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2화
포커스 멤버 주원의 갑질 사건은 한 스태프의 고발로부터 시작됐다. 포커스와 데뷔 초부터 함께했다는 스태프는 지속적인 폭언과 인신공격으로 참아 온 분노를 한 번에 터트렸다. VM 측은 허위 사실 유포에 대해 강력한 법정 대응을 하겠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VM 관련 스태프들의 SNS에 동시다발적으로 주원에 대한 칭찬 글과 미담을 풀기 시작했다.
[주원이가 선물해줬던 신발(사진) 오늘따라 더 예뻐 보이네♡]
[춥지 않냐면서 핫팩 건네준 울 주원쓰]
[친한 사람들은 주원이 착한 거 다 아는데ㅎ… 누구실까?ㅎ]
이전까지는 언급 한번 없다가 갑자기 태도를 바꾸자 대중의 눈으로 보기에도 굉장히 부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이러한 전략은 꽤 효과적이었다. 분명 해당 스태프가 잘못한 부분도 있을 거라며 한쪽의 입장만 믿으면 안 된다는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에 맞춰서 포커스의 팬들은 필사적으로 실드를 치기 시작했다. 최대한 순해 보이거나, 멤버들에게 잘 대하는 장면들을 짜깁기해서 ‘주원 다정 모먼트’, ‘주원 미담’과 같은 영상을 만들어 조직적으로 뿌리기도 했다.
VM도 마음이 조급했을 것이다. 당장 한 달 뒤가 컴백인데, 지금 일을 해결하지 않으면 최악의 경우 주원을 빼고 활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 경우 주원이 녹음한 파트를 재녹음하고, 안무를 수정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주원이 들어간 부분을 모두 수정하게 된다면 지금 준비 중인 앨범은 전량 폐기해야 하는 등 피해가 막대할 것이기 때문에 최대한 주원을 안고 가는 방향으로 수습할 생각이었겠지. 급한 불은 껐지만, 그게 더 큰 불씨를 지폈을 거라 생각 못 했을 것이다. 스태프는 멈추지 않고, 자신의 SNS에 VM을 향한 경고가 담긴 글을 올렸다.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만 했다면 이렇게까지 진흙탕 싸움이 되진 않았을 겁니다. 적반하장이라는 말밖에 안 나옵니다. 매번 다른 스태프들과 회사분들에게도 하소연했는데 그때도 모르는 척하더니, 여전히 그냥 덮으면 된다고 생각하네요? 이번엔 참지 않을 겁니다. 제대로 된 사과와 입장 가져오세요. 아니면 내일부터 하나씩 공개하겠습니다. 오늘 사진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설마 제가 녹음도 안 했으리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죠?]
해당 글이 올라오고 VM은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며 입장을 바꾸었다. 강경하게 대응하겠다던 VM에서 태세를 바꾸자, 사람들은 점점 폭로자를 신뢰하기 시작했다. 가까스로 VM과 협상이 이루어졌는지, 더한 증거들은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주원이 사과문을 올리면서 결국 갑질을 일부 인정한 꼴이 되고 말았다. 컴백을 예고했던 VM은 결국 준비했던 여름 컴백을 무기한으로 연기했다.
[강프들만 개꿀이네]
-겸업한다고 또 국내 컴백 참여 안 시킬까봐 조마조마했는뎈ㅋㅋㅋ
-컴백 밀렸는데 기뻐하는 팬덤이 있다?
-ㅈㄴ싸패같닼ㅋㅋㅋㅋㅋ누구는 활동이 날아갔는데
└그니까… 주원이가 ㅈㄴ 잘못했네!
└진심 잘못은 주원이 하고 도현이가 뺨 맞네
[포커스 올해 왜 이러냐? 상반기부터 빡세네;;]
-입덕 안 하기 잘했다ㅎ…
-결국 탈포커싱함ㅋㅋ… 내가 볼 때 얘네 올해가 고비일 거 같음
-다음은 누구이려낰ㅋㅋㅋㅋ
-ㅅㅂ 아침에 일어나면 실트랑 검색어부터 확인함 이 ㅅㄲ들 또 무슨 병크 터졌을까봐^^
-포커스 굿 해봐
└굿~
└ㄲㅈ 진짜;;;
기존 멤버 다섯 명 중 두 명이나 사건이 터졌으니 팬덤 내부 상황은 제3자가 봐도 엉망이었다. 그나마 주축 멤버인 오재성과 김병대가 언론에 공개될 만큼의 사고를 치지 않아서 겨우 연명하고 있었다.
