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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할 거면 두 번 데뷔 안 함-256화 (256/346)

256화

반짝이는 수만 개의 목소리가 팬 송인 [클로버]를 부르고 있었다. 무반주임에도 팬들의 사랑스러운 목소리가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가 사람 목소리라는 말이 이럴 때 하는 말이구나-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저마다 다른 목소리가 한데 뒤섞였다.

[어쩌면 널 만나기 위해

난 태어났는지도 몰라

세잎클로버처럼 마냥 행복을

때론 네잎클로버의 행운을]

“말도 안 돼…….”

우리가 팬분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도리어 듣게 되니 할 말을 잊을 정도였다. 중간중간 박자가 빨라지거나, 랩 부분에서 멈칫하다가 까르르 웃는 소리조차도 사랑스러웠다.

[가끔은 두려워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지

한순간의 꿈은 아닐지

하지만 널 생각하면

한없이 강해지는 나야]

떼창 이벤트만으로도 정신이 혼미할 만큼 황홀한데, 3층에서부터 쭉 살펴보니 슬로건을 플래카드로 사용해서 글자를 만들었다.

[크리드 편

CL♥VER]

그리고 각 슬로건에도 문구가 따로 있었다.

[우리의 청춘을 사랑해!]

‘청춘…….’

슬로건을 들고 우리를 보는 눈 하나하나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애정이 느껴졌다. 아무리 팬들을 사랑한다고 해도 팬들의 애정에 반의반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벅차고 거대한 마음이었다. 막을 새도 없이 눈물 한줄기가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미 멤버들도 눈물 바다가 된 지 오래였다. 나는 조용히 팬들의 노랫소리를 따라 노래를 불렀다. 화자가 되어 직접 쓴 가사를 청자가 되어 들으니 더 뭉클했다.

나는 말없이 어깨를 토닥이는 지운이 형의 어깨에 몸을 기댔다. 회귀 이후 모든 일들이 꿈같았지만, 이 순간을 함께 한다는 것이 가장 믿기지 않았다.

“진짜 예쁘다-”

“이거 꿈 아니겠죠?”

“당연하지. 꿈보다 더 비현실적이잖아.”

“꿈이어도 상관없을 거 같아.”

“그럼 난 안 깨어날래.”

울지 말라는 팬들의 외침에 고개를 돌려 보니 전광판에 나와 유현이 형의 얼굴이 정면으로 잡혀 있었다. 나도 많이 울었지만, 형이 고개를 떨구고 우는 것은 처음이었다.

노래가 끝나고 다시 팬들의 환호성이 들렸다. 한동안 가시지 않는 여운에 멤버들도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급하게 눈물을 닦고 마이크를 쥐었다.

“뭐야아… 이런 건 언제 준비했어요?”

“우리도 나름 야심 차게 이벤트 준비했는데 클로버가 준 선물에 비하면 너무 작은 거 같아.”

관객석 곳곳에서 아니라는 외침이 들렸다. 그중 한 팬이 엄청난 성량으로 외쳤다.

“뭐가 작아!”

진심이 가득한 고함에 펑펑 울던 멤버들도 그 소리에 잠시 울음을 그치고 웃음이 터졌다. 나 역시 자꾸만 헛웃음이 나오는 걸 참느라 배가 아팠다.

“뭐, 뭔가 혼나는 기분이야. 알겠어요, 화내지 마요~”

“덕분에 눈물이 쏙 들어갔어. 고마워요, 더 울면 진행 못 할까 봐 걱정했는데-”

“진짜 끝내기 싫다…….”

윤빈 형의 아쉬움 가득한 말에 팬들도 다시 처음부터 하자고 외쳤다.

“우리 그냥 신세계부터 다시 할까?”

“지금 7시 아니야? 오프닝 무대 해야겠네!”

“여러분, 막차 끊겨도 괜찮아요?”

“…응!”

“지금 망설인 클로버 몇몇 내가 봤는데?”

“…아, 아니야!”

“아, 진짜 귀여워!”

선우 형의 외침에 공연장이 떠나가라 환호성이 터졌다.

“맨날 클로버가 우리 귀엽다고 하는데 클로버가 더 귀여운 거 알아요?”

“으아아아아!”

“문승빈, 네가 더 귀여워!”

“아니 생각해 봐, 이거 하면 크리드 애들이 좋아하겠지? 생각하고 이벤트 준비했을 거잖아요. 맞죠?”

“응!”

“클로버는 귀여운데 천재이기까지- 이 많은 자리에 어떻게 하나하나 슬로건을 둔 거예요? 너무 대단해…….”

