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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284화 (284/346)

284화

숙취는 없었지만 피곤함이 물밀듯 몰려왔다. 스케줄이 끝나자마자 납치당하듯 부산에 내려와 거의 밤샘하듯 늦게 잠이 든 탓이었다. 화장실 거울로 확인해 보니 역시나 부은 얼굴이었다. 양치하러 온 건지, 마침 화장실에 들어온 강도현이 거울 너머로 내 얼굴을 보고 입을 쩍 벌리고 웃기 시작했다.

“진짜 잘 붓는다니까? 누구세요?”

“내가 할 말이거든? 거울이나 봐.”

“아 씨, 뭐야?”

강도현을 알고 지내면서 이렇게까지 다른 얼굴은 처음 봤다. 붓다 못해 약간 가관인 몰골이었다. 강도현에게 사촌 동생이 있다면 저렇게 생겼을까. 본판이 있는데도 다른 사람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급히 귀밑과 겨드랑이를 꾹꾹 누르던 강도현이 무언가 떠올랐는지 부은 눈두덩이를 걷어 내고 눈을 반짝였다.

“내가 말했지, 나 주량 세다고?”

“아침부터 무슨 헛소리야?”

“이것 봐, 정리 싹 해 놓은 거~ 정신없는 와중에도 뒷정리까지 다 한 거라는 거지.”

“좀 있다가 피디님이랑 와서 관찰 카메라 보면 말도 안 나오겠다, 도현아.”

필름이 끊긴 게 분명한 놈이 일어나자마자 저러니 헛웃음도 안 나왔다.

“누구한테 맞았어? 붓기나 빼고 말해.”

“아, 형은 하나도 안 마셨잖아요…….”

유현이 형의 단호한 말에 강도현이 궁시렁거리며 양치질하기 시작했다. 비적비적 걸어오던 지운이 형이 조심스레 물었다.

“나 어제 뭐 잘못한 거 없지?”

“형이요?”

이걸 말해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눈치 보는 형을 놀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잘못한 건 없었으니까. 다만 형이 알게 되면 혀 깨물고 죽겠다고 할까 봐 차마 말할 수 없었다. 만약 방송에 나오게 된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아무 기억도 안 나?”

“네…….”

“우리는 단체로 술 마시면 안 되겠다.”

“다들 잘 잤어?”

“뭐야? 형, 왜 하나도 안 부었어요?”

“저 형이 제일 많이 마신 거 같았는데?”

벌써 목욕까지 마치고 온 선우 형이 머리를 말리며 여유롭게 걸어왔다. 간이 두 개인가 의심이 들 정도로 멀쩡한 얼굴이었다. 선우 형은 퉁퉁 부은 윤빈 형과 강도현의 얼굴을 이리저리 반죽하며 신나게 놀렸다.

“역시 아강잉들은 술이 약행용~”

“윽, 혀가 반 토막 났나?”

급기야 강도현은 헛구역질까지 했다. 장난 반 진심 반이었다.

“저 형은 살도 잘 안 찌고 얼굴도 안 붓네.”

붓기 하나 없는 얼굴을 보며 강도현이 입술을 삐죽였다. 모두 어느 정도 부었다지만 강도현만큼은 아니었다. 나도 쉽게 붓는 타입이라서 아침 스케줄이면 놀리던 놈이었는데, 알고 보니 미리 일어나서 붓기를 뺀 상태였나보다.

급기야 제자리 뛰기를 시작한 녀석을 두고 마저 옷이나 갈아입었다.

* * *

조식을 먹고 호텔 로비로 모였다. 그사이 얼굴은 거의 원상 복귀가 된 듯했다. 다행이었다. 자칫했다가는 하루 종일 강도현에게만 선글라스 씌우고 촬영할 뻔했다.

“부산에서의 두 번째 날이죠? 오늘은 서로의 마니또를 찾는 미션을 할 겁니다. 모두 부산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마니또에게 줄 선물을 준비해 주세요. 하지만 그 선물은 마니또를 맞췄을 경우에만 받을 수 있습니다.”

“마니또 진짜 오랜만이에요!”

“맞아. 중학생 때 해 보고 한 적 없어.”

“마니또가 뭐야?”

“시크릿 프렌드 같은 거예요. 은근히 도와주거나, 응원해 주는 친구. 근데 너무 티 내면 재미없고, 헷갈리게 하는 게 재미있어요.”

“어렵겠다-”

하긴, 평소 윤빈 형 성격은 좋고 싫음이 분명한데, 마니또로 뽑힌 멤버에게 티 안 나게 잘해 준다? 쉽지 않을 거다.