“문어대가리, 사장한테 엄청 깨졌나 봐. 만날 때마다 죽상이던데?”
“문어대가리가?”
“응. 지금 일 터진 애들 다 문어대가리 입김으로 데뷔한 애들이거든.”
“그런 거였어?”
“그때 월말 평가에서 너 말고 애들 엄청 많이 나갔었잖아, 그러고 나까지 투마월 나가니까 그 시기에 연습생을 무더기로 뽑았다고 들었거든. 저 둘이랑 오재성도 그때 들어왔을걸?”
“어쩐지… 다들 2, 3년 연습했다고 했을 때 대부분 모르는 얼굴이라서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나랑 김병대 그리고 한 명 말고는 다 연습생 기간 1년도 안 돼.”
문어대가리가 그렇게 나댔던 이유가 있었구나.
“VM은 무슨 자신감으로 문어대가리한테 신인 개발권을 준 거지?”
“루커스가 막 해외 진출한 시기이기도 하고, 아마 나랑 김병대 둘 다 데뷔할 거라고 생각했을 거야. 애초에 윤 피디가 전적으로 지원해 주겠다고 해서 출연시킨 거니까. 아마 그렇게 됐으면 겸업 기간 동안 팀을 구성하고 데뷔를 시켰겠지. 그런데 김병대가 데뷔를 못 하게 되고 급하게 신인을 내야 할 상황이 되어 버린 거지. 루커스도 초반부터 해외 반응이 온 게 아니었으니까.”
연이은 멤버들의 병크는 자연스럽게 VM의 주가 하락으로 이어졌다. 언플로 키운 그룹이었기에 그 여파가 더했다. 문어대가리가 사장에게 엄청나게 깨진 가장 큰 이유겠지.
“아무튼 나는 이번 크리드 활동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게 됐지. 솔직히 컴백 주만 활동하고 나머지는 포커스 활동 때문에 빠져야 하는 거 마음에 안 들었는데.”
“야, 도현아.”
잠시 정적이 오갔다. 강도현은 뭔가 이상하다는 듯 한쪽 눈썹이 꿈틀거렸다.
‘뭐야, 왜 조용해? 내가 무슨 말 할 줄 알고?’
“야, 성 떼고 부르지 마. 오그라들어.”
“내가 너 성 떼고 부른 적이 없나?”
“그냥 강도현이라고 해- 적응 안 되게.”
“그래, 강도현아.”
“으, 그 끝에 –아, 도 빼면 안 되냐?”
“친근하게 불러 줘도 난리냐!”
“무섭게 왜 갑자기 친근하게 부르냐고-”
성 떼고 부르면 당황하는구나. 앞으로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겠다.
“알았어. 야, 강도현.”
“이제 좀 들어 줄 만하네.”
“너, 혹시 포커스 말고 크리드만 하라고 하면 할 거냐?”
“몇 번 말해야 하냐? 난 분명 크리드에 집중하고 싶다고 수없이 말했는데. 포커스 활동에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한 건 너잖아.”
“…….”
강도현이 사뭇 진지한 눈으로 물었다.
“계약 연장 때문이지?”
“VM에서 들었구나.”
“아니? 대표님한테 물어봤어. 너 포함해서 세 명이나 코어 소속이 되는데 계약 연장 얘기가 안 나오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거든. 우리 회사는 절대 안 하겠다고 하더라. 예상했지만, 화가 나는 건 내 의견은 안중에도 없다는 거야.”
다른 소속사는 계약 연장에 긍정적인 입장이었기 때문에 멤버들이 긍정적인 답변을 하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지만, VM은 구태여 강도현의 의견을 물어볼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할 수 있다면 나도 하고 싶어.”
“…….”
“그래도 우리 팀이 유지되는 거니까 계약 연장은 꼭 성공했으면 좋겠어! 근데 나만 빼고 크리드 하는 건… 좀 슬플 것 같다.”
표정을 알 수 없는 얼굴이지만, 목소리에는 서운함이 묻어 있었다. 나는 일부러 억 소리가 날 정도로 강하게 강도현의 등을 찔렀다. 갑자기 뭐 하는 짓이냐는 듯 혼란스러운 눈에 웃음이 터졌다.
“뭐야?”
“너 없으면 한 40%는 조용해지긴 하겠다.”
“야!”
“대신 40% 재미없어지겠지. 그건 싫어.”
“…고작 40%냐?”
하여간 단순한 놈이다. 비율이 커질수록 자기가 얼마나 시끄러웠는지 인정하는 건데.
