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3화
Chance는 이전 앨범들과 기존의 크리드가 보여 줬던 각 잡히고 무게감 있는 콘셉과는 사뭇 다른 매력의 곡이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곡이니 어떤 느낌으로 가야 할지 고민했다. 콘셉을 잡는 것만 몇 날 며칠을 토론했는지 모른다.
치열한 토론 끝에 일종의 도전을 하기로 했다. 바로 힘을 살짝 빼고 여름에 맞게 청량함으로 승부 보기. 이미 다양하고도 강렬한 퍼포먼스를 많이 보여 줬기에 선택한 길이었다. 그리고 타이틀곡 제목이 공개된 날, 이런 선택이 옳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Chance면 빼박 쎈 콘셉트 아니냐?]
지난 활동도 그렇고 지금까지 너무 강강강으로 나온 거 같은데 또;;
-청량을 달라
-퍼포먼스 맛집이 맞긴한데 너무 비슷한 느낌이어서 아쉬움ㅠ
-겨우 제목만 나왔는데 사서 한을 처먹네
-젊을 때 빡센거 하는게 뭐가 불만임?
└다양한 음악 스타일을 보고 싶다는거임ㅇㅇ
└크리드처럼 스펙트럼 넓은 아이돌이 있음?
누가 봐도 강렬한 콘셉의 제목이어서인지, 이전 앨범과 겹칠 것을 우려하는 반응이 많았다. 그리고 티저가 공개된 날, 클로버들은 예상과 전혀 다른 콘셉에 한바탕 난리가 났다.
[ㅁㅊ탐험가 콘셉트인가봄?]
-애들 소년 그잡채임
-헤메코 ㅈㄴ 마음에 들어;;
-약간 보이스카우트같기도 하곸ㅋㅋㅋㅋㅋ
-쎈 컨셉이라고 ㅈㄹ하던 애들 다 어디 감?
노래가 공개된 후에는 SNS가 크리드로 도배가 될 정도였다.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도입부부터 가벼운 비트와 함께 시작했다.
[놓치지 않아 너라는 Chance
Lucky한 매 순간
길을 걷다 만난 클로버 하나
잎의 수는 중요치 않아]
뮤직비디오 스토리는 모험을 떠난 크리드 멤버들이 여정 중에 만나는 클로버들을 하나둘 모아 가는 과정을 담았다.
[지도 하나 들고 무작정 걸어
다시는 오지 않을 너란 Chance
이건 절대 우연이 아니야
내가 알아본, 붙잡은 Chance야]
통통 튀지만 세련된 사운드가 귀를 사로잡았다. 처음에는 심심하게 들릴 수 있지만, 자꾸만 찾아 듣고 싶어지는 게 이번 노래의 최대 장점이었다.
[크리드 노래 왜 자꾸 맴도냐?]
처음에는 심심하다고 생각해서 좀 약하네 아쉽다ㅠㅠ했는데 자꾸 입에서 놓치지않아 너란 Chance하고 있음
-오바작작좀;; 겨우 이건 절대 우연이 아니야 내가 알아본, 붙잡은 Chance야
└기출변형인갘ㅋㅋㅋㅋㅋ
[이번에 노선 바꾼 거 좋은 선택인듯ㅇㅇ]
이전 앨범에서도 청량 콘셉트 있긴 했지만 이렇게 아예 덜어낸 건 처음아님? 이런 선택하기 어려웠을텐데 크리드 멤버들이랑 회사도 추진력이랑 자신감 미친 듯
-하긴 이전 프로젝트 반응도 좋았고 그냥 밀고가도 됐을텐데 변화준 거 신기함
-크리드는 평범함을 거부함ㅇㅇ
사실 이번 앨범에서 노선 변경을 선택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다. 대중들에게 각인된 이미지를 그대로 활용하는 것이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는 안전한 방법이긴 했다. 하지만 멤버들과 회사도 안전한 길보다는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에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이런 우리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음원 순위와 앨범 판매량, 대중 반응을 통해 증명할 수 있었다.
특히 이번에는 유독 홍보에 신경을 많이 썼다. 우선 앨범 프로모션으로는 [Grab Your Chance]라는 슬로건과 함께 지하철 광고를 시작했다. 지하철 손잡이와 기둥에 클로버 문양과 함께 해당 문구가 담긴 띠를 둘렀다. 띠에 새겨져 있는 QR 코드를 인식하면 ‘Chance’ 음원과 뮤직비디오로 연결되는 형태였다.