“각자 이 상자에서 자신의 마니또를 뽑고 확인하겠습니다.”

다행히 자기 이름을 뽑은 사람은 없는 듯했다. 내 마니또는 지운이 형이었다. 다행이면서 불행이었다. 원래 투닥거리고 서로 서먹한 사이일 때 마니또를 해야 티도 나고, 이를 계기로 가까워질 텐데 지운이 형이랑은 전혀 그러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평소랑 다를 바 없으니 마니또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낮아지는 장점도 있긴 했다.

“그리고 각자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드릴게요. 마니또와 함께한 사진을 찍어야 미션 성공입니다!”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되고 나는 멤버들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했다.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이는 멤버가 보인다면 먼저 용의선상에 올리기 위해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다른 멤버들을 헷갈리게 하고 싶다는 장난기가 발동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멤버부터 한 명씩 공략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노린 멤버는 선우 형이었다. 놀릴 때 반응도 재미있고 은근 잘 속는 형이기 때문이다.

“곧 여름이라서 그런가 덥네, 형도 물 가져다줄까요?”

“뭐야, 너 내 마니또냐?”

“아, 아니요?”

“당황하는 거 보니까 맞는 거 같은데?”

“뭐야, 문승빈. 벌써 들킨 거야?”

“아니라니까요-”

“미리 말한다. 승빈아, 형은 비싼 게 좋다.”

“그건 마니또가 아니라 산타잖아요!”

호탕하게 웃는 선우 형에게 엄청 억울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웃음이 나왔다. 역시 예상한 그대로의 월척이었다. 선우 형 이외에도 이곳저곳을 찔러 보고 다녔다. 윤빈 형은 마니또냐고 묻지도 않았다. 그냥 오늘 챙김을 많이 받는 게 재밌다고 할 뿐이었다. 강도현의 반응이 제일 어이없었다.

“드디어 나를 받들어 모시기 시작했구나!”

“도현아 잠깐 귀 좀 빌려줘 봐.”

“그래!”

조용히 귓속말로 꺼지라고 했다. 그리고 예상했지만 유현이 형에게는 안 먹혔다.

“너, 내 마니또 아닌 거 이미 아니까 그만해.”

“제가 진짜 형 마니또면 어떻게 하려고요?”

“너 그렇게 티 나게 사람 챙기는 스타일 아니잖아.”

“역시… 형 눈은 못 속이겠네.”

“다른 애들이 바보라 그래.”

첫 번째로 도착한 곳은 광안리 바다였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윤슬이 아름다웠다.

“부산에 왔으니 당연히 바다부터 봐야겠죠? 자유롭게 노시면 됩니다.”

“그냥 진짜 놀면 되는 거예요?”

“네. 말했듯이 이번 여행은 여러분 포상 휴가니까요.”

신나서 모래사장을 뛰어다니는 멤버들을 보고 있자니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분명 저 중 누군가 하나는 바다에 빠져서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될 거 같은데 말이지. 아니나 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풍덩 빠지는 소리와 함께 옆에 있던 유현이 형이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마이크 끼고 들어가지 말라고 했지!”

‘그럼 그렇지…….’

함께 2년 정도 지내다 보면 이런 텔레파시가 생기는 건가?

“유현이 형, 저러다 늙겠다.”

“형, 그런 표현은 또 어디서 배운 거예요?”

“드라마에서!”

“형, 한국어 실력이 일취월장했네요-”

“일치월짱?”

“점점 더 굿 해졌다고요~”

“고마워! 안 그래도 요즘 엄마랑 전화할 때마다 한국어 너무 잘한다고 칭찬받았거든.”

멀리서 건져 나온 멤버는 박재봉과 강도현이었다. 안 봐도 비디오였다. 둘이 옥신각신하다가 같이 빠진 거겠지. 그런데 뒤에 따라 나오는 사람은 의외로 지운이 형이었다.

“형은 왜 빠졌어요?”

“같이 장난치다가…….”

“네?”

“엥?”

“죄송해요, 형.”

전날 지운이 형의 진심을 들어서인지 유현이 형도 허리에 손을 짚고 한숨을 내쉴 뿐 혼내는 말은 없었다. 나는 마니또의 본분을 다하기 위해 수건을 받아와서 건넸다. 머리까지 다 젖어서 열심히 눈치를 보면서도 상기된 얼굴이었다. 재밌는 형이라니까.

