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268화 (268/346)

268화

[**1030 인천공항 출국

잘 갔다 와… (눈물 이모티콘)

(사진)

#승빈 #크리드 #문승빈]

“이런 X발…….”

정연은 공항 사진이 뜨자마자 드디어 올 게 왔다는 심정이었다. 예고된 해외 투어였지만 막상 정말 같은 하늘 아래 있을 수 없다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게다가 시차도 많이 안 나는 일본이나 중국도 아니고, 바로 미국으로 떠나 버려서 몇 주 동안은 전혀 다른 시간으로 살아야 한다. 시차를 이겨 낸 덕질을 할 생각에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 왔다. 그런 정연의 마음이 통했을까, 크림 알림이 떴다.

[승빈이♡: 잘 갔다올게!]

(사진)

(사진)

[승빈이♡: 아침이라 조금 부었네ㅎㅎ]

기내 셀카와 함께 귀여운 멘트까지 보내는데 방금 전 수심 가득한 얼굴은 어디 가고 함박웃음이 지어졌다.

“뭐가 부었어!”

승빈은 부었다고 했지만, 갈수록 젖살이 빠져서 아쉬워하는 팬들에게는 귀한 사진이었다.

[승빈이♡: 비행기에서는 크림 못하지?]

[승빈이♡: 비행기 모드 해야하자나]

[승빈이♡: 더 있다가 가고 싶은데ㅠㅠ]

“기다려라, 승빈아.”

짹짹이에 들어가 보니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비행기 내에서도 크림을 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고 있었다.

[타돌 중에 기내에서 크림 한 놈 없냐?]

-그 정도로 열정적으로 크림하는 놈이 있냐고 묻는 게 먼저 아니냐?

-우리 강아지가 더 있고 싶다잖아ㅠㅠㅠㅠ @Cream_official

-와이파이없이도 보낼수있게해야할거아니냐고ㅡㅡ

[승빈이♡: 이제 가야할거같아ㅠ 도착하면 연락할게!]

[승빈이♡: 사진 왕창 보내고 가야겠다]

[승빈이♡: 심심할때마다 하나씩 꺼내보기!ㅎㅎ]

“너는 진짜 내 인생에 둘도 없을 효자야 진짜…….”

정연은 눈물을 머금으며 답장을 보냈다.

-잘 갔다와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보고싶을거야ㅠㅠㅠㅠ

“한 발은 남겨야지.”

도착하면 연락할 게 분명하지만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서 메시지 기회 하나는 남겨 둔다. 짹짹이에도 벌써부터 크리드 금단 현상을 호소하는 클로버들로 가득했다.

[진심 승빈이 천재강아지임… 한 시간에 하나씩 보라고 12장 두고 갔어ㅠㅠㅠ]

-ㅠㅠㅠ일하다가 X같은때 하나씩 꺼내봐야지ㅠㅠㅠ

-승빈아 네가 내 종합비타민오쏘뮬오메가쓰리다…

-승빈이 없는 대한민국이 어떻게 대한민국이야

-이제 미국시간으로 살거임ㅇㅇ

* * *

항상 아침 점심 저녁이면 뭘 먹었는지, 멤버들과 어떤 일이 있었는지 미주알고주알 전하던 크림을 반나절 동안 못 하게 되니 심심했다. 멤버들과 수다를 떨다가도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들었다가 내리기 일쑤였다.

“너, 지금 크림 보내려고 했지.”

“너도냐?”

“소름, 형 저도 앱 들어갔다가 다시 나옴.”

크림을 시작하고 어느덧 3달 가까이 지났다. 매일 오겠다고 약속하거나, 매일 보내겠다는 원칙을 세운 건 아니지만 생각날 때마다 보내니 하루도 빼먹지 않았다. 다른 멤버들도 매일은 아니더라도 이틀에 한 번꼴로 메시지를 보내는 거 보면 크림으로 동태 논란은 걱정 안 해도 될 듯했다.

“메모장에 적어 놔야겠다, 도착하고 말해 줘야지.”

첫 해외 투어에 멤버들 모두 들떴지만, 금세 피곤함에 모두 잠이 들었다. 나 역시 잠시 눈 감았다 떴는데 미국에 도착했다는 말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비행기에 내리고 곧장 메시지를 보냈다.

