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5화
성인이 되고 처음 하는 활동인 만큼 앨범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던 어느 날, 아침부터 지운이 형이 작은 선물 상자를 건넸다. 부엌에서는 맛있는 냄새가 가득했고, 냄비 속 보글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형들, 되게 일찍 일어났네요? 오늘 아침으로 맛있는 거 먹어요?”
“일찍 일어났네?”
“축하해, 승빈아!”
“…나? 왜요?”
분명 멍청한 얼굴이었을 것이다. 옆에서 시리얼을 먹던 유현이 형이 심드렁하게 물었다.
“요즘 바쁘긴 바빴지? 자기 생일도 까먹고.”
“벌써 그렇게 됐어요?”
메신저에 들어가 보니 내 이름 옆에 생일 케이크가 놓여 있었다.
[2월 9일, 문승빈 님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크림에 들어가 보니 팬들의 생일 축하 메시지가 한가득이었다.
-승빈아 생일 축하해♥
-오늘 하루 최고의 생일 보내길!
-승빈아 오늘도 행복해 넌 나의 처음이니까!!!
“진짜네… 고마워요, 선물까지 준비할 필요는 없는데.”
“그런 게 어디 있어- 오랜만에 활동기 안 겹치는 시기에 생일 맞았는데 제대로 축하해 줘야지.”
지운이 형의 말처럼 데뷔 이후에는 항상 활동기 혹은 서바이벌과 생일이 겹쳤었다. 에이앱을 통해 팬들과 생일을 축하할 수 있었지만, 멤버들끼리의 축하 시간이 없는 것이 내심 아쉽긴 했다.
“자, 지운이 형이 선물 사러 갈 때 같이 가서 산 거.”
그렇게 말하면서 유현이 형도 선물 봉투를 건넸다. 열어 보니 운동화였다.
“발 사이즈 270 맞지? 지금 신는 신발 연습할 때 좀 무거워 보이더라.”
“고마워요, 형. 잘 신고 다닐게요.”
핑계인 걸 안다. 연습할 때는 무대용 신발 무게를 고려해서 일부러 무거운 신발을 신고 연습한다. 예전에 스쳐 지나가듯 마음에 드는 운동화가 있는데 살지 말지 고민이라고 한 것을 들은 게 분명했다.
“으아아악!”
그때 건너편 방에서 비명 소리와 함께 네 명이 뛰쳐나왔다.
“뭐, 뭐야?”
“헉, 헉… 미역국 끓여 주기로 했는데!”
“케이크!”
“그거 때문에 소리 지르면서 달려온 거야?”
셋이서 식은땀을 흘리면서 고개를 끄덕이는데 아주 가관이었다. 윤빈 형이 미역국 끓여 주는 건 이해가 되는데 저 셋은 왜 갑자기 케이크를……?
“유현이 형- 나도 깨웠어야죠!”
“네가 어디 구석에 숨어 잤는지 찾을 수가 있어야지, 윤빈아.”
“형, 어디서 일어났어요?”
“베란다……?”
“거기서 왜 자요!?”
머쓱한 듯 머리만 긁적이는 윤빈 형이다. 그사이 선우형, 박재봉, 강도현은 냉장고에서 재료들을 가져오더니 케이크를 만들기 시작했다. 세 명은 무척 진지해 보였지만, 우리 넷은 모두 서로의 눈치만 보며 과연 저 해괴한 케이크 공장의 가동을 멈춰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형들, 이거 봐요! 제 팔에 핏줄 보이죠?”
“재봉이 내일 팔 사라지는 거 아니야?”
“휘핑기 없나?”
“있는데 굳이 손으로 하시겠대~”
주방 이곳저곳에 생크림을 휘날리는 박재봉에 유현이 형은 머리가 지끈거려 오는 듯 관자놀이를 누르고 있었다.
강도현과 선우형은 빵 시트에 잼과 시럽을 바르는데, 딱 봐도 혀가 아릴 정도로 달아 보였다. 요리에는 뜻이 없는 세 사람이 만든 케이크는 얼마나 어마 무시한 맛일까- 벌써부터 식은땀이 흐르는 기분이었다.
장장 1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생일 케이크가 완성됐다. 막판에 보다 못한 지운이 형과 유현이 형이 합류해서 아이싱과 데코레이팅을 도와줬다. 그랬으니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상상도 하기 싫다.
“완! 성!”
“승빈이 형 닮은 강아지도 그렸어요!”
“와… 귀엽다.”
‘이게 강아지였구나…….’
그림이 무엇인지 맞혀 보라고 하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었다. 아무리 봐도 유인원 같았으니까.
케이크는 예상한 대로 달았다, 그것도 엄청나게. 사실 예상보다도 더 달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당장 맹물로 입을 씻고 싶었지만, 내 앞에서 부담스러울 만치 눈을 반짝이는 멤버들을 실망시킬 수 없었다.
