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308화 (308/346)

308화

이번에 팬들이 준비한 이벤트는 떼창과 슬로건 이벤트였다. 슬로건 문구도 팬의 투표로 받아 선정된 것이었다.

[우리의 뜨거운 네 번째 여름]

[크리드로 완성된 우리의 사계절]

“네 번째 여름… 저희가 햇수로는 4년 차인 거죠?”

“벌써 그렇게 됐네…….”

“전 아직도 작년에 데뷔한 거 같아요.”

“이렇게 한결같이 저희랑 여름을 함께해 줘서 고마워요, 클로버!”

모든 이벤트가 끝났다고 생각할 무렵, 누군가 우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대형 스크린에 편지 하나가 보였다. 그리고 곧 편지를 읽어 주는 목소리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 부모님이었다.

“이제는 어엿한 한 그룹의 메인 보컬이 된 승빈아. 처음 네가 가수를 한다고 했을 때, 이 정도로 진심인 꿈이라고 상상도 못 했지. 너도 알잖아, 넌 태권도 선수가 되고 싶었고,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고, 작가가 되고 싶어 했으니까. 그런데 노래에 대한 사랑만큼은 이전의 것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네 눈을 보면 알 수 있었어. 남들처럼 살가운 부모가 되지 못한 건 미안하다. 우리가 너무 자유분방했지?”

나는 고개를 저으며 웃어 보였다. 예전에는 너무 무관심한 것 아닌가-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나를 믿어 주셨기 때문에 큰 간섭 없이 성장하도록 하신 게 아닐까.

“혹시라도 실패하면 어쩌지, 현실이 네 이상만큼 친절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네 아빠는 정말 걱정이 많았어. 그때마다 내가 옆에서 그런 건 내 아들답지 않다고 안심시켰지만, 나도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더라. 어때, 아들? 세상이 네 마음대로 되지 않는 순간도 많았지? 하지만, 네 옆에 있는 여섯 명의 형제들과 함께 용감하게 헤쳐 나가고 있는 거 같아 안심이 되네. 바쁘겠지만 가끔 연락해 줘. 너희 아빠가 맨날 물어봐, 오늘은 너한테 연락 왔냐고.”

자주 연락하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자꾸만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것이 연락이었다. 괜히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런데 옆에서 자꾸 움찔거리는 게 보였다. 자세히 보니 강도현이었다.

“아니, 얘는 우리 엄마 편지에 왜 자기가 울어? 아들인 나도 안 우는데-”

내 옆자리에서 소리도 없이 끅끅대고 울던 강도현이 손사래를 치며 자신의 무릎 사이로 더 깊이 파고들었다. 부모님은 멤버들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부르며 응원의 말을 남기셨다.

팬 미팅과 콘서트 때마다 항상 가장 오지 않기를 바란 시간이 오고야 말았다. 마지막 소감을 말하는 순간은 언제나 아쉬움이 남는다. 멤버들도 모두 무대를 떠나고 싶지 않은 듯, 마이크를 쥔 손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누군가는 먼저 입을 떼어야 할 때, 리더인 유현이 형이 마이크를 들었다.

“클로버랑 있으면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가는 걸까요? 너무 아쉽게… 오늘 저희랑 함께한 시간 어땠어요?”

“최고였어!”

“좋았어!”

무대 위 우리만큼이나 반짝거리는 눈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 모든 눈을 하나하나 마주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지만, 최대한 많은 팬과 눈을 마주치기 위해 노력했다.

“앞으로도 활동 통해서 더 다양한 모습 보여 드리도록 노력할 테니, 계속해서 기대해 주시고 응원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유현이 형을 시작으로 멤버들의 소감이 이어졌다. 이제는 제법 어른스러워져서인지 눈물을 보이지 않고 씩씩하게 소감을 말하는 재봉이다.

“팬 미팅도 벌써 3번째인데 여전히 설레요! 이번에는 어떤 무대를 보여 드릴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준비했던 거 같습니다. 우리 앞으로도 자주 만나요! 내년 여름에도 꼭 클로버라는 이름으로 저희와 함께할 수 있도록 제가 더 잘할게요.”