그리고 버스 정류장에는 클로버 문양을 누르면 밝은 연두색 빛이 밝혀지는 조형물도 함께 설치했다. 불빛이 켜지면 타이틀곡 노래도 같이 플레이됐는데, 일상의 작은 행복을 찾는다는 가사였다. 따라 부르기가 쉬워 가장 중독성 있는 파트이기도 했다.
[버스정류장에 클로버 뭐임?]
누르니까 불빛 켜지던데 예쁘더라ㅋㅋㅋㅋ
뭐 이벤트 하는 건가?
└맞아 소리도 나오던데ㅋㅋㅋㅋ
└헐 그거 눌리는 거였음??
└ㄹㅇ매일 출근길에 보는데도 누를 생각도 안해봤네
[(녹음파일) 대체 이거 누구 노래야?]
└헐 나도 궁금했음. 이거 설마 버정에서 들은 거임?
└이번에 컴백한 크리드 타이틀곡 ‘Chance’야! 많관부~
[출근길 소확행~]
클로버 눌러보기ㅋㅋㅋㅋ 누를 때마다 목소리가 달라짐ㅇㅇ
아니 크리드 멤버 이름도 모르는데 목소리부터 구별하겠어ㅋㅋㅋㅋ
└격공ㅋㅋㅋㅋ 괜히 한번씩 눌러보게 됨ㅇㅇ
└애기 엄마들이 특히 좋아하더라ㅋㅋㅋ 애기 키에 맞춰서도 있던데
그렇게 크리드의 컴백은 시작부터 성공적이었다. 정식 그룹화를 위해 제일 신경 썼던 부분이 대중성이었는데, 꽤 유의미한 결과를 얻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 * *
“어, 승빈이다.”
이제 문스트럭의 일상 속에서 승빈의 크림 메시지는 매일 찾아오는 소확행이 되었다. 크림을 시작하고 1년이 넘어가는 시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찾아오는 승빈이 고마울 뿐이었다. 승빈의 메시지는 오늘 밥을 뭐 먹었는지, 멤버들과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아주 사소한 얘기부터 오늘 연습한 노래, 영화나 책을 보고 떠오른 생각까지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있어서 지루할 틈이 없다.
[승빈(강아지 이모티콘): 맞아 그리고 오늘… 12시 지나서 자!]
“헐.”
승빈이 12시 지나서 자라는 것은 무언가 올라온다는 예고와도 같다. 혹시라도 팬들이 지나치면 안 된다며 말하기 시작한 것인데, 팬들이 가장 기다리는 메시지 중 하나다.
[승빈(강아지 이모티콘): 이제 내가 이렇게 말하면 뭐 나오는 거 다 아는구나?]
[승빈(강아지 이모티콘): 클로버한테 다 들켰네!]
[승빈(강아지 이모티콘): 선물 준비했으니까 꼭 듣고 잤으면 좋겠어ㅎㅎ]
[승빈(강아지 이모티콘): 내가 꿀잠 자게 해줄게!]
“으아아아아-”
문스트럭은 곧장 시간을 확인했다.
“왜 3시간이나 남은 거야?”
분명 10분 전까지만 해도 주말이 끝나는 것이 아쉬워서 12시가 오지 않기를 바랐는데, 당장 1분 뒤가 12시가 되기를 바라게 되었다. 직장인이 월요일 12시를 기다리게 하다니, 승빈은 그걸 해낸다.
[승빈(강아지 이모티콘): 내일 월요일이잖아ㅠㅠ 듣고 힘냈으면 좋겠어.]
12시 정각이 되자마자 크리드 공식 계정 알림이 올라왔다. 알림을 확인한 문스트럭은 주먹 울음을 참지 못했다.
@CR:ID_official 1분 전
[승빈 자작곡 ‘별자리(Zodiac Sign)’]
작사/작곡: 문승빈, 윤빈
(사운드 클라우드 링크)
“자작곡 미친 거 아니야?”
문스트럭은 괜히 침대와 주변을 정리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들어야 한다며 무릎까지 꿇었다. 만약 자취를 하지 않았다면 분명 가족들이 무슨 일이 생겼는지 확인했을 것이다. 문스트럭은 떨리는 마음으로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시작부터 아련하지만, 청명한 기타 소리가 들렸다.
[문득 네가 올려다본 하늘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별자리가 반짝이고 있을 거야
비록 네가 본 별빛은 셀 수 없이 먼
과거의 부서짐일 테지만]
록 발라드 특유의 벅차오르는 느낌을 잘 살린 곡이었다. 무엇보다 가사가 마음에 콕 박혔다. 별자리라는 제목에 맞게 신비로운 감상을 남겼다.
