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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281화 (281/346)

281화

“싸가지 없는 놈들, 겨우 3주 활동시키고 활동 종료라니.”

문스트럭은 A와 팬 사인회 대기를 하며 아쉬움을 토했다. 이전 활동은 못해도 4주 정도 활동을 했는데 이번 활동은 3주로 끝이 났다. 벌써 마지막 팬 사인회라는 것에 강한 분노가 밀려왔다. 하필이면 이번 활동은 팬 사인회 일정마다 스케줄이 생겨서 마지막 회차가 되고 나서야 겨우 올 수 있어서 더 아쉬웠다.

“오늘 도현이 얼굴 보자마자 울면 어쩌지?”

“영상으로 찍어 줄까?”

“됐거든? 자체 흑역사 제작도 아니고.”

A는 이번 부영만 사건을 계기로 다시 순덕의 길에 들어섰고, 처음으로 팬 사인회에 응모까지 했다. 역시 위기는 기회가 되고, 최애의 위기는 순덕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 틀린 말이 아니었다.

“본 투 샤인! 크리드입니다!”

“미친, 승빈이 컬러 초크 한 건가?”

역시나 모든 불평불만을 한순간에 사라지게 하는 것이 최애의 빛나는 비주얼이다. 문스트럭은 챙겨 온 선물과 편지, 장신구를 챙기고 떨리는 마음으로 순서를 기다렸다. 마침내 승빈의 앞에 앉았고, 크게 심호흡을 했다.

“혜진 누나, 안녕!”

“잠깐만 승빈아, 나 심호흡 좀 하자.”

“왜 심호흡해요? 아직도 떨려?”

“당연하지!”

“우리 엄청 자주 봤는데, 아직도 떨리면 어떡해?”

“너는 진짜…….”

저 맑은 눈을 보면 절대 노렸다는 생각을 할 수 없지만, 머리에서는 자꾸만 비상경보음이 울리고 있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사람의 심장을 이리도 뛰게 만들 수 있다니, 악마의 재능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맞다. 그리고 2월 생일 카페에서 고마웠어요.”

“너 맞았었지?”

“당연히 나인 거 눈치챈 줄 알았는데?”

“안 그래도 멀리서 너랑 비슷한 목소리가 멍메리카노 왈 하고 있는 거야- 그리고 사실 카페 들어왔을 때 딱 봐도 잘생겨 보이는 남자가 혼자 남자 아이돌 생일 카페에 들어와서 눈이 가기도 했고.”

“저 나름대로 철통 보안이라고 한 거였는데, 눈에 띌 만했네요.”

“사실 너랑 눈 마주쳤을 때 본능적으로 소리 지르려던 거 꾹 참은 거야.”

“누나 덕분에 편하게 사진 구경도 하고, 케이크도 사 갔어요. 멤버들이랑 같이 먹었어.”

자꾸만 반존대를 하는 승빈에 문스트럭은 금방이라도 녹아 버릴 것 같았다. 잘못 사용하면 이도 저도 아니게 되는데, 과하지 않는 선에서 자연스럽게 하니 극락이었다.

생일 카페는 애정으로 준비하는 게 맞지만 준비하는 과정이 굉장히 고되다. 올해로 두 번째 생일 카페를 진행했지만, 올해는 특히나 어려웠다. 승빈의 생일이 하필이면 각 그룹의 1군 멤버들의 생일이 모인 달이었기 때문에 카페 섭외부터 난항이었다. 그리고 굿즈 제작부터, 카페에 걸어 놓을 사진 셀렉과 보정, 각종 이벤트 준비까지- 준비하면서 자신이 이렇게까지 승빈을 사랑했던가? 새삼 놀라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생일 당사자가 기뻐해 주니 힘들었던 기억도 저절로 미화되었다. 내년에는 더 성대한 생일 이벤트를 해 줘야겠다는 다짐은 덤이었다.

“다음에는 어디서 이벤트 열어 줄까? 카페 아니어도 좋아.”

“음… 꽃집도 좋을 거 같아요.”

“꽃 좋아해?”

“네!”

“알았어. 누나가 전 세계 꽃 다 가지고 와 줄게.”

문스트럭은 이미 머릿속에 꽃집 생일 이벤트 구상을 시작했다. 승빈의 탄생화와 함께 좋아하는 꽃들로 화환을 만들거나, 꽃다발을 만드는 것이다.

“와… 근데 누나라면 가능할 거 같아.”

“그 정도니?”

“응.”

승빈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두 번이나 자신을 알아보고 선택한 사람이 뭔들 해내지 못할까.

“좋아하는 꽃 있어?”

“저 데이지 좋아해요!”

“알았어. 데이지로 꼭 꽃집 이벤트 해 줄게.”

“맞다. 누나, 저 궁금한 거 있어요.”

“뭔데?”

“누나는 내가 왜 좋아요?”

“왜 좋냐고?”

