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9화
가을이 다가오면서 곧바로 두 번째 활동이 시작됐다. 두 번째 앨범의 타이틀은 ‘Rise’였다. 이전 앨범에서 기회를 놓치지 않는 크리드의 각오를 보여 줬다면, 이번 앨범에서는 떠오르는 크리드의 거침없음을 보여 주는 것에 주력했다.
그래서 타이틀곡 ‘Red’는 제목만큼 강렬한 곡으로 선정했다. 이전 앨범이 산뜻한 분위기의 청량이어서 이번에도 비슷한 노선을 걷지 않을까 생각한 대중의 예상에서 벗어나는 신선함을 주었다. 또 비슷한 콘셉으로 우려먹을 거라고, 초를 치는 어그로들에게는 시원한 한 방을 먹이는 선택이었다.
라틴풍에 투우사를 떠올리게 하는 스타일링은 크리드의 성숙한 면모를 보여 줬다. 안무 역시 왈츠를 떠올리게 하는 부드러운 선과, 딱딱 맞는 군무가 조화를 이뤘다.
[더 붉게 타올라
하늘 아래 두 개의 태양이
존재할 수는 없는 법
숨이 멎어도 좋아
We will rise]
[투우사 콘셉트 미친거 아니냐?]
오늘부터 소 하기로 함ㅇㅇ
-클로버 전원 크리드를 향해 돌진이냐고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여
└애들아 도망쳐…
이제는 팬덤뿐 아니라 대중에게도 믿고 듣는 그룹으로 각인이 되었기 때문에 곡이 공개되자마자 1위를 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앨범 전곡 줄 세우기를 하며 성공적인 컴백을 알렸다.
[작년까지만 해도ㅠㅠ]
우리끼리 화력 지원해야한다고 스밍 독려하고 했는데 이제는 대중들이 먼저 찾는 그룹이 됐네ㅠㅠㅠ
-내친구 상머글인데 크리드 노래는 알더라;; 방금 컴백곡 들었다고 연락 옴
└ㅇㅇ요즘 길거리에서 크리드 노래 엄청 나와
└좋은 노래는 언제나 인정받아왔음ㅋㅋㅋㅋ그래서 지금 대중픽 된 게 신기하긴 해도 새삼스럽진 않음
-줄 세우기 미쳤음
└다음주 1위후보 또 크리드VS크리드 되는 거 아니냐?ㅋㅋㅋㅋ
팬들의 예상은 약간 빗나갔는데, 컴백 주에 아예 1위를 한 것이다. 같은 시기 나온 가수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앨범 판매량과 음원 순위는 첫 주차라서 방송 점수가 0점임에도 불구하고 1위를 하게 했다.
“저희 오늘 컴백했는데…….”
“이거 진짜예요?”
“대박… 클로버 짱!”
우렁찬 윤빈 형의 외침과 함께 멤버들 모두 펄쩍펄쩍 뛰며 기뻐했다. 1주 차에 1위를 한 것은 아직 루커스도 해내지 못한 기록이었다. 그래서 나조차도 소름이 돋을 정도의 서프라이즈였다.
1위 공약으로는 3명, 4명으로 나눠서 4명은 소 머리띠를 하고 투우 연기를 하기로 했다. 나머지 세 명은 빨간 천을 준비했다.
“감사합니다!”
타이밍 좋게 1위를 한 후 바로 다음 스케줄이 선우 형과 박재봉이 진행하는 라디오 생방송 녹화였다. 둘이 진행하는 라디오에 출연한 것은 처음이었다. 첫 방송을 준비할 때는 둘 다 잔뜩 긴장해서 전날 새벽까지 대본에서 손을 떼지 못했는데, 이제는 제법 능숙해졌다. 라디오 부스에 도착하자마자 작가진과 스태프, 피디들에게 자연스럽게 인사를 하고 멤버 소개를 하는 걸 보니 괜히 기특했다.
“오늘의 게스트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사랑을 받는 아이돌이죠?”
“맞습니다~ 제가 또 이분들을 잘 알잖아요? 아주 잘생기고, 무대도 잘하고, 착하고 또… 아무튼 못 하는 게 없는 분들입니다.”
“너~무 특별한 분들이어서 저희 라디오 최초로 1-2부 모두 이분들과 함께한다고 하죠?”
“어휴, 여기서 더 하면 저희 욕먹을 거 같은데요? 환영합니다, 크리드~!”
“인사드리겠습니다! 하나, 둘 본 투 샤인 크리드입니다!”
멤버가 진행하는 라디오여서 그런지, 다른 라디오 스케줄보다 더 편하게 즐길 수 있었다. 오늘 코너는 청취자의 사연을 연기하고, 신청곡을 라이브로 부르는 것이었다. 이미 선정된 사연과 신청곡을 받았기 때문에 충분히 연습할 시간이 있었다.
