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화
“코어 측에서도 제의를 받았고.”
“위약금 물고 데려오겠다고요?”
“그런 셈이지? 솔직히 나도 그러길 바라고 있었거든. 우리 소속사에서 겸업 가지고 문제 제기할 때 얼마나 쫄렸는지 알아? 예능 프로그램 날린 것도 어이없는데 나를 다시 썬샤인에 합류시킬 생각이나 하고…….”
나는 형에게 먼저 들어서 알고 있던 내용이었지만, 다른 멤버들은 상당히 놀란 기색이었다. 현실적으로 소속사를 옮기기란 쉽지 않지만, 코어 측에서 먼저 제안했다면 얘기가 달라졌다. 나도 그 가능성을 보고 형에게 정보를 전달해 준 거였고.
“기사 연속으로 몇 개 더 터트린 다음에 소속사 옮기는 거까지 공개하려고.”
“대박. 형, 그럼 옮길 소속사를 아예 결정한 거예요?”
“어. 일단 크리드 하는 동안에는 쭉 코어 소속으로 지내게 될 거 같아.”
기대 이상의 결과였다.
“이게 다 승빈이 덕분이지.”
“승빈이 형이요?”
“승빈이가 왜 거기서 나와?”
트로피 엔터에서 처음 기사를 냈을 때부터 바로 선우 형을 불러서 얘기를 나눴다. 회귀 전에도 똑같은 패턴으로 불만을 제기했던 소속사였기에, 활용할 수 있는 정보들이 있었거든.
그때도 한동안 지지를 받던 트로피 엔터에 대한 반응이 일순간 뒤집힌 건 바로 정산 비율 공개 때문이었다. 씨넷 측에서는 원소속사에 정상적으로 정산을 해 줬지만, 트로피 엔터가 선우 형에게 수입을 낮게 속여서 정산했던 게 밝혀진 것이다. 형 몰래 돈을 빼돌린 거였다.
결국 진실이 밝혀졌지만, 소송 등의 절차가 길어지면서 투샤인 멤버들이 정신적으로 상당히 고통받았다는 얘기를 들었다. 뒤늦게 원소속사와의 정산금을 재확인한 다른 멤버들의 계약에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대부분이 문제가 있었거든. 트로피 엔터가 불러온 나비 효과였다.
“승빈이가 원소속사랑 코어 엔터 계약서랑 정산받은 내역 전부 확인해 보라고 했거든.”
그래서 제일 먼저 말한 게 바로 정산 관련이었고, 형의 정산 내역과 내 걸 비교해 보니 아주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었다. 마침 또, 나는 원소속사가 없기에 코어 엔터에서 받은 금액이 실제 전체 정산금이라 정확하게 비교할 수 있었다. 트로피 엔터에서 형한테 준 정산서에는 해당 금액이 거의 절반 정도로 낮게 신고되어 있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트로피 엔터 몫을 빼고 형 계좌로 들어온 금액도 실제로 받아야 하는 것보다 훨씬 낮아진 거다.
“미친놈들이 몰래 돈을 엄청나게 빼돌렸더라고.”
사실 돈과 관련된 것들은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서로 공개하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었다. 특히나 일적으로 만난 사이면 더 어려운 문제였고. 그래서 회귀 전 투샤인 멤버들은 서로의 정산 내역을 비교해 보지 못했겠지.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정산을 받았는지 모르니까, 본인이 받은 정산이 문제라는 것도 다들 몰랐던 거다. 하지만, 나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금 내게 중요한 건 선우 형의 문제를 해결하는 거였으니까.
“그래 놓고는 뻔뻔하게 계약이 문제라는 둥 개인 활동이 어쨌다는 둥, 소름 끼치더라.”
“오늘 그래서 회의를 잡은 거였어?”
“어. 걔네가 거짓말하는 증거를 확실하게 잡으려고 여기로 부른 거지.”
“그래서, 결국 잘 끝났나 보네?”
“어. 와서도 정신 못 차리고 계속 거짓말하고 억지 부리길래 다 녹취했어.”
“근데, 그럼 트로피에서는 별 얘기 안 해?”
“걔네 방심하게 하려고 회의에서는 나나 회사분들이나 다 ‘그렇구나, 그러셨구나’거리기만 했어. 아마 지금 자기네가 원하는 대로 될 줄 알걸?”
어쩐지 회의 들어간 라인업이 다들 온화한 인상이다 싶었다. 뭔가 교섭 전문이신 직원분들보다는 인상 좋은 분들 위주로 뽑았다 했더니, 상당히 전략적이었다. 안 봐도 어떤 분위기였을지가 예상이 됐다.