승빈의 질문에 문스트럭은 한동안 말이 나오지 않았다. 왜 좋아하냐는 질문에 머릿속이 하얘진 것이다. 승빈의 목소리도 좋고, 얼굴도 좋고, 춤도 좋고, 팬을 대하는 마음도 좋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통합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언젠가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어떤 답을 해 줄까 나름 고민도 해 봤는데 막상 눈앞에서 들으니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머릿속 말들을 이리저리 조합하고, 걸러 내느라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스태프가 이쪽으로 향해 걸어오는 것을 보자마자 저절로 대답이 튀어나왔다.

“너는… 내가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어.”

얼떨결에 뱉은 답이었지만 마음에 들었다. 정말 진심이었으니까. 승빈을 좋아하면서 다시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구본진 탈덕과 함께 오랜 시간 놓고 있던 카메라를 다시 잡았고, 풍족한 덕질을 위해 예전보다 더 좋은 조건의 회사에 들어가려고 노력했다.

만나면 해 줄 말을 만들기 위해 사소한 일상이지만 그 속에서 특별함을 찾으려는 노력이 이제는 습관이 되었다. 누군가는 시간과 돈을 허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문스트럭에게는 아니었다. 적어도 승빈을 만나기 이전의 삶과 비교하면 발전했고, 성장했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어지는 게 사랑 아닐까.

“대박. 내가 클로버 좋아하는 이유랑 똑같다!”

“정말?”

“나도 아직 부족한 사람이지만 클로버한테 부끄러운 모습 보이기 싫다는 생각하면 막 용기가 생겨. 내가 더 잘해야 하고, 실수하지 않도록 조심해야지 다짐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너 같은 천상계 아이돌이 무슨 그런 고민을 하냐고…….’

문스트럭은 이 순간 자신이 전생에 어떤 공덕을 쌓았길래 이런 아이돌을 최애로 잡은 것일까 감격했다. 전생의 자신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모르겠으나 온 마음 다해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졌다.

“오늘은 뭐 가져왔어요?”

“오늘은 이거!”

“요술봉이네요?”

“거기 버튼 눌러 봐 봐-”

“우와, 신기하다!”

문스트럭이 가져온 것은 버튼을 누르면 날개가 펼쳐지면서 그곳에 꽂힌 포토 카드가 보이는 요술봉이었다. 전부 현재 최고 시세를 달리는 포토 카드였다.

신난 승빈을 보면 흐뭇했지만, 포토 카드의 시세를 잘 모르는 승빈이 격렬하게 요술봉을 흔들 때마다 조금은 울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승, 승빈아, 포카 떨어트리면 안…….”

투둑.

“헉!”

포토 카드가 요술봉 밖으로 튀어나오자마자 문스트럭은 반사적으로 손을 내뻗었다. 겨우 바닥에 떨어지는 것은 면했지만 심장이 지하 암반수까지 떨어졌다가 돌아온 기분이었다.

“미안, 누나-”

하지만 눈앞에서 시세 한남더힐, 반포자이급 얼굴을 직관하니 이깟 포토 카드가 뭐가 중요하냐며 방금 전의 분노는 금세 잊어버린다.

“다음 활동은 꼭 올출 할게.”

“이렇게 가끔이라도 보러 와주는 게 중요한 거죠! 그냥, 저 오래오래 좋아해 주면 돼요, 저는.”

“응. 누나는 너 논산까지 거뜬해.”

“우와, 앞으로 10년은 확정인 거네?”

“응. 너 군대 식판 계정도 운영할 거야.”

군대 식판 계정을 운영할 거라는 말에 승빈이 엎드려 흐느끼듯이 웃었다.

“누나 덕분에 나 군대 갈 때까지 아이돌 해야겠네.”

“무슨 소리야. 군대 갔다 와서도 해야지.”

흔치 않은 문스트럭의 단호함에 한 번 더 빵 터진 승빈이었다.

“넘어가실게요~”

“아, 누나. 미안해요, 웃느라 시간 다 보낸 것 같은데…….”

“아니야, 아니야. 너 웃는 거 봐서 더 좋았어.”

마지막까지 눈이 휘어져라 웃어 보이는 승빈 덕분에 문스트럭은 일말의 아쉬움도 없이 대기석으로 돌아왔다. 팬 사인회 중간중간 비는 타이밍마다 귀신같이 카메라를 찾아내서 팬 서비스를 하는 것도 천재 아이돌다웠다.

먼저 자리에 돌아온 문스트럭은 가져온 다른 카메라로 A를 녹화했다. 아니나 다를까 강도현 앞에 앉자마자 이산가족 상봉처럼 눈물이 터지는 A였다. 평소 눈물을 흘리는 걸 본 적이 없어서 문스트럭에게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오히려 강도현이 박장대소하며 휴지를 건넸고, A 역시 울음이 점점 웃음으로 바뀌었다. 나중에 무슨 대화를 했냐고 물으니 A는 코맹맹이 목소리로 답했다.

