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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301화 (301/346)

301화

“지금 바로 결정할 필요는 없어. 당연히 너희도 다른 소속사에서 컨택 들어온 거 알고 있을 거고.”

대표의 말대로 원소속사 없이 개인 연습생 신분으로 서바이벌에 참여한 나와 지운이 형은 겸업 기간이 시작되자마자 여러 소속사의 러브 콜을 받았다. 중소부터 대기업까지 다양한 소속사에서 연락이 왔는데, 배우 소속사로 유명한 곳도 여럿 있었다.

“크리드 활동이 끝나고 배우가 될 것인지, 계속 아이돌 활동을 할 것인지……. 그건 승빈이, 네가 결정할 사안이니까. 지운이도 웨이브에서 연락받은 거 알고 있어.”

웨이브는 국내 최고의 힙합 레이블로 현재 가장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솔로 아티스트들이 대거 소속된 곳이다. 지운이 형의 미래를 생각하면 쉽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일 것이다.

“웨이브만큼의 지원을 해 줄 수 있을 거라고 장담은 못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지원을 약속할게.”

“…….”

“그리고 이건 시기상조지만, 너희 둘을 코어로 영입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크리드의 계약 연장을 위해서이기도 해.”

“계약 연장이요?”

“선우도 곧 코어와 전속 계약을 했다고 공식 입장 발표할 거야. 윤빈이와 재봉이 소속사도 계약 연장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어. 유현이 소속사도 배우 활동에 대한 겸업을 허용한다면 계약 연장에 찬성하는 입장이라고 했고. 문제는…….”

“VM이네요.”

“맞아.”

VM은 절대 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할 것이다. 곧 루커스의 재계약 시즌이 다가오고 있고, 재계약에 성공한다고 한들 1, 2년 후에 군 입대를 줄줄이 해야 한다는 리스크가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포커스를 루커스와 비슷한 체급으로 만드는 것에 사활을 걸고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도현이 무엇보다 중요하겠지.

“잘 생각해 보고 답해 주기를 바란다.”

“네.”

회의실을 나오면서 지운이 형과 침묵이 오갔다. 웨이브에서 연락이 온 것을 멤버들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신경 쓰여서였을까? 숙소로 오는 내내 둘 다 말 한마디 없었다. 혹시나 나의 선택이 형의 의사 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더더욱 침묵했다. 다행히 먼저 입을 연 것은 지운이 형이었다.

“어떻게 할 생각이야?”

“그건 나중에 확인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형도 저도 다른 사람 의견이랑 상관없이 선택해야 하는 거니까.”

“내 선택에 네 대답이 중요해서 물어보는 거야.”

“그게 무슨…….”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는 지운이 형을 이길 방법이 없었다.

“전… 코어에 남을 생각이에요. 형은 아무래도-”

“나도 방금 마음 정했어.”

“네?”

“나는 내일 말씀드리려고 하는데, 너는?”

“형도 알려 줘요! 계약할 거예요?”

“내 선택에 네가 영향을 받으면 안 되는 거잖아. 너는 네가 마음먹은 선택 꼭 밀고 가.”

‘누군 그렇게 생각 안 해서 안 물어봤겠냐고요-’

지운이 형은 더 말을 얹지 않고 침대로 향했다. 어차피 나는 이 소속사에 남아야 크리드의 계약 연장 및 정식 그룹이 되는 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에 잔류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운이 형의 마지막 말이 자꾸 신경 쓰였다. 자신의 선택에 내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가정하에 나올 수 있는 말이니까.

형의 의견을 무조건 존중하지만, 그래도 다른 소속사로 간다면 정식 그룹 만들기 프로젝트에는 변수로 작용할 것이 분명했다. 최소한의 설득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하나- 고민했다.

“알았어요. 형도 꼭 형 마음이 가는 대로 선택해요. 남들 말에 흔들리지 말고.”

“응.”

“웨이브가 진짜 좋은 레이블이긴 하죠, 형도 거기 가면 더 좋은 환경에서 음악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럴 수 있겠지?”

“…네.”

내심 그럴 리가 있냐고, 너희랑 같이 있는 게 더 좋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지운이 형은 뭐라 더 할 말이 남은 듯했지만, 급하게 방을 나갔다.

