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265화 (265/346)

265화

[승비니♡: 우리 내일 만나네!]

[승비니♡: 너무 떨린다… 많이 준비했으니까 기대 마니마니 해줘!]

-당연하지ㅠㅠㅠㅠㅠㅠ

-우리 강아지 보러 간다아아아

-너무 기대돼!!

-잠 안 올거같은데ㅠㅠ

[승비니♡: 푹 자야 해! 내일 엄청 달릴거니까ㅎㅎ]

[승비니♡: 잊지 못할 추억 만들어줄게 잘자고 내일 보자 우리♥]

“흐어아으아 이 효자 강아지야…….”

이전 최애의 크림을 구독하기도 했지만, 한 달에 두 번 오면 많이 오는 거였고, 그조차도 성의는 어디 내다 버리고 온 메시지뿐이었다. 그런데 크림 서비스가 시작하고 몇 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오는 승빈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사실 승빈이 매일 오지 않고 일주일에 한 번 온다고 해도 절대 서운해할 생각이 없었다. 이미 몇 주에 한 번씩 오는 아이돌들이 널리고 널렸으며 오히려 자주 오는 아이돌이 희귀했기 때문이다.

자주 오는 것뿐만 아니라 내용까지 알찼다. 평소에 승빈은 크림으로 아주 사소한 일상 얘기를 하고는 했다. 오늘 뭐 먹었는지, 멤버들과 어떤 재미있는 일이 있었는지, 연습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등… 직접 말해 주지 않는다면 평생 몰랐을 일상과 소소한 행복을 들을 때면 승빈의 하루를 함께 보내는 기분이었다.

뭔가 아이돌과 팬 사이의 벽을 허무는 듯하면서도 너무 개인적인 선은 넘지 않는 적당함을 지킬 줄 아는 것이 신기했다. 사실 이렇게 매일 오다 보면 콘텐츠가 부족해지는 게 당연했다. 그래서 그녀가 스쳐 지나간 몇 아이돌은 조바심에 갑자기 무거운 꺼내거나 지나치게 감성적인 얘기를 해서 팬들을 괴롭게 하고는 했다.

‘하긴, 크리드 멤버들의 케미를 생각하면 매일매일이 다이내믹하겠지.’

서바이벌을 통해 처음 만나게 된 조합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친해진 게 신기하기도 했다. 물론 승빈이 최애이긴 하지만, 아이돌에게 있어서 관계성만큼 중요한 게 없었으니까. 지난 모든 덕질을 다 합쳐도 이렇게 만족스럽고 평화롭던 적이 없었다. 새삼 또 벅차오르는 그녀였다.

[승빈이 진짜 크림 천재 아님?]

[매일 오는데 한번도 겹치는 주제가 없엌ㅋ큐ㅠㅠㅠ]

[이게 진짜 천재라는 거임... 지루할틈이 없어]

[이런 행복이 있는데 한달에 세 번 오던 놈 효자라고 착즙하던 과거가 너무 치욕스럽다]

그때, 잠든 줄 알았던 승빈의 메시지 알림이 떴다.

[뭐지?]

[승빈이 아직 안잤나봨ㅋㅋㅋㅋ]

[야이 ㅁㅊ]

[?]

친구의 반응에 혜진은 곧장 크림을 들어갔다. 그리고 하마터면 폰을 수직 낙하시킬 뻔했다. 오직 콘서트를 위해 구매한 새 폰이었기에 심장이 덜컥했지만, 크림 메시지를 확인했을 때만큼은 아니었다.

[승비니♡: 이건 선물!]

(사진)

(사진)

[승비니♡: 재봉이가 선물해준 안대ㅎㅎ 잘 어울리나?]

“X친, X친아…….”

강아지 귀 모양이 붙어 있는 수면 안대를 이마에 쓴 사진과 눈을 가리고 환하게 웃는 셀카를 보낸 것이다.

-으아아아ㅏ아아ㅏㅏㅏㅏ

-숨숴숨숴

-이 앙큼폭스…

-너때문에 잠 다잤다 승빈아

-미르쳤나바ㅠㅠㅠㅠㅠㅠㅠ

[승비니♡: 그리고 마지막 선물!]

“뭘 더 주겠다는 거야? 네가 아낌없이 주는 나무야?”

이젠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음성 메시지)

“음성 메시지는 처음인데?”

핸드폰을 귀에 댄 혜진은 그대로 침대 위로 다이빙했다. 치사량을 훌쩍 뛰어넘은 달달함이었다.

[잘 자고 내일 봐, 사랑해.]