“자기가 어디 가서 실력으로 꿀린 적이 있었냐고, 그런 걸로 속상해하지 말래. 너무 뻔뻔하지 않아? 근데 X나 잘난 놈이어서 더 좋은 거 있지?”

“숨 좀 쉬면서 말해-”

“앞으로 도현이 걱정은 안 하려고. 저런 강철 멘탈 아기 걱정하다가 내가 정병 먹는 건 너무 억울하잖아? 그렇지만, 도현이 괴롭히는 놈들은 내가 다 죽일 거야.”

“지킬 앤 하이드야, 뭐야?”

“그리고 멤버들이 옆에서 멘탈 관리 잘해 줬나 봐. 승빈이가 칭찬도 해 줬다는데? 오그라들어서 둘 다 못 버텼다고 했지만.”

“쟤네 사이 안 좋았던 거 진심 전생 같음.”

앙숙이었던 둘이 이제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됐다니, 문스트럭은 청춘 만화도 이렇게 스토리 진행하면 클리셰 범벅이라고 욕먹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작 승빈과 도현은 지금 이 순간에도 쉬지 않고 투닥거리고 있었지만.

* * *

“아, 강도현 애교하는 거 봤어…….”

“야, 나도 너 저기 카메라 보고 볼콕 하는 거 다 봤거든?”

“오늘 점심 먹었던 거 올라올 거 같음.”

“진짜 토해 버릴 수 있으니까 조용히 해라.”

가운데에서 유치한 말싸움을 듣던 유현이 형이 참지 못하고 경고했다.

“조용히 해, 이것들이 복화술만 늘어 가지고…….”

“그러는 형도 지금 복화술 하고 있잖아요.”

녹화를 할 때 입 모양이나 표정으로도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에 저절로 복화술 능력을 터득했다. 이제는 자유자재로 복화술을 구사할 수 있어서 노래도 부를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팬들의 카메라에는 그저 해맑게 웃는 얼굴로 남을 것이다. 유현이 형 역시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웃으면서 한 말이었으니까.

“우리 이거 나중에 개인기로 써먹을까요?”

“다 하는 건데 개인기라고 할 수 있나?”

“노래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을걸요?”

‘이 와중에 개인기 생각하는 거 보면, 다들 진짜 아이돌 다 됐네…….’

그렇게 마지막 팬사 스케줄을 마치고 다음 스케줄을 향해 이동했다. 의상만 겨우 갈아입고 출발해야 한다는 급박한 외침에 멤버들은 영문을 모른 채 차로 달려갔다. 기진맥진한 상태로 모두 널브러지던 때, 구석에서 카메라를 발견했다.

“뭐야?”

“크리데이 찍나?”

“크리데이 때는 항상 캠코더 주셨잖아. 우리보고 직접 찍으라고.”

“형, 이거 뭐예요?”

“아~ 이번 인터뷰에서 너희들 일상적인 모습도 보고 싶다고 따로 요청했대.”

“뭔가 수상한데?”

“형 못 믿어? 애들이 속고만 살았네.”

“그야…….”

“전적이 화려하니까요.”

매니저 형의 필사적인 해명에도 멤버들은 의심을 멈추지 않았다.

“이러고 어디 또 잡혀가겠죠~”

“미국도 잡혀 갔다 왔는데 더 놀랄 일이 어디 있겠어?”

“이번엔 어디로 데려가시려나~”

“요즘 유럽 여행이 그렇게 재밌어 보이더라-”

이미 머릿속으로는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하지만 지운이 형의 말에 모두 당황했다.

“그렇다기엔… 숙소 가는 길인데?”

“엥?”

“저기 가게, 우리 숙소 근처에 있는 가게잖아.”

지운이 형의 말대로 차는 숙소 근처로 향하고 있었다.

“근데 인터뷰 스케줄이라며, 왜 숙소 근처로 가는 거지?”

“그러게? 형, 잘못 가고 있는 거 아니에요?”

“아, 숙소에서 챙겨야 할 게 있어서 가는 거야.”

미심쩍었지만 일단 숙소에 도착했다. 차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반대편 차량에서 스태프들이 우르르 내리더니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모두 놀라서 흠칫했고, 유현이 형과 나, 윤빈 형은 누가 먼저 말할 것도 없이 멤버들 앞에 섰다. 그런데 뜻밖에도 스태프들이 내민 것은 에코 백이었다.

“안녕하세요, 크리드 여러분! 지금부터 7분의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여기 가방 속에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만 가지고 나와 주세요!”

“네?”

모두 상황 파악이 안 되어 놀란 토끼눈인 와중에도 스태프는 꿋꿋이 에코 백을 나눠 줬다. 영문을 모른 채 에코백을 받은 멤버들은 느닷없는 카운트다운에 일단 숙소로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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