한 치의 꾸밈도 없는 순수한 감탄이었다. 1만 석이 넘는 자리에 글자를 만들기 위해 카드를 배치하고, 실제로 글자가 만들어지는지 확인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을까- 가늠이 되지 않았다.

“우리도 똑같은 마음으로 이벤트 영상을 준비했어요. 물론 클로버의 이벤트보다는 작은, 아니 소박한 이벤트였지만…….”

“너 방금 혼나서 작다고 하려다가 만 거냐고-”

“역시 강도현, 네가 그 말 할 줄 알았다.”

“제가 또 이런 건 잘 알아채잖아요~”

“아무튼, 소박하다고 표현해도 이해해 주세요. 솔직히 클로버가 너무 큰 이벤트를 해 줬잖아요! 이것보다 어떻게 더 큰 감동을 줄 수 있어요? 여러분이 저희를 사랑하는 만큼 제가 여러분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승빈이 진짜 감동 받았나 보다.”

“맞아. 나 승빈이가 저렇게 말 빨리 하는 거 처음 봐.”

“그리고 저런 거 진지하게 얘기하는 스타일도 아니잖아.”

말하면서 너무 감정이 격해졌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멈출 수 없었다. 아무리 냉혈한도 이 이벤트를 보면 눈물이 날 것이다. 이걸 보고 감동 안 받으면 사이코패스다.

“너무 아쉽지만…….”

“가지 마아아-”

“우리도 가기 싫어요오… 그래도 내일 또 만나니까 너무 아쉬워하지 말기! 내일 못 만나는 클로버들도 좋은 기억 가지고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이벤트로 너무 울어서일까, 마지막 멘트에는 모두 씩씩하게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조심해서 들어가요!”

“내일 봐요!”

“잘 가요~”

모든 순서를 마치고 무대 막이 내려오는 내내 팬들에게 아쉬움 가득한 인사를 했다.

* * *

팬 미팅 둘째 날, 오늘은 크리드가 데뷔한 지 딱 1주년인 날이었다. 타이밍 좋게 팬 미팅이 겹치면서 이벤트를 준비하는 팬들은 평소보다 더 분주히 움직였다. 전날 카드 섹션과 떼창 이벤트가 역대급으로 성공하면서 오늘 이벤트의 부담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미 이곳저곳에 [레전드 팬 이벤트 현장] 등의 이름으로 퍼져 있었다.

“영상 알티 수 봤어?”

“위튜브 쇼츠로 올라간 영상도 벌써 조회수 200만 넘었잖아.”

“오늘 이벤트 팀 엄청 부담되겠다…….”

“애들 오늘도 이벤트 준비했으려나?”

“어제랑 똑같은 거 아닐까?”

“하, 근데 다시 봐도 어제 미쳤지 않았냐? 나 아직도 팬 미팅 뽕이 안 빠짐.”

어제의 여운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문스트럭 역시 1주년 기념으로 만든 스티커와 도무송을 무료 나눔을 진행했다.

드디어 공연이 시작되었고, 분명 같은 오프닝곡인데 첫날처럼 흥분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세트 리스트를 알게 된 팬들은 응원법을 더 우렁차게 외쳤고, 무대의 열기는 더 뜨거워졌다.

“대박인데요? 어제보다 함성이 더 커진 거 같아요!!”

세트 리스트는 같을지라도 멤버들의 멘트나 텐션은 어제와 또 달랐다. 대부분 준비된 멘트를 하기 위해 프롬프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데, 크리드는 계속 팬들과 눈을 맞추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제발 정해진 대본대로 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졌다.

그리고 어제 멤버들의 이벤트가 있었던 시간이 되었다. 어제 본 영상이니 잠시 화장실이라도 갔다 와야지 생각했던 문스트럭의 허를 찌르는 영상이 시작됐다.

“어제랑 같은 거겠지-라고 생각하는 클로버들 있겠지?”

승빈의 멘트에 잠시 긴장을 풀고 있던 주변 클로버들도 모두 자세를 고쳐 앉았다. 곧 전광판에 자막 하나가 떠올랐다.

[데뷔 D-0]

“뭐야?”

“어제랑 다른데?”

“데뷔 날 비하인드인가?”

[승빈: 오늘 드디어… 저희 크리드가 데뷔합니다. 너무 떨리네요. 그래도 열심히 준비한 만큼 다 보여 드리고 오겠습니다!]

“아, X친. 왜 이렇게 꼬질하고 귀여워?”

