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화
PC방에 모인 혜진과 정연, K 사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모두 예매창을 기본 3개씩 켜 두고, 다른 공연으로 손을 풀고 있었다.
“대리 구했어?”
“당연하지. 이건 내 동생 아이디로 하는 거.”
“나도 엄마 아이디로 하고 있는데.”
모두 이날을 대비해 온 가족 아이디로 모두 공식 팬클럽을 가입해 뒀다. 본인들도 모르는 사이 클로버가 되어 버린 그녀들의 가족이었다. 실시간 시간을 보여 주는 사이트를 들어가니 이미 많은 사람이 크리드의 첫 팬 미팅 예매를 위해 모여 있었다.
-크리드 팬미팅 가보자고 (3948)
-승빈아 누나가 간다(592)
-차지운 보고 극락 갈 파티원 구합니다(384)
짹짹이에서도 크리드 팬 미팅 티케팅이 실시간 트렌드에 오르며 큰 반응을 얻고 있었다. 성공적인 티케팅을 기원하는 행운 부적을 만들거나, RT 이벤트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크링이♡Slow팬미팅첫날 @cring_
[클로버들의 성공적인 팬미팅 티켓팅을 응원하며 행운 부적 무료 배포합니다]
그리고 공식 인증을 놓쳐서 선예매에 참여 못 하는 사람들도 더러 보였다.
[공식인뎈ㅋㅋㅋㅋㅋ그냥 공식가입비 낸 사람 되벌임]
-안챙긴 니 잘못이짘ㅋㅋ
└진짜 맞는말한다…쳐맞는말
-인증이 뭔데 나랑 크리드 사이를 갈라놔
-공식인데 선예매를 못하는 사람이 있다고???설마???? 응 그게 나임ㅎ
인기 아이돌 중 이름을 세 번 말하면 이뤄진다는 돌판 팬들 사이의 민간 신앙도 있는데, 해당 아이돌의 이름 역시 실시간 트렌드에 오르고 있었다.
“1분 남았다…….”
“하, 티케팅은 해도 해도 적응이 안 돼.”
“다들 좋은 자리 잡자.”
“어떻게든 가고 만다.”
“가 보자고.”
3, 2, 1.
역시나 엄청난 대기 인원이었다. 그래도 1n년간의 덕질 짬밥으로 걱정보다 더 빨리 서버를 뚫을 수 있었다. 셋 다 숨죽인 채 티케팅에 몰두했고, 마우스 커서 소리와 보안 문자를 치는 키보드 소리만 들렸다. 주변에서 게임을 하는 고딩들의 욕설과 까랑까랑한 BGM 소리도 이 순간만큼은 노이즈 캔슬링 처리된 지 오래다.
“아, X친. 자리 돌았다.”
“나도!”
결제를 마친 혜진과 K가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른 표를 찾던 중에 정연의 절망 가득한 탄식이 들렸다.
“X발… 나 아직 못 들어감.”
“아직도?”
“어. X된 듯? 너네는 잡음?”
“나 2층 잡음.”
“난 플로어.”
“자리가 없어, 하…….”
“이제 본인 확인 빡세져서 대신해 줄 수도 없고…….”
다 죽어 가던 정연을 살린 것은 대리 티케팅으로부터의 연락이었다.
“살았다… 플로어 잡았대. 진심 돈값 하네.”
“첫날? 마지막 날?”
“일단 첫날. 일요일 표는 일예 때 도전해 봐야지.”
“일예 때 얼마나 풀릴지 모르겠네……. 선예매인데 바로 매진이라니, 애들 슈스야, 완전.”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순식간에 매진이 될 줄 몰랐다. 대리나 용병이 없다면 양일을 한 번에 잡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짹짹이에는 공식에 가입하지 못한 클로버, 일반 예매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사람들의 한탄이 가득했다.
[전석매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ㅈ됐네]
-크리드 이정도임?
└이제 2년차인데 이러면 앞으로 어쩌라고ㅠㅠㅠㅠㅠㅠ
└다음 콘서트부터 바로 체조 가는거 아니냐;;
-내 세상이 무너졌어 한순간에 포도알들이 사라지더라
-대기인원이 5만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집문서 팔아서 가야지…
“근데 애들 진짜 대박이다, 선예매에서 전석 매진이라니-”
벌써부터 크리드의 전석 매진 소식을 담은 기사들이 우후죽순 나오고 있었다. 티켓 파워로는 더 이상 견줄 수 있는 신인 그룹이 없었다. 토스맨 일로 해외 인지도도 최고치를 찍었고, 게다가 부동의 1위인 루커스도 해외 투어로 부재인 현재로써는 명실상부 국내 1군 남돌이 되어 가고 있었다.