“헤어짐은 분명 아픔을 주지만, 분명 더 좋은 사랑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응원의 곡으로 영원한 사랑 신청해 주셨어요. 오늘 어느 분이 이 노래를 불러 줄 건가요?”
“저랑 유현이 형이 준비했습니다-”
“그럼 크리드의 감미로운 목소리!”
“아, 클로버! 디제이님이 자꾸 놀려요!”
“아이고 승빈이 형, 그럴 리가요?”
“저기요, 말을 편하게 하려면 편하게 하고, 아니면 계속 비즈니스적으로 하세요-”
말이 꼬인 재봉에 채팅 창도 웃음과 귀엽다는 반응이 교차하며 올라오고 있었다.
-아이고 승빈이형은 뭐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냥 반말해 애들앜ㅋㅋㅋㅋㅋ
-지운이 또 자지러진닼ㅋㅋㅋㅋㅋㅋㅋ
“아이, 멤버들 온다고 해서 베테랑처럼 보이려고 했는데 다 망했네요…….”
-괜찮아 재봉아 넌 최고의 디제이야
-왜 재봉이 기를 죽이고 그래요!
-막내얔ㅋㅋㅋ큐ㅠㅠㅠㅠㅠ
라디오에서 커버 라이브를 하는 것은 처음이어서 약간 긴장이 되던 참이었는데, 눈 녹듯 사라졌다. 그리고 곧 노래에 집중했다. 정통 발라드이고, 기교보다는 깔끔하게 불러야 하는 곡이어서 나와 유현이 형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곡이었다.
[지금은 너무 보고 싶겠지만
난 또 일상을 보내야겠죠
언젠가 서로 웃으며 마주할 수 있을 때
그때 다시 한번 봄처럼 웃어 줘요]
기교가 없고 깔끔한 멜로디지만, 그래서 더 어려운 곡이었다. 조금이라도 감정이 과잉되면 촌스러워질 수 있기 때문에 적정선의 감정을 찾는 것이 관건이었다. 다행히 나와 유현이 형 둘 다 연기를 해서 그런지 어렵지 않게 감정 몰입을 할 수 있었다.
“와… 사연자분에게 정말 큰 위로가 됐을 거 같아요.”
“저희 형들이지만 노래 너무 잘하지 않아요?”
“저희가 디제이니까 최대한 객관적으로 멘트하려고 했는데-”
“잘하는 걸 어떻게 합니까?”
-오늘 주접듀오냐곸ㅋㅋㅋㅋㅋ
-근데 저 둘은 킹정이지
-저 둘 버전으로 음원 내줘…
-코어야 잘 들어~ 오늘 할 일은 당장 문승빈 정유현 영원한 사랑 커버 영상 기획하기!
-박박즈 오늘 텐션 미쳤넼ㅋㅋㅋ
“0839님이 크리드! 이번 앨범 준비하면서 가장 신경 쓰고 열심히 준비한 게 뭔가요? 라고 질문 주셨어요.”
“음… 투우사 콘셉이어서 투우 영상을 엄청 많이 봤어요.”
“근데 윤빈 형은 소의 움직임을 더 많이 봤다고 해서 다들 빵 터졌잖아요.”
“더 웃긴 건 우리 중 그 누구도 윤빈 형이 이상하다고 생각 안 했다는 거예요. 다들 윤빈 형이 그랬다고 하니까 그러려니 했잖아요.”
“맞아. 선우 형은 한술 더 떠서 윤빈 형이랑 투우사 놀이 해 줬잖아?”
-크리드 뭐하는 그룹이죠?
-그치만 너희는 아이돌이잖아…
-윤빈이는 소가 꿈이야?
-윤빈이마저…
보다 못한 유현이 형이 앨범의 의미, 뮤직비디오 일화를 말하면서 무마했다.
“세상에, 저희 벌써 2부 마칠 시간이 됐어요.”
“크리드분들, 오늘 저희와 함께한 시간 어땠나요?”
“처음 저 둘이 라디오 디제이 한다고 했을 때 물가에 내놓은 애들 보는 것처럼 불안했는데, 오늘 보니까 아주 프로 디제이던데요?”
“승빈 씨, 감사합니다~ 앞에 말만 듣고 화낼 뻔했어요~”
“역시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 해요.”
“마지막으로 이번 크리드 Rise 앨범의 수록곡 ‘FEVER’ 들으면서 크리드분들 보내드리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단체 사진을 찍었다. 저 둘은 남은 3부를 진행해야 해서 멤버들과 먼저 라디오 부스를 빠져나왔다.
“둘이 제법 디제이 같았지?”
“재봉이가 의젓해 보이던데요? 선우 형도 든든했고.”
