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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283화 (283/346)

283화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멤버들의 눈치를 살피던 지운이 형이 멋쩍게 웃었다.

“미안, 나 때문에 괜히 분위기 망친 거 아닌가 싶네…….”

“아, 아니에요!”

“절대로 아니죠!”

생각해 보면 장난기 많은 강도현, 박재봉, 선우 형도 지운이 형에게 장난을 치거나, 놀리는 일이 거의 없었다. 지운이 형이 그럴 일을 만들지 않는 것도 있었지만 뭔가 다른 멤버들처럼 대하기는 어려웠다.

“혹시 내가 어려워서 그런 건 아니지?”

“그럴 리가요! 형한테는 굳이 장난을 쳐야겠다는 생각이 안 들어서 그랬어요. 형이 장난을 잘 안 치는 성격이기도 하고…….”

“나도 열심히 장난쳐 볼게!”

“저, 저희도 열심히 까불어 볼게요!”

지운이 형과 장난기 담당 세 명은 두 손까지 불끈 쥐고 대단한 결심을 했다는 듯 선언했다. 저들은 못 들었겠지만, 뒤에 있던 스태프들 사이에서 귀엽다는 말이 오가고 있었다.

어쩐지- 왜 멤버들이 장난을 치거나 아웅다웅거릴 때 한 걸음 뒤에서 은은하게 웃고 있었지만, 어딘가 아련한 눈빛이었나 했다.

앞으로 나에게 표출하는 장난기의 절반을 가져가 지운이 형에게 베풀길 소망했다. 물론 저 셋이라면 에너지를 만들어서라도 장난을 칠 사람이지만.

“사실 누구 하나 울었으면 좋겠다- 해서 만든 코너였는데 크리드분들, 강한데요?”

피디의 말을 듣고 강도현이 나를 휙 돌아보며 다급하게 눈물연기를 요구했다. 나도 장단 좀 맞춰 줬다.

“아, 그러셨던 거예요? 잠시만요, 승빈아! 울어!”

“피디님, 5초만 주세요, 제가 한 방울 정도는 흘릴 수 있어요.”

“아니, 이렇게 웃긴 사람들인 줄 몰랐어요!”

그나마 만들어진 훈훈하고 촉촉한 분위기도 순식간에 휘발되었다. 묘하게 침울해 있던 지운이 형도 금세 웃음을 되찾았다.

“이제 슬슬 저녁 식사를 해야죠?”

“맞아, 음식들 다 식겠어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우르르 부엌으로 달려갔다. 피자와 치킨, 족발과 보쌈, 마라탕 등등 멤버들이 좋아하는 음식들이 가득했다. 앨범을 준비하고 활동하는 동안 관리를 하면서 몇 주간 입에 대지 않았던 음식을 보니 다들 눈이 반쯤 돌아가 있었다.

“너무 그리운 맛이었어.”

“잠들면 꿈에서도 피자랑 치킨이 나와서 너무 힘들었어.”

“어쩐지, 윤빈 형이 통 잠에 못 들더라고요. 속세의 맛 최고.”

그 후론 다들 묵묵히 먹는 데 집중했다. 그러다 문득 피디와 스태프들 눈치를 살폈다. 정신없이 먹는 윤빈 형과 강도현을 빼고 모두 눈이 마주쳤는데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유현이 형이 대표로 넌지시 물었다.

“저희 너무 먹기만 했죠……?”

“아, 저희 신경 쓰지 마세요! 오늘은 분량 생각하지 말고 그냥 여러분 하고 싶은 대로 보내면 되는 거라서요.”

“그래도 이렇게 오랫동안 말도 없이 음식만 먹는 게…….”

“괜찮아요. 이미 롤링 페이퍼로 분량도 충분히 뽑았고, 다른 방송도 아니고 크리데이잖아요. 최대한 여러분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는 게 목적인 콘텐츠니까 걱정하지 말고 즐기세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씁쓸하면서도 위로가 됐다. 다들 무언가를 계속 보여 줘야 한다는 압박을 은연중에 느끼고 있었다. 특히 그룹 콘텐츠에서는 멤버들끼리 말이 없거나 조금이라도 차가운 기류가 흐르면 왕따 논란, 멤버들끼리 친하지 않다, 비즈니스 사이다- 등의 오해가 생기기 때문이다. 우리의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 주지만, 결국엔 그조차도 조금씩 가공된 모습을 보여 줘야 하는 것이었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줄어드니 식사 중에도 자연스럽게 대화가 오갔다. 정말 숙소에서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하는 것 같았다. 지운이 형이 소소하게 장난을 치고 뚝딱거리며 반응하는 멤버들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게 장난친 거였어?”

