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8화
환희와 혼란 속에서 크리드의 무대가 끝이 나고, 뒤이어 다른 대상 후보들의 무대가 이어졌다. 하지만 둘의 신경은 여전히 크리드의 무대에 머물렀다. 눈물 나게 아름다운 프리뷰 사진을 고르면서도 머리에는 크리드를 미국으로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X발… 이렇게 예쁜 내 새끼 또 어디로 보내려는 거냐고-”
“드디어 크리드로 활동하는데 해외 활동이다……?”
“와중에 오늘 사진 미쳤네.”
“도현이 레전드 하나 찍어 낸 듯?”
슬퍼하다가도 최애 미모 얘기에 금세 활기를 찾는 둘이다. 팬들의 반응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투닥즈 오늘 머리색 미쳤네;;]
-이제부터 태극기즈라고 하자 이게 대한민국 아이돌의 얼굴이다
└진심 국위선양의 얼굴임
└저딴 쨍한 형광 파랑, 빨강이 잘어울릴 일이냐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찐일까 아님 헤어스프레이일까?
-오늘 애들 폼 다 미쳤는데 그 중 저 둘 전광판 잡힐 때마다 주변에서 헉 소리 엄청 났음
-문스트럭님 고화질 떴다ㅇㅇ
└둘째 며느리 갑니다
@moon_struck 1분 전
[XX1230 레몬 뮤직 어워즈
천사의 머리색은 파랑색이구나…]
-오. 승빈
-저런 색 소화하는거 승빈이밖에 없을걸
-너무 예뻐ㅠㅠㅠ
[애들 미국 진출 찌라시가 아니었구나…]
며칠 전에 계자라고 하던 사람이 크리드 곧 미국진출 할 거고 노래랑 준비 다 마쳤다고 했는데 찐인가보네
-해투도 눈물로 보냈는데 또 어딜가
-그래서 영어 노래였던거네
-요즘 아이돌들 필수코스라지만ㅠㅠㅠ
-와중에 노래 ㅈㄴ좋을 듯
└ㅇㅇ요즘 트렌드인 스타일 잘 잡은 듯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반응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던 와중에 드디어 대상 발표 시간이 왔다. 먼저 음원 영역은 모두의 예상대로 정수지의 이름이 불렸다. 모두가 예상한 결과였기에 팬덤이 대통합되어 축하했다.
음반 대상 후보 역시 쟁쟁했다. 음반 판매량이 80% 비중을 차지하지만, 평론가들의 평가도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올해 팬들과 대중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앨범에게 주는 상인 만큼 수상자에게는 엄청난 자부심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나이가 지긋한 발표자의 나긋하지만 느린 진행에 현장의 모두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음반 부분 대상은… 축하합니다, 루커스!”
“…아.”
“음반이 제일 가능성 있는 상 아니었냐?”
“응. 가수상도 어렵겠네, 아쉽다…….”
“그래도 우리 애들 아직 연차도 얼마 안 됐으니까 내년이나 내후년에는…….”
A는 못내 아쉬웠는지 목이 메는 듯했다.
“야,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랬어. 가수상도 기다려 보자.”
문스트럭도 가수상이 더 어렵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앨범 판매량 차이가 크지 않다면 음원으로 상쇄할 수 있고, 무엇보다 팬들의 투표가 분명 다른 후보들 사이에서 큰 격차를 벌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어디까지나 최대한 행복 회로를 돌렸을 때 가능한 시나리오였지만.
“올해의 가수 부분 대상은 앨범, 음원, 팬덤별로 최고의 밸런스를 가진 팀에게 수여하는 상입니다.”
“제발 이번에는…….”
“영광의 수상자는… 축하합니다. 크리드!”
“와아아아!”
크리드의 이름이 불림과 동시에 문스트럭과 A는 서로를 얼싸안으며 기쁨을 만끽했다. 무대 위에 올라온 멤버들도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 단상에 올라오는 길에 승빈이 차지운의 볼을 잡아당겼다.