“대단하다, 승빈아. 어떻게 정산을 확인할 생각을 다 했어?”
“계약이 문제라고 그러니까, 진짜 계약에 문제가 있나부터 확인해 봐야 할 거 같아서요.”
“아니, 그리고 아무리 그래도 네 정산서까지 다 보여 준 거야?”
“어. 나 승빈이한테 진짜 감동받았잖아.”
“와-”
재봉이는 아직 어리둥절해 보였지만, 형 라인인 유현이 형과 윤빈 형은 정말 놀란 표정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돈과 관련된 게 제일 어려운 문제니까.
“다들 승빈이한테 잘해 줘야 해. 승빈이가 제일 부자야-”
“에이, 형. 지운이 형도 있잖아요!”
“그렇긴 한데, 넌 개인 활동도 있었으니까 네가 짱임.”
“솔직히 인정. 다들 앞으로 저한테 잘 보이세요-”
자칫 무거워질 뻔한 분위기를 적절하게 풀어 주는 것 역시 선우 형의 능력이었다. 일부러 오버하면서 장난치는 선우 형의 장단에 맞춰 허세 부리는 척을 했다. 돈 가지고 여유롭게 장난을 칠 수 있다니, 문승빈 진짜 성공하긴 했네. 장난이긴 했지만 새삼 감회가 남다르긴 했다.
“암튼 그래서 정산 부분도 코어랑 더 정리해서 기사 띄우려고. 소송까지는 안 갔으면 싶은데, 워낙 더러운 회사라 어떨지 모르겠다.”
“그래도 선우 형, 일단 축하해요.”
“맞아,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자.”
“탈 트로피 엔터를 미리 축하합니다!”
“기념으로 오늘 케이크나 먹을까?”
“얘들아, 우리 아직 활동기다.”
“아 유현이 형, 이런 날은 그래도 축하 한번 해야죠!”
“…그럼 초코만 빼고 고르자.”
“유현이 형 최고!”
그 이후로는 일사천리였다. 원래부터 선우 형을 탐내던 코어 엔터 측에서는 위약금까지 물어 줄 생각이었는데, 역으로 계약을 파기할 꼬투리를 잡게 되니 신나서 일을 처리했다. 정산 및 계약 관련 법률 자문을 다 구한 뒤, 순서대로 기사를 터트렸다.
특히 트로피 엔터에서 처음 주장했던 정산 비율 관련한 부분을 강조하며, 코어 엔터 측에서는 원소속사와 정확한 비율을 나누고 있다고 자료를 공개했다. 예능 콘택 거절부터 정산 문제까지, 쏟아지는 논란에 팬들은 분노했고 트로피 엔터는 결국 항복을 선언했다.
* * *
한바탕 겸업 해프닝이 지나고, 다시 팬 미팅 준비에 전념할 수 있었다. 이제 티케팅하면 공연까지는 한 달이 조금 남은 시점이기 때문에 일정이 촉박했다. 팬 미팅 콘셉은 이번 3집 앨범 콘셉인 ‘하이틴’으로 정해졌다. 이번에는 팬들과 드레스 코드도 맞출 생각이다.
“여름에 하니까 시원한 색깔로 하는 게 좋을 거 같아.”
“하늘색?”
“초록색도 괜찮겠다!”
“우리 공식 색이기도 한 초록색이나 연두색 해도 괜찮겠는데?”
“나도 그 생각했어-”
“그럼 첫날 하늘색, 둘째 날 초록색. 어때?”
“찬성-”
하루 1만 명 수용이 가능한 공연장에 모두 같은 색의 아이템을 가지고 올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기대가 됐다.
“맞다. 다들 솔로 무대 뭐 할지 정했어?”
“난 아직 고민 중.”
“저도요.”
“승빈이, 너는?”
“저는… 정했어요. 근데 지금은 비밀.”
“뭐야- 싱겁게.”
사실 아직 안 정했다. 왜냐고? 곧 팬들의 추천을 받을 예정이니까. 이번 달부터 새롭게 시작한 프라이빗 메신저 플랫폼 ‘크림’이 있다. 그동안 여러 플랫폼이나 sns를 통해 팬들과 가깝게 소통한 경험은 있지만 이렇게 일대일 메신저는 처음이다. 물론 나에게는 일 대 다수지만.
회귀 전에도 ‘크림’은 알고 있었다. 다만 망돌이어서 할 일이 없었을 뿐이지……. 내가 배우로 성공할 즈음에 배우들도 크림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도 시작할 예정이었다, 비록 어플 깔기도 전에 회귀해 버렸지만.
“하, 너무 설렌다.”
