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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279화 (279/346)

279화

도화선에 불을 지핀 건 부영만의 엔스타그램 스토리였다. 저격한 게 강도현이 맞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설마 세상에 VM 출신에 팔로워님들한테 표구걸하고 눈부셔 부르는 아이돌 프로그램 나와서 래퍼포지션 하고 있는 게 그분 뿐이겠어요?ㅋㅋㅋ]

[부영만 엔스스 미쳤넼ㅋㅋㅋㅋ]

-저건 완전 인정한거 아님?

-근데 강도현이 누구임?

└크리드라고 아이돌인데 거기 랩하는 애인가봄

└아이돌 대필래퍼 따위랑 영맨은 비교가 안되지ㅋ

-아이돌래퍼 참교육하는 게 진짜 힙합이지

“그놈의 진짜 힙합…….”

일에 파묻혀 잠시 휴덕기에 들었던 A는 다시 머리채 잡혀 강도현 순덕이 되고 말았다. 컴백 떡밥 주워 먹을 시간도 없었고, 애정이 식었다고 생각했건만 아니었다. 같잖은 이유로 까이는 걸 보고 있자니 전투력이 상승하는 감각은 투마월 이후 오랜만이었다.

게다가 실력이나 아이돌이라는 부분을 가지고 디스한 거라면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지만, 마치 강도현이 부영만을 조롱한 듯한 말이 들어 있어서 연습생 시절 괴롭힘 논란까지 나오고 있었다.

일이 이렇게 되어 버리니 코어 엔터테인먼트는 발 빠르게 입장문을 내놓았다. 부영만이 쓴 가사 속 내용은 강도현과는 일절 관련이 없으며, 무분별한 비난과 조롱은 선처 없이 법적 대응을 할 것이라는 경고였다. 하지만 대중과 흥미로운 가십거리에 즐거워하던 어그로를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공식 입장을 냈으니 반쯤 인정하고 영맨과 합의를 본 거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으니 그야말로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ㅋㅋㅋㅋ영맨은 코어랑 연락한 적 없대]

-코어 혼자 북치고 장구친거넼ㅋㅋㅋ

-랩도 못하는데 인성도 글러먹었다는거네 영맨형 고생많았을 듯…

“아오, 이 힙찔이 X끼들.”

어쩌다 저런 생기다 만 놈이 선망의 대상이 된 걸까. 거의 뭐 영맨에게 자아를 의탁한 수준이었다. 화가 부글부글 끓어 올랐지만, A가 할 수 있는 건 악플을 신고하거나 분노의 키보드 배틀을 하는 게 전부였다.

그래도 다행히 당시 VM 연습생 생활을 같이했던 연습생의 증언이 올라왔다.

[처음에는 관심 얻으려고 어그로 끄는 거겠거니 생각해서 먹금하고 있었는데, 갈수록 여론이 이상하게 흘러가서 글 씁니다. 저는 도현이와 2년 정도 같이 연습생 생활을 했습니다. 연습생 당시 사진으로 인증합니다.

(사진)

부영만은 자기 음악 하겠다고 연습도 소홀히 하고 회사와 상의도 없이 타투까지 했습니다. 미성년자였는데도 말이죠. 어느 소속사가 데뷔도 안 한 연습생이 저러는 걸 보고 있겠습니까? 그리고 가사에서 도현이가 괴롭혔다는 듯이 말하던데, 저 말 도현이가 아니라 당시 VM이사가 한 말입니다. 어떻게 아냐면 부영만이 짤린 날 저도 짤렸거든요. (저는 나이랑 팀 이미지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퇴출당했습니다. 인성과 연관 지어서 오해하는 사람이 있을 거 같아 덧붙입니다.) 그때 이사 앞에서 리얼힙합 하는 모습 보면 후회하실 거고 어차피 아이돌 음악 할 생각 없다고 자리 박차고 나갔던 놈이 이제 와서 저런 가사를 쓰다니요. 맹세컨대 도현이가 연습생 누구도 함부로 대한 적 없습니다. 이슈도 좋지만 이런 식으로 쌓은 인기는 언젠가 거품이 빠질 거다 영만아. 아이돌만 바라보고 열심히 노력하던 애 앞길 막지 마라.]

-이거 완전 또라이 아니냐?

-ㅅㅂ 도현이가 저럴 애가 아니지

-근데 강도현이 대필하는 아이돌 래퍼인건 사실이잖아

└이런 애들은 뭐가 문제냐?

