“왜요~? 제가 형보다 클까 봐 위기감 느껴요?”

분명 대중들이 우리를 평가하는 숫자는 이렇게나 많이 달라졌는데, 우리는 여전히 오늘 점심에 뭐 먹을지 고민하고 시답잖은 장난을 치는 등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이렇게 한결같은 멤버들 사이에 있으니 나 역시 자만할 틈이 없던 거겠지.

“뭐야, 뭘 그렇게 뚫어지게 쳐다봐?”

“그냥… 너네, 하나도 안 변해서”

“내가? 야, 내가 얼마나 더 멋있어졌는데!”

“전 10cm나 컸거든요?”

왁왁대는 멤버들을 보니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미친놈들, 진짜 하나도 안 변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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