“맛, 맛있네.”
“성공이다!”
“거봐요, 우리 잘 만들 수 있다고 했죠? 유현이 형이 엄청 걱정했다니까?”
“형도 한번 먹어 봐요-”
내가 괜찮다고 하니 유현이 형도 의심을 조금 거두고 케이크를 한 입 먹었다. 그리고 곧장 우유를 들이켰다.
“이게 케이크야, 설탕이야?”
“오버하지 마요, 형-”
“그 정도는 아닐 거예요, 형.”
지운이 형이 시무룩해진 셋을 달래려는 듯 케이크를 한 입 베어 물었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정적이 오가는 분위기 속에 내가 우유컵을 건넸다.
“…우유 드릴까요, 형?”
“…응. 근데 내가 다른 이유가 아니고 목이 너무 말라서 달라고 한 거야. 절대 맛이 없다거나 너무 달아서 그런 게 아니고!”
형 나름대로 변명을 한 거 같지만, 이미 세 명은 기가 죽을 대로 죽어 보였다.
“제대로 확인 사살 당한 기분인데?”
“진짜 맛 이상한가 보다…….”
“내 입엔 딱 맞았는데…….”
‘그야 형은 군것질, 단것에 환장하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선우 형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둘도 케이크의 맛이 심각함을 인정했다. 결국 케이크는 선우 형의 몫이 되었다. 다행히 형의 입맛에는 잘 맞아 보였다.
“미안, 다음엔 더 잘 만들어 줄게.”
“아니에요, 만들어 준 정성이 중요한 거지.”
“어제 위튜브 보면서 열심히 준비했는데, 역시 보는 거랑 실전은 다른 거 같아.”
“선우, 너도 무리하게 먹지 말고.”
“참나, 다들 이렇게 맛있는 케이크 먹을 기회를 놓친 걸 두고두고 후회할걸요? 제가 다 먹어 버릴 거니까.”
그날 새벽 몰래 케이크를 버리려다가 적발될 뻔한 건, 나와 선우 형만의 비밀로 남기기로 했다.
* * *
“이 정도면 아무도 못 알아보겠죠?”
“응. 지나가다 만나도 그냥 지나칠 거 같아.”
생일 에이앱을 마치고 거울 앞에서 무장한 차림새를 정돈했다. 두꺼운 패딩과 추리닝 바지, 얼굴을 가리기 위해 모자와 마스크도 준비했다. 카페 운영이 끝나는 저녁 시간대쯤에 가서 인증 사진만 빠르게 찍고 나오는 것이 오늘 나의 목표다.
생일 카페는 전국에서 백여 곳이 넘는 곳에서 진행됐다. 그중에서 숙소, 회사와 가까운 순으로 세 곳만 들르기로 했다. 짹짹이에 검색해 보니 아예 생일 카페 위치와 이벤트를 정리한 표가 있었다. 카페에서만 진행하는 줄 알았는데, 와인 바, 포토 부스 그리고 음식점에서 진행되는 이벤트도 있었다. 승빈의 이름으로 유기견 보호소에 기부하는 팬들도 있었다. 나를 좋아한다는 공통점 하나만으로 선한 영향력을 주는 팬들에게 감동받았다.
“포토 부스는 숙소 바로 근처네?”
“이따 나가서 같이 찍을까요?”
“안 위험할까?”
“에이, 우리 세팅 안 하면 못 알아볼걸요? 영업 종료 시간 때쯤에 후딱 찍고 오면 될 거 같은데?”
“맞아. 생일인데 사진 하나 정도는 남겨야죠~”
“저 형들이랑 인생네컷 꼭 찍어 보고 싶었는데-”
단호한 듯해도 멤버들이 원하는 일에는 약해지는 형이다. 결국 유현이 형도 오케이 사인을 했다.
“그럼 카페 투어 끝내고 포토 부스에 사람 어느 정도 있는지 확인하고 연락할게.”
“알았어, 잘 갔다 와.”
카페로 가는 동안 심장이 두근거렸다. 작년에도 직접 가고 싶었지만 넥스트 레벨 준비 때문에 마땅한 기회가 없어서 아쉬웠거든. 카페 마감 시간 30분 전이었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꽤 있었다. 행여 정체가 들통날까 봐 모자를 푹 눌러쓰고 카페 앞에서 사진을 찍고, 이벤트 컵 홀더와 강아지 데코가 그려진 케이크를 하나 구매했다. 이벤트 뽑기도 했다. 들킬까 봐 조마조마했지만 다행히 기계적으로 이벤트 등수를 확인하고 상품을 주었다. 내가 뽑은 건 하필이면 1등, 액자였다.
