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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297화 (297/346)

297화

음반, 음원, 가수 대상 후보 소식을 듣고 멤버들 모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이미 몇 달 전에 상태창 미션으로 확인했지만, 솔직히 시기상조라고 생각했다. 이미 루커스가 3년 연속으로 대상을 받았고, 올해 미니 앨범 활동 한 번이 전부였다지만 루커스의 팬덤은 여전히 건재했기 때문이다.

“대상이라니…….”

“잘못 나온 거 아니죠?”

“형, 저 볼 좀 꼬집어 주실래요?”

“네가 꼬집어 달라고 했다?”

“아아악, 그렇게 세게 꼬집으면 어떡해요?”

“현실인 거 알아채기 딱 좋네.”

“대상 후보가 루커스랑 멜로디즈, 정수지 그리고 우리라는 거잖아?”

역시 대상 후보답게 영역별로 1인자들만 모였다. 남자 아이돌, 여자 아이돌, 싱어송라이터. 그 사이에 우리 이름이 들어가다니, 감회가 새로웠다. 앞선 세 후보들 역시 음반, 음원, 대중성 모두 충족한 극강의 밸런스를 가진 팀이었다.

“우리는 다른 상 주지 않을까?”

“그럴 거 같아요. 아직 대상은…….”

대상이 주는 무게와 부담감의 크기를 알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벌써 대상 수상에 소극적인 반응이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우리는 충분히 대상을 받을 수 있다.

“약한 소리들 하지 마. 우리가 대상 못 받을 이유도 없잖아?”

“뭐야, 문승빈. 완전 자신감 넘치네?”

“대상 수상 소감이나 준비해라- 지난번 신인상 받았을 때처럼 울다가 내려오지 말고.”

“나만 울었냐-”

“승빈이 말이 맞아, 혹시 모르잖아?”

윤빈 형이 우렁차게 외쳤다. 의기소침해 있던 강도현과 박재봉도 그제야 여유로운 모습으로 돌아왔다. 뒤이은 지운이 형의 말이 큰 역할을 했다.

“우, 우리가 아니면 누가 받겠어?”

“…….”

불끈 쥔 주먹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 어느 때보다 결의에 찬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멤버들 모두 눈동자를 굴리며 서로의 반응을 살피고 있었다.

“지운이 형 말이면 믿어야죠!”

“맞아. 형이 이렇게 확신하는데 우리가 대상 좀 받을 수 있는 거지!”

“내가 말할 때도 이렇게 반응해 줄래?”

“네가 지운이 형이 아닌 걸 어쩌냐, 승빈아.”

“지운이 형 아닌 거 같아-”

지난번 펜션에서의 하루 이후 시간이 꽤 지났지만, 박재봉은 여전히 지운이 형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듯했다.

“지운이 형 말이 맞아. 다들 미리 기죽지 말고, 후보가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거야. 그리고 기준을 우리가 아니라 팬들로 생각하자. 우리는 부족할지 몰라도, 우리 팬들은 강하고 대상 받기에 충분한 사람들이니까.”

멤버들의 노력이나, 능력을 폄하하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정말 아이돌은 팬들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에 하는 말이었다.

“형 말이 맞아요. 그리고 못 받더라도 뭐 어때요? 우리 아직 3년 차밖에 안 됐는데.”

“맞아. 괜한 걸 걱정했네.”

“자, 그럼 대상 후보에 걸맞게 연말 무대 연습 이어서 할까?”

“와, 유현이 형. 진짜 자연스러웠어요.”

“진짜 기승전연습이라니까?”

사기가 충전된 멤버들을 지켜보며 머릿속으로는 우리가 대상을 받을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얼마인지 계산했다.

올해의 앨범, 음원, 가수 세 개의 대상이 있다. 이 중 우리는 앨범상이 가장 확률이 높고, 음원상을 받을 가능성이 제일 낮았다. 정말 운이 좋으면 가수상도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비록 ‘Definition’ 활동 한 번이었지만, 초동 150만 장이 넘고, 가장 최근 판매량이 300만 장을 넘었다. 음원 역시 일간과 주간 모두 10위권에 들었다.

이 두 개 영역의 성적은 루커스와 비슷하다. 그렇다면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팬덤 투표 싸움이다. 해외 팬들의 비중이 늘었지만, 국내 팬덤 투표가 점수에 더 많이 들어간다. 말 그대로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은 싸움이 펼쳐질 것이다.