“응.”

“넌 장난도 고차원으로 하냐- 재봉이나 강도현처럼 유치하게 해야지.”

그래도 동갑인 선우 형과는 금세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저녁 식사를 마치고 각자 씻은 후 다시 거실로 모였다. 한결 편해진 옷차림들이었다.

선우 형은 옷과 세면도구를 안 빌려주면 샤워 가운만 입고 이번 크리데이 전부 19금으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무시무시한 선언을 했다. 다른 멤버였다면 그래 봐라- 했겠지만 선우 형이라면……. 결국 선우 형은 내 잠옷 상의, 유현이 형의 하의, 지운이 형의 여분 칫솔, 윤빈 형의 치약, 강도현의 클렌징 폼을 빌렸다.

“그러니까 내 몸에 지금 크리드 전 멤버가 있다는 거잖아.”

“그런 걸로 뿌듯해하지 말라고요, 형.”

“그냥 놔둘걸.”

“그러니까, 샤워 가운만 입었으면 클로버들이 좋아했을 텐데-”

잔뜩 신나서 평소보다 더 텐션이 높아진 선우 형의 모습에 후회가 막심했지만, 이미 끝난 일이었다.

“할리갈리 하자!”

“좋지. 다들 손가락 조심하라구요-”

“누가 할 소리? 형 오늘 종 한 번도 못 만져 볼 줄 아세요.”

“재봉아, 이따 울지나 마라.”

오랜만에 보드게임을 하니 멤버들의 텐션이 말도 아니었다. 모두 한 승부욕 하는 사람인지라 좀처럼 게임이 끝나지 않았다. 종소리와 아까워하는 탄식 소리, 종에 손가락을 찧어서 아파하는 소리 등 왁자지껄했다. 벌써 12시가 넘어가지만, 멤버들은 쌩쌩했다. 스태프들은 주변에 관찰 카메라만 설치한 후 숙소로 돌아갔다. 알고 보니 층간 소음 등을 고려해서 위아래 층을 모두 대여했단다.

“코어 대박…….”

“여러분이 돈을 많이 벌어다 줘서 그런 거죠~ 덕분에 저희도 좋은 숙소 쓰고 좋네요.”

“푹 쉬세요!”

“내일 뵐게요!”

“네, 내일도 아침에 촬영 있으니까 너무 무리해서 놀지 마세요-”

숙소에 멤버들만 남게 되자 선우 형이 슬금슬금 부엌으로 향했다. 뭘 하려는 건가 싶은 찰나, 냉장고에서 선우 형이 꺼낸 것은 캔 맥주였다.

“뭐예요?”

“아니, 좀 전에 물 마시려고 냉장고를 여니까 이게 있지 뭐야~?”

“저희 마셔도 돼요?”

“다 성인인데 안 될 거 있나?”

“대박, 최초 공개 아니에요?”

“너무 많이 먹으면 안 되는 건 알지?”

“당연히 알죠, 유현이 형.”

“너무해, 저만 못 마시잖아요!”

아직 미성년자인 재봉의 손에는 탄산음료를 쥐여 줬다. 입술이 댓발 튀어나왔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억울하면 먼저 태어나지 그랬니, 재봉아. 나도 2년간 힘들었단다.

“그러고 보니 우리끼리 술 마시는 건 처음 아니에요?”

“멤버들끼리 마신 적이 있나?”

순간 유현이 형과 눈이 마주쳤지만, 굳이 둘이서 술을 마신 얘기는 하지 않았다.

“아유, 언제 승빈이랑 도현이가 성인이 돼서 이렇게 같이 술을 마시게 된 거냐-”

“선우 형, 그러니까 진짜 할아버지 같아요.”

“이것 봐, 우리 도현이 아직 덜 자랐는데 술을 마신다잖아-”

술이 들어가면서 다들 한 꺼풀 풀어진 분위기였다. 그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활동하면서 있었던 고민, 사소하지만 서로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맥주 캔이 쌓여 있었다.

“그래도 전 우리 팀이 진짜 좋아여- 이건 취해서 하는 말 아니고 백! 퍼센트 진심.”

“나도! 우리 팀이 제일 멋있는 거 같아. 이거도 완전 백 퍼센트, 아니 천 퍼센트 진심이야.”

