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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273화 (273/346)

273화

‘어쩌면 그날’의 감독 김성진은 유명 예술 대학 출신의 인재였다. 학부 시절부터 두각을 드러낸 그였지만, 타협하지 못하는 성격이 유일한 문제라면 문제였다. 모두가 입 모아서 얘기했다 그랬다.

“확실히 천재는 별나야 하나 봐.”

별난 사람, 그게 바로 김성진 감독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뭐가 됐건 그는 만족할 때까지 찍었다. 영화를 찍으면서도 가장 신기한 부분이었다. 분명 예산도 시간도 부족한 걸 아는데도, 김 감독은 본인이 원하는 장면이 나올 때까지 촬영을 멈추지 않았다. 다른 대부분의 장면을 한 번에 찍은 덕에 그나마 가능한 기행이었다.

기본적으로 모든 장면을 철저하게 계산해서 촬영하는 그였다. 각본가이자 감독이자 연출이었던 그는 머릿속에 촬영하는 모든 신의 구도를 완벽하게 그리고 있었다. 천재는 천재였다. 그가 얘기하는 그대로 촬영이 이뤄졌다. 콘티보다도 정확한 수준이었다.

그러다 그가 한 번씩 꽂히는 장면에서는 그 모든 준비 과정을 뒤엎고 촬영을 이어 갔다.

‘진짜 힘들어 죽는 줄 알았지.’

과연 내가 그만큼 간절하지 않았다면 그 모든 과정을 소화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 봐도 쉽게 답이 나오지는 않을 정도였다.

“김성진 감독? 예종 출신 말하는 거지?”

“어? 감독님도 아세요?”

“어, 별난 놈 하나 있다고 유명했어.”

“유명한 분이셨구나-”

“뭐 유명한 건 맞는데……. 너는 걔를 어떻게 알았어?”

정 감독의 표정이 사뭇 미묘해졌다. 역시 지금도 그 성격은 여전하신가 보네.

“저희 누나가 사진작가인 건 아시죠?”

“알지, 너보다 유명했다며-”

“이제는 그래도 제가 좀 이기지 않았을까요?”

“내 덕분에?”

“어휴. 감독님, 원래 이런 분이셨어요?”

“뭐가 어때서-”

“제가 몰라뵀네요, 무서운 분인 줄만 알았더니.”

“천연덕스럽기는- 너 원래도 나 안 무서워했잖아.”

정 감독의 눈빛이 사뭇 예리해졌다.

“에이- 아무튼 그래서 누나 통해서 작품 본 적 있었어요.”

“김 감독 작품을?”

“네. 과제로 내셨던 작품이었던 거 같은데, 보고 좀 인상적이었거든요.”

반쯤은 구라다. 물론 문해빈 쪽이 구라고, 김 감독 과제를 본 게 진실. 그것도 어쩌면 그날에 캐스팅된 이후에 본 거였지만 말이다. 내가 살다 살다 문해빈을 팔아먹는 날이 오다니.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나의 존재에 감사했다.

“어쩐지, 네가 그냥 연기를 잘하는 게 아니었네.”

역시나 별다른 의심 없이 넘어갔다. 왜인지 기특하다는 정 감독의 표정에 양심이 찔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분명 감독님과도 잘 어울릴 거였으니까. 실제로 회귀 전 미래에서는 둘이 둘도 없는 절친이 되었다. 나이를 뛰어넘는 우정이었지.

“이번에 독립 영화 하나 준비하시는 거 같던데-”

“독립 영화?”

정 감독이 흥미로워할 만한 주제였다. 드라마계의 미다스 손이라 불리는 그였지만, 슬슬 영화판으로 그 지변을 넓히려고 하는 시기였다.

“네. 저도 자세히는 모르는데 감독님은 아는 분이 많으니까-”

“워낙 특이하다 들어서 그 친구랑 아는 사람이 있으려나?”

“어떤 작품일지 기대되기도 하고 궁금해서 말해 봤어요.”

마지막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냈다. 순수하게 작품에 대한 궁금증으로 말한 거라는, 내 인생 연기 수준의 연기력이었다.

“네가 그렇게 말할 정도면 나도 궁금하긴 하네.”

오케이, 이 정도면 충분했다. 정 감독의 가장 큰 장점이 바로 호기심이었다.