알 수 없는 형의 태도에 모든 일을 운명에 맡기기로 했다. 어차피 내 선택은 변함이 없으니까.

다음 날, 눈을 뜨자마자 회사로 향했다.

“대표님, 지금 지운 씨하고 얘기 중이세요.”

“지운이 형이 벌써 왔어요?”

형도 보통이 아니다. 이렇게 먼저 선수를 칠 줄은 몰랐는데. 대표실 너머로 어렴풋이 들리는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그동안 정말 잘해 주셨어요…….”

“전적으로 지운이 네 의견을 존중하고…….”

대화의 흐름이 심상치 않았다.

“감사합니다. 웨이브에서 제안한 조건들이 굉장히 좋기도 했고…….”

중간중간 잘 들리지 않는 부분이 궁금해서 금방이라도 문을 열고 대화에 끼어들고 싶었다. 점점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럼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

지운이 형이 회의실을 나오자마자 지운이 형을 붙잡았다. 예상도 못 했을 나의 등장에 지운이 형은 놀란 토끼눈이었다.

“뭐, 뭐야?”

“형. 이미 마음 다 정했겠지만, 물론 형 마음대로 하라고 했지만. 그래도… 그래도 제 얘기 한 번만 들어 주면 안 돼요?”

“무슨 얘기를?”

“크리드 앞으로도 보여 줄 게 많은 그룹이고, 5년으로 끝내기 너무 아쉽지 않아요? 그리고 우리 멤버들만큼 귀엽, 아니 좋은 애들 없을 거예요. 그리고 제가 아이돌인 형의 모습을 더 보고 싶어요.”

뜬금없지만 진심이었다. 내가 사랑받는 아이돌이 되길 바랐던 것만큼, 형이 아이돌로서 사랑받는 모습을 오래오래 보고 싶었다.

“…풉!”

“왜, 왜 웃어요?”

“이렇게 네가 크리드에 진심인 줄 몰랐다, 승빈아.”

“대표님?”

지운이 형은 더 이상 웃음을 참지 못하고 박장대소했다. 언제부터 보고 있던 건지 대표님 역시 내 머리를 헝크리며 연신 기특하다는 말을 했다.

‘내가 뭘 했다고 기특하다는 거야?’

“너는 무슨 일로 왔어?”

“저, 저도 계약 관련해서 입장 전달하려고 왔죠!”

“그래? 그럼 여기서 말해.”

“전 계속 크리드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코어에 남기로 했어요.”

“고맙다! 믿어 준 만큼 너희 둘에게 정말 좋은 소속사가 되도록 노력할게.”

“너희 둘? 지운이 형도 계약하기로 했어요?”

“그래. 우리 이제 같은 소속사네?”

내가 다시 지운이 형과 같은 소속사가 되다니,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지운이 형이 짜 놓은 판에 제대로 넘어간 것이 민망해서 괜히 우는 소리를 냈다.

“저 놀리니까 재밌었어요?”

“응. 도현이랑 재봉이가 왜 장난치는지 알겠더라.”

“이런 일에는 그럼 안 되죠!”

“미안해- 하지만 어제 말은 진짜였어. 애초에 다른 소속사에서 제안이 들어오는 건 상관하지 않았어. 네가 이곳에 남으면 나도 당연히 남을 생각이었거든.”

“…왜요?”

“투마월 때부터 네가 없었으면 난 데뷔도 못 했을 거고,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야. 앞으로도 너랑 함께면 못 오를 곳이 없겠구나- 늘 그렇게 생각했어. 네가 내 행운의 부적 같은 거지. 그리고 나도 크리드라는 그룹으로 오래 활동하고 싶어. 개인 활동은 언제고 다시 할 수 있겠지만, 크리드는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거잖아.”

지운이 형의 말을 듣는데 나도 알아채지 못한 사이에 눈물이 볼 위로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회귀하고 형에게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내가 형을 옆에 두어서 그런 거라고 자책해 왔던 시간이 부질없게 느껴졌다. 형은 그 시간을 그렇게 해석하고 기억하는구나.

‘나는 왜 그렇게 부질없는 걱정으로 소중한 순간들을 의심했던 걸까…….’

대표실 앞에서 부동자세로 닭똥 같은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웃던 대표와 지운이 형도 점점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혼신의 힘을 다해 내 눈물을 멈추려고 했다.

