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화
알렉스는 미국의 국민 배우였다. 벌써 70세가 넘은 노장이지만, 그가 출연한 작품들은 모두 흥행에 성공한다는 공식이 있을 정도였다.
특히 20대에 출연했던 영화 ‘뉴욕의 연인’은 영화사에도 기념비적으로 남은 영화로, 그는 이 영화를 통해 하이틴스타의 시초라 불리게 되었다. 미소년이 미중년이 되고, 미노년이 된다는 것을 몸소 증명한 인물이기도 하다. 세월의 흔적이 남은 얼굴이지만, 철저한 자기 관리와 활발한 연기 활동으로 눈빛만은 여전히 20대의 반짝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그가 이번 챌린지에 참여했는데, 많은 팬이 그의 20대를 떠올리며 폭발적인 반응이 터져 나왔다.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는 챌린지의 조회수는 자연스럽게 곡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업로드된 지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았는데 조회수가 200만을 향하고 있었다. 특히 평소 SNS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던 그가 최신 플랫폼을 활용한 챌린지에 참여했다는 것에 놀라워하는 반응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도 우리가 눈부시게 빛났던 시간은 영원합니다.]
그가 올린 글귀에 많은 이들이 자신의 경험과 소감을 공유했다. 거물급 연예인이 챌린지에 참여하자, 다른 유명 배우들도 릴레이 동참을 이어 갔다.
[위대한 배우의 모든 순간은 우리에게 영감이 되었습니다.
#ALEX_Weloveyou]
알렉스와 작품을 함께 했던 배우들은 물론이고, 직접적인 관계가 없더라도 존경의 표시로 챌린지에 동참하는 이들도 있었다. 급기야 해시태그까지 만들어지면서 배우, 가수 등 영역에 상관없이 챌린지에 참여하는 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신비주의 노장 배우를 움직이게 한 챌린지의 정체는?]
[크리드의 노래가 알렉스를 춤추게 하다]
[화제의 K팝 그룹, 크리드는 누구인가?]
영어로 된 헤드라인에 크리드의 이름이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고작 하루 만에 벌어진 일이라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토스맨 사건으로 면역력이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그보다 몇 배는 더한 스케일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알렉스의 인터뷰가 공개되면서 챌린지의 불씨에 다시금 장작이 더해졌다.
[Q: 챌린지에 참여했다는 소식에 모두 믿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갑자기 챌린지에 참여한 이유가 무엇인가?]
[A: 오랜만에 손주를 만났는데 서로 관심사가 너무 다르더라. 그 아이가 하는 말의 절반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는 함께 즐겁게 놀았던 거 같은데. 따분한 할아버지로 남는 게 싫었다. 그래서 손주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알아봤고, 요즘 애들은 이렇게 짧은 영상으로 챌린지를 하는 걸 좋아한다더라. 그래서 이것저것 찾아봤다. 아무리 손주를 위한다지만 내 마음에 드는 걸 하고 싶었거든. 그런데 생전 처음 보는 단어의 노래가 있었다. 그게 ‘CR:ID’였다. 흥미로워서 들어가 보니 노래가 내 스타일이었다. 손주한테도 들려주니, 잘 모르는 그룹의 노래라고 하면서도 노래는 신나네요-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챌린지가 좋겠다 생각했지. 게다가 챌린지의 주제 역시 나의 전성기, 내가 가장 사랑했던 순간으로 돌아가 보자는 것 아닌가? 내 팬들에게도 분명 좋은 선물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A: 손주들이 좋아하던가?]
[Q: 대성공이다. 다음 주에는 같이 영상을 찍을 예정이다. 내 전성기는 그 아이들과 함께하는 지금이기도 하니까.]
알렉스의 인터뷰가 공개되고 일주일이 되지 않아서 정말로 그의 손자, 손녀가 함께 참여한 챌린지 영상이 올라왔다. 첫 번째 영상에서는 돌아오지 않을 젊음을 자신의 리즈 시절로 했다면, 이번에는 그가 지금까지의 삶 동안 일궈 놓은 것들을 보여주었다. 또한, 신비주의 이미지가 강했던 그가 손주 앞에서는 다른 할아버지와 다를 바 없는 친근한 모습을 보여 줬다는 점에서 더 큰 인기를 끌었다.