[먼 곳을 여행하고 있더라도
절대 잊지 않겠다는 약속은 유효해
눈물이 날 거 같을 땐
서로의 맹세를 기억해
언제라도 서로를 향해 빛나겠다고]
단단한 진성과 고음, 여린 미성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승빈의 보컬 실력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그동안 승빈이 발전시킨 스킬과 감정 표현의 완성본을 듣는 기분이었다. 앞으로 더 성장하겠지만, 그동안 갈고닦아 온 실력의 엑기스와 같은 곡이었다.
[끝도 없는 이 우주 속
너는 내 별자리를 선택했고
나는 네게 빛을 보냈어
그날의 목격자가 되어
모두가 날 잊는데도 네가 기억해 주길
단 하나의 소망을 담아 흩어질게]
승빈이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금방이라도 떠날 거 같은 가사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눈물이 흐느낌이 될 즈음, 승빈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승빈(강아지 이모티콘): 노래 마음에 들어? 긴장된다…]
[승빈(강아지 이모티콘): 노래 좋지? 기타 연주는 윤빈 형이 해줬어, 멜로디도 형이랑 같이 작업했고ㅎㅎ 형이 아끼는 곡이라고 했는데 나 달라고 졸랐다? 잘했지?]
[승빈(강아지 이모티콘): 뭐야 왜 다 울고있어ㅠㅠㅠㅠㅠㅠ]
[승빈(강아지 이모티콘): 사실 나도 녹음하다 몇 번 울컥했다?ㅋㅋ 왜 그랬지…]
[승빈(강아지 이모티콘): 많고 많은 아이돌 사이에서 나를 좋아해줘서 고맙고! 우리는 서로의 목격자니까 절대 잊지 말자는 마음으로 작사했어ㅎㅎ]
“얘가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진짜…….”
겨우 다스렸던 마음이 다시 울렁이기 시작했다. 아이돌에게 주기에는 너무 거창한 마음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승빈은 그 마음에 언제나 보답한다는 것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받았다.
[내 빛을 지나쳤대도 괜찮아
몇 번이고 외롭게 부서진 대도
다시 한번 너의 별로 편지를 보낼게]
[승빈(강아지 이모티콘): 나는 마지막 가사가 제일 마음에 들어! 만약 시간이 아~주 많이 지나서 나를 잊는다고 해도 나는 항상 노래하고 있을 거니까]
같은 말을 해도 마음을 울리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 승빈이 딱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승빈(강아지 이모티콘): 서로한테 미안해하지 말자]
[승빈(강아지 이모티콘): 우린 언제나 서로에게 좋은 기억만 준 사이로 남았으면 좋겠어ㅎㅎ]
[승빈(강아지 이모티콘): 노래 듣고 따뜻한 마음으로 푹 잤으면 좋겠다ㅎㅎ 슬퍼하지 말고!]
[승빈(강아지 이모티콘): 나도 이제 마음 편히 잘 수 있을 거 같아. 잘 자♡]
여기서부터는 눈물 때문에 화면이 뿌옇게 보여서, 문스트럭은 자꾸만 눈을 비볐다. SNS의 팬들 역시 문스트럭과 같은 반응이었다.
[월요일 새벽에 새벽감성 느끼게 하는 남자 최악이에…ㅠㅠㅠㅠㅠㅠㅠ]
나 원래 새벽감성 오그라들고 팬들 한 먹이는 거 같아서 ㅈㄴ 싫어하는데 지금 그냥 울고만 있음ㅋㅋㅋ큐ㅠㅠㅠㅠㅠㅠㅠ문승빈 니 나한테 뭔짓한거임?
[나는 절대 승빈이 못 잊을 듯]
탈덕이란 없다 완덕은 있어도ㅋㅋㅋㅋ근데 완덕해도 항상 마음 한 켠에서는 승빈이 응원하고 있을 듯? 이런 아이돌 처음이야
-ㅇㅇ승빈이가 나한테 안 좋은 기억을 준 적이 단 한번도 없어
-탈덕이 가능하긴 한거냐? 지금 논산이 뭐야 디너쇼 티켓팅 할 생각하고 있는데;;
-나는 누가 내 기억 지운다고 해도 제 발로 또 승빈이 팬의 길을 걸을듯ㅋㅋㅋㅋㅋㅋ
-너무 고마운 애야ㅠㅠㅠㅠㅠ
문스트럭 역시 같은 생각을 했다. 어쩌면 기억을 잃게 되는 날이 오더라도, 분명 어떠한 대가 없이도 승빈을 첫눈에 알아볼 것이라고. 투마월 첫 만남에서 자신의 카메라를 한눈에 찾아 본 소년의 눈을 몇 번이라도, 기꺼이 다시 담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