“우리 어쩌면 여기서 볼 수 있는 걸 감사히 여기는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당장 내년부터는 체조 입성할 거 같은데?”
“주경기장에서 하면 어떡하지…….”
“거긴 진짜 면봉을 넘어서 하느님석이잖아.”
“난 별로 바라는 거 없어. 크리드가 지금처럼 쭉 승승장구했으면 좋겠어. 그치만 내가 팬 사인회 당첨될 정도와 콘서트에 내 자리 하나 정도는 남아 있을 정도……. 그리고 공방 대리 안 맡기고도 갈 수 있는 정도……?”
“바라는 게 없는 거 맞아?”
“이미 지금도 절반은 불가능한 일들인데요?”
“말이 그렇다는 거지, 뭐.”
“그래도 일단 이번에는 내 자리 있으니까, 그게 중요하지.”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PC방을 떠나는 그녀들이었다.
* * *
[감독님은 거의 확정이신 거 같은데, 소속사 설득함?]
김민영이 직접 보낸 메시지였다. 하긴 이걸 매니저 형한테 전달할 수는 없으니까. 활동과 팬 미팅 준비를 병행하는 와중에도 머릿속에는 드라마에 대한 생각이 가득했다. 사실 분량도 적어서 카메오 느낌으로 출연하는 건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아는 정 감독이라면 카메오 그 이상을 기대해 볼 법했다.
본격적인 촬영은 팬 미팅 이후로 예정되어 있기에 회사에서만 허락한다면 향후 스케줄과도 크게 문제될 부분이 없었다.
‘진짜 욕심나긴 하나 보네.’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드라마 촬영이 가능할지 이후 스케줄 및 여러 상황을 전부 확인해 봤다. 그만큼 절실하게 탐나는 작품이었다. ‘파아란’을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한다. 얼마나 많이 봤으면 웬만한 대사를 다 외웠고, 그것도 모자라 대본집까지 샀었다. 그 작품의 일부라도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게 현실이 될 수도 있다니. 절대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이쯤 되면 미션이 뜰 때도 됐는데…….’
드라마 출연을 확정 짓기 위해서는 ‘설득의 힘’ 획득이 절실했다. 하지만 호락호락하지 않은 상태창은 쉽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어디 두고 보자는 마음으로 팬 미팅 연습에 임했다. 그리고 하늘도 내 노력을 가상히 여겼는지, 마침내 미션창이 등장했다. 그런데 뭔가 낯설었다.
[!퀘스트: 1,000명의 소원 달성!]
남은 기간) D-2
▶성공 시: 뜻밖의 행운 +1
▶실패 시: 뜻밖의 불운 +1
‘뜻밖의 행운?’
처음 등장하는 아이템이었지만, 어쩌면 ‘설득의 힘’보다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 같다는 기대감이 생겼다. 천 명의 소원이라면, 팬들을 대상으로 하는 미션일 텐데. 어떻게 소원을 이뤄 줘야 하나 고민하던 중 번뜩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그런데 이 아이디어를 실행하려면 어쩔 수 없이 반나절은 버릴 수밖에 없었다. ‘크림’이 필요했거든.
7시가 되고, 드디어 크림이 정식 오픈됐다. 멤버들 모두 처음 하는 메신저 플랫폼에 신이 나 있었다. 나도 첫 메시지를 겨우 보냈다. 오픈 날이라서 그런지 사람이 너무 많이 몰렸고 한동안 서버가 터졌다가 복구됐기 때문이다.
[클로버, 우리 매일매일 만나요!]
그러자 메시지들이 우르르 쏟아지기 시작했다.
-승빈이다아아아
-ㅠㅠㅠ겨우 보내지네ㅠㅠㅠ
-우리 매일매일 보자!!
-승빈아 안뇽
-승빈이 저녁 먹었어?
“와… 진짜 빠르다.”
에이앱 댓글 속도만큼이나 많은 메시지가 대량으로 도착했다.
[전에 현재 형이 하는 거 보고 조금 부러웠는데, 직접 하니까 진짜 좋아요ㅎㅎ]
-현재형이 유현재야?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우리 강아지ㅠㅠ
-아 글자수 열받네
-천자쓸 수 있을때까지 가보자고
“그럼 이제 슬슬 미션을 시작해 볼까…….”
[근데 있잖아요, 저 여기서 반말… 해두 될까요?]
-이런 ㅁ1치인
-당연히 되지!!!!!!!!
-승빈아 이름 부분에 @@붙이면 이름 불러주는 것도 된댘ㅋㅋㅋ
“@@를 하면 이름이 불러져?”