“와, 재봉 씨. 거의 처음 아니에요, 엔딩 멘트에서 안 운 거?”

“저희도 처음 봐요.”

“진짜로 다 커 버리면 아쉬울 거 같은데, 천천히 커, 재봉아-”

옆에서 벌써부터 아쉬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선우 형이 재봉의 볼을 이리저리 늘리면서 신신당부했다.

“형은 이제 그만 좀 울어요~”

“우리 팀 공식 울보는 너여서 내가 그나마 덜 우는 것처럼 보였단 말야.”

대화를 듣던 유현이 형은 못 말린다는 듯 고개를 저었고, 지운이 형은 그런 둘 사이에 어깨동무를 하며 울컥한 선우 형을 달랬다.

“선우 형, 말할 수 있겠어요?”

“당연하지!”

선우 형은 울컥해서 떨리는 목소리이면서도 꿋꿋하게 소감을 이어 갔다.

“저희가, 너무, 바빠져서… 흑, 클로버가 떠나면 어떡하지 걱정을 많이 했어요. ”

“아니야!”

“어떻게 그래!”

절대 팬들을 탓하려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선우 형이 이번 솔로곡을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물어본 것이 ‘이거 팬들이 좋아할까?’였으니까. 노래부터 안무, 스타일링까지 팬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고 자신이 어떨 때 가장 좋아할까 끊임없이 고민한 결과였다.

“저희 절대로 자만하거나, 여러분의 사랑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도록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강도현의 순서가 왔지만 좀처럼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다. 그동안의 마음고생이 한꺼번에 터진 것일까, 그렇다고 해도 평소와는 비교할 수 없이 흔들리는 모습이었다. 걱정이 되려던 찰나, 강도현이 입을 열었다.

“부모님이 정말… 많이 걱정하셨어요. 한 번도 제가 아이돌 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고 항상 응원해 주셨는데 제가 불안하다는 이유로 너무 모질게 굴었어요. 너무 너무 죄송해요…….”

왜 우리 부모님 편지에 자기 일처럼 오열했는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어쩐지, 지난주 우리 방에서 들렸던 강도현의 신경질적인 목소리는 부모님과의 통화 때문이었구나. 아무래도 멤버 셋이 코어와 계약을 하고, 다른 소속사도 재계약과 관련해서 긍정적인 검토를 하고 있다는 뉘앙스의 입장을 표명하니 부모님 입장에서는 걱정이 되는 것이 당연했을 것이다. 강도현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더 퉁명스럽게 반응한 것이다.

강도현의 진심 어린 사과에 눈물을 흘리는 팬들이 많았다.

“더욱 성숙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항상 믿어 주셔서 감사해요.”

공연장은 강도현을 격려하는 박수와 응원 소리로 채워졌다. 약간의 탈수 증세를 보이는 강도현을 윤빈 형이 부축하여 잠시 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도현이 올라오기 전에 빨리 말해야겠어요.”

“왜?”

“얘, 내 소감 들으면 더 울 거야.”

원래 소감에 강도현을 응원하는 내용을 말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심하게 울 줄은 몰랐다. 여기서 내 소감까지 들으면 정말 실신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아무튼, 도현이 올라오기 전에 빨리 말할게요. 도현이에게는 비밀인 거, 다 같이 지켜 주실 거죠?”

“응!”

“거짓말인 거 알지만…….”

“미안!”

“우리가 클로버한테 거짓말 못 하는 만큼 클로버도 못 한다니까?”

“벌써 3번째 팬 미팅인데도 늘 새롭고 긴장되는 거 같아요. 여러분들과 이렇게 가까이서 교감하고, 함께 뛰놀 수 있다는 게 정말 꿈같습니다. 올해 저희가 참 많은 일이 있었잖아요. 그런데도 흔들리지 않고 한결같이 저희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계속 이런 행복을 느끼고 싶어요. 그리고 팬 미팅 준비하느라 고생한 우리 멤버들! 항상 누구 하나 대충하지 않고, 매 순간 진심으로 달려 줘서 고마워요. 특히 도현이… 많이 불안하고 힘들 텐데도 우리 앞에서는 밝은 모습만 보여 주려고 노력하는 게 친구로서 안타까울 때가 많아요. 지금 그 친구를 불안하게 하는 일도 언젠가는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것이 될 수 있도록 늘 옆에 있을 겁니다. 이거 하나는 약속할 수 있어요. 저희 멤버들 그 누구도 절대 혼자 두지 않을 겁니다.”