“지운이, 안 믿겨서 승빈이한테 볼 꼬집어 달라고 했나 봐-”
“야, 말 나온 김에 나도 볼 좀 꼬집어 줘 봐. 우리 애들 대상 받은 거 꿈 아니지?”
“완전 현실이야!”
“아, 아파!”
평소라면 침착함을 유지했을 정유현이 멤버들 정렬 순서를 헛갈려 잠시 허둥지둥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인사드리겠습니다. 하나, 둘, 셋. 본 투 샤인! 안녕하세요, 크리드입니다!”
평소 인사보다 한 단계 높은 데시벨의 목소리였다. 인사를 하고 나서야 실감했는지 박재봉과 윤빈은 이미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승빈과 지운 역시 눈가가 붉어진 채, 울먹거리며 애써 팬들을 향해 웃어 보였다. 대상 소감을 말하는 정유현의 목소리도 그 어느 때보다 흔들리고 있었다. 늘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스스로 잘 컨트롤하던 정유현이 이렇게 감정적으로 동요된 모습은 팬들에게도 익숙하지 않았다.
“우선 정말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는데, 이런 큰 상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클로버!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저희 크리드는 서로 다른 길을 걷다가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응원과 사랑으로 하나의 그룹이 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이 없었다면 저희 일곱은 만날 수조차 없었을 겁니다. 그렇게 한 계단씩 오르는 모든 과정들에 어려움도 있었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도 있었지만 차마 저희를 응원해 주는 분들을 모른 척할 수 없었습니다. 저희 크리드가 항상 매 순간 마지막 무대처럼 최선을 다하는 이유입니다. 아직 저희가 대상을 받을 만한 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이 대상을 받을 만한 팀이었다는 것을 끊임없이 증명하며 성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유현의 소감을 들으면서 투마월 때부터 지금까지 크리드와의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감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내 최애만 데뷔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서바이벌이었지만, 끝에 와서는 누구도 떨어지지 않기를 바랄 만큼 이들의 꿈을 응원하게 되었다. 또, 승빈이 크리드 여섯 멤버와 함께 데뷔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꿈을 향해 뒤돌아보지 않고 전력 질주를 하는 청춘을 엿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시간이었다.
“클로버으어어엉…….”
“재봉이 괜찮은 거 맞아?”
“아이고, 아기야-”
무대에 올라온 지 5분이 다 되어 가도록 오열을 한 재봉이 열심히 수상 소감을 이어 갔지만 대부분 알 수 없는 흐느낌이었다. 현장의 타 팬들도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재봉을 귀여워했다. 멤버 모두 소감을 마치고 승빈이 마지막으로 수상 소감을 전했다.
“저희가 2년 전에는 이곳에서 신인상을 받았는데, 올해는 대상을 받게 됐네요. 저희 팬분들은 정말 대단한 거 같아요. 저는 이 상이 절대 저희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누군가는 저희가 앨범을 얼마나 많이 팔았는지, 음원 순위가 어땠는지를 기준으로 저희를 판단하고 평가할 테죠. 그런데 이건 결국 다 팬분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거잖아요. 그런데 그런 성과들이 다 저희 이름으로만 알려지는 게 너무 염치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클로버 분들이 가장 뿌듯하고, 행복한 날이길 바라요! 유현이 형의 말처럼 저희가 아직 대상을 받을 그룹이라고 확언은 못 하겠지만, 확실한 건 우리 클로버 분들은 이 상을 받기에 넘치도록 자격이 있어요! 앞으로도 많이 응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빌어서 하나는 꼭 약속드리겠습니다.”
“제가, 그리고 클로버 여러분이 사랑하는 모든 것을 지켜 내겠습니다.”
갑작스러운 승빈의 발언에 문스트럭과 A는 당황했지만, 이내 눈물이 고였다. 승빈은 크게 심호흡하고 멤버들과 클로버 팬석을 바라보며 흔들림 하나 없는 눈으로 말했다.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지켜 내겠다고.