“맞아. 나 중간에 광고 끝난 줄 모르고 있다가 재봉이가 알려 줘서 겨우 알았잖아.”
문득 데뷔하고 첫 라디오가 떠올랐다. 그때 박재봉은 헤드셋 쓰는 방법도 잘 몰라서 귀 위로 썼다가 양쪽에서 나와 유현이 형의 집중 마크를 당한 적이 있었다. 벌써 저렇게 커서 라디오 디제이까지 하다니, 나의 성장만큼이나 멤버들의 성장이 짜릿했다.
* * *
3주간의 활동 동안 단 한 번도 1위를 놓치지 않는 대기록을 세우며 두 번째 앨범 활동이 끝났다. 그사이 포커스의 주원은 SNS 업로드를 통해 복귀를 알렸다. VM은 끈질겼다. 이 정도로는 흔들림이 없다는 걸 보여 주려는 듯, 주원이 복귀하자마자 단독 콘텐츠를 주고 기부 소식을 전하며 이미지 쇄신에 총력을 다했다. 그리고 미뤄 뒀던 활동을 재개할 것을 알리는 공지를 발표했다.
“두 달도 자숙이라고 할 수 있냐?”
“그러게 말이다- 기다리는 팬들이라도 안 떨어져 나가게 하려고 예상보다 빨리 복귀시키는 거겠지?”
“여름 겨냥하고 만든 곡으로 무슨 10월에 활동을 하냐… 진짜 VM도 질겨.”
“이번 주 활동 끝나자마자 다음 주에 또 활동 시작하네. 컨디션은 괜찮냐?”
“몸은 괜찮은데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더 클 듯?”
강도현은 씁쓸하게 웃었다. 아티스트 건강을 해친다며 겸업 기간 동안엔 크리드 활동보다 포커스 활동에 집중시키겠다는 말이 우스울 지경이었다.
포커스 활동이 시작되고, 강도현의 인지도와 아직 일이 터지지 않은 김병대와 오재성 팬덤의 화력으로 나쁘지 않은 결과를 얻었다. 비록 직전 리패키지 성적에는 한참 미치지 않았지만, 포커스가 회생 불가는 아님을 보여 주는 지표로는 충분했다.
하지만, 강도현으로부터 전해 들은 얘기는 전혀 생각도 못 한 것이었다.
“오재성이 이상하다고?”
“응. 예민한 놈이라고는 생각했지만, 도가 지나친 느낌? 하루종일 핸드폰만 붙잡고 있다니까? 대기실에서 조금만 벗어나려고 하면 사사건건 간섭하질 않나…….”
‘또 미션에 실패했구나.’
오재성이 불안해하는 이유는 딱 하나밖에 없다. 이쯤 되면 안쓰러워질 지경이다. 도대체 무슨 미션이 나왔길래 또 실패했다는 거지? 아니면, 지난번에 실패한 미션의 벌칙이 아직 실행되지 않은 것인가?
‘어느 쪽이건 머리가 터지겠네.’
하지만, 더 이상 오재성을 동정하지 않는다. 뿌린 대로 거두는 게 상태창이니까. 분명 상태창으로 얻은 이득이 있을 것이다. 분명 처음에는 할만한 미션이라고 생각했겠지. 미션 성공으로 얻은 보상으로 급속도로 성장하는 효과를 톡톡히 봤을 것이고. 하지만 상태창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다. 앞으로 더 터무니없는 미션들이 기다리고 있겠지.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재성의 불안함은 해소됐을 것이다. 일이 터지고 말았으니까.
[화제의 노룩계산남, 포커스의 김병대?]
인기 6인조 남성 아이돌 그룹 ‘포커스’의 김병대가 ‘노룩계산남’이라는 주장이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노룩계산남’은 편의점 알바생에게 카드와 현금을 집어 던지며 말 그대로 ‘노룩계산’을 한 남성을 고발하는 글로 화제가 되었다. 글이 올라온 당시, 알바생이 예순이 넘은 할머니인 것으로 밝혀지면서 더 큰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이후 10일 한 네티즌은 이 ‘노룩계산남’이 포커스의 김병대라고 주장했는데, 남성이 착용한 모자가 김병대가 자주 착용한 모자인 점과, 체형과 걸음걸이, 핸드폰을 쥔 손의 흉터가 김병대의 것과 일치하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웠다. 앞서 두 멤버의 사건으로 잠정적으로 미룬 활동을 재개한 포커스에게는 또 다른 악재가 떨어진 셈이다…….
사진 속 남성이 입은 후드는 김병대가 애용한 것과도 일치했다.
“재성아, 생각보다 더 고생하겠다.”
순간이나마 오재성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다니. 포커스도 정말 대단한 그룹이었다.
이름값 한번 톡톡히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