“도현아, 곰이 과일을 어떻게 먹는지 알아?”

‘지운이 형 술버릇이 아재 개그구나…….’

“곰은… 과일을 찢어요.”

“땡! 정답은~ 베어 먹어!”

답을 말하고 또 먼저 거실 바닥을 뒹굴며 박장대소했다. 평소에도 저런 개그를 알고 있었다는 건데 얼마나 장난을 치고 싶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형, 민증 보여 줘 봐여. 아무리 생각해도 스물둘 아닌 거 같다니까?”

“하나 더 있어, 발이 유명한 사람을 네 글자로 뭐라고 할까?”

“발이 유명한 사람이요?”

다들 술에 취해서 혀가 꼬인 와중에도 답을 맞히겠다고 머리를 쓰는 걸 보자니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 은근히 귀엽다니까.

“정답은~ 바리스타! 발이 스타니까.”

“푸하핳하!”

아직 정신이 멀쩡한 나와 유현이 형만 저 썰렁한 개그에 웃지 못하고 있었다. 탄산음료를 마시던 박재봉은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소파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유현이 형은 조심스럽게 재봉이를 깨우고 화장실로 보냈다. 혹시 양치하다 잠드는 건 아닌가 했지만, 다행히 얌전한 걸음으로 침대로 향했다.

“유현이 형은… 왜 안 마셔요오?”

“나까지 취하면 여기 정리는 누가 해.”

“그래두 같이 마시면 조차나여-”

윤빈 형이 맥주 캔을 내밀었고, 유현이 형은 멤버들의 눈을 피할 수 없는지 한숨을 내쉬었다.

“에이, 안 마실 거면 나 줘요. 오늘 맥주 맛있네-”

유현이 형이 술에 엄청 약한 것을 알아서 일부러 맥주 캔을 낚아챘다. 나야 뭐, 한 번도 술로 져 본 적이 없을 만큼 원체 주량이 강해서 이 정도는 무리도 아니었다. 그리고 자기 주량이 소주 3병이라는 강도현의 말은 완벽한 허세로 판명 났다.

“세 병은 무슨… 얘 지금 맥주 한 캔에 소주 한 잔 먹고 뻗은 거죠?”

“세 병 맞다니까-”

“나 개그 하나만 더 해두 돼?”

“정신없네, 진짜. 안 돼요~ 늦었으니까 자세요~”

“네~”

아직도 남은 아재 개그가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다행히 자라는 말에 다른 말 없이 얌전히 침대로 걸어가는 지운이 형이다. 강도현은 거의 기어가듯 침대로 향했다. 아마도 술 먹는 장면은 10분의 1도 공개되지 못할 거 같다.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나와 유현이 형을 제외한 모두 잠이 들었다. 뒷정리를 하던 중 유현이 형이 말을 걸었다.

“아까는 고마워.”

“굳이 형이 애들 앞에서 보여 주고 싶은 모습은 아니겠다고 생각해서요. 그리고 맥주가 진짜 맛있었던 것도 있고.”

“꽤 마신 거 같던데.”

“제가 전에 말했잖아요. 저 성인 되면 술 엄청 잘 마실 거라고.”

“꼭 살아 본 거처럼 말한다?”

“에이, 그럴 리가. 그냥 하는 말이죠-”

“네가 리더를 했어도 참 잘했을 거 같아.”

“제가요?”

기분이 이상해지는 말이었다. 회귀 전에도 나는 책임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으니까. 투마월 때도 팀원들을 이끌긴 했지만 내가 리더에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장 이상적인 리더라 생각한 형에게 이런 말을 들으니 뭐라 반응해야 할지 쉽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리더는 못 바꿔요, 형. 형은 이미 우리 팀 리더가 될 운명이었어.”

그래서 이번에도 우스갯소리로 넘어가기로 했다. 유현이 형도 살짝 미소 짓더니 다시 정리에 집중했다. 알고 지낸 지 2년이 되어 가니 말하지 않아도 어떤 선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형도 더 캐묻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부러 더 묻지 않은 거겠지.

“근데 확실한 건, 네 덕분에 내가 더 좋은 리더가 되려고 노력했던 거 같아.”

“팀이 리더 혼자 이끈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형한테 도움이 많이 됐을까 궁금했는데, 됐다고 하니까 좋네요.”

“앞으로도 잘 부탁해.”

“저도요. 늦었는데 형도 얼른 자요.”

취중진담도 아닌데 이 정도로 솔직한 얘기를 한 건 또 특별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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