데뷔를 하고 모든 것에 신기해하던 신인 시절부터 대상이라는 큰 상을 받을 정도로 성장한 지금도 여전히 승빈을 응원하는 이유는 그의 한결같음 때문이었다. 투마월 파이널 날, 지운과 함께 데뷔하고 싶다는 말은 무모하지만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발언이었다. 승빈이 아니었다면 누구도 하지 못했을 말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승빈이 지키겠다고 한 것이 무엇인지 팬도 대중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부는 억지로 모른 체하며 승빈이 지키겠다고 한 것에 대해 입맛대로 생각하고, 사실인 것처럼 부풀릴 것이다.
하지만 승빈에 대해서는 일말의 걱정도 없다. 승빈은 언제나 그랬듯 자신이 약속한 것을 지킬 것이다. 애초에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는 사람이니까.
* * *
루커스가 앨범 대상을 수상하면서, 대상에 대한 마음을 비워 두던 차였다. 그래서 가수상에 크리드가 호명될 때 느낀 카타르시스는 배가 되었다. 앨범상 수상이 불발되고 살짝 의기소침해하던 멤버들도 비명을 지를 만큼 놀란 반응이었다. 기대 안 한다고 해도, 기대가 안 될 리가 없지.
앨범상을 무난히 받고, 가수상은 미지수라고 생각한 나의 예상도 보기 좋게 빗나갔다. 우리가 올해의 가수상을 받을 수 있던 것은 결국 팬들의 투표 싸움에서 이겼다는 의미겠지. 언제나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팬들의 능력에 매번 감탄하게 된다.
“말도 안 돼요, 대상이라니…….”
“승빈아, 나 볼 한 번만 꼬집어 줄래?”
지운이 형이 이런 부탁을 하는 건 처음이었다. 나는 아프지 않을 정도로 형의 볼을 잡아 늘였고, 지운이 형은 눈가를 닦으며 꿈이 아니라고 연신 중얼거렸다.
무대에 올라오기 전까지는 실감이 나지 않아 그저 백지상태였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이 배경 음악으로 흘러나오는 우리의 노래를 따라 부르는 모습을 마주하니 말로 이루 다 할 수 없는 짜릿함이 밀려왔다. 가장 높은 곳에 오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으니까.
엉엉 울며 서로를 얼싸안는 멤버들의 품에서 나도 더 참지 못하고 눈물이 터져 나왔다. 수상 소감을 열심히 준비했건만,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서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른 멤버들도 비슷한 처지였다. 아마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를 것이다. 나는 최대한 감정을 안정시키기 위해 심호흡을 하며, 머릿속을 마구잡이로 떠다니는 생각들을 붙잡았다.
수상 소감을 하기 위해 마이크 앞에 선 순간, 미션 클리어를 알리는 상태창이 눈앞에 나타났다. 오랜만에 보는 광경이었다.
[보상: 행운의 기회]
구체적인 보상은 아니었지만, 꼭 필요한 보상이었다. 앞으로 미국 진출에 있어서 노력과 실력만으로는 어려운 부분을 채워 줄 역할을 할 것이다. 수상 소감을 말하던 중 상태창이 다시 반짝이기 시작했다.
‘방금 미션을 클리어했는데 또 미션을 준다고?’
[!MISSION: 크리드 정식 그룹 만들기!]
제한 시간) 20**년 12월 31일까지
성공 시▶ 불행 방지권 획득
실패 시▶ 조기 계약 해지
‘이거 완전 병 주고 약 주고잖아?’
남은 시간은 1년. 실패 시 페널티는 너무 가혹했다. 성공 시 얻을 불행 방지권 역시 탐탁지 않았다. 꼭 불행이 예고된 것 같단 말이지. 하지만, 나는 내 뒤에 선 멤버들의 얼굴을 다시 찬찬히 바라봤다. 그리고 팬들의 반짝이는 응원봉을 눈에 담았다. 내 인생에 다시 없을 영광의 시간을 함께한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못 할 게 없지.
나를 도발하듯 무지성으로 반짝이는 미션창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살짝 미소를 지었다. 절대 바라는 대로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선전 포고였다.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 꼭 지켜 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