그리고 옅게 들리지만 분명한 ‘쪽’ 소리였다. 5초 남짓 되는 음성 메시지를 무한 반복 하며 혜진은 밤새 잠을 설쳤다. 짹짹이에 들어가니 이미 모두 잠을 잊은 지 오래였다.

승빈럽 @sb_love

[이러고 너만 자러가냐고ㅠㅠㅠㅠ]

-ㅈㄴ앙큼해 미칭놈아ㅠㅠ

-잘자고...드르륵 탁...잘자고....드르륵탁...사랑해...드르륵탁

-승빈아.... 언제 한시간짜리 음성을 녹음한 거야.......

-오늘 잠 다잤다 미친ㅠㅠㅠㅠㅠㅠㅠ

* * *

[CR:ID 1ST CONCERT : IDEA]

공연장으로 오는 모든 길목마다 콘서트 배너로 가득했다. 크리드로 가득한 거리를 보면서 다들 감회가 남다른 듯했다. 당장이라도 밴에서 내려서 저 사이를 걸어보고 싶다는 재봉이를 말리는 게 일이었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지, 뭐.

“벌써 온 팬들도 계시네.”

“저기 봐요, 진짜 너무 귀엽다.”

“인형이랑 같이 사진 찍는 건가?”

“토끼인 거 봐서 재봉이 같은데-”

“옆에는 승빈이 형 그 인형 같아요.”

“승퍼피?”

“네, 생긴 게 딱 그거 같더라고요.”

공연이 시작하기까지는 아직 한참 남은 이른 시간임에도, 공연장 주변에는 이미 꽤 많은 팬이 모여 있었다. 배너와 함께 사진을 찍기도 하고, 챙겨온 인형이나 슬로건을 들고 인증 숏을 찍는 모습도 보였다. 가까이 갈 수는 없었지만, 보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장면이었다.

최대한 비밀스럽게 주차장을 통해 공연장으로 들어왔다. 콘서트를 위해 머리를 바꾼 멤버들이 있었기에 철통 보안이었다. 첫 콘의 묘미는 서프라이즈에 있는 거니까.

“리허설 때도 느꼈지만, 공연장 짱 커요.”

“팬 미팅보다 더 큰 곳이죠?”

“응. 여기가 5,000명 더 수용 가능한 공간.”

“대박이다…….”

“난 내가 살면서 팬 미팅 한 공연장이 가장 클 거라고 생각했어.”

“나도 나도.”

“돌출 무대 한 번 나갔다 오면 숨차겠는데?”

마지막 리허설을 하면서도 흥분이 가시지 않았다. 아무리 연예인 생활을 하고 회귀했다고 한들 단독 콘서트는 처음이니까. 배우가 되고 팬 미팅은 해 봐서 지난번 팬 미팅 때는 덜 긴장했지만 정말 우리 곡으로 2시간이 넘는 시간을 채워야 한다니- 기대와 함께 엄청난 부담감이 밀려왔다.

“와이어 장치 검사 시작하겠습니다!”

“네!”

“맞다. 지운이 형이랑 문승빈 너, 이번에 와이어 쓴다고 했지?”

“응. 우리가 제일 화려하게 등장할 거거든.”

“얼씨구? 근데 그거 해 봤냐? 엄청 아프다던데…….”

‘그냥 고통이 아니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액션 연기를 하면서 와이어 신을 찍은 적이 있었다. 찍을 때도 말 못할 고통이 있었는데, 다 찍고 나서도 고통이 꽤 갔다. 그 촬영 이후 다시는 와이어를 몸에 걸치지 않으리- 다짐했건만.

“공연할 때 돌발 상황만 안 터졌으면 좋겠어.”

“걱정하지 마요, 형. 근데 높은 곳인데 괜찮아요?”

“응. 눈 감고 있으면 참을 만해.”

약한 정도의 고소 공포증이 있는 지운이 형이지만, 이번 퍼포먼스를 위해 먼저 제안할 정도로 의욕이 가득했다.

“오~”

“하늘에서 형들이 내려와요오-”

“하늘에서 문승빈이 내려와 하! 는! 말!”

“즈응흐흐르…….”

형의 자작곡은 특이하게도 우주가 주제였다. 서로 다른 행성에서 살던 둘이 만나 새로운 세계를 마주한다는 내용이었다. 형이 좋아하던 시집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데, 정말 들을수록 형다운 노래였다.