“뭐, 그건 그렇고. 감독님, 진짜 다시 한번 감사해요.”

“갑자기 뭐가?”

“전 파아란이 정말 좋았거든요.”

“…….”

“이런 멋진 작품의 일부가 될 수 있어서 진짜 행복했어요.”

이것만큼은 온전한 진심이었다. 언젠가 다시 연기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파아란이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완벽한 타이밍과 운, 사람과 기회 그 모든 게 어우러져 만들어진 기적이었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았기에 더 감사했다.

사실 김 감독 얘기를 한 것도 어쩌면 내 욕심이었다. 지금 나는 다시 ‘어쩌면 그날’을 찍지는 못할 거다. 크리드 문승빈이 참여하기에는 어려운 작품이었으니까. 그래서 적어도 그 좋은 작품이 세상에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정 감독님께 얘기를 꺼낸 거였다. 회귀 전에도 마땅한 주연을 찾지 못하면 거의 무산될 뻔한 작품이었으니까.

회귀하고 벌써 2년이 되어 가고 있었다. 많은 것을 얻었다면, 자연스레 포기할 것도 여럿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포기해야 할 게 뭔지 어느 정도는 알게 되었다.

* * *

12월 31일 마지막 연말 콜라보 무대는 곧 스무 살이 될 아이돌들의 스페셜 무대였다. 남자 팀, 여자 팀 각각 한 팀씩 준비하였는데 우리 팀에서는 나와 강도현이 참여했다. 연습 첫날에는 어색함이 가득했지만, 동갑이다 보니 금세 친해졌다. 다행인 것은 포커스에 열아홉 살이 없다는 것이었다. 하이드 멤버도 있었는데 유현재의 영향 때문인지 넥스트 레벨처럼 경계심을 가지고 나를 대하지는 않았다.

우리가 준비한 곡은 ‘Young & 20’다. 제목에 숫자가 들어가는 곡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곡이다. 스무 살이 되면 이 노래를 프로필 뮤직으로 설정하는 것이 매년 유행처럼 이뤄지고 있다. 스무 살이 된 사람들의 단골 새해 첫 곡이기도 해서 선곡한 것도 있었다.

스무 살의 패기를 보여 주자는 팀원들의 의견을 종합했다. 모두 섹시 콘셉을 제안했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성인이 되었다고 무리하게 섹시 콘셉을 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성인이 됐을지언정 팬들의 눈에는 아직 미자 딱지 뗀 지 하루 된 애들 아니겠는가. 그럴 바엔 서투른 모습 그대로를 보여 주는 게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래서 박력 있지만 치기 어린 스무 살을 테마로 설정했다. 스무 살이고 다 컸다고 생각하지만 제3자가 보기에는 아직 어린 스무 살 그 자체를 보여 주고 싶었다 설득하는 데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들 넥스트 레벨 때 나의 기획력을 높게 평가해 줘서 큰 트러블 없이 편곡 방향을 설정할 수 있었다.

스무 살이 된 변화를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다가 의상을 바꾸는 의견을 제안했다. 1절은 교복을 입고, 2절부터는 안에 있는 교복은 그대로 두고 재킷을 라이더 재킷이나 찢어진 청 재킷으로 바꾸는 것이다. 겉으로는 어른스러워 보이지만, 속은 아직 어린아이의 모습이 남아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곧 스무 살이 될 각 그룹의 토끼띠 에이스들로 구성된 콜라보 팀, 투애니레빗를 인터뷰해 보겠습니다. 어떤 무대를 준비했나요?”

“스무 살의 치기 어린 패기를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주목해야 할 포인트가 있다면?”

“중간에 의상 체인지?”

“그리고 곧 스무 살이 될 저희의 케미도 큰 관전 포인트가 될 거 같습니다!”

“빨리 만나고 싶어서 못 참겠는데요? 그럼 바로 보도록 하겠습니다. 투애니레빗의 무대입니다!”

“와아아아!”

[I’m young & 20

두려울 게 없을 나이야

새로운 일들이 매일

서프라이즈처럼 내 눈앞에]

가사 자체도 스무 살이지만 아직 어린 티를 벗지 못한 스무 살의 귀여움이 담겨 있다.