지금보다 볼살이 더 많던 시절의 승빈을 다시 보니 절로 앓는 소리가 나왔다. 주변의 승빈 팬 중 저 많던 볼살이 어디 갔냐며 우는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데뷔 첫날이라 긴장했는지 묘하게 경직된 모습도 지금은 보기 어려운, 그래서 희한하게도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선우: 저 청심환 챙겨 왔어요.]

“진짜 엉뚱하다니까?”

박선우다운 엉뚱한 발언에 모두 웃음이 터졌다. 함께 영상을 보던 박선우도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쟤는 데뷔 날 왜 저런 얘기를 했대?”

“형이 생각해도 형이 이해가 안 가죠?”

“참 나, 재봉이는 무슨 말 했는지나 보자.”

[재봉: 토, 토할 거 같아요.]

“으악!”

“청심환이 더 나은 거 같다, 재봉아.”

“아, 승빈이 형, 놀리지 마요-”

“사실 나도 저 청심환 하나 얻어먹었거든.”

평소 가장 멘탈이 센 멤버라고 생각한 승빈이 데뷔 날 청심환을 먹을 정도로 긴장했다니- 팬들에게는 신선한 충격을 줬다.

[지운: 모두 고생 많았고, 준비한 만큼 다 보여 주고 오고 싶어요.]

[윤빈: 너무 재밌을 거 같아요! 우리 멤버들 모두 다 잘하니까 걱정 없어요!]

[유현: 잘하고 오겠습니다.]

[도현: 후회 없을 만큼 연습했으니까… 연습한 만큼만 해도 후회 없을 거 같아요.]

그리고 데뷔 무대를 마친 멤버들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다들 울었나 봐, 눈 부은 거 봐-”

“와중에 유현이만 멀쩡하네.”

[1년 뒤의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은?]

[지운: 몸도 마음도 건강하지? 1년 뒤에도 오늘 잊지 말고 늘 겸손하게 활동하고 있길 바라.]

[유현: 자만하지 말고, 리더로서 책임감 있게 잘 해내고 있으리라 믿는다.]

마지막은 승빈이었다.

[승빈: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지만, 네게 주어진 모든 기회에 최선을 다하고 있길 바라. 클로버들의 사랑도 많이 받고!]

승빈의 1년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무엇 하나 소홀히 한 게 없는 승빈이었다, 팬들에게도, 멤버들에게도, 동료들에게도. 젖살도 다 빠지지 않은 앳된 얼굴의 소년이었는데, 1년 사이 너무 많이 커 버린 건 아닐까 울컥하는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1년 전 나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영상이 끝난 후 이어진 건 멤버들이 준비한 편지를 낭독하는 이벤트였다. 모두 진심이 뚝뚝 떨어지는 편지였다. 눈물을 보이는 멤버들도 있었고,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승빈의 차례가 오고, 문스트럭은 울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했지만 첫 문장부터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1년 전의 나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우선 정말 고마워! 네가 잘 버텨 준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거 같다. 저 때는 다 컸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너무 어렸던 거 같아. 너는 1년 동안 정말 많은 기회를 얻었고, 네 바람만큼 해냈는지는 모르겠지만 많은 클로버들의 사랑을 받았어. 그리고 지금도 받고 있단다. 네가 걱정하고, 고민했던 숱한 밤들이 있었기에 지금 내가 더 단단한 마음으로 클로버와 주변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었어. 어리지만 한없이 강한 1년 전의 나야, 두려워하지 마. 네가 걷는 모든 길에 사랑이 가득할 테니까.”

마지막 문장을 말하면서 승빈의 눈가도 촉촉해졌다. 문스트럭은 탈수 직전이었지만. 이렇게 이벤트가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또 다른 영상이 재생됐다.

[우리가 크리드와 함께한 1년]

이번 이벤트는 팬들이 직접 크리드와의 추억을 담은 영상을 제작한 것이었다. 데뷔가 확정된 날, 데뷔 날, 미니 팬 미팅, 넥스트 레벨 우승 등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이 펼쳐졌다.

[우리가 만들어 갈 또 다른 1년은 오늘보다 더 행복할 거야!]

그리고 영상을 다 본 멤버들이 고개를 돌린 순간, 수만 개의 종이비행기가 무대 위로 쏟아졌다.

“어떻게 이렇게 매일 감동을 줘요?”

두 눈을 반짝이며 묻는 승빈에게 문스트럭은 몇 번이고 답했다.

‘그야, 너희는 매 순간 말도 안 되는 감동을 주는 사람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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