국내 팬들도 이 말도 안 되는 속도에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이게 머선일이고;;]
-토스맨때도 그렇고 미국이랑 뭐가 있나?
-그만 유명해지라고ㅠㅠㅠㅠㅠ
-아 ㅈㄴ좋고 자랑스러운데 또 싫음…내 진짜 마음은 뭘까?
-저 영상 조회수 벌써 3억이라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3억이요?
└스케일 도랐네
소속사에도 섭외 연락이 끊이지 않았다. 챌린지 인기에 힘입어 유명 토크 쇼의 출연도 확정 지었다. 그리고 마침내 빌보드 차트에 입성했다. 빌보드에 우리 노래가 올라갔다는 소식을 듣고 한동안 멤버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잘못 들은 게 아니고 진짜로 빌보드요?”
“와… 나는 이제 좀 무서워질 지경이야. 어떻게 이러지?”
나 역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울렁거림이 느껴졌다. 빌보드라니. 티벡스 시절에는 빌보드를 향해 가겠다는 구호 때문에 조롱을 당했는데, 정말로 빌보드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지난 미션의 보상이었던 ‘행운의 기회’가 사용된 것이 분명했다.
데뷔곡부터 말도 안 되는 성과를 얻자, 곧바로 미국 에이전시에서는 앨범 2개에 대한 계약을 체결했다.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되면서 챌린지의 인기는 4월이 될 때까지 이어졌다.
그사이 포커스에는 자잘한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었다. 멤버 석훈의 비공개 엔스타그램 계정이 해킹되었는데, 일반인 여자 친구와의 럽스타그램이 공개된 것이다. 그런데 이미 오래된 팬들 사이에서는 다 알려진 사실이었다. 애정만으로 애써 모른 척해 줬던 팬들의 분노가 폭발하면서 엄청난 폭로전이 시작됐다.
dd @FxxxU
[티 좀 작작 내지 그랬어^^ 그동안 몰랐다고 생각 한 거니? 모른 척 해준건데…
나도 이제 모르겠다. 네가 자초한 거야. 적어도 팬들 진심을 그런 식으로 무시하면 안 됐지
#클로버_짹친소 #문샤인_짹친소 #포커싱_짹친소]
일반인 여자 친구의 SNS 다이어리가 공개되었는데, 포커스 멤버가 자주 착용하는 것과의 커플 아이템 사진과, 심지어 해외 투어 당시에도 함께한 것으로 보이는 게시글까지 모조리 공개되고 말았다.
[늘 바빠서 미안하다고 하는 착한 바보. 수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아도 내 사랑이 더 크게 느껴진다고 하는 너라서 좋은 건데.]
-남자아이돌 일반인 여친들 말투는 왜 다 똑같은 거임?
└저거 배우면 나도 최애여친 가능한거임? 어디서 배워오는거냐
-누가 보면 로미오와 줄리엣인 줄 알겠음
-착한 바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석훈아 바보캐해 밀고가더니 진짜 바보였네…사랑에 미친 바보
└그냥 X친 바보 등신 아님?
[몸은 멀리 있어도 사랑받는다고 느끼게 해주는 사람
(인형 사진)]
게시글만 보면 둘도 없는 세기의 커플이었다. 게시글 중에는 팬들의 선물을 여자 친구에게 준 정황이 포착되면서 더 비판을 받았다.
[저거 내가 만들어준 인형인데ㅎ… 시중에 파는 인형인 줄 알았나보네ㅎㅎ ㅈㄴ 비참하다 나쁜 X끼]
-헐…
-나가 뒤져라 석훈아…
-저거 석랑이 아니냐? 팬제작 인형을 여친한테 선물로 주는 건 얼마나 멍청해야 할 수 있는 일인거임?
[나보다 X된 석프가 있을까? 당장 다음주가 생일카페인데ㅋㅋㅋㅋㅋㅋ하 웃겨…아니 X발 사실 안 웃겨 눈물만 나와]
-어쩌냐 안 그래도 카페대관 어려웠을텐데
└왜? 생일자가 많아?
