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306화 (306/346)

306화

크리드의 팬 미팅과 콘서트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바로, 절대 쉬는 구간이 없다는 것이다. 일단 무대가 시작되면 휘몰아치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었다. 무대를 하는 우리도, 지켜보는 관객들도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숨 한번 고르기도 벅차게 즐길 수 있었다.

보통 팬 미팅은 무대보다는 토크, 이벤트 중심이기 때문에 무대는 일부만 보여 주는 게 일반적이지만, 크리드 팬 미팅은 공연 시간을 늘려서라도 더 많은 무대를 보여 주려고 했다.

역대 활동곡과 수록곡을 마치고, 드디어 멤버들의 솔로 무대가 시작됐다. 첫 번째는 유현이 형의 무대였다. 유현이 형의 솔로곡은 단정한 섹시가 포인트인 곡이었다. 그동안 단정한 모습과 섹시 콘셉을 모두 했지만, 이 둘을 한 번에 보여 주는 것은 유현이 형에게도 도전이었다.

[Take it slow

조급할 필요 없어

여유롭게 네 마음속을

파고들어 이 순간]

타이트하게 핏되는 스리피스 수트를 입고, 깔끔하게 머리를 넘긴 형의 비주얼은 또 한 번 큰 충격을 주었다.

“와…….”

“저 형은 왜 잘생김이 갱신되는 거 같죠?”

“같은 남자가 봐도 유현이 형 얼굴은 미친 거 같음.”

종종 관객석이 카메라에 잡히는데, 모두 입을 틀어막거나 감탄하는 얼굴뿐이었다.

“녹음할 때만 해도 엄청 민망해하지 않았어요?”

“맞아. 형답지 않게 뚝딱거렸잖아.”

역시 무대 위에서는 조금의 어설픔도 남기지 않는 형이다. 봉을 활용한 안무도 정갈하면서도 섹시한 느낌을 주었다. 유현이 형의 팬들은 형과 성향이 비슷해서인지 큰 리액션은 아니지만, 한 방이 있었다. 조용히 슬로건을 흔들다가 표정 변화 없이 옆 사람의 어깨로 기절하는 연기를 하거나, 패드에 형광 LED로 현 심정을 담은 문구를 보여 주기도 했다.

[사인은 정유현 스리피스 골반댄스]

[유현아 장모님이 기다리셔]

[!정유현 골반단속단!]

한껏 얌전한 표정과는 달리 전혀 얌전하지 않은 멘트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팬들도 유현이 형 닮았나 보네.’

“유현이 형 완전 으른이죠!”

“이게 바로 스물넷의 섹시다 이거죠?”

“클로버, 어땠어요?”

사실 굳이 소감을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공연장이 울리는 게 느껴질 정도로 환호성이 쏟아졌으니까. 무대 내내 땀을 흘린 게 거슬렸는지 형이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그조차도 말도 안 되게 잘생겨서 문제였지만. 영문을 모른 채 팬들의 함성을 받던 유현이 형은 옆에 있던 내게 물었다.

“왜, 무슨 일 있어?”

“형이 방금 얼굴 찌푸렸잖아요.”

“그게… 왜?”

진심으로 모르겠다는 저 표정, 은근히 재수 없단 말이지. 나는 뭐라 설명해 주려다가 말았다. 아니, 형이 땀 때문에 짜증 나서 얼굴 찌푸렸는데, 그게 너무 잘생겨서 환호한 거예요- 라고 어떻게 말해?

“다른 멤버들의 솔로 무대도 기대 많이 해 주세요!”

두 번째 솔로 무대는 재봉이의 무대였다. 훌쩍 큰 키만큼 성숙해진 모습을 보여 줬다. 하지만 마냥 어른스러움을 강조하지 않았다. 단추를 모두 잠그고 넥타이도 맸지만, 머리는 자연스럽게 드라이되어 포슬포슬한 느낌을 주었고, 무엇보다도 막대 사탕을 문 것에 팬들의 비명과도 같은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슈트에 막대 사탕, 누구 아이디어였지?”

“승빈이랑 재봉이가 같이 낸 아이디어일걸요?”

“생각도 못 한 조합인데 잘 어울리네.”

[I’m still nineteen

두려울 게 없을 나잖아

나다워도 Who care?

뭐라 하건, 내 귀엔 Blah-]

무대 위에서 타고난 끼로 따지면 우리 팀에서 가장 특출난 멤버일 것이다. 사실 그 모든 것이 피나는 노력으로 얻어 낸 것이기 때문에 더 빛나는 거겠지만.