[승빈이♡: 도착했다! 날씨 진짜 좋아ㅎㅎ]

[승빈이♡: 아 지금 @@이는 밤이려나? 곧 잘 시간이겠다… 잘 거면은 잘 자♡ 근데 나 메시지 보내고 싶으면 계속 보낼 거니까 알림은 꼭 끄고 자! 괜히 잠 깨우면 미안하니까]

-기다렸어ㅠㅠㅠㅠ

-응응 여긴 새벽이야

-승빈이 왔다 승놀ㄱ

-잘 사람은 자라고 하고 승빈이 오고싶을 때 왘ㅋㅋㅋㅋ

그 후로 정말 점심, 저녁 메뉴부터 관광 갔던 장소에서의 사진까지 우다다 보냈다. 중간중간 알림 때문에 잠에 깼다며 짜증 섞인 말들도 보였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굳이 알림 안 끄고 짜증을 분출하는 사람이라면 나에 대한 애정도 거의 없는 사람일 텐데 이런 사람을 신경 쓴다고 아침에 일어나서 메시지와 사진을 보며 좋아할 팬들을 아쉽게 할 필요가 없지.

‘근데 왜 돈 내고 구독을 하는 거지?’

저녁을 먹고 내일 공연이 있는 공연장에서 리허설을 했다. 생각보다 더 큰 규모의 공연장이었다. 2만 명 수용이 가능한 공연장이라는 말에 입이 떡 벌어졌다. 첫 해외 투어인데 이 정도 규모의 공연이 가능할 줄이야, 토스맨을 시작으로 해외 인기가 많아진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물론 한국에서도 이 정도 규모의 공연과 콘서트를 해 봤지만, 대부분 관객이 해외 팬일 이번 공연은 또 다른 기대와 긴장감을 주었다. 언어와 국적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똑같은 감동을 줄 수 있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티벡스 시절에는 해외 투어는 꿈도 못 꿨기 때문에 처음 겪는 일이어서 더 그랬다.

리허설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서 곧바로 에이앱을 켰다. 한국은 이른 새벽이어서 미안한 마음이 컸다. 시차가 주는 어려움이 이런 거구나- 제대로 경험했다. 30분 정도 짧게 방송을 마치고 내일 공연에서 할 영어 멘트들을 연습했다. 리허설부터 라이브 방송까지 손가락 까딱할 힘도 없었지만 졸린 눈을 비비며 영어 멘트를 연습했다. 내 멘트뿐만 아니라 영어가 약한 멤버들의 멘트도 윤빈 형과 합심해서 코칭했다.

“형, 저 까먹지 않겠죠?”

“걱정 마, 까먹으면 윤빈 형이 커버 쳐 줄 거야.”

“맞아, 재봉아. 까먹었으면 그냥 일단 아무 말이나 해. 그래도 클로버들은 안 싫어할 거야.”

“형들만 믿어요!”

“늦었는데 이제 진짜 자자. 내일 공연 컨디션 챙겨야지.”

[나는 내일 공연을 위해 이제 잔다(하품하는 이모티콘)]

[일어나서 또 연락할게ㅎㅎ]

크림 메시지까지 보내고 침대에 누웠지만, 쉽사리 잠이 들지 못했다. 정말 우리의 노래를 잘 알고, 우리를 좋아하는 해외 팬들이 공연장을 가득 채울 만큼 많을까? 그저 토스맨의 영향으로 일시적으로 우리를 좋아하는 건 아닐까? 따위의 걱정으로 머리가 복잡했다. 그래도 억지로라도 잠이 들려고 노력했다. 긴장도 되지만 기대감을 더 가지기로 마음 먹었다. 그렇게 다짐하니 부담감이 조금 줄어들었고, 서서히 잠이 들었다.

* * *

공연장에 도착하니 벌써부터 많은 팬이 줄을 서고 있었다. 간간이 국내 팬들도 보였지만 정말 90% 이상이 해외 팬이었다. 플래카드부터 슬로건, 부채까지 다양한 굿즈와 응원봉을 꾸민 팬들이 가득했다.

공연 시작 직전까지 목을 풀고, 안무를 맞췄다. 멤버들 모두 말은 안 했지만 처음 쇼케이스 했던 날처럼 긴장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유현이 형이 앞장서서 멤버들의 긴장을 풀어 주고, 단체 구호를 외치며 무대로 향했다.

팬들의 함성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심장 박동은 더욱 빨라졌다. 무대 조명이 들어오고, 마침내 팬들과 마주했다. 서투른 한국어로 적힌 스케치북 멘트와 플래카드가 눈에 먼저 들어왔다. 정말 특이한 옷이나, 코스프레를 하고 온 관객도 있었다.

“우와… 저희에게 이렇게 많은 해외 팬들이 있을 줄 몰랐어요!”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 힘들었다. 무엇보다도 서로 언어가 다른데 우리 노래를 따라 부르고, 안무를 따라 추는 팬들도 여럿 있었다. 그리고 호응과 응원법도 절대 국내 팬들에게 지지 않았다.