말하면서 괜히 나도 울컥했다. 이제는 여섯 명 중 그 누구도 진심이 아닌 사람이 없다. 더 이상 이곳에서의 시간은 지운이 형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말하고 나니 엄청 부끄럽네요? 아무튼! 제 진심으로 이렇게나마 전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말했잖아요,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지켜 내겠다고. 당연히 이 말에는 여러분이 1순위라는 거 아시죠?”

바로 앞 좌석에 패드로 얼굴을 가린 한 팬의 LED 문구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기 위해 몸을 가만히 두지 못했다.

[우리도 사랑하는 것들을 지킬게]

* * *

문스트럭은 승빈의 말을 듣자마자 바로 떠오른 문장을 적어서 들어 올렸다. 혹시라도 카메라에 잡히면 우는 얼굴이 잡힐까 봐 눈만 겨우 보일 정도로 패드로 얼굴을 가렸다. 그런데, 확실한 것은 눈이 마주쳤다. 빙긋 웃던 승빈이 몸을 양옆으로 흔들며, 마이크를 만지작거렸다. 울컥할 때면 하는 버릇인 걸 바로 알아봤다.

“서로가 서로를 지켜 주는 거, 너무 좋은데요? 그럼 저도 가끔 여러분한테 기대도 될까요?”

“당연하지!”

네가 내게 힘이 되는 만큼 너에게 힘이 되고 싶다고 바랐던 수많은 날들이 떠올랐다. 어른스러워 보여도 승빈도 아직 스물하나라는 것을 가끔 잊곤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승빈이 너무 애늙은이 같지 않아요?”

“맞아. 거의 뭐 인생 2회차 같아.”

언제 울음이 그쳤는지 박선우가 의기양양하게 어깨동무를 하며 승빈의 배를 아프지 않게 찔렀다.

“맞아, 그리고 왜 너 혼자 짊어지려고 하냐? 가끔 힘들면 이 형님 어깨에 기대도 된다고-”

“아이고, 형님! 눈물은 다 그쳤어요?”

“솔직히 좀 전에 울컥해서 또 울 뻔?”

“이 형, 처음 봤을 땐 이렇게 감성적인 줄 몰랐는데!”

“야, 첫 만남에 홍삼 캔디 주면서 베프 하자고 하는 사람만큼 감성적인 사람 없을 걸?”

“그건 이상한 사람이죠!”

박선우의 등장과 함께 눈물이 쏙 들어갔다. 이렇게 멤버 케미가 적절한 그룹이 있었나? 뒤늦게 강도현이 윤빈과 무대 위로 올라왔다.

“왔냐?”

“문승빈, 너. 이상한 말한 거 아니지?”

“와… 진짜 억울해!”

“클로버- 승빈이가 이상한 얘기 안 했죠?”

“아이고, 도현아…….”

“말하면 안 돼요, 클로버-”

“뭐야? 왜?”

“그런 게 있어, 우리끼리 약속-”

“나 왕따시키는 거야? 나도 알려 줘요!”

“나중에 잘 찾아봐라-”

노발대발하는 강도현에 주변 클로버 모두 탄식했다. 문스트럭도 당장 승빈이 한 말을 알려 주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다.

“너도 잠깐 내려갔다 와 봐, 나도 너만 모르게 클로버랑 약속 좀 하자!”

[강도현 바보]

[도현이 넌 이런 거 알려고 하지 마라…]

강도현은 답답해 미쳐 했고, 멤버들은 배를 쥐고 웃었다. 언젠가 강도현도 승빈의 진심을 알게 되는 날이 오겠지. 그때는 강도현의 고민이 모두 사라져 있기를 바랐다. 이젠 승빈이 소중히 여기는 사람의 행복이 곧 그의 안정과 행복임을 알기 때문이다.

티격태격하지만 누구 하나 얼굴에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또 다른 가족, 저 일곱 명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단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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