무대가 끝나고, 멤버들은 어른스러운 스타일링을 한 재봉에게 장난을 치느라 바빴다.

“여러분, 재봉이 다 컸죠?”

“아이고, 재봉이 스무 살 되면 어쩌려고!”

“재봉이가 이제 도현이 형보다 큰 거 아세요?”

“아, 아직 눈높이는 같거든?”

“이러다가 윤빈 형만큼 자라는 거 아니야?”

나는 내 옆에 선 박재봉에게서 한 발짝 멀어지며 장난스럽게 투정을 부렸다.

“나 요즘 얘 옆에 서기 싫어-”

“귀여워!”

그때, 전광판에 등장한 한 팬 덕분에 공연장이 웃음바다가 됐다.

[우리 승빈이는 기백까지 합치면 2m라고요]

[하늘에서부터 재면 네가 제일 크다 승빈아!]

“아, 클로버 재치는 따라갈 수가 없다니까?”

“이제 크리드 공식 최장신 멤버는 바로 접니다!”

“윤빈 형이 제일 작은 거야?”

“이제 재봉이가 제일 작아지는 거지-”

“제가 꼴찌 벗어나려고 우유를 얼마나 먹었는데!”

이제 팬들 앞에서 프롬프터 없이도 편하게 티키타카가 오가는 정도가 되었다. 이전에는 멤버들도 혹시 말실수를 하거나, 무대 순서를 놓칠까 봐 프롬프터에서 눈을 떼지 못했던 걸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선우 형의 솔로곡 무대까지 한 후에 팬들과 함께하는 이벤트 타임이 시작됐다. 선우 형의 솔로곡 무대는 말 그대로 ‘키라키라’였다. 원래 귀여운 콘셉을 기피했던 형이었지만, 이번 무대만큼은 아이돌로서 보여 줄 수 있는 반짝거림을 모조리 보여 주겠다며 의욕에 불타오르며 준비한 무대였다.

남자 아이돌은 어울리기 힘든 극강의 난이도인 털 레그 워머와 치마바지에 도전했는데, 조금의 어색함이나 위화감 없이 잘 어울렸다. 얼굴에는 키치한 그림의 스티커로 꾸몄고 머리에도 반짝이를 붙이는 등 웬만한 비주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선우 형의 얼굴은 그 어려운 걸 해냈다.

[두근거리는 내 마음을

Pop Pop

나를 따라 움직여 봐

Clap Clap

멈추지 않는 이 두근거림을

내게 보여 줘 Show me]

형의 동굴 목소리로는 상상할 수 없었을 음역의 곡이어서 팬들에게 더 신선하게 다가갔을 것이다.

무대가 끝나고 멤버들끼리 모이자마자 선우 형은 윤빈 형의 뒤에 숨었다.

“형, 그래 봤자 보여요.”

“아, 그나마 제일 큰 애 뒤로 숨은 건데!”

신장이 크지만, 워낙 슬렌더한 체형이어서 더 위화감이 없었다.

“형이 엄청 민망해했어요.”

“맞아. 자기가 정한 의상이면서-”

“형, 이런 거 잘 어울리는 게 진짜 아이돌이죠.”

“하나도 안 민망하거든? 나보다 이 스타일링 잘 어울리는 사람 대한민국에 없을걸?”

역시 단순한데 특이한 형이다. 그새 자신감을 얻어서 자꾸만 조심성 없게 나풀거리는 형을 말리느라 다른 멤버들이 진땀을 뺄 정도였다.

이어지는 이벤트 코너는 팬들과 퀴즈를 맞히는 게임이었다. 미리 준비한 앱을 이용해서 팬들이 직접 퀴즈의 답을 투표할 수 있게 준비했다.

“안녕하세요, 이번 크리드 세 번째 팬 미팅의 진행을 맡은 다다입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MC가 등장했다. 다다는 아이돌 팬들이 가장 선호하는 방송인인데, 다년간의 덕질 경험으로 많은 케이 팝 팬의 호감을 얻었다. 그녀는 명성에 맞게 등장부터 크리드의 모든 특징과, 잘 알려지지 않은 TMI까지 빠삭하게 익힌 모습을 보여 줬다.