└ㄴㄴ 인지도 ㅈㄴ 없어서^^
해당 멤버는 해명글을 올리고, 여자 친구의 게시글도 모두 내려갔지만, 여론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팀 내 인기 순위가 높은 멤버가 아니어서 그나마 그룹에는 큰 타격을 주지 않았지만 ‘기만돌’이라는 오명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내가 권석훈 쟤, 언젠가 일 터지겠다 싶었어.”
“알고 있었어?”
“당연하지. 활동하는 내내 외출 언제 할 수 있냐고 틈만 나면 매니저 형한테 물어보고 다녔거든.”
“허…….”
“그런 애가 아무것도 모르는 순박한 바보 이미지로 먹고살려고 했다는 게 웃긴 일이지-”
“멤버들이 뭐라고 안 하냐?”
“걔네가 서로서로 뒤 봐주고 할 애들이냐? 애초에 서로한테 관심이 없어.”
원래도 결속력이 없는 그룹이었지만, 포커스 내부에도 균열이 발생하고 있었다. 정식 그룹을 만들려는 내 입장에서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강도현 개인의 가치가 포커스를 뛰어넘을 때, VM은 분명 그룹보다는 강도현을 선택할 것이다. 어쨌든 회사에 더 이익을 주는 선택을 할 테니까.
어쩌면, 이번 일은 시작에 불과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5월이 되고, 마침내 ‘어쩌면 그날’이 개봉했고, 시사회에 참여하면서 멤버들과 함께 먼저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철저히 관객의 입장이 되어 본 ‘어쩌면 그날’은 감회가 새로웠다. 내 기억 속의 ‘어쩌면 그날’과는 다른 점이 많았다. 지석 역할을 맡은 강대섭의 연기는 훌륭했다. 나와는 다른 매력으로 지석 캐릭터를 빛내 주었다. 내가 연기한 지석은 영원히 내 머릿속에만 존재할 거라는 사실에 기분이 이상하기도 했다.
유현이 형의 얼굴이 나오자마자 현장에서 작게 감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 형은 스크린으로 봐도 잘생겼네…….’
연기도 기대 이상이었다. 매 촬영 전 나와 연기 연습할 때마다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걱정한 사람의 연기가 이렇다니, 형의 재능에 질투가 날 정도였다. 단역을 맡은 오재성의 연기도 거슬리지 않았다. 물론 다른 주조연들과 비교하면 약간의 어색함이 있었지만, 상태창을 통해 얻은 게 있었겠지. 애초에 거슬릴 만한 비중도 아니기도 했고.
완전히 제3자의 입장에서 본 ‘어쩌면 그날’은 내 예상대로 그 자체로 좋은 작품이었다. 회귀 전과 같은 성과를 얻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충분히 사랑받을 영화라는 점이었다.
영화의 마지막 신은 새로운 빛을 찾은 지석의 벅차오르는 얼굴이 클로즈업되며 끝났다. 강대섭의 연기는 충분히 감동을 주었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부터 나는 어떠한 아쉬움도 없이 진심으로 박수 칠 수 있었다. 길고도 질겼던 미련과 정말로 마지막 인사를 고했다.
* * *
5월은 ‘어쩌면 그날’의 개봉과 국내 컴백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런 와중에 다음 미국 활동에 대한 윤곽을 잡아가야 할 시기여서 동시에 신경 써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유현이 형이랑 승빈이는 몸이 열 개여야겠어.”
“한 스무 개는 돼야 할 거 같은데-”
“윤빈 형도 곡 작업만 몇 개야?”
“승빈이, 너는 건강 특히 유의하고.”
“저 요즘 운동 시작한 거 몰라요? 완전 건강하다고요~”
한창 멤버들과 대화를 하던 중, 매니저 형의 연락을 받았다. 대표와의 면담이라는 말에 모두 짜기라도 한 듯 일순간 조용해졌다. 연습실에는 묘한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대, 대표님이 왜?”
“너, 뭐 잘못했냐?”
“그럴 리가요?”
“살아서 돌아와라, 승빈아-”
“나도 연락받았는데.”
“지운이 형도요?”
나와 지운이 형을 동시에 불러야 하는 일…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섣불리 기대했다가 실망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회의실에서 마주한 대표의 제안은 내 예상과 일치했다. 어지럽게 흩어진 퍼즐의 조각들이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코어 엔터의 소속 연예인으로 정식 계약을 하는 게 어떻겠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