└돌고래가 과외선생님 해줘야 할 듯

[사실 강도현이 영맨을 괴롭혔다는건 관심없었음ㅋㅋㅋㅋ]

-ㅇㅇ그냥 아이돌이 힙합한다고 나대는게 꼴받는거였음ㅋㅋㅋ

-근데 아이돌치콘 나쁘지 않은거같던데

└알못이 나대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결국엔 아이돌치고인거지 직접 가사도 안 쓰는 놈이 무슨 래퍼냐?

“X친놈들이 얘네 자체적으로 랩 메이킹 하는 거 진짜 모르나 보네.”

확실하게 느껴졌다. 이 새끼들은 진실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A가 답답한 마음에 크리드는 직접 랩 메이킹을 한다는 댓글을 달았지만, 돌아오는 건 비난과 쉴드충이냐는 조롱이었다.

“부영만을 한 번에 보내 버릴 한 방이 필요한데…….”

* * *

연습생 동기 지수 형의 도움으로 일단 강도현이 부영만을 조롱하거나, 괴롭혔다는 오명은 벗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어그로들의 관심사는 강도현의 실력에 대한 조롱이었다.

“아예 랩을 전혀 못하는 놈이었으면 덜했을 텐데…….”

“그래도 3년 사이에 연습 많이 했나 봐, 그때 생각하면 엄청 늘긴 했네.”

“영어도 되게 잘하네?”

“네? 그럴 리가요. 부영만 걔 영맨을 영만으로 읽던 애였는데-”

“맞아요. 걔, 연어보고 자신 있게 튜나라고 하던 애인데.”

“아니? 뒤에 보면 문법이랑 표현이 다 네이티브가 쓰는 건데?”

“네?”

윤빈 형의 말을 듣고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부영만이 이런 가사를 쓴다고? 한글 가사는 그렇다 쳐도 이 뒤는 전부 영어 가사였다. 윤빈 형의 말대로 틀린 문법이나 표현이 없었다.

강도현과 눈이 마주쳤다. 녀석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가 있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백 퍼센트지?”

“당연하지.”

대필이 분명했다.

* * *

일단 공식 입장을 낸 후부터는 추가적인 제스처를 취하지 않았다. 연습생 동기의 옹호 글도 있었고, 아이돌 래퍼의 실력을 의심하고 조롱하는 여론은 반응을 할수록 더 타오르기 마련이었다.

우리 쪽이 잠잠해지자 부영만은 엔스타로 날뛰기 시작했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하나도 없는 놈이었다.

[그런 애기 많이 들어요^^]

[Hofe you love my musik!]

평소에는 엔스타그램에 게시글도 잘 올리지 않고, 스토리도 조용하던 놈이 이번 일로 대중의 관심을 받으니 하루가 멀다 하고 엔스타그램 스토리를 올렸다. 덕분에 그의 처참한 맞춤법과 영어 수준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장난으로 받아들이던 사람들도 반복되는 실수에 점점 그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가장 인기 있는 아이돌 그룹을 저격한 만큼 영맨의 SNS를 예의 주시 하는 사람들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었다.

[email protected]_loveclub 오빠 애기 아니고 얘기ㅠㅠㅠ그래도 사랑해요

└@forever_youngman 응 좋은 애기 고마워^^

└@youngman_loveclub 얘기…

[email protected] 근데 영맨 저 맞춤법 수준으로 랩가사는 어떻게 쓴거임? ㅈㄴ초등학생도 안 틀리겠음

└@forever_youngman 난 랩 가사 쓸때만 제정신이라서z

└@jolla_jjijil 영맨이 형 폼 미쳤다

올리는 게시글마다 지적이 들어오니 짜증이 난 것인지 이런 글을 올리기도 했다.

[애기, 얘기가 뭐가 중요한가요? 어차피 내 진실된 애기를 들어줄 사람도 없을 텐데 내가 이런 맞춤법까지 신경 쓰고 살아야 하나?]

“어휴, 영만아. 애기가 아니고 얘기…….”

처음에는 경계하기 위한 목적으로 엔스타그램을 확인했는데, 이제는 안타깝기까지 했다. 저 처참한 맞춤법 어쩔 거야.

그러던 중 드디어 부영만이 기름칠해 둔 불판 위로 대중이 작은 불씨를 떨어트렸다.

[영맨 대필같은데?]

ㅈㄴ저 답도 없는 맞춤법이랑 영어 실력으로 지금까지 냈던 고차원적인 가사를 쓸 수 있을 리가 없잖앜ㅋㅋㅋㅋ 랩할때만 뇌를 갈아끼우는 것도 아니고. 뭐 말이나 글 둘 중 하나는 잘하는 줄 알았는데 얘 인터뷰 봤냐? 단어 선택 진짜… 유치원생들도 적재적소에 맞는 단어 넣어서 말 잘하는데 얘는 단어 쓰임새가 뭔지도 모르고 쓰는 거 같음.