“미, 미안해! 장난이 너무 심했지? 미안해, 나도 네가 계약한다는 거 듣고 기쁜 마음에 더 서프라이즈로 알리고 싶어서 그랬던 건데. 미안해.”

“승빈아, 이거 때문에 마음 바꾸고 그러면 안 된다?”

“진짜, 너무해요, 형도, 흑, 연기 배워 봐요… 그리고 누가, 흡, 이런 걸로 마음을 바꿔요!”

“진짜 미안해, 울지 말고. 응? 좋은 날인데 왜 울어-”

형과 대표의 품에서 더 울고 나서야 진정이 됐다. 솔직히 말해서 눈물은 한참 전에 그쳤지만, 둘이서 합심해서 나를 속였다는 게 괘씸해서 더 오래 우는 척을 했다.

“좋은 날이니까, 훌쩍, 대표님이 고기 사세요.”

대표는 방금 울던 애가 뚝 그치더니 고기부터 사라는 말에 허탈하다는 듯 웃었다.

“고기만 사 주겠니? 먹고 싶거나 갖고 싶은 거 다 말해! 이제 우리 코어 정식 소속 연예인인데 뭔들 못 해 주겠어?”

물론 그날 고깃집에서 나온 카드 영수증을 보고 대표의 눈동자가 심하게 떨렸던 것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멤버들에게는 며칠 뒤 계약서까지 다 작성한 날 알렸다. 멤버들은 잠시 놀란 듯하다가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그럼 이제 선우 형이랑, 승빈이, 지운이 형은 같은 소속사 연예인이 된 거네?”

“우리 이러다 진짜 계약 연장하는 거 아니야?”

“그랬으면 진짜 좋겠다-”

“둘 다 다른 소속사에서 연락 왔다고 하지 않았어?”

“응. 지운이 형은 무려 웨이브에서 러브 콜 왔었단다.”

“헐.”

“X친. 형, 왜 코어에… 아, 이런 말 하면 안 되지?”

“승빈이도 코어에 남는다고 하고, 나는 크리드 오래 하고 싶어서 코어 선택했지.”

“헐, 나 좀 감동 받았어.”

“지운이 형-”

“나한테도 좀 감동 받아 줄래? 나도 포레스트 엔터에서 연락 왔는데 코어 선택했거든?”

“포레스트? 배우 소속사?”

“너, 너는 왜 코어 선택한 거냐?”

나 혼자를 생각한다면 당연히 포레스트 엔터의 영입 제안을 수락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나 개인보다 이 그룹이 소중해졌고, 이 그룹과 함께 할 때 더 빛나는 미래를 만들 수 있다고 확신한다.

대답 대신 작게 웃어넘겼다.

‘말했잖아.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지킬 거라고.’

* * *

야근 확정과 함께 커피로 정신 줄을 붙잡고 있던 문스트럭은 K의 연락을 받고 사무실 한복판에서 크리드를 외칠 뻔했다.

[야 ㅁㅊㅁㅊㅁㅊㅁㅊ 돌았다]

[(링크) 승빈이 지운이, 선우 다 코어 계약했단다.]

[우리 진짜 계약 연장 가는거 아님?]

“이게 뭔 소리야, 우리 애들은 원래 코어가 맞… 이런 X친!”

“뭐야, 혜진 씨. 무슨 일 있어요? 저장 안 했어?”

“아, 죄송합니다. 저 잠시 화장실 좀-”

반복된 야근에 ‘X친’ 정도는 아무렇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조용히 저장 단축키만 누를 뿐.

[절반이 코어로 넘어온거면 계약 연장은 빼박 아님?]

나 지금 손발 다 떨림;;;

-이거 된다

-계약 연장이 뭐야 정식그룹도 가능할 듯?

└그건 너무 희망고문 아님?

└크리드는 안되는걸 되게 해…

-분명 승빈이랑 지운이는 더 좋은 소속사에서도 연락 왔을텐데 코어 남기로 한거보면 크리드 관련해서 뭔가 있지 않을까?

└성지순례 미리 갔다가 옵니다

└제발 정식그룹으로 계약 변경하자ㅠㅠㅠ

[올해 크리드 악재를 포커스가 다 잡아먹었나 봄?]

“이건 또 뭔 소리야?”

[포커스 주원 갑질 논란 떴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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