혹시 형이 무안해할까 봐 나도 눈 딱 감고 바다에 발을 담갔다. 분명 유현이 형에게 한 소리 듣겠지만 그건 그때 일이니까.

“안 그래도 더웠는데 발 담그니까 너무 좋은데요, 형?”

그런데 갑자기 유현이 형이 바다에 들어가 우리 쪽으로 물을 뿌렸다. 발만 담그고 놀 생각이었는데, 너무 예상치 못한 움직임이어서 물방울을 맞으면서도 이게 무슨 상황인지 정리가 안 됐다.

“…뭐 해요, 형?”

“뭘 보고 있어? 바다까지 왔는데 물도 안 묻히고 갈 거야?”

슬금슬금 내 뒤로 오던 박재봉이 약간 겁에 질린 목소리로 물었다.

“유, 유현이 형 맞죠?”

“나도 지금 내가 들은 게 맞는지 의심이 된다.”

“그래, 바다에 왔는데 제대로 놀아야지!”

역시나 행동대장인 선우 형이 먼저 달려들었다. 이렇게 일곱 명이 함께 막무가내인 것은 처음이었다. 항상 넷이서 노는 걸 구경하는 입장이었던 나와 유현이 형, 지운이 형이었으니까.

“마이크는 빼고 들어와!”

‘아, 바다가 문제가 아니라 마이크가 문제였구나.’

자연스럽게 4명, 3명으로 나뉘어서 물놀이가 시작됐다. 덩치가 제일 큰 윤빈 형이 같은 팀이어서 물을 거의 맞지 않았다. 설마 이 형이 내 마니또인가? 의심이 들 정도로 물을 열심히 막아 줬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하면 이렇게 쉽게 정체가 탄로 나도 되는 건가? 의심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원래 형 성격이기도 해서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형, 근데 저희 머리랑 메이크업은 어떻게 해요?”

“그걸 걱정하는 놈이 여기 들어와 있어?”

“악, 그만 뿌려요! 승빈이 형!”

한참 물놀이를 하다가 다른 곳도 가려면 체력을 비축해야 한다는 유현이 형의 말에 모두 물에서 빠져나왔다. 아직 한여름이 아닌데도 강하게 내리쬐는 햇빛에 옷과 머리가 마르고 있었다.

“너희 무슨 생각으로… 메이크업 다 지워졌네!”

“머리 다 풀린 것 봐…….”

“저희 그냥 민낯으로 다니려고요!”

“허…….”

예상대로 메이크업, 헤어 선생님에게 한 소리 들었다. 코디 누나는 물에 젖은 생쥐 꼴인 우리를 보며 해탈했다.

“그래~ 이미 다 젖은 거 말려서 입고 다녀~ 오늘 햇빛도 쨍쨍하니 금방 마르겠네~”

“하여튼 잘생긴 놈들은 간절함이 없다니까? 이것 봐, 화장 다 지웠는데 왜 청초해?”

“어리잖아-”

“못 살아, 진짜.”

옆에서 인자하게 웃던 피디님은 오히려 또래 장난기 많은 소년들의 모습이 담길 거 같다며, 민낯으로 나오는 것을 대찬성했다.

“다 좋은데 선크림, 선크림만 바르자, 우리.”

메이크업 선생님의 간곡한 부탁에 선크림까지만 바르고 바로 장소를 이동했다. 정말 절친들과 MT라도 온 기분이었다. 아직 다 마르지 않은 옷이 몸에 달라붙었지만 찝찝한 기분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 어디로 갈 생각인가요?”

“아, 저 거기 가고 싶어요!”

잔뜩 높아진 목소리에 윤빈 형에게 시선이 집중됐다. 윤빈 형이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한 건 드문 일이었으니까.

“어디요?”

“거기 있잖아. 엄청 알록달록하고 높은 마을! 더 리틀 프린스도 있고-”

“어린왕자? 아, 감천 문화 마을?”

“응! 거기 맞는 거 같아. 나 여우랑 같이 사진 찍고 싶어.”

“재밌겠다! 가는 길에 점심도 사 먹어요!”

바로 다음 장소가 정해졌다. 저마다 감천 문화 마을에서 할 일들을 제안하는 와중에 강도현만 뚱한 얼굴이었다. 놀러 가는 일에 저런 미적지근한 반응이라니.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혼자 조용히 꿍얼거리는 것을 듣고 있자니 문득 놀이동산에서 고소 공포증을 호소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높은 곳 싫은데.”

맞다, 쟤 겁쟁이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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