[밤새도록 놀아 볼 거야

이제 누구도 날 막지 못해

Cause I’m young & 20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대]

통통 튀는 멜로디 덕분에 무대를 하면서 점점 텐션이 올라갔다. 2절이 시작되고 교복 재킷을 벗어 던지고 옷을 체인지했다. 재킷을 던지기 무섭게 팬들의 함성 소리가 현장을 가득 채웠다.

“으아아아아악!”

“X친 거 아니야?”

언뜻언뜻 보이는 교복 셔츠와 넥타이 덕분에 처음 의도했던 감성을 완성할 수 있었다.

[하루 만에 바뀐 내 앞자리

내 손에 쥐어진 무한한 자유

하고 싶은 건 다 해낼 거야

갖고 싶은 건 다 가질 거야

Cause I’m young & 20!]

중간에 댄스 브레이크는 강도현과 공들여 준비했다. 아무래도 춤 담당이 아니었기 때문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더 죽기 살기로 연습했다. 과정은 힘들었지만, 강도현의 동작과 딱딱 맞아갈 때의 쾌감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거침없이 달려가

I love myself

Cause I’m One & Only

걱정은 No Thanks

안 된다는 의심 따윈

저 바람에 가볍게 흘려보내

Cause I’m young & 20]

다 같이 학생증을 날리며 브이 포즈로 무대를 마쳤다. 각자 개인 직캠이 있을 예정이었기에 무대는 끝났어도 끝까지 집중을 잃지 않았다.

“수고 많았어!”

“무대 준비하는 동안 많이 친해졌는데 뭔가 아쉽네.”

“앞으로도 자주 연락하고 지내면 되지!”

무대를 마치고 다들 만족스러우면서도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생각보다 합이 좋긴 좋았다. 데뷔하고 동갑인 연예인 친구는 강도현 빼고 처음이라 더 의미 있는 무대이기도 했다.

우리 무대를 끝으로 이제 본격적인 새해 카운트다운을 세는 순서가 왔다.

“이제 곧 성인이 되는 아이돌 멤버분들 인터뷰 나눠 보겠습니다. 먼저 크리드의 승빈, 도현 씨?”

“네!”

“이제 5분 뒤에 스무 살이 되는데 기분이 어때요?”

강도현은 잠시 고민하다가 힘차게 답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멋진 스무 살이 될 생각에 기대되는데요?”

강도현의 거침없는 답변에 MC들도 당황한 눈치였다. 하지만 강도현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질문을 듣자마자 생각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저는…….”

나에게는 두 번 주어진 스무 살이다. 회귀 전 스무 살의 나는 텔레비전으로 연말 무대를 보고 있었다. 아직 ‘어쩌면 그날’로 인기를 얻기 전이었고, 티벡스는 앨범을 낼수록 하락세를 걷고 있었다. 아니, 고꾸라지고 있었다고 해야겠지.

그때의 나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스무 살이라고 생각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연습생 동기들은 연말 시상식에서 다가오는 스무 살에 희망 가득한 미래를 말하고 있었으니까. 성인이 되면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기대감에 신나 하던 이들과 달리, 나에게 성인이 되는 것은 또 다른 짐이 생기는 것과 같았다. 더 이상 어리다는 핑계를 댈 수 없으니까. 정말로 이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하는 건가 스스로 정한 마지노선에 발을 걸치게 되니 걱정이 앞섰다.

‘어쩌면 그날’을 만나고 내 스무 살은 위로받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돌로서는 사형 선고를 내린 한 해이기도 하다. 나는 이 숫자를 사랑하면서, 동시에 미워했다. 그래서 질문에 대한 답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나에게는 너무나도 무거운 말이니까. 그래도 마음속으로 거르고 걸러 답했다.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으로 가득 채우고 싶습니다.”

뒤이어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다들 그룹별로 모여 있었다. 우리도 다 같이 어깨동무하고, 새해에 대한 기대감으로 발을 굴렀다. 멤버들 모두 상기된 얼굴이었다. 지금 난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새삼 궁금해졌다.

“올 한 해도 너무 수고 많았고!”

“내년에도 잘 부탁해!”

“3, 2, 1!”

“해피 뉴 이어!”

하늘이 준 두 번째 기회, 최고의 스무 살로 살아 볼 것이다. 후회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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