팬덤 반응을 살펴보니 대상 후보에 기뻐하면서도 투표에 대한 걱정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대상 후보 피셜 맞지?]

-나도 잠시 공식인지 뇌피셜인지 헷갈렸음…

-3년차에 대상 후보 미쳤네

-후보들 ㅈㄴ쟁쟁해서 장담은 못하겠는데ㅠㅠ

-앨범은 받지 않을까?

└앨범도 루커스 때문에 불확실함ㅠㅠㅠ

-음원은 정수지 확정인 거 같고

└ㅇㅇ올해 음원 전체 순위 10위 안에 정수지 노래만 4개잖앜ㅋㅋㅋ

-가수상 받으면 울어버릴거임

-가수상은 팬투표가 관건이네

-숨쉬듯 투표해야겠네

[애들 꼭 대상 주고싶어]

요즘 겸업 기간 시작되면서 팬덤 분위기도 뒤숭숭하고 애들도 생각 많을 텐데 대상 꼭 받게 해주고 싶음… 우리 애들 프로젝트 그룹으로 끝내기에는 아쉬운 조합인 거 증명하는 방법이 되지 않을까?

-나도 이게 제일 큰 이유임ㅠㅠㅠ

-악개들 활개치고 다녀서 팬덤 단합 안 될 거 같아서 걱정이긴 한데ㅠㅠㅠ

└그건 걱정 안해도 될 듯 대부분 겸업 마음에 안 들어해서

└ㅇㅇ 애들한테는 미안하지만 각각 강도현이랑 정유현 말고는 미래가 없는 소속사라서ㅎ

└강도현 팬들도 포커스 병행 말고 크리드 주력 바라고 있음ㅠㅠ 정유현 팬들도 아직까지는 연기보다는 아이돌 생활 오래 하길 바라고

팬들의 말대로 대상 수상은 크리드의 위상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였다. 우리가 더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미안한 마음이 컸다. 매번 느끼지만 정말 팬들이 없다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말해서 상을 받게 해 주는 건 전부 팬들의 애정과 시간, 돈인데 그 상이 주는 명예는 그들의 것이 아니지 않는가? 이번에 대상을 받게 된다면 꼭 팬들이 보람을 느끼고, 영광의 순간을 즐길 수 있게 해 주고 싶었다.

* * *

“투표 아이디 생성하느라 한숨도 못 잤어.”

“나도… 막판에 투표 결과 뒤집히는 줄 알고 엄청 조마조마했잖아.”

K 없이 문스트럭과 A 단둘이서 행사를 함께한 것은 거의 1년 만이었다. 둘 다 크리드가 대상 후보인 것이 발표된 이후로 하루도 편히 보낸 날이 없었다. 대상에 대한 부담감은 팬들도 가수만큼이나 크게 가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번에 앨범과 가수 부분 대상을 놓치면 4년 연속 대상이라는 타이틀을 놓치게 될 수 있는 루커스 팬들의 기세는 그 어느 때보다 무서웠다. 막판 앨범 집계량을 위해 공격적으로 앨범을 대량 구매하는 해외 팬들도 있었다.

A는 난생처음 헬퍼를 지원했다. 밤낮 할 거 없이 크리드의 대상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첫 대상은 꼭 크리드로 받게 해 줘야지.”

A 역시 도현의 겸업이 시작되면서 축적된 스트레스가 많았다. 도현이 아무리 적응력이 좋다고 한들, 그동안 크리드로 보여 준 케미를 포커스 멤버들과 보여 줄 순 없었다. 서바이벌부터 도현을 원픽으로 좋아했고, 크리드 활동을 함께 한 A의 눈으로 봐도 포커스는 도현에게 맞지 않는 옷이었다.

이번 리패키지 활동에 처음으로 합류해서 적응이 필요한 시간에 실수로 팬덤명을 클로버라고 할 때면 순식간에 질타를 받았다. 2년 반이 지나면 겸업이 가능하다는 건 시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지저분하게 정리되지 못한 상황에서 활동하게 되는 게 자신의 최애가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게다가 같은 팬덤 내에서도 겸업하는 도현을 두고 박쥐 같다며, 언제든 크리드를 떠날 애를 품고 갈 수 없다며 대놓고 배척하는 이들도 수두룩했다.

“씨X. 도현이가 동네북이지, 아주.”