“저 앞으로 매일매일 크림에다가 팬 미팅 관련 떡밥 스포하려고요.”
“오, 재밌겠다. 나중에 클로버가 어떤 팬 미팅 스포인지 맞히는 재미도 있을 거 같은데?”
“제가 정확히 바라는 바입니다-”
“내일부터 서비스 시작이라고 했나?”
“응!”
문득 넥스트 레벨 당시 유현재가 크림으로 메시지를 보냈던 게 생각났다. 원체 안 보내는 걸로 유명한 놈인데 웬일로 밥은 먹었냐는 메시지를 보냈던 걸로 기억한다. 이걸 어떻게 기억하냐고? 그날 실시간 트렌드가 온통 ‘유현재 크림’으로 도배됐었거든. 감격한 유현재 개인 팬과 50일 내내 안 온 X끼 얼굴이나 한번 보자는 타팬들, 숱한 ‘현재야, 크림 언제 와’와 같은 알계들로 대환장 파티가 열린 날이었으니까.
“응. 유현재 하는 거 옆에서 본 적 있는데, 꽤 재밌어 보이더라.”
“오- 언제 유현재 크림 하는 것도 봤대?”
“우연히 본 거야-”
다들 처음 하는 프라이빗 메신저에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요즘은 사소한 행동, 말 하나가 콘텐츠가 된다. 회귀 전 한 아이돌도 애매한 2군에서 ‘크림 장인’, ‘크림 효자’로 불리면서 떡상한 일도 있다. 그룹 활동에서는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멤버들도 개인 인지도와 팬덤을 구축할 수 있는 좋은 찬스였다. 물론 그 이면에는 그룹 내 멤버들 간의 소통 줄 세우기, 안티들의 폭언, 짜깁기를 통한 억까 등의 문제도 있지만.
‘뭐든 양날의 검이니까.’
“자, 그럼 단체 커버 무대부터 준비해 보자-”
“네!”
단체로 준비한 커버 무대는 걸 그룹, 보이 그룹 한 곡씩 준비했다. 귀여움과 파워풀함을 모두 보여 주기 위한 전략이었다. 먼저 걸 그룹 곡으로는 웨이브의 ‘Apple cherry pop’이다. 데뷔곡임에도 불구하고 음원 순위 상위권을 차지하고, 챌린지가 유행하면서 유명해진 곡이다. 아이돌 팬들 사이에서는 자신의 아이돌이 꼭 해 줬으면 하는 챌린지 중 하나였으니 팬 미팅에서 한다면 분명 반응이 좋을 것이다.
[Apple 같은 네 눈을 봐
반짝이는 네 입술 마치 Cherry
또 다시 Pop Pop 뛰는 내 하트]
“역시…….”
“과하게 귀엽네…….”
“근데 형들 알죠, 이런 거 안 빼고 잘하는 남자가 진짜 남자인 거.”
“재봉이, 상남자네-”
이제 나를 비롯한 멤버들에게 걸 그룹 커버는 큰 이벤트도 아니다. 이미 방송에서 두 차례나 걸 그룹 커버를 했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보이 그룹 커버보다 더 많이 한 셈이었다.
“이번에는 어떤 방향으로 편곡할 거야?”
“하이틴스럽게 해야죠. 의상도 스쿨 룩…….”
내 말을 듣던 강도현이 갑자기 사색이 돼서는 물었다.
“치마?”
“응?”
엉뚱한 발상에 웃음이 터질 뻔했지만, 일부러 정색을 했다.
“스, 스쿨 룩이라며”
“뭐라는 거야. 도현아, 아무리 클로버가 너의 모든 걸 사랑해 줄 거라지만 아직 그런 모습을 보여 주기엔… 데뷔 초 때보다 더 어색해지겠어.”
옆에서 듣던 박재봉도 배를 잡고 웃었다.
“저 형은 나한테 엉뚱하다 할 게 못 된다니까요? 아, 배 아파…….”
“도현이만 서프라이즈로 입을래?”
“됐어요!”
“그래. 그건 한 10주년 팬 미팅 때 하자. 아직은 클로버와 우리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 테니까.”
눈도 꿈쩍이지 않고 진지하게 말하는 유현이 형에 강도현이 더 약이 올랐다.
“아, 그런 얘기 그렇게 진지하게 하지 말라고요!”
“요즘 너 놀리는 게 제일 재밌어, 도현아.”
“됐고, 연습이나 하죠!”
귀까지 빨개질 정도로 부끄러워하는 건 보기 드문 일이었다.
‘찍어 두면 최소 10년은 놀려 먹을 수 있는데…….’
꽤 아쉬웠다, 말해 주지 말걸.