다행히 박재봉은 정말 악바리로 영어 멘트를 다 외워 왔다. 그래, 재봉이는 원래 저런 애였지- 한동안 잊고 지냈던 거 같다. 팬들의 환호에 재봉은 자신감이 생겼는지 윤빈 형의 조언대로 일단 아는 영어 단어를 총동원해서 멘트를 하기 시작했다. 분명 말도 안 되는 문법인데 묘하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됐다. 오히려 그게 더 귀엽기까지 했다.

그렇게 점점 콘서트 막바지로 달려갔고, 어느새 앵콜만을 남기게 되었다. 멤버들이 한 명씩 소감을 전했고, 유현이 형이 마지막 곡을 설명하던 찰나 갑자기 휘슬 소리가 들렸다. 혹시 공연장에 문제라도 생긴 거 아닌지 당황하던 중에 팬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귀를 의심했고, 상황을 인지한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해외 팬들이 한국어로 팬 송인 클로버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만난 건

그 자체만으로 행운 그리고 행복

언제나 널 사랑할게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해]

또렷한 발음은 아니었지만, 절로 눈물이 핑 돌 만큼 황홀한 순간이었다. 영어도 별로 없는 곡이어서 가사를 외우기 더 어려웠을 텐데 이렇게 완벽한 떼창이 실현될 줄이야.

언어와 문화가 다르지만, 음악과 팬심에 있어서는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노래를 따라 부르는 팬들의 얼굴에는 순도 100퍼센트의 행복만 있었다. 공연장 가득 채운 아름다운 하모니에 멤버들도 멍하니 공연장을 바라봤다. 말하지 않아도 눈빛만으로 통하는 사랑이 있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다.

[내게 네잎클로버처럼 행운을

때론 세잎클로버의 행복을

서로의 행운, 행복, 자랑인

우리가 될 거야]

“We love you, CR:ID!”

노래 끝에 힘찬 함성까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벤트였다. 전날 잠을 설치며 긴장했던 것이 모두 부질없게 느껴졌다. 콘서트를 시작하고 땡큐를 몇 번 외친 건지 기억도 안 난다.

“우와… 다들 왜 이렇게 한국어를 잘해요? 너무 놀랐어요,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그만큼 저희 노래를 많이 듣고, 사랑해 주셔서 가능한 일이었겠죠? 오늘을 잊지 못할 거 같아요. 오늘 저에게 잊지 못할 선물 주셔서 감사하고, 여러분에게도 오늘 공연이 그런 추억으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공연 전에 긴장을 많이 했어요. 근데 오늘 공연으로 조금 더 자신감 가지고 나머지 공연에 임해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여러분 덕분이에요! 정말 고맙습니다, 우리 또 만나요!”

그렇게 해외 투어의 스타트를 끊은 첫 번째 공연은 성공적으로 종료됐다.

[오늘 이벤트 너무 감동이었어ㅠㅠㅠㅠ]

[모국어도 아니라서 낯설었을 텐데 다들 한국어 너무 잘해서 놀랐어]

[오늘도 클로버들 사랑 많이 받아서 너무 힘난다ㅎㅎ]

-승빈이가 좋아하니까 나도 좋다ㅠㅠㅠㅠ

-나도 영상 봤엌ㅋㅋㅋㅋㅋ해외 클로버들 너무 귀엽더라

-나도 영상 보고 울었잖아ㅠㅠㅠㅋㅋㅋㅋㅋㅋ승빈이는 직접 들어서 더 감동이었겠다

-나 왜 한국이냐........ 배찢ㅠㅠㅠ

그리고 오늘 있었던 떼창 이벤트 영상이 인터넷상에서 소소하게 화제가 됐다.

[흔한 해외팬들의 떼창 이벤트]

-한국사람들이 외국가수 내한 공연에서 떼창하는 건 많이 봤어도 외국인들이 한국어로 떼창하는 건 처음보네;;

-한국어 발음 엄청 좋다

-다들 노래 엄청 많이 들었나봨ㅋㅋㅋㅋ묘하게 멤버들 창법이나 발음 특징이 닮아있음

-ㅈㄴ감동받았겠다…

-역시 크리드 해외에서도 인기 ㅈㄴ많구나ㅠㅠㅠ

-현장감 미쳤다

-내가 저 자리에 있었으면 뽕차서 울었을듯ㅋㅋㅋㅋ

-나 이런거에 또 감동받네…

다들 팬들의 애정 가득한 이벤트에 감동받았다는 반응이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공연을 마치고 며칠 동안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팬들이 찍은 영상은 하루에도 몇 번이고 돌려봤다. 이런 응원을 받는다면 세상 못 할 일이 없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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