“알았어. 한 60%는 재미없어질 듯?”
“80%로 해!”
“그럼 우리 팀 소음의 80%를 차지하는 거야?”
“사람 놀리니까 재밌냐!”
노발대발하는 강도현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놀리는 재미가 있는데 절대 그룹에서 빠지면 안 되지.’
* * *
크리드의 자아 찾기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온 첫 앨범인 만큼 회사에서도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이 느껴졌다. 크리드의 새로운 프로젝트는 크리드의 ‘정체성’이다. 지난 프로젝트가 멤버 개개인의 자아 찾기였다면, 이번 프로젝트는 그룹에 대한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을 예정이다. 이번에도 그룹 이름의 이니셜을 활용한 4부작으로 기획되었다.
1부작은 [Chance]다. 멤버에게 크리드에 대해 물었을 때, 가장 많이 나온 단어가 ‘기회’였다. 우리는 투마월이라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아서 데뷔한 그룹이다. 그리고 수많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죽을힘을 다해 잡아 왔기 때문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거였고,
타이틀곡 ‘Chance’는 윤빈 형이 프로듀싱을 맡고, 지운이 형과 강도현이 작사에 참여했다. 윤빈 형과 지운이 형은 이제 거의 정식 프로듀싱 팀이 된 것처럼 손발이 잘 맞았다.
“이제 여러 번 해서 굳이 말 안 해도 되지?”
“당연하죠-”
멤버들도 이제 윤빈 형의 작업실이 숙소처럼 편해졌다.
“오늘은 저녁 뭐 시킬 거야?”
“재봉이는 마라탕 먹는다고 했고, 윤빈 형은 햄버거 먹는대.”
“나도 햄버거-”
“나는 마라탕.”
“그럼 난 줏대 있게 치킨 먹어야지.”
역시 평범함을 거부하는 선우 형이다. 윤빈 형이 작업에 어려움이 있을 때면, 아예 짐을 챙기고 와서 다 같이 작업실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워낙 사람들과 있는 걸 좋아하는 형이기 때문에 혼자 작업하는 것이 고독할 때가 있을 것이다.
‘저 형이 고독함을 느끼는 게 신기하긴 했지.’
이런 선택을 한 것은 윤빈 형의 메시지 하나 때문이었다. 미국 활동 준비와 겹치면서, 프로듀싱을 하는 윤빈 형의 작업량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많아졌다. 그만큼 작업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지. 그래도 형이 내색하지 않았고, 다른 멤버들도 겸업과 함께 스케줄로 매일 바빠서 형의 상태를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단체 메신저 방에 윤빈 형이 메시지를 보냈다.
[얘들아, 보고 싶어.]
처음에는 갑자기 무슨 낯간지러운 메시지냐며 장난스럽게 넘겼다. 하지만, 지운이 형의 메시지에 아차 싶었다.
[오늘 나 작업실에서 자고 갈게.]
[네?]
나는 곧장 형에게 연락했다. 자초지종 들어 보니, 윤빈 형이 지운이 형에게 고민 상담을 했고, 지운이 형은 메시지의 의미를 바로 알아챈 것이다.
[애들 겸업 때문에 바쁜 거 알아서 나한테만 얘기했나 봐.]
[저 실수한 거 같은데요…….]
[그럼 오늘 나랑 같이 갈래?]
작업실에 온 사람이 나라는 것에 윤빈 형은 잠시 놀라더니 치아 개수가 몇 개인지 셀 수 있을 만큼 함박웃음을 지었다.
“전 당연히 장난인 줄 알았죠- 미안해요, 형.”
“아, 아니야. 내가 너무 어린애 같았어.”
“여기서 맨날 혼자 있으면 당연히 외롭죠!”
“…응.”
가족을 떠나 타국에서 지내는 형에게는 정도만 다르지, 매 순간 외로움이 깔려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에만 있었던 나도 가끔 캘리포니아의 바다가 그리웠는데, 형은 더하면 더했겠지. 그날 후부터 하나둘 멤버 수가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최근에는 일곱 명이 모이는 날이 많아졌다.
짧은 회상을 멈추게 한 것은 배달이 도착했음을 알리는 알림이었다. 모두 한데 모여 저녁을 먹었다.
“와…….”
“왜요?”
“미쳤는데? 너무 맛있어!”
“이 형 리액션만 보면 거의 미슐랭 햄버거라니까?”
표정과 팔, 다리까지 온몸을 동원해서 기쁨을 표현하는 형의 얼굴에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 공간에 더 이상 외로움이 발도 못 들이도록 할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