“와, 승빈이 남팬이신가 봐요? 1등 축하드려요~”
나는 거의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감사 인사를 하고 후다닥 카페를 떠났다. 마지막으로 간 카페는 의도하지 않았는데, 문스트럭이 주최한 카페 이벤트였다. 위치와 이벤트 내용만 담긴 엑셀 표에서 가까운 순서로 뽑아서 어느 홈에서 주최한 건지 확인할 틈이 없었다.
그래도 앞서 두 개의 카페에서 정체가 들키지 않아서일까, 처음보다는 당당하게 카페 구경을 했다.
[바닐라 라떼 멍!]
[멍메리카노 왈!]
[아이셔! 레몬 아이승티]
“손님, 여기 룰이 하나 있는데 평범하게 주문하시면 안 되고, 꼭 메뉴 풀 네임을 불러 주셔야 합니다.”
“…네?”
이건 예상도 못한 룰이었다. 메뉴명을 붙인 곳도 이곳이 처음이었다. 결국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기어가는 목소리로 주문했다. 그나마 제일 짧은 메뉴로.
“멍메리카노요, 하나요.”
“손님? 뒤에 왈도…….”
“멍, 멍메리카노 왈…….”
겨우 주문을 마치고 카페를 구경했다. 벽면에는 문스트럭이 찍은 사진들이 붙어 있었고, 팬들의 메시지도 있었다. 그리고 다양한 연예인과 애니 캐릭터들로 된 축하 화환도 있었다. 그렇게 구경을 하다가 문스트럭과 눈을 마주쳤다. 순간 둘 다 흠칫했다.
“왜?”
다른 팬의 질문에 등골이 오싹했다. 만약 여기서 들키면 시끄러워질 것이다. 금세 내 위치가 SNS에 퍼지고, 팬들이 몰려오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문스트럭은 능숙하게 말을 돌리며 자리를 이동했다. 나중에 팬 사인회에서 만나면 고맙다고 해야지.
그렇게 마지막 카페 인증 숏까지 찍고 포토 부스로 향했다. 영업 종료 15분 전이라서 아무도 없었다. 곧장 단체 메신저 방에 지금 나오라는 메시지를 보냈고, 나름 치밀하게 세 명씩 나눠서 왔다.
“우와. 전부 형 사진이네요?”
“진짜 잘 꾸몄다!”
“프레임 엄청 귀여워.”
“전부 강아지 그림이네?”
“포토 부스 사진 찍어 본 사람?”
“헐, 형 한 번도 안 찍어 봤어요?”
“돈 주고 찍기엔 아깝다고 생각해서.”
“유현이 형, 은근 짠돌이라니까?”
“강도현, 너한테 들을 말은 아닌 거 같은데.”
“근데 일곱이 한 번에 들어가면 다들 손가락만 찍히고 끝날 거 같은데요.”
건장한 남성 일곱이 들어가기엔 한없이 비좁긴 했다.
“그럼 승빈이 고정으로 셋 셋 찍을까?”
“좋아요!”
“우린 밖에서 기다릴게.”
그렇게 나, 지운이 형, 강도현, 윤빈 형이 먼저 사진을 찍었다. 다양한 포즈와 장식품으로 사진을 찍던 중, 갑자기 세 명이 포토 부스에 밀려왔다.
“뭐, 뭐야?”
“쉿!”
알고 보니 갑자기 팬들이 들어오자 반사적으로 포토 부스 안으로 피해 온 것이다. 덕분에 사진은 아주… 스펙터클하게 찍혔다. 하필이면 제일 프레임 많은 버전으로 찍어서 아수라장으로 찍힌 사진도 고를 수밖에 없었다.
“와우…….”
“윤빈 형 얼굴 눌린 것 봐.”
“승빈이 눈 튀어나오겠어.”
“부스가 그나마 넓어서 다행이었지…….”
사진은 우스웠지만, 이것 또한 하나의 추억으로 남을 거란 생각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곧장 크림에 사진을 보내며 팬들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승빈이♥: 오늘 생일 축하해 줘서 너무 고마웠어!]
(카페 사진)
(전광판 셀카)
[승빈이♥: 사진은 다 못 찍었어도 엄청 많은 곳에서 내 생일 축하해준거 다 알고 있어 너무 감동이야]
(포토부스 사진)
[승빈이♥: 그리고 이건 우리 멤버들이랑 찍은 사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승빈이♥: 마지막 사진은 갑자기 클로버가 들어와서 다들 포토부스로 도망치다가 찍힌거얔ㅋㅋㅋㅋㅋㅋㅋ]
SNS에서는 덕계못이라며 같은 시간대에 카페에 있었던 팬들의 아쉬움 가득한 글들로 가득했다. 벌써 12시가 지났지만, 아직도 생일이 끝나지 않은 기분이었다.
진심으로 행복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