우주에서 영감을 받은 노래였기에, 무대를 구상하자마자 바로 와이어가 떠올랐다. 그런데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형이 먼저 와이어를 제안하는 거 아닌가. 이뿐만 아니라 이번 무대를 준비하는 모든 과정이 수월함을 넘어 완벽함 그 자체였다. 형과 내가 이렇게 잘 통했나 싶을 정도로 척하면 척이었다.

[처음 보는 장면

익숙한 듯 낯선 공간]

칠흑같이 어두웠던 공연장에 별똥별 같은 한 줄기 빛이 날아오면서 리허설이 시작되었다. 무대 한가운데를 비추기 시작한 별빛이 점점 늘어나면서 형과 내가 와이어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게 포인트였다. 벌써 우리가 어딨을지 찾고 있을 클로버의 모습이 예상되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돌출 무대 양 끝에서 내린 우리 둘이 각자의 파트를 부르면서 무대 중앙으로 모였다. 계속 와이어를 찬 상태라서 마치 날아가듯 걸음을 옮겼다. 오해나 디렉터와 퍼포먼스 디렉터분과 얘기를 나누면서 영상을 고르긴 했지만, 완성본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정말 우주 한가운데에 떨어진 듯 환상적인 화면과 조명의 조화가 공연장을 다른 세상으로 만들었다. 여기에 향기까지 더해진다면 정말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남길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무중력 그 한가운데

몸을 맡긴 우리

Step 1, 2, 3]

무중력 속에서 춤을 춘다는 가사에 맞게 안무도 가벼운 스텝으로 구성했다. 특히 중간에 문워크를 넣어 무중력을 표현하는 듯한 안무가 하이라이트였다. 연습하면서도 가장 합을 많이 맞춰 봤던 부분이었기에 자신 있었다.

마지막 파트까지 리허설을 마쳤는데, 다시 어두워진 공연장 한가운데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그동안의 모든 시간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그만큼 행복했다. 아직 팬들이 없는데도 이 정도로 복받치는 감정이라니- 잠시 후 실제 공연을 하는 순간이 기대되기도 하면서 두려울 정도였다. 넘치는 감정의 파도에 몸을 주체하기 어려울 정도였으니까.

“승빈아!”

그런 나를 끌어 올린 건 또다시 지운이 형이었다. 다리에 힘이 풀린 건지 나도 모르는 새 공연장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내게 손을 내밀었다. 흐려졌던 시야가 다시 초점을 찾았고, 이 넓은 공연장에 오로지 형만 보였다.

“형, 우리 진짜 최고다.”

수많은 말이 입 안에 맴돌았지만, 그중 가장 먼저 튀어나온 말이었다. 그리고 형은 아무런 말 없이 활짝 웃었다. 그 어떤 말보다 내게는 충분한 대답이었다.

* * *

“아니, 승빈이랑 지운이 유닛 무대를 엔딩으로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제 말이요! 기죽어서 어디 무대 하겠어요?”

“그니까, 나 무슨 공연 보는 줄 알았어.”

“당연하죠, 공연이니까요.”

“아니, 공연은 맞는데 그냥 공연 말고 진짜 공연 있잖아.”

“아, 다른 무대는 가짜 공연이다?”

“박재봉 얘, 기죽었다는 거 다 거짓말이라니까?”

박재봉의 놀림에 한껏 억울해진 표정의 강도현이었다. 그새를 못 참고 또 투닥거리는 게 정말 저 둘다웠다. 첫 콘서트임에도 그 누구도 긴장하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였다.

“아무튼 진짜 대박이었어.”

“팬들 진짜 깜짝 놀랄 듯.”

그 누구보다 가장 힘이 되는 멤버들의 반응이었다.

“아니, 나는 어느 정도였냐면 승빈이랑 지운이 형이 안타까웠어.”

조용하던 윤빈 형도 입을 열었다.

“왜?”

“무대가 안타까울 정도였어요?”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이런 무대를 둘은 직접 볼 수가 없는 거잖아.”

“와-”

“진짜 극찬이다.”

예상을 뛰어넘는 말에 말문이 막혔다. 같은 팀 멤버에게 이렇게까지 표현할 수 있다니. 다시 한번 울컥하려는 감정을 애써 갈무리했다. 더 울었다가는 진짜 목이 잠길지 몰랐으니까.

“나도 객석에 앉아 콘서트를 보고 싶을 정도야.”

“형, 진짜 고마워요.”

“나야말로 고마워. 지금 당장 곡을 쓰고 싶을 정도로 엄청난 영감을 받았는걸.”

그 후로도 그렇게 훈훈한 분위기 속에 최종 리허설이 마무리됐다. 이제는 정말 콘서트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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