-우리 영맨이는 랩메이킹할때만 제정신이라고

-맞춤법 검사기도 있고 번역기도 있는데 뭐가 문제임ㅇㅇ

└애초에 쟤 뇌에서 나올 문장이나 단어가 아니라는건데 뭔소리임

-좀 봐줘 영맨이 귀엽잖아

-근데 솔직히 어디 내놓기 부끄럽긴 함ㅠㅠ 맞춤법 교정해주면 기싸움이나 하고ㅠㅠㅠㅠ진짜 좋아했는데 지난번에 맞춤법 틀린 거 말해주니까 꼽주더라ㅎ…

반응은 다양하게 갈렸다. 처음에는 당연히 그를 옹호하는 반응이 대세였다. 하지만 점점 대중이 주는 관심의 맛을 알아 버린 부영만이 무리수를 던지면서 의심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ㅇㅇ맞춤법 거지같은것도 문제인데 무엇보다 영맨이 저런 생각을 하고 가사를 쓴다? 솔직히 의심됨ㅋ

-대필 폭로로 떡상했는데 지가 대필한게 되는거잖앜ㅋㅋㅋㅋㅋ

-영맨이 대필좌됐네

[근데 이거 나만의 생각일 수 있는데]

이 사람이랑 영맨 가사 스타일이 엄청 비슷함 (사운드클라우드 링크)

-저 듣보는 누구임?

└글루미라는 애인데 아직 앨범 내거나 하진 않은 듯?

-쟤가 영맨 따라한거겠짘ㅋㅋㅋㅋㅋㅋ

-그렇다고 하기엔 영맨 나오기 훨씬 전 노래들 봐도 가사 스타일 비슷함

-표현 몇 개 겹친다고 억까하네;;

점차 여론이 나빠지는 걸 부영만도 느꼈는지, 갑자기 엔스타그램에 맞춤법이 정확한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방법도 한순간이었다. 동료 래퍼가 자신의 스토리에 부영만과 나눈 대화를 공개했는데 여전히 답도 없는 맞춤법과 문장 구사력이었기 때문이다.

[친한 사람들과 있을 땐 편해져서 그런 겁니다. 가사 쓸 때는 안 진지한 적 없습니다. 겨우 맞춤법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지 마세요.]

-응원합니다 형님!

-영맨이 대필 아니라잖냐

-youngman we love you♥

부영만의 글에 헛웃음이 나왔다. 쟤 말대로라면 이 세상에서 부영만과 안 친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얼마나 편하면 매번 그렇게 틀릴까. 이 정도 회복된 여론으로는 부족했는지 라이브 방송까지 하는 걸 보고 헛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하… 내가 이런 일로 라이브까지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얘들아. 난 그냥 힙합의 힙도 모르면서 지들이 래퍼라고 나불거리는 아이돌 나부랭이들한테 하고 싶은 말 했을 뿐인데, 이렇게 똥을 줄 줄은 몰랐지! 나 이제 진짜 내 사람들만 챙길 거야. 나 믿어 주는 여기 시청자 수 몇 명이야, 삼천 명? 뭐야, 왜 이렇게 많아? 아무튼 니들은 이제 내 사람들이야. 내가 대필이라고? X나 쓸데없는 억까 하는 X끼들은 내 음악 듣든 말든 X도 상관 안 해.”

“이야…….”

저기에 들어갔다는 이유만으로 부영만을 지지하는 사람이 된다니. 당장이라도 퇴장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지금 부영만은 내 눈에 이카루스다. 점점 날개가 녹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도 못한 채 쏟아지는 관심에만 눈이 멀었으니까.

옆에서 같이 라이브를 보던 강도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쟤, 지금 일부러 더 센 척하는 거 보면 대필인 건 확실한데, 누가 써 줬는지 어떻게 찾지?”

강도현은 대필러가 누구인지에 집중했다. 하지만 나는 더 큰 그림을 그리는 중이었다. 이 사건의 판 자체를 흔드는 것이다. 지금도 부영만은 다시 자신의 편이 된 여론을 즐기고 있을 것이다. 부영만이 이 축제를 더 오래, 그리고 더 높은 곳에서 즐기길 바랐다. 그래야 떨어질 때 더 아픈 법이니까.

왜냐하면 난 대필러가 누군지 알고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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