[승빈이내꼬@@ 이렇게요?]
-??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ㅁ1치겠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승빈이 내꼬분 어리둥절
“뭔가 이상한데……?”
“아니, 승빈아, 풉! 그걸 그렇게 아, 너무 웃기네!”
옆에서 지켜보던 선우 형이 설명해 줬고, 민망해서 쥐구멍에 숨고 싶었다. 역시나 유행에 민감한 형답게 크림 사용법과 팁을 섭렵한 상태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알아볼 걸 그랬다. 티벡스 때는 어차피 평생 못 할 거 관심도 갖지 말자 주의였고, 배우가 된 후에도 크림을 할 거라는 소식을 듣고 알아볼 시간도 없이 회귀했으니까.
[ㅠㅠㅠㅠㅠㅠㅠ죄송해요ㅠㅠㅠㅠㅠ]
[@@아, 방금 일은 잊어 줘ㅠㅠㅠㅠㅠ]
-아이고 천재강아지야!!!
-누가 알려줬어?ㅋㅋㅋㅋㅋㅋ
-애들이 알려줬나보넼ㅋㅋㅋ
[선우 형이 알려 줬어요ㅎㅎ]
[맞다. 크림 하게 되면 @@이한테 노래 추천해 주고 싶었어!]
[요즘 노래 연습하는데 딱 꽂히는 노래가 얼마 없더라고ㅠㅠ]
[@@이가 노래 추천해 줄 수 있을까……?]
-당연하지!
-다 불러줬으면 좋겠는데ㅠㅠㅠㅠ
-나중에 커버해줘어어
[커버해 달라고?]
[@@이는 내가 어떤 노래 커버했으면 좋겠어?]
-ㅁㅊ
-가보자고
-내가 꼭 LOVE OF THE GALAXY 커버 듣고 만다
됐다. 클로버는 이 정도 떡밥에도 엄청난 단합력을 보여 줄 팬들이다. 아니나 다를까, 짹짹이에 들어가 보니 팬들 사이에서 여러 곡 얘기가 오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확실한 커버곡 소원 성취를 위해서는 투표를 통해서 총공을 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결론이 나왔고, 투표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최종곡으로 ‘Love Of The Galaxy’가 선정됐는지 크림에 동시다발적으로 올라왔다.
“알고 있는 노래라서 다행이다.”
원래 좋아하는 가수이기도 했고, 몇 년 전에 발매한 곡이 최근에 역주행하기 시작한 곡이어서 여러 번 들은 곡이었다. 가사도 좋고, 청량하면서도 아련한 밴드 사운드가 내 취향에도 딱 맞았다. 그런데 워낙 난이도가 있는 곡이라 잘 소화해 낼 수 있을까- 막연한 걱정이 있었다.
“그럼 꼭 해내야지.”
보컬 연습을 할 때는 일부러 고난이도 곡을 연습한다. 될 듯 말 듯 안 되면 오히려 더 승부욕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우와, @@이가 추천한 노래들 다 들어볼게! 마음 같아서는 다 커버해주고 싶은데ㅠㅠㅠ]
-하 이 효자 어쩌면 좋음?
-승빈이 크림 재밌나봨ㅋㅋㅋㅋㅋ 벌써 200개 보냄
“벌써 그렇게 많이 보냈다고?”
[근데…….]
[내가 너무 많이 보내서 @@이 귀찮게 한 건 아니지?ㅠㅠ]
[200개 넘게 보냈다고 해서…….]
-당연하짘ㅋㅋㅋㅋㅋ큐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어디는 안 보내서 문제인데 여기는 너무 많이 보내서 걱정이라고 하고 있넼ㅋㅋ
-너무너무 좋지!! 천개 보내도 돼
팬들에게 보내는 문자라고 생각하니 평소 멤버들과의 단톡방처럼 보낼 수 없었다. 괜히 애교 섞인 말투가 돼서 스스로도 적응이 안 되는 중이다.
[이거 진짜 재밌다ㅋㅋㅋㅋ앞으로도 자주 올게.]
[늦었다ㅠㅠ @@이, 잘 자!]
[나도 @@이가 추천한 노래 들으면서 잘게ㅎㅎ]
[문나잇! 내꿈꿔(부끄러워하는 이모티콘)]
-승빈이도 잘자~
-이모티콘 도랐;;
-문나잇이랰ㅋㅋㅋ잘자 댕댕아
-문나잇!
단톡방에 솔로 무대 곡을 정했다는 메시지를 보냈고, 곧 미션 클리어창이 떴다. 그리고 뜻밖의 행운은 다음 날 곧바로 효력을 발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