나와 윤빈 형의 첫 만남에서 불러 준 노래의 제목까지 맞히자, 윤빈 형은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라워했다. 나 역시 나조차도 기억이 가물가물한 정보를 술술 말하는 것에 약간의 공포감까지 느낄 정도였다.

“첫 번째 퀴즈, 2번째 타이틀곡인 레디에는 레디가 몇 번 나올까요? 1번 20번, 2번 25번, 3번 35번, 4번 40번!”

“그걸 어떻게 알아요?”

“부르신 분들이 알겠죠! 오, 클로버 분들의 투표가 점점 올라가고 있어요, 과연 크리드는 클로버를 이길 수 있을지 흥미진진한데요?”

멤버들과 머리를 맞대고 레디가 몇 번 나오는지 고민했다. 빠르게 완곡을 하며 숫자를 셌지만, 쉽지 않았다.

“야,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느낌대로 가자.”

“3번?”

“오케이, 3번.”

“크리드의 선택은 3번, 그리고 클로버는… 2번이 제일 많네요?”

“2번이 80%인데?”

“쫄지 마, 우린 원곡자니까-”

“원곡자 도현 군! 땡입니다!”

“네?”

동공이 흔들리는 강도현의 뒤로 정답이 공개됐다.

“이제 레디 원곡자는 클로버라고 해도 될 거 같은데요?”

“대박…….”

“클로버는 바보야… 크리드밖에 모르는 바보.”

팬들의 마음을 대변하듯 다다가 애틋한 얼굴을 하자, 팬들의 공감 가득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 뒤로도 클로버는 모든 질문의 답을 맞혔다. 우리조차도 너무 사소하다고 여긴 순간들을, 클로버는 놓치지 않고 기억해 둔 것이다.

“근데… 이거 하면 할수록 감동인데요?”

“역시 지운 군, 감성이 풍부해요,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고 하면 사과나무 심을 거 같은 멤버 1위, 취미가 시집 읽기인 분 다워요-”

“다다 누나, 이제 좀 무서워지려고 해요-”

“지금 저한테 누나라고 한 거예요? 문승빈, 완전 유죄 인간!”

다다의 재치 넘치는 진행에 멤버들도 1시간 내내 입꼬리가 내려오지 않았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유현이 형도 중간중간 이가 보일 정도였다.

“여러분, 저는 오늘 제가 유현 군의 치아를 보이게 했다는 것만으로도 할 일은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승빈 군에 의하면 유현 씨 치아가 몇 개인지 아무도 모른다면서요?”

“누나, 진짜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예요?”

“저는… 다 압니다. 조심하세요.”

게임을 마치고, 이제 강도현의 솔로 무대가 시작됐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되고, 클로버에게 보여 주고 싶은 무대였다. 항공 점퍼에 청바지, 볼 캡 모자에다가 상처 분장으로 방황하는 듯한 이미지를 보여 주는 스타일링이었다. 이전 무대인 선우 형과는 정반대인 어두운 조명과, 딥한 베이스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다들 숨을 죽이고 무대에 집중할 수 있었다.

[원하면 모든 가질 수 있다

그렇게 믿었던 시간이

부정당하는 느낌]

평소 강도현의 랩 톤보다 한 음 낮은 음색으로 도입부를 시작했다. 무대 밑에서 메이크업을 수정받으며 대기하던 멤버들도 무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영원한 게 없다는 말은

그저 비웃고 말 루머

하지만 어느새 난

그 루머의 주인공이 되고 말아]

강도현이 어떤 마음으로 가사를 써 내려갔는지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강도현이 무대를 끝까지 해낼 수 있길- 마음을 다해 응원하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네가 없는 나는 상상이 안 돼

애초에 말이 안 되는 루머

루머, 루머, 루머]

“얘, 목소리 떨리는 거 같은데…….”

“괜찮을 거예요. 강도현이잖아요.”

하지만 윤빈 형의 말대로 강도현의 고개가 점점 수그러지고 있었다. 무너지지 말라고 속으로 외쳤다. 무대를 망치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는 놈인 걸 너무 잘 아니까. 하지만, 곧 강도현은 모자를 더 눌러쓰고 토해 내듯 랩을 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안심이 됐다.

노래는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고조되고 있었다. 강렬한 일렉 기타 소리가 들어오면서 강도현의 텐션도 빠르게 올라갔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겠다 자신했는데

이제는 그조차 날 우습게 만들까

두려움에 편히 눈 감지 못한 밤]

문득 저 녀석이 가사를 쓰는 게 어렵다며 찾아온 날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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