“그러니까. 이미 서바이벌부터 정해진 계약인데 왜 얘한테 난리야.”

“라이브만 하면 너는 크리드냐, 포커스냐 묻는 어그로 놈들 엄청 붙어서 애가 댓글 창을 잘 안 보더라고.”

“크리드가 정식 그룹만 되면 해결될 문제인데.”

“야, 솔직히 5년 할 바에는 정식 그룹 하는 게 낫지 않냐? 짜증 나, 진짜…….”

울분을 토하는 사이 입장이 시작됐다. K의 지인을 통해 받은 초대석이어서 운 좋게 같이 시상식을 관람할 수 있었다.

[K: 입장했냐?]

[ㅇㅇ 시야 개좋아]

[K: 내 지인 표인데 내가 못 가는 거 다시 생각해도 어이없네]

[지운이 사진이랑 영상 잘 찍어갈겤ㅋㅋㅋ]

[K: 하필 이 시기에 독감에 걸리네 ㅅㅂ…]

[따숩게 하고 본방사수해라.]

[K: 오키 잘 보고 오쇼]

곧 현장이 암전되었다가 화려한 오프닝과 함께 시상식이 시작됐다. 최대 규모의 시상식인 만큼 3부까지 진행되면서 수십 팀의 공연이 이어졌다. 연말 무대는 모든 아이돌이 그해 마지막 불꽃을 태우는 곳이었다. 다들 레전드 무대를 만들기로 작정했는지 눈과 귀를 사로잡는 무대들의 향연이었다.

“근데 크리드 언제 나옴?”

“대상 후보인데 3부에 나올 듯?”

“하… 유명해지면 이게 안 좋아. 아니, 유명한 애들부터 앞에 쫙 무대 시키는 게 맞는 거 아니냐?”

“그럼 앞 무대만 보고 안 보겠지.”

“그건 그렇지만 내가 힘들어.”

“그건 인정.”

중간중간 투샤인과 하이드와 같이 크리드와 인연이 있었던 그룹이 나오면 노래를 따라 부르는 등 호응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마침내 3부 오프닝으로 크리드의 무대가 시작됐다.

[What is your Definition?]

인트로를 시작으로 각 잡힌 해군 제복을 입은 크리드가 등장했다. 컴백 무대에서 보여 준 인트로에 편곡 분위기를 바꿨다. 안무와 퍼포먼스에도 변화를 줘서 익숙하지만 색다른 무대였다. 크리드의 정체성 중 하나인 칼군무가 돋보이는 무대였다. 문스트럭과 A는 카메라 셔터를 멈추지 않았다. 푸른 조명 아래여서 승빈의 머리색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확실한 것은 백발은 아니었다.

“승빈이 머리 흑발인가?”

“이런 X친!”

조명이 돌아오고 문스트럭과 A는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승빈은 짙은 파란색으로, 도현은 강렬한 빨간색으로 염색을 한 것이다. 다른 아이돌이 했다면 분명 그먼씹 오타쿠 캐릭터 머리라고 욕먹을 것이다. 그만큼 쨍한 색이었다. 하지만 머리색 따위는 둘의 비주얼에 조금의 흠도 남기지 못했다. 오히려 정말 비현실적인 잘생김을 돋보이게 했다.

[망설임 따윈 Get away

내가 선택한 이 순간 Destiny

저 지평선 너머의 Destination

마침내 확신해 이곳이 My Definition]

원곡보다 더 어둡고 웅장한 버전의 편곡이었다. 이렇게 매번 시상식마다 새롭고 만족스러운 편곡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Definition 무대가 끝나고, VCR에 거대한 문구가 떴다.

[What is your CR:ID?]

“이게 뭐야?”

“내 크리드가 뭐냐고?”

영문을 알 수 없는 문구에 현장이 술렁였다. 그리고 경쾌하고 빠른 비트의 멜로디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크리드의 춤 멤버인 차지운, 윤빈의 유닛 댄스가 이어졌다. 뒤이어 정유현과 승빈, 박재봉이 합류해서 노래를 부르고, 박선우와 강도현의 랩이 시작됐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무대였지만 순식간에 몰입할 수 있었다. 가사가 전부 영어여서 더욱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거 설마 미국 활동 곡이냐?”

“맞는 듯?”

“어딜 또 가는 거냐고-”

짧은 시간 동안 천국과 지옥을 모두 경험한 문스트럭과 A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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